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복 "FTA에 비(非)위반 제소 도입하면 약값 인하는 물거품"
[ 2007-03-15 오후 10:52:12 ]
한미FTA협정에서 비위반 제소를 인정할 경우 '포지티브 리스트' 등 약값 안정화 방안은 유명무실화 될 것이란 지적이 나오고 있다.
비(非)위반 제소(Non-Violation Complaint)제도는 한미 FTA 체결 이후 한국이 협정내용을 위반하지 않았다 하더라도 미국정부가 기대하는 이익을 얻지 못했다고 판단할 경우 한국정부를 제소할 수 있는 제도이다.
이태복 전 보건복지부 장관은 15일 CBS '시사자키 오늘과 내일'에 출연, "이번 한미 FTA 협정에서 비위반 제소를 인정하면 약가 인하는 사실상 물 건너가게 된다"고 주장했다.
보건복지부는 작년 말부터 약값을 객관적으로 판단하는 포지티브 리스트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하지만 비위반제도를 인정한다면 이 포지티브 리스트가 무력화될 수 있다고 이태복 장관은 밝혔다.
이 전 장관은 "미 제약회사의 신약을 우리 국민소득에 맞춰 가격을 낮춰서 포지티브 리스트에 등재하는 경우나 또는 너무 비싸다는 이유로 리스트에서 아예 빼버릴 경우 모두 미국은 자국 제약회사의 이익을 위해 비위반제소제를 이용해 소송을 할 것이므로 우리정부의 포지티브 리스트 제도는 무력화 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전 장관은 또 FTA 협상에서 정부가 '의약품 등재 및 약값 결정의 투명성을 제고하라'는 미국의 입장을 수용한 것과 관련, 미 제약회사들이 "약값 산정에서 가장 중요한 원가내역은 특허권을 이유로 공개하지 않으면서 약값 결정과정에는 참여할 수 있는 길을 열어달라는 것"이라며 이는 "눈 가리고 아웅 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 이하 방송 내용 #####
▶ 진행 : 신율 (명지대 교수/CBS 시사자키 오늘과 내일)
▶ 출연 : 이태복 전 보건복지부 장관
- 비위반제소란?
한미FTA를 통해 미국정부가 기대하는 합리적인 이익이라는 게 있는데, 한국정부가 협정위반을 하지 않았다 하더라도 기대이익에 못 미치게 되면 미국정부가 한국정부를 제소할 수 있다는 것이다.
- 투자자정부제소권과는 어떤 점이 다른가?
투자자정부제소권이란 미국기업이 한국정부를 상대로 소송을 걸 수 있는 것이고, 비위반제소란 미국정부가 한미FTA를 통해 기재했던 여러 이익을 한국정부가 지켜주지 않는다고 생각했을 때 미국정부가 한국정부를 상대로 제소하는 것이다.
- 비위반제소의 적용범위가 상당히 모호하다는데?
모호할 뿐 아니라 너무 애매해서 사실 국가간 협정에서 거의 적용하지 않는다. 최근 들어 미국이 많이 활용하려는 협상전략이다. 우리의 경우 구체적인 문제가 될 소지가 너무 많다. 예를 들어 보건복지부에서 약가 등을 객관적으로 판단하는 포지티브 리스트라는 게 있는데, 예전에는 항목을 다 인정했지만 이제는 일정한 품목만 등재를 할 경우 미국의 신약이 빠질 수 있다. 미국은 한미FTA를 통해 그런 신약의 판매를 기대하고 있는데, 자기들의 기대에 못 미치게 될 경우 시비를 걸 수 있게 하는 제도가 비위반제소다.
- 보건복지부의 포지티브 리스트가 유명무실해질 수 있다?
그렇다. 이번 협정에서 비위반제소를 인정하면 사실상 약가 인하는 물 건너가게 된다. 그리고 두 가지 경우가 발생할 것이다. 첫 번째는 신약 가격을 우리가 인정한다 하더라도 현재 G7 국가들, 미국계 유럽 국가들을 중심으로 인정하라는 게 미국의 입장이다. 그러나 우리의 국민소득이나 경제규모로 볼 때 그것과 똑같은 기준을 인정할 수 없다. 당연히 우리는 약값을 다운해서 등재를 하게 될 텐데, 미국 입장에선 이게 위반이라고 얘기할 수 있는 것이다. 두 번째는 우리가 아예 등재하지 않는 경우다. 약값이 너무 비싸니까 우리 국민이 부담할 수 없다고 해서 빼는 경우인데, 이럴 경우에도 미국 입장에서는 한미FTA를 통해 자기들이 확보하려는 제도를 무력화하려는 제도라고 해서 비위반제소를 하게 될 것이다. 이렇게 되면 한국정부가 계속 시비를 받아야 하니까 구체적으로 집행하는 데 굉장히 어려워질 것이다.
- 비위반제소와 더불어 의약품 등재 및 약값 결정 등 투명성 제고라는 미국 입장을 수용하게 되면 약값 문제가 더욱 커질 텐데?
그렇다. 세부사항의 투명성 재고라고 얘기는 하지만 사실 투명성을 가로막는 제도가 바로 이 조항이다. 약값 결정에서 가장 중요한 건 어떤 원료를 사용했는지, 그 원료의 원가가 얼마인지다. 그런데 어떤 원료를 썼는지에 대해서는 미국 특허권에 의해 보호가 되기 때문에 그들은 자료를 제출하지 않는다. 그리고 실제 결정과정에 자신들이 결정하고 알 수 있도록 절차를 열어달라는 게 투명성의 내용인데, 가장 핵심원료 가격을 산정할 수 있는 물질의 원가 리스트를 내놓지 않는 조건 하에서 투명성 재고라는 건 눈 가리고 아웅 하는 것이다.
