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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과 종교는 엄연히 그 성격이 다르고 어찌 보면 아주 극단적인 대립관계라고도 할 수 있다. 그런데 몇몇 얼치기 과학자들은 몇 가지 과학적 사실을 두고 자꾸만 종교의 영역을 넘보려고 한다. 마찬가지로 어떤 얼치기 종교인들은 말도 되지 않는 논리로 자기들의 인쇄된 종이쪼가리에 지나지 않는 구절들을 짜집기해서는 과학을 찍어 누르고 나아가 사람들을 세뇌시키려 한다.

가장 대표적인 예 하나씩.

어떤 기독교인들은 노아의 방주에 크기 제한이 있었으므로 대형 공룡들은 태우지 못했다고 한다. 그래서 공룡들은 멸종한 것이랜다. 몇 천년 전 쯤에.. 참 썰렁한 유머다.

어떤 과학자들은 초끈이론을 가지고 석가모니와 연관시키는 등의 황당한 점프를 시도한다. 석가모니는 달을 가리킨 것이지 결코 무슨 물리이론을 설파한 것이 아니다.(라고 나는 생각한다.)

 

그런데 물리학자들이 조심스럽게 꺼내는 얘기가 있으니 바로 '인간원리'. 인간원리는 보면 볼수록 사람을 당기는 마력이 있다. 그러니까 조심해야겠다. 인간원리에 대해서는 엄청나게 두꺼운 책으로 나올 정도로 많은 정의와 이론들이 있다. 수학과 물리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을 위해 다소 철학적으로 말하자면, "우주를 바라보고 분석할 또는 감상할 지적존재인 인간이 없으면 우주는 존재의미가 없다.'는 것이 바로 인간원리다.

그런데 이러한 설명은 수많은 궤변을 낳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수학과 물리를 이해하는 사람들을 위해 더 정확하게 정의되는 인간원리는 대체로 이렇다. "우주의 물리 상수들은 우주 탄생시점부터 지적존재 탄생을 위해 의도된 것처럼 보인다
."

딱 부러지게 "이것이다!"라고 하는 것이 아니라, "..처럼 보인다."라는 표현이 여기서 대단히 중요하다. 제대로 된 과학자들은 일부 얼치기 종교인들처럼 함부로 "신은 이랬다."라거나, "신은 이런 의도를 가지고 있다."라는 식으로 딱 부러지게 얘기 안 한다. 왜냐면 그렇게 말을 못하기 때문이다. 그렇게 말을 못하는 이유는 잘 모르기 때문이다. 진짜 물리학자들은 "지금까지 관측된 힘의 종류는 4가지다."라고 말하지 결코 "이 우주에는 4가지 힘이 전부다. 더 이상 없다. 이상 끝!"이라고 하지는 않는다
.

인간원리는 중력과 전자기력의 그 엄청난 크기 차이에서도 언뜻 읽힌다. (전자기력이 중력보다 10^38배 정도 세다고 한다. (38승인지 40승인지.. 좀 헷갈리지만 정확한 수량보다는 그 크기 차이의 엄청남에 주목하자.)) 그리고 자연에서 관측되는 네 가지 기본 힘의 비율은 들여다보면 볼수록 도대체 우리 인간의 존재 목적이 무엇일까라는 심오한 물음과 동시에 '아 나는 아직도 멀었구나'라는 지적 갈증도 같이 불러 일으킨다
.

우리 주위에 흔하디 흔한 물을 봐도 인간원리가 들어있는 듯 하다. 물은 고체보다 액체일 때 더 무거운 아주 특이한 물질이다. 이것은 물의 전기적 극성에 기인한다. 물로 존재하면 분자의 운동 에너지로 인해 서로 빼곡히 들어찰 수 있지만 얼음이 되면 결정이 되면서 그 사이에 듬성듬성한 공간이 생긴다. 그래서 얼음의 밀도가 더 가벼워지고 그래서 얼음은 물 위에 뜬다
.

