빚으로 지은 집 - 가계 부채는 왜 위험한가
아티프 미안 & 아미르 수피 지음, 박기영 옮김 / 열린책들 / 201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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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세계 금융 위기의 시작을 알린 2007년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가 일어난 지 벌써 10년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10년이 지난 지금도, 당시 입었던 상흔을 완전히 치유했다고 말하긴 어렵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실업자가 되었고, 집을 잃었고, 자살했을 것입니다. 80년대의 일본 거품경제 붕괴와 미국의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는, 우리가 꼭 알아야 할 사건들입니다. 일본과 미국에 일어난 광풍은 곧 우리에게 닥칠 미래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금융위기를 다룬 유용한 책들이 많이 나와 있으며, 이 책도 그 중 하나입니다. 전조는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습니다.

저자들은 레버드 로스 프레임워크 방식을 이용해 경기침체를 분석합니다. 심각한 경기 침체 이전에는 거의 언제나 가계 부채가 증가하는 현상이 선행해서 일어난다고 말합니다. 대공황, 유럽의 경제 위축,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 이전에도 가계 부채가 급증했습니다.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는 부시행정부의 강력한 주택공급 의지, 그것에 편승한 금융기관의 안이함과 탐욕, 시민들의 맹목적 믿음이 결합된 폭탄이었습니다. 80년대 일본의 거품경제와 마찬가지로, 투기 이면에는 비합리적인 믿음이 강했고, 시장은 그것을 증명해주었습니다. 무조건 '빚내서 집사라'는 부동산불패론, 절대 실패하지 않는 투자라는게 존재한다는 주술적 믿음은 달콤한 독약이었습니다.

1989년부터 1990년 초까지 일본의 부동산 투자액은 1,800조 엔에 이른다. 국고예산이 60조 엔이니 약 30배의 규모다. 이것은 미국을 4개나 살 정도로 엄청난 금액이다. 어마어마한 크기의 투기 이면에는 '주식이나 부동산은 결코 우리를 배신하지 않는다'는 믿음이 강했고 시장은 그것을 강하게 증명해주었기 때문이다. -《굿바이 부동산》p.140


심각한 불황과 이에 선행하는 가계 부채의 증가 사이에는 긴밀한 관계가 있습니다. 그리고 가계 부채의 증가에서 가장 큰 지분을 차지하는 것이 부동산입니다. 가계 부채의 급증은 소비 지출의 감소를 가져오고 장기 불황으로 이어집니다. 은행이 신용이 낮은 사람들에게도 무차별적으로 대출을 해주면서 순자산 하위 20퍼센트 계층은 집값 하락에 따른 위험에 무방비로 노출되어 있었고, 높은 레버리지 비율, 주택 자산에 대한 과도한 투자, 없는 것이나 다름없는 금융 자산의 결합은 이들 가계에 재앙을 예고하고 있었습니다.

돈을 빌린 사람이 있다면, 돈을 빌려준 사람도 있습니다. 저소득층의 부채는 곧 고소득층의 자산입니다. 부동산 거품 폭락에서 인상적인 점은, 주택 자산의 가격이 급락할 때 발생하는 손실은 레버리지에 따라 달라진다는 점입니다. 집값이 하락할 때, 자산이 많은 계층은 별 피해를 입지 않는 반면, 자신이 적은 계층은 큰 피해를 입게 됩니다. 가격 하락으로 인해 가치가 '제로'가 되지 않는 이상 남아있는 가치가 있으며, 남은 자산의 우선권은 금융권, 부자, 정부 등에 있습니다. 가난한 사람들은 집값 폭락으로 그나마 가지고 있던 것조차 모두 잃어버렸습니다. 빚이 일으킨 레버리지 승수 효과가 이들의 순자산에 치명적인 타격을 가했기 때문입니다. 빚의 근본적인 특징은 정확히 가장 가진 것이 없는 계층에 엄청난 손실을 입힌다는 점입니다.

그 결과 이미 심각했던 부의 불평등은, 2006년부터 2009년 사이 더욱 악화되었습니다. 가진 것이 가장 적은 사람들에게 가장 큰 타격을 입히면서 부의 불평등을 강화했기 때문입니다. 이전에도 미국의 부 불평등도는 심각한 상황이었습니다. 순자산 상위 10퍼센트 계층은 1992년에 전체 부의 66퍼센트를 소유하고 있었으며, 2007년엔 71퍼센트를 소유하고 있었습니다. 2010년엔 74퍼센트로 더 상승했습니다. 저자들은 빚에 과도하게 의존하는 금융 시스템은 부의 불평등을 악화시킨다고 말합니다.

재무부가 채무 가계의 부채 부담 완화를 위해서 사용한 자금의 비중은 전체 자금의 2퍼센트 미만이었다. 반면 금융 기관을 구제하기 위한 자금은 전체 비중의 75퍼센트를 차지했다. - p.198


가계 부채는 빚을 진 가계들의 자산에 타격을 입히는 데 그치지 않고, 경제 시스템을 돌고 돌아 결국 모두에게 손실을 입힙니다. 가계 지출의 감소는 주택 가격 폭락과 결합된 가계 부채와 직접적으로 관련되어 있으며, 순자산 손실이 거의 일어나지 않은 지역에서는 소비 지출이 줄지 않았지만, 결국 집값이 하락하지 않은 지역에서도 소비 지출이 줄어들게 됩니다. 현대 경제에서 생산과 소비가 연결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주택 압류 또한 빚이 없는 집에도 가치를 떨어뜨리는 외부효과를 가져오며, 연쇄적으로 발생합니다.

폭탄 돌리기는 언젠간 폭발합니다. 저자들은 가계 부채에 의존한 성장은 매우 위험하며, 구제 금융을 통해 금융 시장의 자금 흐름을 원활하게 하려는 정책 역시 역효과를 낳을 수 있다고 경고합니다. 저자들은 위험 분담 원칙에 입각한 새로운 형태의 모기지 계약, 책임 분담 모기지를 제안합니다. 저소득층에게만 피해가 집중되는 기존의 제도가 아닌, 채무 계약은 돈을 빌려준 대부자도 위험과 책임의 일부를 나누어 가지는 주식의 형태에 보다 가까워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역대 최악의 경기침체, 계속 상승하는 가계대출, 줄어드는 일자리, 세계 최고 수준의 빈부격차, 빚내지 않고는 얻을 수 없는 주택시장.. 지금 대한민국에서 빚내서 집을 사는 것은 자살과 마찬가지일 수도 있습니다. 대한민국은 어쩌면 80년대의 일본, 08년의 미국보다도 더 혹독하고 잔인한 장소가 될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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