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26
김진명 지음 / 새움 / 2010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왜곡 된 역사의 진실을 밝혀내는데 김진명 작가처럼 적극적인 사람이 있을까?


처음 작가의 책을 마주한 것은 <<황태자비 납치사건>>이었다. 사라진 전문을 통해 명성황후의 죽음을 파헤치고, 일본이 부정하는 진실을 규명하고자 일본의 황태자비를 납치하는 배포 큰 범죄를 행한다는 내용은 파격적이었다. 게다가 사라진 전문이 실제 작가가 추적해 발견한 문서라 하니 왜곡된 사실 속에 묻혀버린 명성황후의 원한을 이제서야 풀 수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 들게 했다. 또한 소설의 종장에 가서 “과거에 눈을 감은자는 현재에도 장님이 된다.” 는 황태자비의 편지에서도 가슴 잔잔한 감동을 받았다. 이는 일본을 한 없이 악의 축으로 몰아세우지 않고, 근거 없는 악 감정만을 드러내지 않게 하기 위한 작가의 배려가 아닐까 하는 생각도 가질 수 있어 더욱 큰 만족감을 가지게 했다.


난 이후로 작가의 팬임을 자처했을 만큼, 개정판으로 나온 책들을 모조리 읽었다. <<1026>>도 그 중의 하나로 박정희대통령의 죽음을 둘러싼 의혹과 숨겨진 비밀을 파헤친다는 지극히 김진명다운 책이다. 사실 박정희대통령 암살사건은 개인적인 관심이 있지 않다면 중앙정보부 부장 김재규에 의해 죽임을 당한 것 정도로만 알 것이다. <<1026>>은 경호실장 차지철을 총해하는 박정희에 앙심을 품고 감정적으로 사건을 저질렀다고 발표된 후 흐지부지 종결됐던 사건을 하나의 픽션적인 암시를 통해 재구성하고 그 속에 감춰진 진실을 유능한 대한민국 청년에 의해 파헤쳐 진다는 플롯을 가지고 있다. 사실 진실을 규명하려 증거를 수집하고, 단서를 추적하는 과정은 마치 헐리웃 영화를 보듯 긴장감 넘치고 다이나믹 하지만 보다 중요한 부분은 일제독립 이후 국내 정치와 문화 등 모든 면에 깊숙하게 잠식하고 조종하던 미국의 영향력이다. 물론 6.25 전쟁을 승리로 이끌어 준 것과 더불어 국제화 시대를 살아갈 체제도입과 물질적인 도움은 헤아릴 수 없을 만큼 큰 것이 맞다. 하지만 일제강점기 이후 선진국으로부터 도입된 민주주의체제나 기타 다방면의 문화들은 대한민국 국민에게 이데올로기적 문제를 양산해 냈고 이러한 내용은 최인훈작가의 <<회색인>>등에서 잘 보여진다. 한 때 제국주의를 통해 식민지를 양산하던 강대국들은 자유민주주의를 선포함으로써 실질적인 식민지를 없애지만, 도상국의 개발을 빌미로 체제의 도입, 물자의 지원 등을 통해 눈에 보이지 않는 식민지를 꾸려나가는 셈이다. 이는 시대적 상황에 비추어 볼 때 대한민국 또한 눈에 보이지 않는 식민지정책의 산물이며, 원조를 받는 대신 정치, 경제, 국방 등 모든 부분에서 선진국의 개입을 받아야 하는 상황을 가져왔다. 김재규 사건 또한 미국의 깊숙한 개입에도 불구하고 독자적 결정을 단행해 눈에 가시 같은 존재인 박정희대통령을 제거하기 위한 술수에 불과했다. 김재규는 미국의 말에 놀아난 꼭두각시일 뿐이었으며, 대한민국은 그렇게 또다시 미국의 수족이 되어줄 차기 대통령을 선출하게 된다.


이러한 진실의 규명은 사건의 전모를 앎에서 그치지 않는다. 어쩌면 우리의 주 적은 북한이 아니라 미국이 아닐까 하는 의문점을 남기며, 심하면 “미군 철수”를 외치는 그들과 다름없는 반미감정을 만들어 낼지도 모른다. 하지만 최근 연평도 사건 등을 보자면 아직까지 대한민국은 미국이란 나라에 의지하는 부분이 너무나 크다. 물론 그렇기 때문에 진실이 왜곡되어도 상관없다는 것은 아니겠지만, 평화적인 의미의 원조마저 거부할 만큼의 반미감정을 조장해선 안될 것이다. 결말까지 마음에 들었던 <<황태자비 납치사건>>의 강도가 좋지 않을까 생각한다.