여기 호수가 있다. 추위가 오면 보통은 위로부터 추워진다. 대략 섭씨 30도쯤부터 시작해보자. 어느 정도 활발한 운동 에너지를 가진 물 분자는 그 주위에 운동 자체에 따른 공간을 둔다. 온도가 내려간다는 얘기는 분자 운동에너지가 점점 줄어든다는 것. 그러므로 온도가 내려가면서 분자 주위 공간은 조금씩 줄어든다. , 밀도가 증가하는 것이다. 그런데 물은 그 자체의 특성으로 인해 섭씨 4도일때의 밀도가 가장 크다. 온도가 더 아래로 가면 이번에는 얼기 위한 사전 준비로 서서히 결정구조를 가지기 시작한다. 이때부터 다시 부피가 증가 즉, 밀도가 감소한다
.

중력 조건 하의 유체(액체나 기체내부에서는 무거운 것이 가벼운 것의 아래로 가라앉는다. 이것이 대류 현상이다. 따라서 섭씨 4도의 물은 밀도가 가장 높으니 항상 연못 제일 아래로 내려가게 된다. 온도가 점점 내려가면서 연못 표면은 쉽게 얼어 붙는다. 그러면서 이 얼음층 자체가 이번에는 단열효과도 어느 정도 발휘한다. 따라서 밑바닥에 내려간 섭씨 4도의 물까지 모조리 얼기 위해서는 대단한 추위가 필요하다. 물 자체의 신기한 특성으로 인해 그만큼 연못 전체가 꽁꽁 얼어붙기는 어렵다는 얘기다
.

반면, 물의 특성이 다른 물질들과 마찬가지로 온도가 내려가면서 점점 더 무거워지고 고체 상태에 이르러 최고의 밀도를 가진다고 치자. 연못 표면의 온도가 내려가면서 얼기 시작한 물은 차곡차곡 밑바닥으로 쌓인다. 만약 연못 표면 온도가 섭씨 영하 1도만 되어도 연못은 너무나 쉽게 전체가 얼어버린다. 미약한 생명 활동이 시작되었다 하더라도 조금만 추워지면 금새 꽁꽁 얼어 죽기 쉽상이다
.

하지만, 다행히도 물은 섭씨 4도에서 가장 무거워지고 이렇기 때문에 영하 수십도의 추위가 닥쳐도 표면 얼음의 단열 효과 등으로 인해 어느 정도 규모가 되는 연못은 전체가 몽땅 얼어붙는 일이 상당히 어려워지게 된다. 연못 밑바닥에서는 액체로서의 물이 늘 존재하므로 생명 진화 활동이 계속 유지될 수 있다. 연못 바깥의 기후가 급변을 하더라도 연못 아래는 나름 아늑한 상태를 꾸준히 유지할 수 있는 것이다
.

얼음은 물 위에 뜬다는 사실을 우리는 너무나 익숙하게 봐왔기 때문에 어찌 보면 별로 신기하지 않다. 하지만, 왜 하필 물만 그럴까? 왜 하필 수소 두 개와 산소 한 개가 결합한 분자가 그런 특성을 가지게 되었을까? 인간원리는 이런 질문에서 출발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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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plica watches 2010-03-22 16: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584 2010-05-11 11: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우리는 지구 위에 살고 있다.  

 

우리 지구의 크기는 둘레가 4만 킬로미터다. 시속 100킬로미터로 달리는 자동차로도 적어도 400시간을 운전해야 지구를 한 바퀴 돌 수 있다. 지구 둘레가 의외로 외우기 쉬운 숫자다. 4만. 

