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닙니다. 새 걸 다시…….”
나이토가 허둥지둥 다시 주방으로 돌아가자 스미야가 입술을 쭉 내밀었다.
“역시 우리 누님. 행동 하나하나가 어쩜 이리 똑부러지시는지.”
“네 말은 어쩜 그리 하나하나 거슬리니?”
네코는 손가락으로 권총을 만들어 스미야에게 쏘는 시늉을 했다.

고타로와 유토가 손뼉을 치며 박장대소한다. 점포 안에 있는 다른 손님들이 무슨 일인지 신경 쓰는 듯하지만 눈에 띄게 고개를 돌리지는 않았다.


잠시 후 ‘오구라 크림 팬케이크’와 ‘살살 녹는 치즈 설국 포테이토’가 나왔다.
“하도 안 와서 다시 배불러졌어.”
네코는 포크를 집으려고도 하지 않았다.


“응? 뭐야, 이건.”
유토는 눈앞에 놓인 감자튀김 접시를 가리켰다.
“‘살살 녹는 치즈 설국 포테이토’입니다만…….”
나이토는 잔뜩 얼어 있다.


“이런 건 시킨 적 없는데.”
“네?”
“감자가 없어졌다고만 했지. 우리가 먹던 건 매콤 소시지랑 로스트비프 덮밥이었다고.”
“난 티라미수 먹던 중이었어.”
네코가 옆에서 거들었다.
“응? 그거 남은 건 내가 먹었는데.”
유토가 말했다.


“바보, 멍청이.”
“안 먹고 둔 사람 잘못이지.”
“그게 아니라 먹었다고 안 하면 새 걸 받을 수 있잖아. 하여튼 쓸데없이 솔직하다니까. 근데 나, 유토의 그런 면이 좋아. 쪽.”
누나와 친동생의 멋진 콤비 플레이를 바라보며 흐리멍덩한 얼굴로 꾸벅꾸벅 졸던 니나도 덩달아 웃었다.

 


“‘매운 초리소’랑 ‘고급 로스트비프 볼’로 괜찮으시겠습니까?”
계산서를 든 나이토의 손이 덜덜 떨리고 있다.

“안 괜찮아.”
창 쪽을 보며 턱을 괴고 있던 스미야가 중얼거렸다.

나이토의 표정이 한층 더 얼어붙는다.

스미야는 입에 문 담배에 불을 붙이고는 다리를 다시 포개고 서서히 그녀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새 걸 가져오면 그걸로 끝인가? 이 가게는 원래 이렇게 일을 대충대충 해? 손님을 향한 마음이라는 게 전혀 느껴지지 않잖아. 그래. 마음이 중요하다고, 마음. 우선 ‘미안합니다’부터 시작해야지. ‘죄송합니다’나 ‘사죄드립니다’도 괜찮고. 나이토 씨 맞나? 당신, 지금껏 우리한테 그런 말 한 번이라도 했어? 아무 사과도 없이 ‘네, 네, 알겠습니다. 이거라도 쳐드세요’야 뭐야? 뭐 이런 가게가 다 있어?”


“죄송합니다.”
나이토는 어깨를 잔뜩 움츠리고 고개를 숙였지만 스미야는 공세를 멈추지 않았다.


“이미 늦었어. 남이 시켜서 숙이는 고개에 진심이 담겨 있을까?”
“죄송합니다.”
“됐다고.”
“결례를 범했습니다. 지금 당장 새 음식을 가져다드리겠습니다.”
“아직도 정신 못 차렸네. 새 음식이니 뭐니 하는 걸로 상황을 회피하려는 걸 보니.”
“아뇨, 그런 게…….”
“됐어. 당신한테 말해봐야 소용없는 것 같으니 점장 불러와. 점장 말이야, 점장. 지금 당장.”
나이토는 새파래진 얼굴로 돌아갔다.

 

 

테이블에 있는 다섯 명은 농구 경기 퇴장 시간처럼 박수로 나이토를 보내고 키득키득 웃음을 터뜨렸다.
“새 비즈니스의 예감.”
고타로가 혼자 빈 옆 테이블로 이동했다.


잠시 후 머리숱이 적은 남자가 테이블로 왔다. 옆에 나이토는 없다.
“저희 직원 실수로 손님 여러분께 큰 결례를 범했습니다.”

점장은 옆구리에 양팔을 딱 붙이고 허리를 45도 각도로 숙인다.

“역시 점장. 군기가 팍 들었네.”
네코가 숟가락과 포크를 맞대고 두드렸다.
“그냥 기계적으로 고개 숙이는 것 같은데.”
유토가 코웃음을 쳤다.


“진심으로 사죄드립니다.”
점장은 더 깊이 허리를 숙였다.


“부하 직원도 당신처럼 고개 숙이도록 교육하는 게 상사의 책무 아닌가? 그걸 못했으니 점장으로서 실격.”
스미야가 나이프 끝을 들이밀며 말했다.
“죄송합니다.”

