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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덕적 불감증 - 유동적 세계에서 우리가 잃어버린 너무나도 소중한 감수성에 관하여
지그문트 바우만.레오니다스 돈스키스 지음, 최호영 옮김 / 책읽는수요일 / 201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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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덕적 불감증’이라는 제목을 보는 순간 떠오르는 지난 뉴스들이 있었다. 태국의 방콕에서 일어난 테러로 파손된 문화재 앞에서 웃는 얼굴로 셀카 인증샷을 찍어 SNS에 올린 관광객, 팔레스타인 가자지구를 폭격하는 광경을 언덕에 의자를 놓고 앉아서 구경하고 심지어 박수치며 환호하는 이스라엘 시민들, 뉴욕 지하철역에서 한인이 선로에 추락했는데 지하철이 진입하는 순간을 특종 사진이라고 찍은 기자……. 사람들이 왜 이런 행동을 하는지 사람들의 이런 감정 상태를 무어라 말로 표현해야 할지 막연했었는데 ‘도덕적 불감증’이라는 제목을 보는 순간 바로 설명이 되었다. 도덕적 불감증에 빠진 사람들을 굳이 뉴스에서 찾을 필요도 없다. 흔하게는 인터넷에 쏟아지는 댓글들의 내용만 봐도 도덕적 불감증이 얼마나 만연해 있는지 알 수 있다. 세상은, 사람들은 왜 이렇게 되어가고 있는지,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깊어지는 고민 속에서 만난 책이 바로 ‘도덕적 불감증’이다.  


그런데 처음 책을 몇 페이지 읽는 순간 도덕적인 고민이 아닌, 엉뚱한 고민에 빠졌다. 서평으로 올라온 다른 사람들의 한줄평에서 번역의 문제가 언급되어 책을 읽기 전부터 내심 불안했는데 직접 읽어보니 나도 번역의 문제를 부정할 수가 없었다. 이 책이 다루는 주제는 번역이 매끈하다해도 쉽게 읽을 내용이 아니다. 혹시 번역은 매끈한데 내 이해력이 딸려서 문장이 머릿속에서 해체되나 의심도 해봤지만 꼭 그렇지만은 않아 보였다. 주어와 서술어의 호응조차 맞지 않은 문장이 빈번하게 보였으니까. 그런 이유로 번역된 문장을 다시 재구성해서 이해해야 하는 수고가 필요했고 읽는 속도가 더욱 더뎌졌다. 솔직히 중간에 덮어버리고 읽은 내용만 가지고 다 읽은 척하며 적당히 리뷰를 써볼까 하는 유혹도 있었다. 하지만 새해에 읽는 첫 책에, 그것도 ‘도덕적 불감증’이라는 책을 읽는데 나부터 도덕적 불감증을 가지고 리뷰를 쓰면 안 되니까;; 도덕적으로 열심히 읽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끝까지 읽길 진짜 잘했다. 번역 때문에 읽지 않고 지나치기엔 너무 아까운 책이다. 물론 더 나은 번역으로 개정판이 나와준다면 좋겠지만. 바우만의 다른 책들을 몇 권 읽어서인지 번역의 오류를 나름 극복하고 끝까지 읽을 수 있었다. 읽고 나서 느끼는 가슴의 묵직함이란 이루 말로 형언할 수가 없다….


이 책은 돈스키스와 바우만의 대화체로 이루어져 있다. 돈스키스는 처음 듣는 이름이지만 이 책에서 비중이 상당했고(심지어 결론에 해당하는 책의 마무리도 바우만이 아니라 돈스키스가 한다) 질의 안에 포함된 내용이 질의 이상으로 의미 있었다. 인터뷰나 질의응답 방식의 글들이 대부분 내용의 체계가 떨어지고 단발적 구성이기 십상인데 이 책은 내용이 대화의 흐름을 타고 체계적으로 진행된다는 느낌이었다. 다만 다루는 내용이 쉽지 않기 때문에 목차에 나온 주요 문장들을 수시로 확인하면서 길을 잃지 않는 독서가 필요했다.


이 책에서 짚고 넘어가야 할 내용은 우리 시대의 악은 어떤 모습을 하고 있는지, 도덕적 불감증은 이 시대에 어떻게 해서 초래되었고, 도덕적 불감증이란 구체적으로 무엇인지 이해하는 것이다. 이것을 이해하기 위해 많은 문학작품이 언급되지만 자주 언급되는 소설들이 있다. 조지 오웰의 [1984], 올더스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 예브게니 이바노비치 자먀찐의 [우리들]이다. 세 권의 소설을 읽었다면 내용의 이해가 더 쉬울 것이고 읽지 않았다면 이 책을 계기로 분명 읽고 싶어질 것이다. 그리고 미셸 우엘벡의 [어느 섬의 가능성], 바우만의 저서에서 자주 언급되는 이 책을 더이상 안 읽고 버틸 수 없어 보인다. 올해는 꼭 읽어보기로 했다. 


도덕적 불감증을 설명하기 위해 동원하는 메타포들도 짚고 넘어가야 한다. 그중에서도 “우리의 악마는 이케아, 페이스북의 모습을 한 DIY다”라는 메타포가 이 책의 핵심이다. 이케아는 후반부에 나오는 어니스트 겔너의 ‘모듈형 인간’이라는 개념과 묶어서 이해하면 될 것 같고, 페이스북도 역시 후반부에 나오는 ‘절름박이 악마’와 ‘돈 후안’을 묶어서 이해하면 되지 싶다. (이게 나의 오독이라 할지라도 내겐 영감을 주는 멋진 내용이었다)


마지막으로 다들 가장 궁금해하는 것은, “그래서 어쩌라고?”일 것이다. 도덕적 불감증을 극복할 방안은 있느냐? 음……. 어느 신문의 신간 소개에서 이 책의 결론이 다소 어색하다고 기자가 적어둔 글을 본 적이 있다. 하지만 이 책을 다 읽고 나니 다소 어색하다는 그 결론 외에 도대체 무슨 결론이 있을 수 있단 말인가 하고 그 기자에게 되려 묻고 싶어졌다.(기자분이 이 책을 끝까지 읽었으리라는 믿음이 없어졌다) 내가 생각하기엔 다소 어색하다는 그 결론이 가장 뻔하지만 가장 기본이고 가장 당연한 결론이다. 생각에서 행동으로 이어지기 가장 어렵다는게 문제지만. 두 지성의 대화를 과정을 따라 오롯이 읽어내야만 얻을 수 있는 답이기에 여기에 구태여 내용을 적지는 않겠다. 번역의 문제가 있음에도 아직 이 책을 읽지 않은 분들께 이 책을 끝까지 읽어내어야만 진정으로 얻을 수 있는 답을 통해 잃어버린 소중한 감수성을 발견하시길 독려해본다. (결론만 도려낸 답은 오히려 불감증을 야기할 것이다)


- 번역은 별 두개만 주고 싶은데 책에 담긴 내용 때문에 별 네개.

- 돈스키스와 바우만의 신간이 올봄에 해외에서 출간되나보다. “Liquid Evil”이라는 끝내주는 제목을 가진 책이다. 유동하는 악마쯤 되려나. 최근으로 이어지는 이 책의 뒷이야기일 것 같아 기대가 크다. 부디 이 책은 멀쩡하게 번역되어 출간되길.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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