지구가 자전하기 때문에 정확하게는 적도 둘레가 남극과 북극 방향으로의 둘레보다 약간 더 길기는 하지만 평균적으로는 지구의 둘레를 4만 킬로미터로 칠 수 있다. 지구 둘레가 이렇게 딱 떨어지는 숫자로 나오는 이유는 단순하다. 과학자들이 미터라는 길이를 지구의 둘레에 기초해서 만들었기 때문이야. 1미터는 지구 둘레의 4만분의 1이라고 정한 것이다

 

, 이제 슬슬 우주로 여행을 떠나보자. 달은 지구에서 38만 킬로미터 떨어져서 지구 주위를 돌고 있다. 그리고 지구는 태양 주위를 1년에 한 바퀴씩 도는데 그 거리는 15천만 킬로미터 정도 떨어져 있다. 거리가 너무 커지니까 점점 더 상상하기가 힘들다. 그러니까 지금부터는 우리 눈앞에 하나씩 그려보자

 

쌀 한 톨이 어느 정도 크기인지 우리는 잘 안다. 쌀이 사실 길쭉하게 생긴 모양이지만 동그랗다고 상상하자. 그래야 동그란 쌀을 지구에 비유할 수 있기 때문이다. 지구가 지름 4 밀리미터 정도 되는 쌀이라면 달은 지름 1 밀리미터의 좁쌀이다. 그리고 좁쌀인 달은 12 센티미터 떨어진 거리에서 쌀인 지구 주위를 돌고 있다

 

지구가 쌀이라면 태양은 우리가 흔히 물놀이할 때 가지고 노는 큰 풍선 크기가 된다. 지름으로 보면 44 센티미터다. 쌀은 이 풍선 주위를 도는데 그 거리는 47미터다. 축구장의 절반에 해당하는 거리다. 축구 경기를 시작하는 중앙선에 놓인 풍선이 태양이라면 지구는 골키퍼 자리에 있는 쌀이고 그 한 뼘쯤 옆에 있는 좁쌀이 달이다. 그런데 쌀에서 바라보면 한 뼘 옆의 좁쌀()과 축구장 중앙선에 있는 풍선(태양)이 거의 같은 크기로 보인다. 이런 우연의 일치에 대해서는 다른 글에서 고찰해보기로 하자.

 

쌀의 자리에서 본 풍선은 그나마 크기라도 느껴지지만, 풍선의 자리에서 골키퍼 위치에 있는 쌀이나 좁쌀은 아마 선뜻 눈에 들어오지 않을 것이다. 지구는 우리에게는 정말 소중하고 따뜻한 보금자리지만 우주에서 본다면 이렇게나 작고 약한 것이다.  

 

이 우주에서 가장 빨리 움직이는 것은 빛이다. 빛은 1초에 30만 킬로미터를 날아갈 수 있다. 지구에서 달까지가 38만 킬로미터니까 빛은 정말 눈 깜빡할 사이에 지구를 떠나 달에 도착할 수 있는 것이다. 빛이 이렇게나 빠르지만 그래도 우주는 굉장히 크다. 우리가 밝은 대낮에 따뜻한 햇볕을 느낄 때 이 태양의 빛은 태양을 떠난 후 8분이 지나서야 우리에게 도착하게 된다. 우리가 태양을 볼 때 그 태양은 바로 지금이 아니라 사실 8분 전의 모습인 것이다

 

우리 지구가 속하는 태양계에서 가장 멀리 있는 행성이 명왕성이다. (명왕성은 최근 공식적으로 행성 목록에서 빠졌지만, 이런 글에서조차 냉정하게 빼버리기에는 너무 매몰찬 것 같다. 그래서 작은 글에서나마 여전히 행성 대접을 해주고 싶다.) 태양에서 명왕성까지는 실제 거리가 약 60억 킬로미터다. 1초에 30만 킬로미터를 날아가는 빛으로도 6간이나 걸리는 거리다. 그런데 원래 빛은 전파와 똑같은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빛과 전파를 한꺼번에 전자기파라는 이름으로 부르기도 한다.

