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서 그 꼰대는 어떻게 됐어?”
이시하마 스미야가 물었다.


“나중에 직접 확인해.”
오리타 유토가 히죽히죽 웃으며 대답했다.


“혼내줬어?”
“방송을 기다리라니까.”
“근데 그런 걸 방송에 내보내도 돼? 얼굴 팔릴 일은 없나?”
“이 세상에는 편집이라는 기술이 있지.”
고타로가 담배를 위아래로 휘두르며 대답했다.

 


“근데 그 아저씨한테 고소당하는 거 아니야?”
스미야가 다시 물었다.


“고소당할 짓 안 했는데?”
“했잖아.”
유토가 손가락질하자 고타로는 그의 얼굴에 대고 숨을 크게 내쉬었다. 마음은 고질라 입김 같은 담배 연기로 괴롭혀주고 싶지만 가열식 담배라 유해 물질이 거의 없는 희미한 수증기밖에 나오
지 않았다.
“이미 다 손 써뒀어.”
고타로는 아래를 향해 쥔 포크로 식은 피자를 푹 찌른다.


“무슨?”
스미야가 물었다.


“여기선 얘기하기 좀 그래.”
“뭐야 그게.”
“됐어. 얜 원래 한번 입 다물기로 한 건 죽어도 안 가르쳐줘.”
네코가 끼어들었다.
“착한 어린이는 몰라도 된답니다.”
고타로는 네코의 머리를 톡톡 두드렸다.


“착한 어린이 아닌데?”
네코가 귀마개 달린 니트 모자를 벗었다. 그 밑에 이마 쪽에 해골 그림이 새겨진 얇은 비니를 쓰고 있다.
“모자를 두 개나 쓰다니. 그렇게 추워? 아니면 추위를 많이 타나?”
스미야가 웃으며 묻는다.


“왠지 기분 나쁘게 말하네.”
네코가 스미야에게 눈을 흘겼다.
“여자는 원래 나이랑 상관없이 대부분 추위를 많이 타지 않나?”

“그 말이 뭔가 기분 나빠.”
네코가 비니를 뒤집자 가격표가 튀어나왔다.
“그대로 쓰고 나온 거야?”


“이것도.”
카디건 소매를 걷자 팔목에 밀리터리 무늬 머리끈이 팔찌처럼 채워져 있다.


“대단하네.”
“그치?”
반대편 손목에도 노란색 머리끈이 감춰져 있었다. 네코는 머리끈과 비니를 벗고 어깨까지 기른 머리카락을 대충 묶었다.


“대성공!”
유토가 우렁차게 외치며 와인 잔을 든다.

 


후타코타마가와에 있는 쇼핑몰 빌딩을 나온 지 세 시간.

그들은 다마 강을 건너 슈쿠가와라에 있는 패밀리 레스토랑에 모여 있다.

스미야는 바꿀 수 없는 근무 시간 때문에 ‘오후 반’에 참가하지 못했지만 뒤풀이에는 뒤늦게 달려왔다.


“그런데 말이지. 그때 왜 바로 구하러 오지 않았어? 내심 경비원을 불러야하나 긴장했잖아.”
니나가 볼에 바람을 집어넣었다.

눈이 반쯤 감겨 있고 말에 딸꾹질이 섞여 있다.


“그러니까 상황을 지켜봤다고 했지. 덕분에 좋은 숏들을 건졌어.”
고타로가 레드와인이 든 디캔터를 들어 자기 잔에 따랐다.


“여차하면 그냥 못 본 체할 생각이었던 거 아니야?”
“그럴 리 있나. 아무튼 둘 다 잘해줬어. 고생했어.”
고타로는 넌더리를 내며 웃고 담배 홀더에서 히트 스틱 꽁초를 분리해 피자 위에 버렸다.


“그럴 리 있어, 있어, 있다고! 고타로 짜증 나!”
니나는 고타로의 잔을 빼앗아 단숨에 절반을 비웠다.


“또 또 과음한다. 대체 몇 번이나 똑같은 소릴 하는 거야?”
유토가 잔을 빼앗았다.


“내놔, 내 거야!”
니나가 잔을 되찾으려고 팔을 뻗었다.

그러나 거리 계산을 잘못해 주정뱅이의 손등이 샐러드 볼을 직격하고 만다.

테이블 끝에 있던 볼은 포물선을 그리며 바닥에 떨어져 점포 안에 파멸적인 소리를 울렸다.
다른 테이블에서 일제히 시선이 집중된다.

그러나 그들은 즉시 다시 고개를 돌렸다.


“괜찮습니다. 제가 치우겠습니다.”
중년의 여성 점원이 다가왔다. 테이블 옆에서 허리를 숙이더니 바닥에 떨어진 채소를 한곳에 모은다.


“안 괜찮아. 야, 나이토. 너한테 하는 말이라구우.”
네코의 시비에 점원은 놀란 얼굴로 고개를 들었다.  

가슴에 단 이름표에 ‘나이토’라고 적혀 있다.


“네가 그릇을 빨리 안 치워서 부딪혔잖아. 니나, 안 다쳤어?”
네코는 그렇게 말하고 니나의 손을 들어 손등을 문지른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큰 소리로 소란을 피운 니나는 눈꺼풀이 반쯤 감겨 있다.


“음식이 아직 남아 있어서…….”
점원이 주뼛주뼛 허리를 일으켰다.


