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외딴섬 같았다. 넓은 건물 내부에서 모여 있는 사람들 사이로 떨어져 있었다. 마치 일부러 저 멀리 떨어뜨려 놓은 돌처럼, 조용히. 조금 어색한 모습을 하며 어딘가를 보는 중이었다. 그가 무엇을 보는지는 알아차리기 힘들었는데, 초점 없는 눈빛 때문이었다. 그런 눈빛으로 주위를 두리번거리기도 하고, 높은 천장을 한동안 바라보기도 했다. 그는 약간 비현실적인 사람으로 보였다.
"여기 종이에 밑줄로 표시한 부분 채워서 18일에 오시면 됩니다. 슬리퍼, 비누, 치약과 칫솔 등을 챙겨 2시에서 4시에 오시면 안내해 드릴 거고요."
아직은 더운 날씨였다. 어둡지도 밝지도 않은, 채도가 낮은 옷을 입은 그는 조금씩 증발해가는 사람처럼 보였다. 마치 그 공간에서 곧바로 사라지기라도 할 것처럼 몸을 움직였다. 20cm 앞의 남자에게 설명을 듣고 있는 동안 아주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기만 했다. 어쩌면 그는 몇달 전에 같은 내용을 들었을 터라 건성으로 듣고 있는지도.
"네"
그는 짧게 대답을 마치고, 잠깐 어딘가에 전화를 걸어 무어라 얘길 하더니 건물 밖 햇빛 속으로 사라졌다. 잡았다가 물에 바로 놓아준 물고기처럼.
지난 봄, 며칠 동안 어딘가에서 일주일을 보낸 기억을 떠올려 보았다. 머리가 아프고, 속은 부대끼고, 눈이 꽤나 침침한 상태에서 신경을 많이 써야 하는 책을 읽느라 힘들어지면 미셀 푸코가 예를 든 그 구조를 생각하며 배회하곤 했다. 오전 7시에 일어나 밥과 약을 먹고, 괜찮은지 아닌지 나로서는 파악하기 힘든 상태를 누군가에게 얘기하고.. 지하에서 지상까지 엘리베이터를 타고 많은 사람들을 구경하고, 일기를 쓰고 잠이 들었다. 모 두다 똑같은 옷에, 비슷하게 맞춰 일어나는 일들, 약간은 비현실적으로 느껴지는 창 너머의 공간 속에 있다보면 마치 내 몸이 점점 얇아지는 것 같았다. 또는 조금씩 녹아, 흘러 내리는 것 같기도 했다.
나의 인적사항이며, 보호자 동의사항을 적어오라는 종이와 함께 빈 종이 하나를 펼졌다. 가져갈 것들의 목록을 적었다. 물건들을 적어 두고 하나씩 뺐다. 후보에 오른 책들, 노트북, DVD, 스케치북, 일기장을 바닥에 늘어놓고 최종 후보를 정하고 캐리어와 가방에 넣었다.
* * *
그는 블랙과 화이트, 그 경계가 뚜렸한 사람이었다. 어떤 것을 결정할 때 시간과 노력을 들여 결정했고, 일단 결정하면 그 이후엔 더 이상의 고민을 하지 않았다. 명도 단계의 0과 10처럼, 손바닥 뒤집듯이 어떤 선택을 하는 경우도 많았다.
"고객님, ***입니다. 어제 접수해주신 내용 확인해서 전화드렸습니다. 오늘 휴대폰 발송해 드릴거고요, 12일에 잠깐 통화가 되지 않게 될 수 있으니 이점 확인 부탁 드립니다."
회사 동료들과 함께 하는 점심시간에 다들 손에 휴대폰을 들고 무엇인가를 하는 통에 멀뚱히 어딘가를 쳐다 보고 있어도, 전철에 가득 찬 사람들이 무엇에 골몰히 빠져 있는 모습에도 무신경이었던 그는 결정을 내렸다. 며칠 동안 인터넷 검색을 통해 좋은 조건과 편리한 방법을 찾아냈고, 결국 스마트폰으로 교체를 하게 되었다. 그는 가끔 바닷가 조개 무더기에서 가끔 유별나게 알아 볼 수 있는, 이상한 물체같은 사람이었다.