과학이 발달해서 명왕성에 사람이 살게 되었다고 상상해 보자명왕성에 있는 사람에게 지구에 있는 내가 여보세요라고 말하고 전파에 실어 보내면 6간이나 지나야 마침내 그 사람이 전파에 담긴 내 목소리를 들을 수 있다. 그리고 상대가 ‘반갑습니다.’라고 대답하면 다시 6간이 더 지나야 내가 상대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다. 대화 한번 나누는데 12간이나 걸리는 셈이다. 우주의 작은 한 모퉁이인 지구와 명왕성 사이만 해도 이렇게나 멀다


 

그런데 지름 44 센티미터 크기의 풍선인 태양을 중심으로 하는 태양계의 진짜 끝은 버스 두 정거장 정도인 2 킬로미터 떨어진 명왕성 좁쌀이 아니라 혜성을 날려 보내는 얼음 덩어리 집단이다. 실제로 이 얼음 덩어리들은 빛의 속도로 날아서 약 4일 정도 걸리는 거리인 천억 킬로미터 떨어진 지점에 있고 지구를 쌀에 비유할 경우 이 거리는 31 킬로미터가 된다. 

커다란 수박만한 태양이 31 킬로미터 떨어진 거리에 있는 물체들까지 거느리고 있다니 태양이 미치는 영향력이 정말 어마어마하다. 반대로 우주가 그만큼 텅 빈 공간이라는 것도 알 수 있다. 

 

태양에서 제일 가까운 다른 별은 실제 4광년 정도 떨어져 있다. 광년이란 빛의 속도로 날아가도 1년이 걸리는 거리를 말한다. 4광년이 얼마나 먼 거리인지 상상해보려면 우리는 다시 지구를 쌀로 줄여서 상상할 필요가 있다.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대한민국의 어느 축구장 중앙선에 커다란 수박 또는 풍선만한 태양을 두었다고 머릿속에 그려 보자. 골키퍼 자리에는 지구 쌀과 달 좁쌀이 있다. 버스 두 정거장 거리 너머에는 명왕성 좁쌀이 돌고 있다. 만약 그 축구장이 서울 상암동 월드컵 경기장이라면 거기서부터 인천 정도 되는 거리에 태양계의 끝인 얼음 덩어리들이 날아다니고 있다. 지금까지 말한 영역은 우리나라 위에서도 그리 큰 영역이 아니지만, 지구 전체 크기에서 본다면 정말 작은 영역이다. 

 

우리나라를 지구 중심으로 가로질러 나가면 그 반대쪽이 남아메리카의 우루과이쯤 된다고 한다. 거기에 있는 커다란 풍선이 태양에서 제일 가까운 별인 것이다. 그리고 두 풍선 별 사이에 해당하는 지구의 지름인 12,700 킬로미터 정도 거리에는 아무 것도 없다. 이 우주는 이렇게 텅 빈 것과 마찬가지인 곳이다. 그나마 우리가 지금껏 본 것은 이 광활한 우주에서 딱 두 개의 별에 지나지 않는다. 이렇게 넓디 넓고, 텅 비다시피 한 우주공간 한 귀퉁이의 쌀 한 톨 위에서 우리는 살아가고 있다.

이번에는 큰 쪽이 아닌 작은 쪽으로 한번 여행을 해보자. 멀고 먼 우주공간으로 날아가는 것이 아니라 우리 몸을 이루는 그리고 우리 우주를 이루는 원자의 세계로 가보자

우리 몸은 세포로 이루어져 있고 이 세포를 더 깊게 들여다보면 원자들이 나온다. 원자는 크기가 작은 수소도 있고 크기가 큰 우라늄도 있지만 평균적으로는 0.1 나노미터 크기의 구슬로 생각하면 된다. 나노미터란 1 미터 안에 10억 개를 늘어 놓을 수 있는 길이다. 그러니까 0.1 나노미터 크기의 구슬이라면 1 미터 안에 100억 개를 늘어 놓을 수 있다.  

 

4광년이라는 천문학적 거리가 대번에 쉽게 상상되지 않듯이 0.1 나노미터도 마찬가지다. 이번에도 상상과 비유를 동원하자. 맛있는 방울토마토를 떠올리자. 크기가 3~4 센티미터 정도다. 방울토마토와 지구를 한번 상상해보자. 엄청나게 차이가 크다. 그런데 우리가 만약 지구를 방울토마토 만하게 줄이면 그 때 방울토마토는 원자 즉, 0.1 나노미터 크기 정도가 된다. 그러니까 방울토마토와 지구의 크기비율은 원자와 방울토마토의 크기비율과 똑같다.

