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는 잔뜩 무엇이 적혀 있는 종이를 접었다. 그것을 아주 반듯하게 접어 종이비행기를 만들었다. 끝은 뾰족하게, 손잡이는 날렵하게. 그리고 접어둔 종이비행기를 방 한 구석에 놓고, 창 너머 저 멀리 흩어져 있는 공간을 오랫동안 바라보았다.

 

 

 

 

 

 

 

 

 

 

 

 

 

 

 

 

 

 

 

 

내 청춘이 지나가네

 

 

내 청춘이 지나가네

 

 

말라붙은 물고기랑 염전 가득 쏟아지는 햇살들

 

 

그렁그렁 바람을 타고 마음의 소금 사박을 지나

 

 

당나귀 안장 위에 한 짐 가득 연애편지만을 싣고

 

 

내 청춘이 지나가네, 손 흔들면 닿을 듯한

 

 

애틋한 기억들을 옛마을처럼 스쳐 지나며

 

 

아무렇게나 흙먼지를 일으키는 부주의한 발굽처럼

 

 

무너진 토담에 히이힝 짧은 울음만을 던져둔 채

 

 

내 청춘이 지나가네, 하늘엔

 

 

바람에 펄럭이며 빛나는 빨래들

 

 

하얗게 빛바랜 마음들이 처음처럼 가득한데                     

 

 

세월의 작은 도랑을 건너 첨벙첨벙

 

 

철 지난 마른 풀들과 함께 철없이

 

 

내 청춘이 지나가네, 다시 한 번 부르면

 

 

뒤돌아볼 듯 뒤 돌아볼 듯 기우뚱 거리며

 

 

저 멀리,

 

 

내 청춘이 가고 있네                                                    p.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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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희미한 곳 어딘가에서 소년은 종이비행기를 접고 있었다. 얇고 깨끗한 흰 종이에. 연필의 각진 부분으로 눌러 접은 종이는 약간 비뚤어 보였다. 끝은 뾰족하게, 손잡이는 날렵하게. 희고 투명한 종이비행기를 밝은 공간에 뿌렸다. 종이비행기는 흩어졌다. 멀리.

 

그는 두 손을 맞잡고 있었다. 말러 6번 교향곡의 안단테 악장을 연주하고 있었다. 관악기가 흐르듯 노래하고 현악기는 그 음성의 아래 어딘가를 울리고 있었다. 떠나가는 종이비행기를 바라보는 듯 그런 눈에는 눈물이 맺혔다.

 

종이비행기는 그 부옇게, 흐르는 공간을 헤치며 점점 사라져 가고 있었다. 중력을 이기며 힘겹고도 날렵한 끝을, 날렵한 손잡이를 싣고 연기처럼 사라져 가는 종이비행기를 보던 소년의 기쁨은 어느새 탄식으로 바뀌고 있었다.

 

그는 다시 돌아오지 못함을 알고 있었다. 손에서 미끄러지듯 허공에 놓아버린 종이비행기는 다시 영영 돌아오지 못함을. 그래서 삶이라는, 슬프게 들리는 직업의 장면들을 꺼내며 눈물을 흘렸는지도 모른다. 곡이 더 풍성하게 나아갈수록 시집 한 권을 떠올리며, 글자와 눈물을 음악에 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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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비행기가 어떻게 저 먼 곳을 지나갈지는 아무도 모른다. 금방 떨어지기도 하고, 저 멀리까지 가기도 한다. 오늘쪽으로 흘러가기도 하고, 왼편으로 가기도 한다. 또는 위로, 아래로. 그것을 바라보는 눈과 마음은 또 어떨지.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무엇인가를 이해불가의 영역으로 이끄는 마력. 음반을 듣다보면, 그 속에 담긴 어떤 기록을 읽다보면 그런 것이 느껴질 때가 있다. 은둔과 느림의 지휘자, 세르주 첼리비다케. (Sergiu Celibidache)

 

과거 매우 비싼 가격을 유지하고 있던, 이 신비를 지니고 있는 지휘자의 음반이 한꺼번에 풀렸다. 흔히 말하는 염가반으로. 하나의 예로, 그의 브람스를 들어보면 우리가 그간 보았던 종이비행기와는 꽤나 다르다. 그러나 그것은 멀리, 아주 멀리 여행을 한다.