“배불러서 못 먹겠어.”
“그럼 치워드리겠습니다.”
테이블 위에는 식기가 잔뜩 놓여 있었다. 절반씩 겹쳐진 접시도 있고, 끝에 있는 접시는 테이블 밖에까지 튀어나와 있다. 거의 모든 식기에 음식이 남아 있다.

스파게티 카르보나라와 흰살생선 뫼니에르는 손도 대지 않았다.

모든 메뉴를 제패하겠다며 들어왔지만 채 절반도 주문 못 하고 다들 포만감에 배를 두드리고 있다.

 


“역시 우리 누님, 믿음직하다니까.”
양손에 식기를 들고 주방으로 향하는 나이토를 보며 스미야가 고개를 연신 끄덕였다.


“또 놀린다.”
네코가 주먹을 들어 올렸다. 스미야가 호들갑스럽게 손으로 머리를 감싼다.
“고타로오!”
니나가 대뜸 웃음을 풋 터뜨리며 외쳤다.
“뭐야?”
고타로는 이맛살을 찌푸렸다.


“고타로래, 고타로.”
니나는 빨대를 지휘봉처럼 휘두르며 키득키득 웃는다.


“그게 뭐.”
“이름이 이상하잖아.”
“뭐가?”
“구스노키 고타로! 무슨 전국시대 장수야?”
니나는 고타로의 어깨를 툭툭 두드렸다.


“완전 맛이 갔군.”
유토가 옆에서 귓속말하듯 나직이 말했다.


“네 이름도 이상한 건 마찬가지야. 니나라니, 미국인도 아니고.”
고타로도 취기가 올라 정면에서 되받아쳤다.
“니나는 귀여운데? 고타로는 이상해.”
“고타로가 이상하면 네코는 더 이상하지.”
“네코도 귀엽잖아. 냥코일본어로 ‘네코’는 고양이라는 뜻이다, 냐옹, 냐옹. 근데 고타로는 아저씨 같아. 고타로! 고타로오!”
니나는 고타로를 손가락질하며 말했다.


“뭐, 실은 고양이가 아니라 생쥐지만.”
네코가 웃음을 터뜨렸다.

“생쥐?”
스미야가 고개를 갸우뚱했다.

“쥐해에 태어나서 네코일본어로 쥐를 상징하는 ‘자(子)’를 ‘네’라고 읽는다야.”

“쥐해? 내가 개띠니까 개, 돼지, 쥐. 두 살 아래? 스무 살?”
“그럼 동생이지.”
유토가 담배를 입에 물었다. 몇 초 뒤 스미야가 부릅뜨며 목을 쭉 내밀었다.


“마흔넷 아니다.”
네코가 동생의 담배를 빼앗는다.
“알아, 알아, 쉰여섯! 우와, 젊다. 슈퍼 아줌마 파워!”
“죽을래?”
네코가 스미야에게 담배 연기를 내뿜었다.


“몰랐네. 왜 지금껏 안 알려준 거야?”
스미야는 유토를 팔꿈치로 툭 쳤다.
“알려줄 이유가 없잖아. 창피하기도 하고.”
유토는 이쑤시개를 입에 물고 다른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뭐가 창피해.”
누나는 친동생에게도 담배 연기를 뿜었다.


“누나가 아니라 엄마 아빠가 창피해.”
“뭐가 창피하단 건지 모르겠네. 너, 스물둘인 지금 아이를 만들었다고 치고 서른두 살 때는 섹스 안 할 거야? 마흔둘 때도 할 거 아니야? 그럼 스무 살 차이 나는 남매가 있어도 하나도 안 이상
해.”


“누님, 지당하신 말씀입니다.”
스미야가 벌떡 일어서서 허리 숙여 경례하자 네코가 머리를 툭 때렸다.


“냥코 언니, 너무 귀여워.”
니나는 네코에게 머리를 비빈다.
“근데 서른둘로는 전혀 안 보이는데. 엄청 어려 보여.”
스미야는 탄식을 한 번 하고 고개를 갸웃거리며 네코의 얼굴을 뚫어지게 쳐다봤다.

 

머리를 또 한 대 얻어맞는다.
“자세한 숫자는 언급하지 말아 줄래?”
“칭찬하는 겁니다!”
“어려 보인다는 말 자체가 실제로는 나이가 많다는…… 앗!”
네코가 불현듯 버럭 소리쳤다.

나이에 대한 이야기를 끈질기게 이어 가는 스미야에게 화가 나서는 아니다.

 

 

“일본풍 팬케이크 어딨어?”
네코는 유난스럽게 고개를 흔들며 테이블 위를 둘러본다.


“‘오구라 크림 팬케이크’는 조금 전 치워드렸습니다만.”
어느새 나이토가 한 번에 다 치우지 못해 남은 식기를 가져가려고 돌아와 있었다.


“뭐? 먹고 있었는데?”

“다 드셨다고…….”
“배부르다고 했지, 언제 전부 치우랬어? 그러고 보니 치즈 올린 감자도 없어졌잖아.”
유토가 눈을 치뜨며 매섭게 쏘아봤다.

 


“금방 다시 가져오겠습니다.”
“장난해? 치운 걸 다시 먹으라고? 음식 위에 다른 접시를 얹어서 가져가지 않았어?”

네코는 나이토를 위압하듯 천천히 머리끈을 풀고 보란 듯이 해골 비니를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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