"거기서 좀 심심할 것 같아서요."
왜 바꾸었냐는 주위 사람들의 물음에 그는 짧게 답할 뿐이었다.
분명 책과 음악만으로는 채울 수 없는 부분이 있었다. 나름 고민해서 책을 선별해 놓고, 트윈픽스 DVD, 음반 몇 장을 골라 놓았지만 어딘가 허전했다. 세상 돌아가는 얘기, 사는 얘기, 책 얘기.. 이미 이야기와 화자에 중독되어 치유할 수 없는 상태였다. 그 조각이 없는 지난 봄의 시간이 떠올랐다. 만가지의 표정이 담긴 소식들을 접할 수 없는 그 공간은 어딘지 외딴섬 같았다. 무언가 짝이 맞지 않는 것 같았다. 로비에 있는 동전을 넣고 하는 컴퓨터는 틈이 있는 것처럼 내용이 쏙쏙 들어오지 않았다.
이런 까닭으로, 2년이 지난 휴대폰을 뒷면에 사과가 그려진 스마트폰으로 바꾸게 되었다.
스마트폰에 음반을 리핑해 넣었다. 하나 둘씩 서둘러 켜지는 건물의 불빛을 보며 음악을 들었다. 목소리를 들었다. 구름이 살짝 끼어 있는 하늘에 곳에 따라 비, 깜깜해질 무렵 노을엔 속아도 꿈결, 화장기 없는 어느 여인의 투명한 웃음소리가 조용히 들릴땐 취미는 사랑, 스마트폰으로 메일을 보며 앞으로 회사로 돌아가 해야 할일을 생각할 땐 가을방학을.

가을은 정리함.
펼쳐두었던 책, 크게 틀어 두었던 음악, 널어두었던 생각들, 부풀어 올랐던 마음을
가지런히 담아 차곡차곡 정리해두는 계절, 투명히 빛나는 넉넉한 정리함 속에 펼쳐지는.
가을은 부채꼴.
사물의 외형이, 사람들의 웃음소리가, 투명하지만 뚜렷한 경계속에서
넓고 연하게 펼쳐지는 계절. 나의 또렷한 중심점을 거쳐 아래로 비스듬히 내려가는.
가을은 내리막.
지나가던 빛이, 방안에 켜지는 불빛이, 아주 느린 속도로 서둘러 자리하고
사람들 걸음이 점점 낮아지는 계절, 천천히 낮아져 사라지는 내리막.
가을방학의 음반 다음으로는 하이페리언에서 주로 녹음을 남기고 있는 첼리스트 알반 게르하르트의 신보. Casals Encores 라는 제목으로 컴필레이션 음반이다. 내지를 읽어보면 그는 위대한 첼리스트, 파블로 카잘스의 음반에서 소품을 골라 녹음을 한 것으로 보인다. 스무곡을 담고 있는데 알찬 구성에 녹음도 좋다. 다비드 포퍼(David Popper), 에드워드 멕도웰(Edward Macdowell)과 같이 흔히 듣기 어려운 작곡가들의 곡들과 쇼팽 녹턴(Op.9 no.2), 엘가 사랑의 인사, 포레 꿈꾼 후에 등의 유명 소품들이 섞여 있다. 낭만주의 작곡가들의 작품이 대부분이며, 듣기에 편안하다. 찬바람 불기 시작하는 밤에 듣거나, 저 멀리 조금 쓸쓸하게 불이 켜지는 건물의 모습을 보며 듣기에 좋은 음악들.
