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의 경제학 - F16은 세계를 어떻게 빈곤에 빠뜨리는가
비제이 메타 지음, 한상연 옮김 / 개마고원 / 2012년 9월
평점 :
절판


일본 도시바 메모리 인수전에서 사람들이 주목한 부분은 금액이 아니었다. 중국이 도시바를 가져갈 것이냐는 초미의 관심사였고, 결국 중국은 가져가지 못했다. 내부 담당자가 직접 언급하진 않았지만, 중국은 더 많은 금액을 제시했음에도 불구하고 일본 정부, 그리고 그 뒤에 미국정부가 영향력을 행사했을 거라는게 일반적 견해다. 이런 모습은 과거 여러 차례 나타났다. 중국의 대미 무역흑자액이 1조 달러에 달했을 무렵 중국에게는 세 가지 선택지가 있었다. 미국 국채에 투자하는 것, 미국 제품과 서비스를 구입하는 것, 미국 기업을 인수하는 것이었다. 미국은 중국이 구입하고자 원했던 재화와 서비스, 기업을 한사코 판매하지 않으려 했다. 중국이 성공한 사례도 있지만, 미국은 필사적으로 막아냈다.

2003년 미국은 유례없는 호황기를 맞이했다. 저금리 덕분이었다. 저금리를 계속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은 중국의 성장 덕분이었다. 중국은 미국의 기업을 사지 못하는 대신, 안전자산인 미국 국채에 계속 투자했다. 미국은 국채를 언제 발행하던지 확실한 매입처가 존재하게 되자, 금리를 높여서 국채를 팔 이유가 사라졌다. 미국의 대중국 적자는 계속 늘어났다. 경제관계에 있어서 미국이 강점을 가지고 있던 것, 미국의 상품을 중국에 팔지 못했기 때문이다. 미국 정부는 중국 정부를 비난했지만, 중국 입장에서도 할 말은 있었다. 결국 몇 년이 지난 후 저금리 덕에 형성된 서브프라임이라는 주택담보대출 시장이 폭발했다.

미국은 수출의 66%를 전체 수출기업의 3%가 책임지고 있다. 그 중 항공기, 전기기기, 범용산업기계, 발전기, 과학기기 등 하이테크 제품을 수출한다. 롤스로이스 항공엔진의 가치는 같은 무게의 은과 같다고 하니, 하이테크 제품의 중요성은 이루 말할 수 없다. 중요한 수출품목 중 하나는 무기다. 헬기와 미사일, 전투기 등을 판매한다. 컴퓨터와 소프트웨어, 연료전지, 레이저, 로봇 팔, 광학장비 등 하이테크 품목의 상당수는 무기와도 연관이 있는 이중용도 품목이다. 넓게 봤을 때 미국의 주요 수출품은 결국 무기, 전쟁과 연결된다. 미국은 전쟁을 수출하고, 생필품을 수입한다. 미국의 상대교역국들은 무기를 얻고, 생필품이 사라진다.

미국은 거리낌없이 무기를 전 세계에 판매한다. 중국만 제외하고. 중국이 원하는 것은 무기가 아니라, 무기를 생산하는 기업, 군산복합체이기 때문이다. 한국이 전투기를 사고 싶다면, 중국은 보잉이나 록히드 마틴을 사고 싶다. 순수한 경제학적 논리라면, 보잉이나 록히드 마틴은 충분히 살 수 있다. 하지만 미국이 팔지 않으리라는 것은 어느 누구나 알고 있다. 전쟁상품이야말로 세계 경제구조에 중심이라는 것을 저자 비제이 메타는 말한다. 미국, 더 나아가 주요 선진국들은 후진국이나 개발도상국이 결코 하이테크 제품 생산능력을 갖추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단지 그 생산품만을 사가길 바랄 뿐이다. 그 댓가는 후진국의 자원, 식량, 후진국 사람들의 빈곤이다. 더 효율적으로 사람을 죽인다는 하이테크 무기들은, 그 말처럼 사람들을 죽인다. 무기가 사용되서 죽이는게 아닌, 사람들을 굶겨서 죽인다.

UN이 정한 새천년개발목표는 현대 세계를 살아가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엇비슷한 수준의 인간안보를 누려야 한다는 게 그 근본 취지이지만, 일각에서는 달성 불가능하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정말 그런가? UN에 따르면 연간 3,000억 달러만 투자하면 극빈선인 하루 1달러의 생계비로 연명하는 전세계의 가난한 사람들을 구제할 수 있다. 그 액수라고 해봐야 전 세계 연간 군사예산의 1/3이다. - p.254


파키스탄에 신형 무기를 살짝 제공하면 저절로 인도에 새 무기 시장이 열린다. 이른바 군사균형이란 명분 하에 사회적 부는 계속 순환된다. 한쪽엔 먹을 수 없는 무기가 제공되고, 한쪽엔 먹음직스러운 온갖 소비재가 제공될 뿐이다. 지배 엘리트들의 견해에 따라 민족주의와 군사주의는 신성시된다. 미국에서 군인의 위상이 대단한 이유도 그것에 있다. 전쟁의 경제학이 만들어내고 있는 것은 글로벌 테러리스트들, 끊임없이 등장하는 후진국 독재자들과 로비스트들, 그리고 그들이 소비하는 우리의 세금이다. 비제이 메타는 전세계적인 군사비 축소가 이루어져야 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트럼프가 끊임없이 군사적 대응론을 언급하는 이 시점에 이뤄지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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