 

그것은 아래로 떨어지기도 하고, 갑자기 솟구치기도 한다. 천천히 천천히. 꽉 찬 공간속을 두텁고 무거운 날개를 하고서, 그것을 떠나 보내는 누군가의 눈길을 잡고서 놓아주지 않는다. 누구나 탐을 낼 만한 비행기. 그것을 공간에 떨어뜨리는 순간은 잊지 못할 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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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비행기를 떠나 보내는, 마냥 좋아하던 눈빛이 어떤 상실, 침통, 우울로 변하는 모습은 에드워드 호퍼의 눈빛과 닮았다. 밝은 건물과 빛 속. 뒤편에 어딘가 "미심쩍어" 보이는 숲처럼 창문에 손을 대고 너머로 바라보는 옆모습은 어딘가 불안해 보이기도 했다.

 

마치 그것을 찾아나서야 하는 것처럼 (Stairway, 1949, Oil on wood) . 비어 있는 어두운 허공의 문을 활짝 열어 놓고, 그것의 자취를 따라 눈을 시선에 고정시키는 것처럼 (Hotel Window, 1956) 바라 보기도 했다. 소년이 서 있는 그 공간은 (Room in New York, 1932, Oil on Canvas) 같았다.

 

.. <호텔의 창> 에 등장하는 백발의 여자 - 핑크빛 모자를 쓰고, 붉은 색 드레스와 파란색 안감의 망토를 입고 있다 - 도 무언가를 열심히 기다리고 있는 듯한데, 이번에는 그 강도가 좀 더 강하다. 그녀는 곧 떠날 것 같지만, 동시에 그냥 머무를 것 같기도 하다. 여자는 완벽하게 '중간적' 인 순간 속에서 쉴 장소를 찾아낸 것이다. 그녀는 왼쪽을 보고 있고, 그녀의 기다림 역시 왼쪽을 향해 있지만, 그림 속의 나머지 것들은 오른쪽으로 미끄러지고 있는 것이다.

 

1956년 윌리엄 존슨(William Johnson) 과 인터뷰를 할 때 이 그림에 대한 얘기가 나옸는데, 그때 호퍼는 고독에 대해 언급했다. "고독해 보인다구요? 맞아요. 사실 내가 의도한 것보다 조금 더 고독하지요."  

 

.. p 84 

 

 

중력을 이기며, 바람을 피하며, 솟구치다가 점점 멀리 시야에서 사라져가던 종이비행기는 점점 아래로 흘러가고 있었다. 늘 보아오던 공간이 새로운, 완벽히 원근을 가진 공간으로. 때로는 휘어지는 공간으로 바뀌는 순간. 소년은 다시 그것을 찾아 나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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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을 무척이나 좋아하는 남자는 음반을 몇 개 꺼내 듣고 있다. 영국의 잡지 그라모폰에서 올해의 음반상을 받은 음반들이었다. 꽤나 선명함을 지닌 음악. 빳빳한 날개를 지닌 종이비행기. 너무나 선명해 눈에서 놓칠리가 없는 어떤. 직업이라는 삶에서 듣는 어떤.

 

 

 

 

 

 

 

 

 

 

 

 

 

 

 

 

 

“the interpretations catch the ear with their blend of subtle phrasing, polish and unanimous zest...A group of charming solo piano miniatures by Massenet complements and at times connects with the styles of Debussy and Ravel, and Bavouzet plays them beautifully.”

 

- Gramophone

 

 

 

 

 

 

 

 

 

 

 

 

 

 

 

 

 

그라모폰 Record of the Year

 

“The Pavel Haas Quartet play with plenty of feeling and they also relish the rhythmic cut and thrust of the Molto vivace third movement, capturing to perfection the more relaxed Trio's sunny spirit.The final opens to a gentle smile then keys up for some dancing exuberance...there's an abundance of varied drama”

 

- Gramophone

 

 

 

 

 

 

 

 

 

 

 

 

 

 

 

“Time and again Brahms's potential for strenuousness and opacity is clarified with a superfine musical intelligence and technique...I doubt whether the concluding and exultant fugure has often been given with a more formidable yet lightly worn articulacy in its entire history...you may well wonder when you last heard a pianist with a more patrician disregard for all forms of bloated excess of exaggeration.”