가을엔 이 수줍은 브람스가 그토록 조심스럽게 쓴 작품을 듣지 않을 수 없다. 아직 따가움이 살아 있는 낮의 햇볕을 맞을 때는 1번(4악장)을, 아주 조금씩 옐로우 섞인 색으로 변해가는 듯한 나뭇잎을 볼 때는 2번(1악장)을, 하나 둘씩 두툼한 옷을 꺼내 입게 만드는 이른 아침의 공기를 생각할 때는 3번을(3악장), 재를 남기고 어딘지 모를 비장함마저 느끼게 하며 사라지는 것 같은 11월의 하늘이 떠오를 때는 4번(1,4악장)을 찾게 된다. 이 고집센 양반이 들려주는 브람스는 우회도로 따위는 생각하지도 않는다. 단단함이 마치 주먹을 꼭 쥐게 하는 것 같아 흐트러진 마음이 한 점으로 모이는 것 같다.
그리고 여름 내내 듣지 않고 기다렸던 음악을 한 곡 들어야 한다. 기분 좋은 발걸음으로 걷는 내리막길, 가을이 되며는. 신체의 어느 부분이 짝을 이루기 전에 들었던 마지막 실제 연주.
* * *
마치 여행지에 온 사람 같았다. 캐리어와 양쪽으로 매는 가방에서 물건들을 꺼냈다. 조금 빠른 속도로 책을 열 권쯤 책상 옆에 쌓아 두고, 스케치북과 펜을 꺼내 옆에 두었다. 두꺼운 책과 얇은 책이 섞여 있었고, 그가 하나 둘씩 모아 두었던 펜을 모은 함도 있었다. 그는 꼭 어디에서 피난을 온 것처럼 그렇게 자리에 앉아 자기가 가져온 것들을 천천히 둘러보기 시작했다.
"한번 해 보셔서 잘 아시네요"
유난히 얼굴이 희고, 단아한 느낌을 주는 목소리를 지닌 여자였다.종이에 뭔가를 받아 적고 있는 그에게 물었다. 긴 생머리를 질끈 묶었음에도 타고난 미인형의 얼굴은 숨겨지지 않았다. 오히려 더 밝게 빛나 마지막 손질을 기다리는 보석같았다. 열심히 삶을 살아가는 얼굴에서 볼 수 있는 얼굴. 그러나 저 바닥까지 떨어지는 어둠을 느끼지 않고 살아왔다는 밝은 모습이, 그의 모습과는 대조적으로 보였다.
"네. 이 부분은 칸이 작아 적기가 힘이 드네요"
그녀는 살짝 웃었다. 그가 일주일동안 그녀에게 전한 말은 이 짦은 문장 뿐이었다.
손가는 대로 책을 펼쳤다.
파스칼 키냐르. 그의 얘기는 늘 현실 저편으로 나를 데려간다. 잊혀진 세계, 잃어버린 말, 잊혀진 생각들. 그가 풀어 놓는 글은 운율이 담겨있다. 파스칼 키냐르가 어릴적 여러 악기를 배운 배경 탓일까, 시가 가진 운율과는 다른 음의 높낮이와 빠르기, 쉼표가 있다. 끊임없이 등장하는 사람들, 얘기들, 의미들은 그의 손 끝에서 생겨나는 모래구덩이속으로 나를 밀어 넣는다.
책의 뒷 부분에 나오는 아래 부분은 아예 1장에 나와도 좋을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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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9장
열아홉 살 때부터, 내가 쓴 첫번째 책이자 모리스 세브에 관한 책 이후로, 줄곧 내가 원하는 바는 무시당한, 난해한, 매혹적인, 까다로운, 고집 센, 훌륭한 인물들을 유령의 세계에서 귀환시키는 일이었다. 세브, 리코프론, 알부키우스, 라비에누스 다마스키오스, 기 르페브르, 니콜, 라캉, 엘로, 라이시오스, 동 데샹, 아버지 세네카, 하데비치. 이들에게 바치는 책을 한 권 쓸 때마다, 나는 역사의 파렴치함을 조금이나마 지우고, 오류를 바로잡고, 방향을 멈추게 하고, 역사의 운명인 중상모략과 내숭 떨기, 평온, 가시 돋친 콧노래, 두려움에 소리죽여 내는 떨리는 탄식으로부터 언어를 끌어낸다는 확신이 들었다.
