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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죽음 담당이다. 죽음이 내 생업의 기반이다. 내 직업적인 명성의 기반도 죽음이다. 나는 장의사처럼 정확하고 열정적으로 죽음을 다룬다. 상을 당한 사람들과 함께 있을 때는 슬픈 표정으로 연민의 감정을 표현하고, 혼자 있을 때는 노련한 장인이 된다. 나는 죽음과 어느 정도 거리를 유지하는 것이 죽음을 다루는 비결이라고 옛날부터 생각했다. 그것이 법칙이다. 죽음의 숨결이 얼굴에 닿을 만큼 죽음이 가까이 다가오게 하면 안된다.
하지만 나의 이 법칙은 나를 보호해주지 못했다. 형사 두 명이 나를 찾아 와서 션의 소식을 알려주었을 때, 차갑게 몸이 마비되는 느낌이 순식간에 나를 휩쓸었다. 마치 내가 수족관 안에 들어가 있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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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 끝의 옷걸이에 무어의 정장용 경찰제복이 비닐에 싸여 걸려 있었다. 순찰대를 떠난 다음에 제복을 보관하는 이유는 딱 한 가지였다. 나중에 수의로 사용하기 위해서. 보슈는 제복을 보관하는 건 불길한 징조이자 자신감이 부족하다는 뜻이라고 생각했다. 보슈도 경찰 규칙에 따라 대형 지진이나 폭동과 같은 유사시에 입기 위해 경찰복을 한 벌 보관하고는 있지만, 정장용 푸른색 경찰 제복은 10년 전에 내다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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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슈는 이 도시의 밤을 사랑했다. 밤은 도시의 유감스러운 점을 많이 가려주었다. 밤은 도시를 침묵에 잠기게 했지만 저 깊은 곳에 흐르는 불온한 암류를 표면으로 끌어올리기도 했다. 그는 이 깊은 암류 속에서 움직일 때가 가장 편했다. 어둠 속에서 움직일 때가 가장 편안했다. 리무진 안에 앉아 있는 사람은 밖을 잘 볼 수 있었지만 밖에서는 안을 들여다 볼 수 없었다.
푸른 네온사인이 반짝이는 어둠 속에서 삶과 죽음은 무작위로 사람들을 골라잡았다. 삶의 방식이 너무나도 다양했다. 죽음의 방식 역시 그랬다. 누구라도 영화사의 검은색 리무진 뒷좌석에 탈 수 있었고, 누구라도 법의국의 푸른색 밴 뒷자리에 실릴 수 있었다. 귀가 떨어져 나갈 것 같은 박수갈채를 받을 수 있었고, 어둠 속의 귀 옆을 스쳐가는 탄환 소리를 들을 수도 있었다. 어떤 운명이 누구에게 닥칠지 알 수 없었다. 그것이 LA였다.
가스폭발 화재도 일어났고 집중호우와 지진, 산사태도 있었다. 주행 중인 차량에서 무차별적으로 총기를 난사하는 인간도 있었고 마약에 취해 절도행각을 벌이는 인간도 있었다. 음주운전자도 있었고 구부러진 길도 있었다. 살인 경찰도 있었고 경찰 살인범도 있었다. 나와 잠을 잔 여자의 남편도 있었고, 여자도 있었다. 밤의 매 순간마다 어딘가에선 강간을 당하고 폭행을 당해 불구가 되고 살해당하고 사랑을 받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리고 엄마 품에 안긴 아기도 있었다. 그리고, 때로는, 쓰레기통에 버려진 아기도 있었다.
어딘가에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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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울한 코브 마을의 모두 괜찮은 결말 디 아더스 The Others 1
크리스토퍼 무어 지음, 공보경 옮김 / 푸른숲 / 2010년 7월
평점 :
절판


황당무계하지만 어느 정도는 유쾌하게 읽을 수 있었던 책.
다만 크리스토퍼 무어의 책을 또 읽을 것 같지는 않다. 정신없는 것이 내 코드와는 맞지 않는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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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랙 에코 RHK 형사 해리 보슈 시리즈 1
마이클 코넬리 지음, 김승욱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5년 1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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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읽고 나면 이해되는 표지그림.
흰 커버 이전의 어두운 커버가 책에는 더 어울리는 듯.
난 아무래도 해리 보슈 시리즈를 다 읽어야 할 것 같다.

석양이 하늘을 분홍색과 오렌지색으로 달궜다. 서핑을 하는 사람들의 수영복과 똑같이 밝은 색이었다. 보슈는 할리우드 프리웨이에서 집을 향해 북쪽으로 차를 몰면서 아름다운 속임수라는 생각을 했다. 석양의 색깔이 그토록 눈부신 건 스모그 때문이라는 걸 석양이 잊게 만들어 버리는 것. 아름다운 그림 뒤에 추억한 사연이 숨어 있을 가능성은 항상 존재했다.

"자료 몇 장 읽어보고 날 잘 안다고 한 겁니까? 요원은 날 모릅니다. 도대체 뭘 안다는 겁니까?"
"전 형사님을 모릅니다. 형사님에 대해 알 뿐이죠." 위시는 생각을 정리하려는 듯 잠시 가만히 있다가 다시 말을 이었다. "형사님은 제도권 안의 인물입니다. 평생 동안 그랬어요. 청소년 쉼터, 임시 가정 전전, 군대, 그 다음에는 경찰. 제도와 체제 밖으로 나가신 적이 없습니다. 결함이 많은 사회적 제도와 체제를 차례로 옮겨 다니며 겪으셨죠."
위시는 물을 몇 모금 마신 뒤 이야기를 계속할지 말지 고민하는 눈치더니 다시 입을 열었다. "히에로니머스 보슈•••. 형사님 어머니가 형사님에게 주신 건 500년 전에 죽은 화가의 이름 밖에 없었습니다. 하지만 형사님이 지금까지 목격하신 것들에 비하면, 그 화가가 그린 꿈 속의 기괴한 광경은 디즈니랜드 수준에 불과할 지도 모릅니다. 형사님 어머니는 혼자였습니다. 그래서 형사님을 포기할 수 밖에 없었죠. 형사님은 임시가정과 청소년 쉼터를 전전하며 자랐습니다. 그 시기를 간신히 거친 다음에는 베트남에서 또 생존을 위해 투쟁했고, 그다음에는 경찰국에서 같은 일을 반복했습니다. 그래도 아직까지는 모든 걸 이기고 살아 남으셨죠. 하지만 형사님은 제도권 내부의 일을 하면서도 사실은 아웃사이더입니다. 본청 강력계까지 올라가서 신문 헤드라인을 장식하는 사건들을 다루셨지만, 처음부터 형사님은 아웃사이더였습니다. 형사님이 자기만의 방식대로 일을 처리했기 때문에, 결국 그 사람들이 형사님을 쫓아버린 겁니다."
그녀는 잔을 비웠다. 보슈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막을 기회를 주려는 것 같았지만, 보슈는 그냥 가만히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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