나는 김진명 작가의 책을 대부분 읽었다. 불과 얼마 전 까지만 해도 팬이라 자처했을 만큼 그의 책에 열광했었는데, 어느 순간 진실과 소설적 허구의 경계 저 쪽에서 의심의 눈초리를 번뜩이는 나를 발견할 수 있었다. 진실의 규명이라는 주제에 도달하기 위해서 작가가 사용한 허구적 사건들은 소설의 어느 정도의 비율을 차지하고 있는지 궁금해졌다. 책에 등장하는 문헌이나 학술적 자료들은 모두 실제에 기반한 것일까? 등장인물이 진실에 접근하기 위해 거쳐야 했던 일련의 사건들과 진실을 증명할 물질적인 증거들은 픽션이 아닌 걸까? 어쩌면 작가가 진실에 도달하기 위해 – 진실을 알리기 위해 – 사용된 증거들이 허구적 상상력에 바탕을 둔 것이라면, 진실을 규명한다는 주제 자체가 거짓 명제가 되는 것은 아닐까? “진실을 알린다”라고 자부하는 작가의 소설이 시대적인 상황과 그에 따른 근황을 근거로 유추된 가정이라면 제대로 된 지식적 기반을 갖추지 않은 독자들을 혼돈에 빠뜨리는 것은 아닐까 우려가 된다. 게다가 그것은 진실이라 주장할 수 없는 허구의 픽션일 뿐일 테니까 말이다. 무작정 모든 자료를 수집하고 분석하고, 새로운 사실(진실)을 밝혀 냈다고 광고하는 것은 과대광고를 넘어서 허위가 될 수 있을 테니까.


차라리 작가는 <<최후의 경전>>같은 SF형식의 소설을 쓰지 말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아니 애초에 이 소설은 <<1026>> 등과는 다른 허구의 소설이라 밝혔어야 한다. 진실의 여부를 떠나 비과학적인 현상을 토대로 서술된 <<최후의 경전>>같은 소설 때문에 다른 명작들도 의심의 눈초리에서 벗어날 수 없음이 안타깝다. 게다가 또 한가지 아쉬운 점은 우리 마음속에 숨겨진 민족주의적 성향을 자극하는 감정적 호소가 크다는 것이다. 진실을 왜곡시키는 주체가 미국으로 등장하는 소설을 읽으면 국가적, 기업적 이익을 위해선 자신의 대통령 – 케네디 암살사건 – 까지 아무렇지 않게 암살하는 비 윤리적, 비 양심적 국가라는 이미지를 굳게 만들어주고, 우리의 주 적은 미국이 되어야 한다는 암묵적인 메시지를 주입하고 있다는 것이다. 물론 우리는 왜곡된 진실을 알아야 할 의무가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후의 선택은 스스로의 가치관에 따라서 하는 것이 맞다. 그러한 객관적인 진실을 전달하는 데에 목적이 있다면, 민족주의적 감정에의 호소는 철저하게 배제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또한 추리물 형식의 – 죄인과 피해자가 극명하기 나뉘는 – 소설에서 벗어나 조금은 지루하더라도 역사서 방법을 취해야 함이 현명했다고 생각한다.


나는 작가의 열정을 비판을 위해 서평을 작성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무조건적으로 책을 옹호 해야 한다고 생각하지는 않다. 책의 감상평은 지극히 주관적일 수 밖에 없으니까.

책을 읽어 나감에 있어 막힘 없이 술술 읽힌다는 것은 필시 작가의 필력이 대단하다는 이야기가 될 것이다. 지금까지 김진명작가의 책은 단 한번도 지루해서, 혹은 어려워서 중도에 읽다가 포기한 적이 없다. 그만큼 지루할 지 모를 역사적 사건과 그 뒤 편에 숨어있는 진실을 흥미로운 사건을 통해 서술해 나가는 실력은 탁월하다는 뜻이 되겠다. 또한 <<1026>> 하나의 작품만을 본다면 최근 접한 일제강점기 이후의 역사서들을 통해 얻은 지식을 통해 조금은 유추할 수 있는 진실과 그 방향이 같아 충분히 공감할 수 있다는 것이다. 위에서도 말한 자국의 대통령 암살사건 – 물론 아직 정확하게 밝혀지진 않았지만 무기암거래 기업이나 정치적인 면 일거라는 추측이 많다 – 만 보더라도 이익에 최우선 하는 나라가 미국임에는 틀림없다. 그 미국의 이익을 위해 희생된 대한민국의 대통령에 대한 감춰진 진실을 “어느 정도” 합당한 논리와 학술적 증거를 토대로 알게 됐다. 박정희대통령의 암살사건은 대통령으로써의 능력이나 존재감을 떠나 외국의 보이지 않는 힘이 작용했다는 것 만으로도 분노할만한 문제다. 물론 진실에 가까운 전모를 알았다 하여 현실적으로 무언가를 바꿀 수는 없겠지만, 이를 자각하고 있다는 것 만으로도 충분히 내게 영향을 주었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진실은 진실이라는 이유만으로 가치를 증명한 것일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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