시간의 한복판에서 솟구치는 불가사의한 원천은 끓어오르는 과거에 끊임없이 새로운 얼굴을 부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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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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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조
물론 사물을 강조하는 최고의 방법은 대조이다. 노동을 한 후에야 진정한 휴식을 즐길 수 있다. 침묵을 뚫고 나온 소리만이 분명히 들리고, 어둠에서 빛이, 빛에서 어둠이 또렷이 부각될 수 있다. 모든 색상에는 보색이 있다. 보색끼리 나란히 두면 다른 색을 옆에 둘 때보다 각각의 색상이 훨씬 부각된다. 형태와 선에서도 마찬가지다. 반대되는 형태나 선이 공존할 경우 서로 돋보이게 된다. 곡선은 직선에 의해, 복잡한 형태는 단순한 형태로 부각될 수밖에 없다. 이 작업이 제대로만 이뤄진다면 색과 형태의 조화에서 서로 어울리지 않는 것들이 대조를 이루면서 가치가 더해질 수 있다.
p.2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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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러스킨은 말한다. 끈질기게 탐구하고 관찰하라. 어리석은 것을 모방하지 마라. 쓸데 없는 기교를 부리지 마라. 만일 소묘를 배우는 중, 고등학생. 또는 그것을 가르쳐야 하는 교사가 이 책으로 "기교"상으로 뭔가 도움을 얻기는 어려울 것 같다. 인터넷에 떠도는 멋진 소묘나 수채화를 생각하며 이 책을 선택한다면 스테이크를 주문했는데 야채샐러드나 나오는 것처럼 당혹스러울 것이다. 그런 것이라면 미술학원에 가서 그냥 말없이 두 세 시간 그림을 그리다 오는 편이 시간을 절약하는 길일 것이다. (옮긴이도 책의 마지막에 밝힌 것처럼) "산업혁명과 빅토리아리즘의 절정기에 완성된 <존 러스킨의 드로잉>은 우리가 흔히 접하는 예쁘고 보기 좋은 그림을 위한 테크닉북이 아니다."
수채화, 유화, 소묘를 능숙히 그려내는 어느 화가. 어딘가에서 그림에 미쳐 식음을 전폐하고 있을 미술대생. 국내에서는 더 이상 답을 구할길 없어 외국길을 떠나는 유학생. 존 러스킨의 그림철학에 대해 논문을 준비하고 있는 대학원생. 예상컨데 이런 사람들이라면 읽으면서 꽤 즐거움을 얻게 될 것 같다.
내가 보기에 그 유명한 존 러스킨의 책은, 요약하자면 관찰에 관한 것이다. 끈질기에 탐구하고, 보고, 재현하고, 비교하고, 다시 수정하고. 누구나 초고화질의 사진을 찍을 수 있는 이 시대에 잠시 눈을 떠 자연을 보고, 거기서 무언가를 찾는 기쁨을 아는 사람이라면 조용히 음미하며 읽을만하지 않을까.


요즘에는 미국 아마존의 수많은 그림을 담은 책들을 국내에서도 그리 어렵지 않게 구할 수 있다. 다른 분야에서도 그렇겠지만 음악이나 미술분야의 책들이 국내에 나오는 속도나 다양성은 정말 아쉽다. 외서들을 접하다 보면 정말 다양하고, 다채로운 표현들을 만나게 된다. 다양한 재료의 탐구, 자기만의 스타일이 묻어나오는 그림들, 사물을 표현하는 새로운 방식들.
