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eBook] 가장 사소한 구원 - 70대 노교수와 30대 청춘이 주고받은 서른두 통의 편지
라종일.김현진 지음 / 알마 / 2015년 10월
평점 :
판매중지
☞ 제목에 딸린 부제는 '70대 노교수와 30대 청춘이 주고받은 서른두 통의 편지'다. (포스팅 제목에 같이 넣으려 했건만 글자수 제한을 받아 할 수 없었던) 길고 긴 부제가 이 책에 대해 말해준다. 70대와 30대가 과연 무슨 얘기를 주고받았을까.
편지에는 개인과 사회에 대한 얘기가 어우러져있다. 격동의 근현대사를 겪어온 70대 교수에게 헬조선을 살고있는 지금의 30대 청년이 과거는 어땠느냐고 지금은 어떻게 생각하시느냐고 묻는다. 서로를 존중하면서 조심스럽게 그러나 절대 회피하지는 않고 집요하게 묻는다. 둘의 기싸움이 팽팽해서 웃기도 했다.
젊은이는 솔직하게 대놓고 묻는다. 하지만 노교수는 말을 아낀다. 그러면 젊은이는 그래도 알고싶다며 다시 곧바로 물어본다. 그제서야 노교수도 조금 드러낸다. 그러나 여전히 젊은이가 원하는대로 속시원한 대답은 아니다. 노교수는 그렇게 직접적으로 말하는 것은 원하는 방식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것 같고 젊은이는 두루뭉술한 답변은 원하지 않는 것 같았다.
또 웃겼던 것은, 젊은이가 과거의 인물을 끌어와 지금과 대입하면서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으면, 노교수는 예전에 그 인물을 만난 적이 있었노라며 일화를 얘기해준다. 그런데 그 인물이 영국의 찰스 왕세자/다이애나 왕세자비 내지는 미국의 부시 대통령 같은 사람들이다. 읽으면서 헛웃음이 나왔다. 우리나라 버전으론 김대중 前 대통령에 대한 얘기를 해줬고, 일베나 서북청년단 같은 단체에 대해서 물어보자 옛날에 서북청년단 또한 직접 만나본 적 있다면서 얘기해준다. 얼마나 신기한가. 인터넷이나 매체에서 접하는 게 아닌 직접 본 사람의 생생한 증언이다. (얘기를 들으면 내가 얼마나 언론에 보이는 것만 생각했는지 반성하게 된다)
그래서 노인은 귀중하다. 격동의 근현대사를 겪으면서 단시간에 너무 빨리, 많이 변했기에 간극이 크다. 이렇게 많은 경험을 하고 담담하게 그랬노라고 말해주는 노인도 있는데 왜 세상은 꼰대만 많은 것 같을까. 이런 어르신은 대체 다 어디 계신 걸까. 이런 세대사이의 간극은 책에서 30대가 말하듯 노인에 대한 편견을 만든다. 그리고 70대의 노교수는 그런 잘못된 인식마저 콕 집어서 얘기해준다.
책에서 말하고 있는 30대의 말은 왠지 20대(대학생)가 말하는 것처럼 읽혔다. 초반엔 공감하며 읽었지만 점차 지치게 된다. 간단히 말하면 그녀는 내내 징징거린다. 부모님에게 받은 상처, 연달아 터진 개인적 불운으로 인해 매우 힘든 상태임을 처음부터 고백하는데 노교수도 몇 번은 잘 받아주다가 결국 '마음이 쓰인다'며 짚고 넘어간다. 나는 여기서 또 깊은 감명을 받았다. 내가 그녀에게 마음이 걸린 것도 이 지점이었기 때문에. 그렇게 노교수는 예리하게 지적하고 관점의 전환을 촉구한다. 너무 그것만 바라보고 살지 말라고.