지구를 생각하면서 지구 위의 내 손에 들린 방울토마토를 떠올려 보자. 그 크기의 차이가 상상된다면 우리는 방울토마토를 들여다보면서 원자의 크기를 가늠해볼 수 있다. 원자라는 것이 이토록 작다.

원자를 좀 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원자핵이 있고 그 주위를 전자구름이 에워싸고 있다. 그러니까 우리가 말한 0.1 나노미터의 원자 크기란 결국 전자구름의 크기였던 셈이다. 그런데 원자의 무게는 대부분 원자핵에서 나온다. 전자는 원자핵에 비한다면 무게가 거의 없다. 양성자나 중성자에 비해서 전자의 무게는 1000분의 1 정도에 지나지 않는다. 

원자의 중심에 자리하고 있는 원자핵은 그 크기가 원자의 만분의 1 정도 밖에 되지 않는다. 팝콘 한 개가 지름 1 센티미터쯤 된다. 원자핵을 팝콘에 비유하면 원자는 그 만 배의 크기니까 100 미터 즉, 축구장만큼 되는 셈이다. 축구장 가운데다 팝콘 하나를 던져 놓으면 그것이 바로 원자와 원자핵의 관계가 된다. 

우리 인간은 우주의 크기에 비해서 정말 보잘 것 없는 크기인 작은 쌀 한 톨 위에서 살아간다. 그리고 우리가 흔히 단단하다고 상상하는 원자 역시 알고 보면 대부분은 텅 빈 공간이다. 하지만 지구가 태어나고 인간이 태어나기까지 우리 우주가 얼마나 오랜 세월을 견뎌 주었고 또 우리를 우주에 등장시켜 주기 위해 얼마나 많은 별들이 태어나고 죽어갔는지를 생각하면 우리 인간들은 정말 서로를 소중하게 생각해야 한다. 우리 주위의 자연이나 생명들도 마찬가지로 소중하다.  

지구가 태어나기 위해 별들이 먼저 죽어야 했었다는 사실을 알고 나서부터는 밤하늘의 별을 보면 저 멀리 어딘가에서 내 몸의 일부가 흘러 왔다는 신비한 느낌이 내 몸을 감싼다. 그리고 앞서 사라져간 별들에게 무척 고맙다는 인사 한마디가 저절로 나온다.

지구를 다시 쌀로 축소시켜 보자. 그렇다면 태양계에서 제일 바깥에 있는 행성인 명왕성은 달보다 조금 더 작은 좁쌀이 된다. 그리고 지구 쌀과 명왕성 좁쌀의 거리는 2 킬로미터나 떨어지게 된다. 2 킬로미터라면 버스 두 정거장 정도 되는 거리다. 버스 두 정거장 너머에 있는 좁쌀 한 톨을 찾기가 얼마나 어려울지를 상상해보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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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중동권 어느 나라 유명한 정치 지도자와 똑같은 이름을 가지고 있었다. 아랍권에는 이름이 똑같은 사람들이 굉장히 많다. 물론, A4 크기 문서에 크기 10으로 써도 한 줄을 훌쩍 넘는 full name이 흔한 공식 이름으로 치면 그 이름보다 많이 더 길겠지만, 소위 우리가 일상에서 부르는 짧은 이름으로는 동명이인이 굉장히 많다.

그는 수단 사람이었다. 한국인인 나와 수단인인 그는 택시 안에서 만났다. 그는 기사였고 나는 승객이었다.

2004년 어느날. 아부다비에서의 출장을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오던 날이었다. 그 당시, 두바이발 한국행은 새벽 2시 부근에 출발했다. 아부다비에서 두바이로 가려면 차로 두 시간 정도. 나는 밤 10시쯤 아부다비에서 택시를 타야만 했다.

