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n the Road - 카오산 로드에서 만난 사람들
박준 글.사진 / 넥서스BOOKS / 2006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On the Road]

  저자가 배낭여행자들을 만나기 위해 돌아다니는 '카오산 로드'에서 나 역시 아무런 지향없이 헤매이던 적이 있다. 3년 전의 일이고, 32살의 일이다. 일 년이 넘게 동남아와 러시아, 유럽, 중동, 아프리카를 다녔다. 이렇게 말하면 오래 지나지 않은 일 같지만, 내겐 초등학교 졸업앨범을 넘기는 것보다 더한 먼지를 풍긴다. 그만큼 한국에서의 삶은 기억을 갉아먹는다.  

  여행에 대한 모든 것이 그립던 시절, 한 선배가 읽고 있던 [On the Road]를 보게 되었다. 이젠 여행에 관한 책이라면 별로 매력이 없지, 라고 느끼면서도 캄보디아의 붉은 흙길이 펼쳐진 사진에 마음을 빼앗겼다. 고백하자면, 나도 동일한 사진을 가지고 있다. 먼 길을 걷다 같은 곳을 바라본 사람들이 느끼는 호감이라고 할까? 책을 읽게 되었고, 흥미로운 사실 하나와 사이비 여행서들이 선전하는 여행과는 다른, 뭐라할까, 여행의 본질에 가까운 술렁거림이 담겨있다는 점을 알게되었다.

  흥미로운 사실에 대해 먼저 말하자. 그건, 여행을 통해 알게된 친구의 사진이 이 책 속에 게재되어 있다는 것이다. 이건 개인적 즐거움이니 누구와 공유할 수도 없고, 이를 통해 이 책의 은밀한 재미를 설명할 수도 없다.

   그럼 내가 여행의 본질이라고 말하는, 술렁거림으로 들어가보자. 대형서점을 가본 사람들은 안다. 얼마나 많은 가이드북과 개인적 경험을 서술한 여행서적들이 범람, 말그대로 넘쳐 흐르는지. 정보와 사진, 흥겨운 경험, 가판대 위에 올려진 여행서들은 말한다. 앨리스(Alice)를 이상한나라로 이끄는 토끼(White Rabbit)처럼. 바쁘다, 바뻐, 인생엔 시간이 없어, 빨리 떠나라고.

  하지만 여행이 그런 것일까? 즐겁고, 아름다운 풍경에 시선을 빼앗기고, 먹는 재미와 사람들에 취하는 것일까? 솔직히 말하자면, 여행은 즐겁기 보다는 외롭고, 풍경은 아름답기 보다는 기이하고, 사람들은 친절하지 않고 현실적이다. 혼자 먹는 아침이 끝나고 냅킨을 들어 입을 닦는 일은, 혼자 쓰는 호스텔의 화장실 방문을 열어놓고 두루마리 휴지로 밑을 닦는 일과 다르지 않다. 아름답게 보이던 것은 일상이 되고, 쓸쓸함은 실존이 된다.

  가이드북은, 색동옷처럼 편집된 여행책은 고통에 대해 기술하지 않는다. 방콕의 싸구려 여관 침대에서 질러댄 내 비명은 지금도 내 귀에 생생한데, 어디에도 없다.

  [On the Road]의 미덕은 포장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 책엔 정보도, 아름다운 사진도, 미식가들의 웃음도 없다. 각자의 여행을 자랑하는 다채로운 책들이 편집의 기술을 보여준다면, [On the Road]는 정보와 풍경에 아무 관심이 없다는 듯이, 카메라와 마이크를 여행객에게 집중한다. 


  이 집중이 [On the Road]가 가진 힘이다. 여기엔 쓸쓸한 자유와 처절한 홀가분함, 떠난자의 두려움이 담겨 있다. 물론 장에 따라, 자유는 포장육처럼 싱싱하게 포장되어 있기도 하다. 그게 이 책의 유일한 단점이라고 할 수 있다.

  포장육에 담긴 자유를 한 근 구매했다면, 살점이 떨어져 나간 육(肉)의 고통을 읽는 것은 여러분의 몫이다.

  아이는 성장해서 어른이 된다. 하지만 이 도시에서 성장이 가능할까? 아이는 도시에서 단지 장성할 뿐이다. 길은 유일한 성장의 공간이다. 그게 길 위에 올려진 하나뿐인 가능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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