“그리고 애초에 말이지. 아까 그 아줌마는 어떤 그릇을 치울지 묻지도 않았어. 이 가게는 그런 기본적인 교육도 안 하나?”
“지당하신 지적입니다. 앞으로 더욱 철저히 교육하겠습니다.”
“앞으로 하건 말 건 지금 당장 우리한테 어떡할지가 중요하지. 모처럼 즐겁게 밥 먹으러 왔는데 기분을 아주 제대로 망쳤거든.”


“저희 직원의 실수에 대해서는 진심으로 사죄드립니다. 잘못 치운 음식은 새것으로 다시 가져다드릴 테니 말씀해주십시오.”


“이것 봐, 이것 봐. 결국 새것만 갖다 주면 다인 줄 알잖아. 그게 이 가게가 손님을 대하는 자세인가? 아무리 같은 요리를 내와도 우리의 즐거웠던 시간은 돌아오지 않는데?”


“됐어, 그걸 떠나 먹고 싶지도 않아. 입맛이 싹 사라졌어.”
네코가 하품 섞어 말했다.

 

 


“‘확산 요망. 해피 키친 슈쿠가와라 점은 손님이 다 먹지도 않은 음식을 멋대로 치우고 사죄도 안 하는 최악의 가게’라고 써서 SNS에 올려 볼까? 미리 말해두는데, 내 팔로워가 3천 명이야.”

유토가 스마트폰 화면에 검지를 붙였다 뗐다 했다.


“부디 선처 바랍니다.”
점장이 다시 한번 고개를 숙였다.
“그럼 성의를 보여봐.”
스미야가 테이블을 툭툭 두드리며 위협했다.


“저희 실수로 벌어진 일이니 음식값은 받지 않겠습니다.”
“이봐, 아직도 이해를 못 하네. 그게 성의라고? 반품하면 돈 돌려주는 거랑 똑같잖아? 당연한 조치 아닌가? 아, 진짜 인터넷에 퍼뜨려야겠네.”
“응, 올려버리자.”
스미야가 고개를 돌리자 유토는 스마트폰 화면에 검지를 갖다 댔다.


“잠깐만 기다려주십시오.”
점장이 엉거주춤 허리를 숙이고 신발을 벗었다.

그리고 정좌하고 앉아 바닥에 이마를 갖다 댄다.


“구경났어? 앙?”
유토는 은근슬쩍 관심을 보이는 다른 손님들을 제지했다.
옆에서는 고타로가 말없이 영상을 촬영하고 있었다.

 

 

“공짜로 밥을 얻어먹고 선물까지 받다니, 나쁘지 않네. 한 사람 앞에 다섯 장.”
유토는 상품권을 부채 모양으로 펼쳐 친구들 쪽으로 내밀었다.

해피 키친 슈쿠가와라 점 주차장이다.

점포는 간선 도로 옆에 있지만 주차장은 건물 옆과 뒤쪽에 걸쳐 있고 담장 너머는 주택가라 차가 드나들 때 빼고는 어둡고 조용하다.


“생각지도 못하게 다음 납품 영상도 찍었고, 아주 보람찬 하루네.”
고타로는 승리 포즈를 취하고 유토의 손에서 상품권 한 장을 뽑았다.


“탈 사람?”
스미야가 키 버튼을 누르자 검은색 미니밴 차량의 도어록이 해제됐다.


“잘 부탁해.”
네코가 뒷좌석에 올라탔다. 유토도 뒤따른다.

 

미니밴 차창에서 네코가 손짓했다.

니나는 그쪽을 향해 비틀비틀 걸어간다.

변덕스러운 게 나보다 더 고양이 같네, 하고 즐거운 웃음소리가 들린다.
“칫, 다음에 자러 올 때는 이불도 챙겨와!”
고타로는 악담을 퍼붓고 등을 돌려 자신의 경차에 올라탔다.


시동을 걸지 않고 담배를 한 대 피우며 니나의 마음이 바뀌기를 기다렸지만 결국 아무도 문을 두드리지 않았다. 스미야의 차는 짧게 경적을 울리며 주차장을 빠져나갔다.

 

 


고타로는 담배 홀더를 던지고 차에서 나갔다.

오줌이 마려워서 누고 가자고 생각했다.


주차장 구석 그늘진 곳으로 가서 바지 지퍼를 내리려 할 때였다.

 

 

시야에서 뭔가가 폭발했다.

그렇게 착각할 만큼 엄청난 충격이 그의 몸을 관통했다.

왼쪽 어깨에 마치 불붙인 담배를 다발로 짓누르는 듯한 통증이 느껴졌다.


방어하려고 상반신을 뒤로 돌린 고타로의 머리 위에 날카로운 그림자가 있었다.

 


“죽어! 죽어! 죽어! 죽어!”
연이은 저주 같은 말과 함께 가위가 고타로를 향해 내려왔다.

 

 

 

 

 

 

 

 

우타노 쇼고의 <디렉터스 컷> 5월 출간 예정입니다.

출간 전 연재로 1장까지 보여드렸습니다.

이 다음 내용부터 사건이 진행됩니다. 더 많은 이야기는 책을 통해 확인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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