읽다보면 감정이 전이돼서 피로해질 정도인 그녀의 절망이 깔린 물음들은 독자입장에서는 고맙다. 나도 그렇게 노골적으로 누군가에게 묻고 싶었던 것들을 대신 물어주니까. 그녀가 총대를 매준 것이다. 확실한 답변을 위해 그녀 또한 논지가 미숙함을 알면서도 일부러 더 직접적이고 강력한 물음을 던진 것인지도 모른다.
그런 물음에 대한 노교수의 답변은 '이래라 저래라'가 아니다. 멘토를 자청하는 것도 아니고, '나는 더 힘들게 살아왔으니 너희는 지금 힘든 것도 아니다' 도 아니다. 너희들이 직접 생각하라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가 생각할 수 있도록 그가 보고 듣고 겪고 느낀 얘기들을 해준다. 강요하지 않고 여지를 주는 얘기는 얼마나 재미난가. 노교수가 경험했던 근현대사 얘기는 정말 흥미진진했다.
더불어 이 책에는 종교적인 담론도 가득하다. 그들은 필연적으로 삶에 기독교(개신교 + 천주교)가 빠지지 않았던 사람들이기에 가장 가까이에서 보고 느껴왔던 종교적 병폐와 우리나라 발전사와 어우러지는 기독교적 얘기, 그리고 최근엔 교황 방한에 대한 이슈까지도 서로 주고받는다.
그러나 역으로 이 때문에 책이 호불호가 갈릴지도 모르겠다. 노교수의 교훈적 얘기에는 간혹 '하느님이 주신'으로 시작하고 그러니 '하느님에게 감사해야 한다'는 기승전-하느님으로 끝나는 문장들이 있고 성경 비유나 관련 얘기는 꽤 많다. 때문에 기독교 신자라면 이 책이 더 절절하게 공감갈테지만 무교나 여타 종교라면 그냥 그러려니 하고 읽고 넘기면 될 것 같다. 나는 종교는 없지만 그들의 사고방식이 궁금했는데 그런 것들이 조금 이해가 되었다(특히 교회의 사업화 같은 것들이나 우리나라에 왜 유독 기독교가 많은지 같은 것들).
+) 책을 살 때에도 저자에 대한 정보는 없었지만 편견을 갖게 될 까봐 일부러도 찾아보지 않았다.
사실 다 읽은 지금도 상세히 검색해보지 않아 자세한 건 모르고, 그저 책에서 만나 본 느낌에만 충실했다.
++) 노교수 지금 말은 상당히 점잖지만 일화를 들으면 젊은시절 얼마나 혈기왕성했을지 짐작이 간다. 아버지가 '경망스럽다' 했다는 것도 어떤 의미에서일지 알 것 같기도 하고. 아닌건 어떤 상황에서도 아니라하는 강경함이 있으시다(다이애나 비 사망에 관한 코멘트는 대사관이 그래도 되나 싶을 정도였고 일본 신사참배에 대해 일본인 친구에게 던지는 농담은 뼈가 있었다). 『밤은 선생이다』에서 황현산 선생님이 젊은 시절 책 못 읽게 한다고 분노했다던 그 모습이 겹쳐서 혼자 웃었다.
+++) 영국에서 대사관 하고 있던 시절 얘기들도 엄청 재밌다. 역시 영국도 병폐가 만만찮아.
++++) 나이는 30대와 비슷하지만 나는 노교수가 하는 얘기에 더욱 감화되어 읽었다. 내 생각은 그녀보다 이쪽에 더 가까운 듯 하다.
※ 오타가 있다
전자책이라 정확한 쪽수는 알 수 없지만,
- [세상을 사는 방식] 에서, "말하자면 넒은 층의 국민들에게서 해결책이 나와야 하는데,"
- [이해하기 어려운 것을 이해하는 것] 에서, "다른 형제들도 어려움은 마차가지였겠지요."
- [이야기가 주는 힘] 에서, "조금 덜 잘난 채하고 조금 더 겸손한 데에 도움이 된다고 할까요."
종이책에도 똑같은 오타가 있으려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