UAE는 여러모로 무척 안전한 나라다. 테러니 강도니 따위를 전혀 걱정할 필요없는 그런 곳이다. 다만 고속도로를 달릴 때 무서운 것이 하나 있으니 차들이 전부 날아다닌다는 사실. 곳곳에 무인 단속 레이더가 있지만 이걸 깡그리 무시하고 날아다니는 차들이 많다. 그래서 늦은 밤에 택시를 타는 나는 무엇보다 안전운전이 걱정되었고 그 중에도 택시기사가 졸까봐 가장 걱정되었다.

그래서 나는 처음부터 그에게 말을 걸었다. 단지 졸지 않게 하려고.

UAE에는 외국인 노동자가 대단히 많다. 택시기사는 100% 외국인이라고 보면 된다. 그는 당시 나이 서른 셋으로 수단에서 기계공학을 공부하다가 졸업을 미처 못하고 UAE로 왔다고 한다.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서였다. 그는 총각이었으며 부모와 형제를 모두 부양하고 있다고 했다.

그때까지 나는 수단을 잘 몰랐으나, 그의 설명을 들으니 수단은 내전에 가까운 상황이란다. 남부의 기독교와 북부의 이슬람이 싸운다고 한다. 그는 이름에서 느껴지는 그대로 이슬람 쪽이었다. 하지만 그는 종교를 두고 한 나라가 두 개로 나뉜 현실이 너무 슬프다고 했다.

그리고 그 분열의 뿌리는 서구 열강이 수단 식민 통치 시절에 심어 놓았다고 한다. 내 기억이 맞다면 점령국 이름이 영국이었을 것이다. 여하튼 영국은 철수 이후에도 영향력을 가지기 위해 원래 이슬람 국가이던 수단에 고의적으로 기독교를 전파시켰다고 한다. (수단에 고대로부터의 실제 기독교파가 있다는 보도도 본 적이 있는 듯 한데 내가 여기 옮기는 수단에 관한 얘기는 전적으로 그의 견해임을 강조한다. 나는 여전히 수단에 대해 잘 모른다.)

그는 기독교 증오주의자도 아니고 이슬람 원리주의자도 아니다. 다만, 슬픈 역사에 의해 여전히 슬픈 분열이 진행 중인 조국의 현실을 안타까워하는 지극히 평범한 청년일 뿐이다. 일반적으로 상상하던 이슬람 교도의 엄격한 생활태도와는 달리, 그는 술도 마셔보았다고 한다. 심지어 돼지고기도 한번 시험삼아 먹어보았다고 한다.

술은 아주 가끔 맥주 반캔 정도를 마시곤 한단다. (사실 맥주 반캔은 한국사람 기준으로는 술도 아니다. 음료수랄까..)

돼지고기를 왜 그리 싫어하냐는 나의 질문에 그는 대단히 합리적인 대답을 했다.

"글쎄.. 어릴 때부터 듣고 자라온 문화적 차이 아닐까요? 그래서 나는 돼지고기를 상상만 해도 불결하고, 실제 봤을 때는 역겨울 정도랍니다. 하지만 그걸 먹는 사람을 싫어하거나 배척하는 것 역시 무척 바보 아닐까요? 내가 싫어하는 이유를 다른 이들에게 똑같이 강요할 수는 없죠."

그는 그의 조국 수단에 기독교가 흘러들어온 의도가 어쨌든, 그것을 믿는 사람을 미워하지는 않는다고 했다. 다만 서로가 섞여살지 못하는 현실이 안타까울 뿐.

그는 언젠가 기회가 된다면 미국에 가서 기계공학 공부를 끝내고 싶다고 했다. 하지만 내가 알기로 수단의 일반인이 미국 비자를 얻기란 정말 어렵다. 그 역시 그 현실을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희망을 놓고 싶지는 않다고 했다.

나는 마지막으로 궁금한 것이 있었다. 왜 하필 미국이냐고.

그의 대답은 '나도 잘 모르겠다.'였다. 그에게도 할리우드 영화가 심은 환상이 깊이 각인된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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