- 얼마 전 정부가 내놓은 의료법 개정안에서 병원의 영리법인화가 문제가 되고 있다. 일부 시민단체에서는 'FTA 서비스 분야에 병원의 영리화는 포함돼있지 않지만 정부가 이를 추진하는 건 결국 FTA에서의 의약개방과 맞물려있다'고 지적하는데?
그런 기조와 맥이 닿아있는 건 분명하다. 그런데 지금 병원을 비영리법인으로 규정해서 묶어놓다보니 사실 여러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 이번 의료법 개정이 그런 부분을 적극적으로 허용해주면서도 의료법인의 비영리화라는 전제는 깔고 있다. 지금 세금이나 기타부분에서 수익 발생하는 부분에 제대로 부과를 못하고 있다는 점을 시민단체도 인식할 필요가 있다. 의료산업이 일정하게 변화하고 있고, 한국이 세계적 기술을 가지고 있는 부분을 세계시장에서 경쟁력 있게 해주려면 일정하게 길을 열어주는 방식이 필요하다. 그런데 이렇게 길을 열어주는 것이 의료법 개정 과정이나 공공의료 확대와 같이 가지 못하니까 더 많은 문제를 야기할 것이다.
- 한미FTA로 인해 외국계 병원이 우리나라에서 들어와서 영리법인이 됐을 경우, 일부 병원에서는 건강보험을 안 받고 사보험만 받겠다고 나올 수 있는데?
현재는 우리나라 모든 병의원들이 강제가입을 하게 돼있다. 그러다보니 의료기관이 굉장히 혜택을 보고 있는 건데, 거꾸로 병원 관계자들은 자기들이 굉장히 불익을 받는 것처럼 착각하고 있다. 정부가 의료법인을 강제로 가입하게 하다보니 정부가 의료법인의 불법행위나 문제가 많은 부분을 제대로 솎아내지 못한다. 이런 부정적 진단도 있기 때문에 이를 충분히 염두에 두고 영리법인의 문제를 다른 차원으로 접근할 필요가 있다.
- 영리법인화 된다 하더라도 건강보험을 받지 않는 병원은 생기지 않을 것이다?
건강보험을 받지 않겠다고 할 수 있는 성형 등의 부분이 최대로 늘어나봐야 15% 정도가 될 것이다. 그리고 지금은 동네의원이 워낙 많이 늘어나서 국민이 병의원을 이용하는 데 불편함은 없다. 그렇다면 국민이 의료기관을 이용하는 데는 아무 문제가 없다. 그리고 대형병원의 경우 건강보험을 안 받겠다고 나올 수가 없고, 일반의원도 안 받겠다고 하는 건 거의 불가능하다. 현재 수입구조나 여러 여건으로 볼 때 거의 대다수가 의료보험 환자들이기 때문이다. 미국에 가서 치료를 받는 부유층이 이용하거나 성형 등 건강보험과 관련이 적은 부분이 건강보험과 관련 없이 움직이는 의료기관이 될 것이다. 따라서 너무 걱정할 필요는 없다고 본다.
- 현재 부유층이 내는 건강보험료의 비중은?
그리 높다고 볼 수 없다. 의료보험 등급 기준은 일정하게 소득을 제한해서 부과하도록 돼있다. 예를 들어 1억을 번다고 해서 1억에 대한 건강보험료를 다 부과하는 게 아니라 400만원을 상한으로 해서 그 안에서 보험료를 부과한다. 이는 모든 나라가 똑같다.
- 그렇다면 의료서비스에서의 양극화 현상은 일어날 염려는 없을까?
이미 의료분야에서 양극화 현상은 현실적으로 진행돼있다. 시장경제 하에서 지나치게 양극화가 악화되는 걸 막는 노력을 정부가 해야 한다. 공공의료기관을 확대해서 빨리 대책을 세우고 넓혀가야 한다. 그런데 정부가 공식적으로 30%를 넓히겠다고 말했지만 보건소 하나 넓히고 있지 못하고 있다. 참여정부 내내 시범사업을 한다면서 10개 정도밖에 넓히지 못한 게 현실이다. 공공의료 확대가 안 되고 있다는 것이다. 정부가 빨리 공공의료를 확대해서 빈곤층이나 서민층이 부담 없이 의료기관을 이용할 수 있는 의료체제를 갖춰야 한다.
- 비위반제가 도입되면 양극화가 심화될까?
양극화가 심화될 분 아니라 다국적 제약사, 특히 미국 쪽 제약사를 포함한 기업들의 한국시장 장악률이 엄청나게 높아질 것이다. 지금도 50% 가까이 되는데, 한미FTA를 졸속으로 추진하면 시장장악 속도가 엄청나게 빨라질 것이다. 70~80%까지 올라갈 것이라고 본다. 현재에도 국내의 500여개의 제약사 중에서 R&D를 할 수 있는 제약회사는 손에 꼽을 정도다. 새로운 신약을 만들고 자본을 투입할 여력이 없는 영세기업이 많다. 따라서 빨리 M&A를 통해 덩치도 키우고, 정부가 여러 산업전략을 구사해서 대책을 세우는 게 중요한데 너무 시간을 낭비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