보고 있다 보면 머리속이 시원해지는 느낌이다. 투시가 좀 맞지 않으면 어떤가. 선이 좀 틀리면 어떤가. 가끔 글쎄 이건.. 하는 경우도 있지만 중요한 건 사물을 보고, 생각하고, 표현해보는 것 아니겠는가.
노트북에 트윈픽스를 담았다. 새와 기계가 돌아가는 모습, 그리고 잊혀지지 않는 음악이 흐르는 오프닝. 다시 보다 보면 데이빗 린치가 때로 포커스로 잡는 사물들이 보이기도 하고, 그가 보여주는 방식에 대해 다른 생각을 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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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깐, 벽은 빨갛지만 딱딱해선 안 돼."
그러고서 좀 더 생각한다.
"커튼도 있어야겠지. 커튼은 불투명하면 안 되고 반투명인 게 좋겠어."
그래서 커튼을 설치한다.
"그러면 바닥에도 뭔가 필요할 것 같은데."
p.97 <빨간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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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윈픽스에 나오는 빨간방. 린치는 마치 원래 그 자리에 의도했다는 듯이 빨간방의 아이디어를 넣었고, 작품의 진행이나 기묘한 느낌에 매우 효과적인 인상을 주었다는 생각이다. 이 드라마를 다시 보면서 이 책이 더 많은 도움이 되지 못했다는 느낌에 아쉽기도 하지만 데이빗 린치가 가지고 있는 생각들의 배경을 좀 더 안다는 면에서는 나름 성과가 있었다. 좀 작은 판형에 저렴한 가격으로 내어도 좋을만한 책.

* * *
그는 그림자속에 사는 사람 같았다. 주위가 조용해지면 어디론가 사라졌다. 작은 가죽 표지를 한 노트와 물 한병, 펜 하나를 지니고 무신경한듯 초첨없는 눈으로. 일부러 손이 닿지 않는 외딴섬처럼 육지로부터 멀어지려는 느낌이 들었다. 그는 줄이 그어진 일기장을 좋아했다. 그러면서도 그어진 줄과는 무관하게 대충 아무렇게나 자기도 못 알아볼만한 글로 뭔가를 적어 넣곤 했다. 휘갈기고 있다는 표현이 더 정확할지도 모르겠다.
" ***님 *층으로 지금 오시기 바랍니다 "
며칠 동안구석구석, 어둠과 외딴섬이 자리한 곳으로 자주 사라지다 보니 전화기 너머로 이런 말을 자주 들었다.
" 이제 다 되었나요?"

태내적 귀
귀를 비운다
그가 너의 아이였을 때 선인장 같은 아이였을 때
너의 흐린 머리카락을 듣고
몸 안의 사막을 듣고
너를 듣는다는 걸 잊은 듯이
귀에 남는 음을 느리게 느리게
귀에 두고 온 음들
그가 너의 아이였을 때 선인장 같은 아이였을 때
양초가 들리니 양초를 켠다
화분이 들리니 물을 준다
식물이 흐를 수 있는 저음으로
가지 끝에서 떨리는 음들
내일로부터 모레로부터 오지 못한
그것이 내일이 되고 모레가 되고
들리지 않는 꿈처럼
귀 안으로 사막을 옮기는
무음의 그림자
귀를 비우면 네가 들릴까
들어 본 적 없는 태내에서 귀를 자르는
내일의
신생의
레퀴엠
진공의 비처럼
흐르지 못하는 귀를 돌고 있는
그가 너의 아이였을 때 선인장 같은 아이였을 때
자신의 레퀴엠을 듣는
그의 시간이 너에게 울려 ...... 있어

자작나무가 심어져 있는 길을 걷곤 했다.
지워져버린 다섯 시간의 기억을 떠올리곤 했다.
틈이 벌어져 생겨 짝이 되어버린 어떤 것에 대해 생각하곤 했다.
외딴섬에서 시를 읽으며 찰칵하는 순간을 어딘가에 적곤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