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식의 품격 - 빵에서 칵테일까지 당신이 알아야 할 외식의 모든 것
이용재 지음 / 오브제(다산북스) / 2013년 10월
평점 :
절판


혹자는 말한다. 현대는 역사상 어느 때보다 개개인이 자기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시대라고. 소셜과 블로그 등 인터넷 기술의 발달은 수많은 사람들이 기탄없이 자신의 의견을 대중들에게 공개할 수 있게 했다. 인터넷의 발달이 기여한 바는 우리가 더 이상 공간을 주어진 절대항으로, 그 속에서 사회적인 것이 벌어지는 용기나 테두리로 이해하지 않고 사회적 실천을 통하여 비로소 생산된 것으로서 이해하고, 그럼으로써 언제나 이미 존재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행위와 의사소통을 통하여 비로소 만들어진다는 생각에서 출발하게 한 것이다. 이러한 공간 이해는 모든 사회적 단계에서 대단한 결과를 가져오게 되는데, 이런 새로운 공간관은 적어도 하나의 동일한 장소에서 참으로 다양한 공간들이 있을 수 있다는 생각을 허용해주기 때문이다. 이런 경향은 음식문화도 예외는 아니라서, 수많은 음식정보들이 인터넷을 통해 만들어지고, 공유된다. 수많은 블로거들이 주장하는 맛집 정보는 이미 사람들에게 주류적인 것으로 받아들여진다. 그러나 수많은 인터넷 공간을 항해하는 항해자로서 말하자면, 당연하게도 인터넷의 정보가 모든 것이 가치있지는 않다. 안타깝게도 그것을 알아채기는 어렵다. 특히 음식이라는, 직감적이고 감정적이고,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는듯 하면서도 모르는 정보는 그렇다.

지금으로부터 정확히 1년 전의 경험이다. 원광대 서예과 졸업작품전에 서예작품을 구경하러 간 날이였다. 학생들의 서예작품을 보고 나와서 점심을 해결하려 했지만 그 주변의 음식점들에 대한 정보가 전혀 없었다. 그래서 아무 생각 없이 모 포털의 모 블로거가 제목에 맛집이라는 타이틀을 달고 추천한 집에서 점심을 먹었다. 맛이 없었다. 개인적으로 입맛이 굉장히 너그러운 편이라 주변에서 뭐든지 맛있게 먹는다고 말하는 편인데, 군대에 가서도 하이라이스 빼고는 전부 맛있게 먹는 편인데, 그 집은 정말 아니였다. 군복무 중에 먹었던 하이라이스에 비하면 맛있는 편이였지만, 13,000원이라는 돈을 주고 먹기엔 너무나 아까운 음식이였다. 요즘 말로 낚인 셈이다. 그 집에서 유일하게 괜찮다고 평가할 만한 요소는 그릇과 인테리어 뿐이었다.《라면요리왕》이라는 만화에서 인테리어의 중요성을 강조한 장면을 본적이 있고 개인적으로 옳은 주장이라고 생각하지만, 그것도 음식이 기본은 되야 가능한 일이다.

튀김은 재료를 보호하기 위한 조리 방식이므로 겉은 바삭하되 속은 부드러워야 한다. 그 단계를 넘어서야 취향을 놓고 따질 수 있다. 여기서부터 진짜 주관적인 영역으로 접어든다. 좋은 예가 생선요리에 섞는 바닐라 향이다. 유행인지 종종 써먹는 셰프들이 나온다. 이 또한 생선살이 촉촉함을 잃지 않고 잘 익었다는 전제 아래, 어울리는지의 여부를 놓고 갑론을박을 벌인다. 이럴 때에야 '내 취향에는'이 나올 수 있다. - p.11 

물론 1년전의 경험으로 블로거와 맛집문화라는 것을 정면으로 부인하고자 하는것은 아니다. 정말 맛있는 집은 그만큼 맛집리뷰도 많고, 개인적으로 맛집 추천글에 대체로 만족해왔기 때문이다. 다만 대부분의 블로그가 칭찬일색인 경향은 아쉬운 부분이다. 이는 아마도 음식이라는 문화가 우리사회에서 대체로 감성의 영역에 속한다고 판단하고 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적당한 수준만 만족하면 맛있다고 평하고, 음식에 대한 지식이 없으니 그 평을 받아들인다. 이러한 구조는 필연적으로 닫힌 환경을 만들게 되고, 실제로 그렇게 되고 있는듯하다. 때문에 음식이 맛없는건 맛없다고 말할수 있는 글, 그러한 주장을 다른사람들이 받아들일 수 있게 하는 지식을 가진 글의 가치는 높아질 수밖에 없다.

그런 점에서 이 책,《외식의 품격》을 쓴 이용재의 글은 인상적이다. 그의 글을 처음 접한건 블로그에서였는데, 풍부한 지식을 기반으로 한 비판적 자세가 인상적이었다. 칭찬 일색인 맛집문화에 비해 전투적이라면 전투적이라고 할수 있기에, 모 업체로부터 명예훼손으로 형사 고소 절차까지 받았다. 맛없는것을 맛없다고 말하는것조차 두려워해야 하는 세상이다. 에마뉘엘 피에라가 쓴《검열에 관한 검은책》에서도 현대사회에서 고소는 검열의 형태로 나타나고 있으며, 궁극적으로 자기검열의 형태로 나아간다고 하지 않았던가. 그러나 그는 여전히 글을 쓰고 있다. 그 날카로움은 그다지 변한게 없는 듯하다.

회의주의자의 삶은 고달프다. 비판자의 위치에 서기 위해선 더 많은 지식을 쌓고 더 많은 사색을 가져야 한다. 많은 사람들은 그런 수고로움을 받아들이지 않고 굴복해 버린다. 에밀졸라마저도 "부끄러운 공포가 지배한다. 가장 용감한 자들은 겁쟁이로 변했으며, 배신자나 부패한 인간으로 비난받을까 두려워서 어느 누구도 자신의 생각을 말하지 못한다."고 말하지 않았던가? 그만큼 자신의 의견을 타인의 시선에 신경쓰지 않고 말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직감과 감성이 지배하는 한국의 음식계에 지켜야 할 기본은 지키자고 말하는 저자의 포지션은 그래서 기억해둘만하다.

풀기 없는 밥, 조미료 찌개, 국물이 흥건한 파스타, 토핑이 우선시되는 피자 등 완성도가 떨어지는 음식을 지양하자는 저자의 주장은 어찌보면 당연한 것들이다. 그러나 당연한 것마저 지키지 못하는 한국 요리계의 현실에는 아마추어리즘이 자리잡고 있다. 장사 해볼까 하면 가장 먼저 거론되는게 외식사업이고, 그런 마인드를 가진 사람들이 태반이니 당연히 맛이 없을 수밖에 없다. 아직까지 우리사회에서 음식은 '배만 채우면 되지' 수준에서 많이 나아가질 못하고 있다. 그러나 시대는 변하고 있다. 사람들은 점차 맛있는 음식에 아낌없이 돈을 쓰고자 하고 있다. 시간도 있고, 돈도 있다. 문제는 파는 사람이 적다. 새로운 세대는 이러한 사회적 요구를 해결할 수 있어야 한다.《외식의 품격》이 그런 변화의 지평선을 열어 주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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