 

- Gramophone

 

 

 

음반들에 대해, 음반에서 흘러 나오는 음악에 대해 남자는 어느 블로그에 다음과 같이 적었다.


샨도스에서 발매한 바부제의 음반은. 선명하면서도 유머감각을 놓치지 않는 연주로 평단의 지지를 받은 것 같다. 물론 샨도스가 영국레이블임을 감안해야 하겠지만. 그러나 바부제가 드뷔시에서 남긴 성과를 생각한다면 충분히 고개를 끄덕일만한 결과이다.  

 

매우 진하고, 선명하게 드러나는 팔레트같은 색채와 그러면서도 음들이 뭉쳐 서로간에 부서지면서 고운 파편을 만들어가는 과정은 분명 주목할 만한 것이며 이번 음반에서도 그 부분을 충분히 눈앞에 펼쳐 볼 수 있었다.

 

체코의 레이블, 수프라폰에서 발매한 파벨 하스 쿼텟의 드보르작 현악 사중주 "아메리카" 는 시종일관 치밀하면서도 여유까지 보여주는. 말 그대로 듣는 음반을 듣는 기쁨을 느끼게 하는 연주로 일관성과 생생함을 들려준다.

 

이전 프로코피에프 음반에서도 이들은 여러 리뷰지에서 높은 평가를 받아 왔는데 치밀하고, 듣는 사람의 마음을 깊게 파고드는 진지함이 이 시대, 그리고 다음 시대를 이끌어갈 쿼텟의 전형으로 평가 받았다는 느낌이다. 그들이 연주한 드보르작은 올해의 음반상까지 거머쥐었다.

 

머레이 페라이어는 국내에서는 그다지 인지도는 높지 않지만, 내한 공연을 다녀온 사람이라면 그의 연주에 대해 꽤 높은 평가를 하리라는 생각이다. 꽤나 꽉 찬 음향을 들려주면서도 다양한 느낌들을 전달하는데 탁월하다는 느낌을 준다.

 

그는 현대 피아노로 들려줄 수 있는 힘에, 섬세함까지 덧해서 듣는 쾌감을 전해준다. 폭발하거나 극도로 끝까지 몰고가는 힘은 상대적으로 덜하지만 듣는 동안, 균형감 있게 잘 만들어진 조각상을 보는 것 같다.

 

 

 

 

 

그라모폰지에서 뽑은 올해의 음반과는 상관 없는, 카라얀의 말러 6번 교향곡. 두 손을 꽉 쥐던 어떤 공연에서 느낀 감정을 되살리기에 아주 좋다. 고운 실을 섬세하게 풀어내는 것처럼 음향이 매우 섬세하고 부드럽다.

 

프레이징에 질좋은 기름을 먹여 풀어내는 느낌이다. 현의 높낮이가 저, 맑은 하늘의 끝에 닿는 듯하다. 과장을 좀 보태면 "아름다움의 극한" 이라는 표현은 이 음반에 써야할 표현이다. 그야말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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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다가 잠시 고개를 들어 "시간" 속에서 자리를 차지하는 음악에 대해 생각하다가 그런 느낌과 아주 잘 맞아 떨어지는 한 예술을 다룬 책 한 권을 펼치기도 했다. 우리가 잘 아는 추상미술의 선구자 뿐만 아니라 제임스 맥닐 휘슬러를 다시 보게 만든 책이었다.

 

중력의 법칙을 벗어나 자유롭게 떠도는 형태들은 현실을 초월하고자 하는 비상의지, 즉 유토피아니즘의 예술적 현현이다. 우리 모두가 새처럼 나는 꿈을 꾸듯이, 그리고 그 꿈이 결코 사라진 적이 없듯이, 유토피아에 대한 열망도 추상 충동도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_ p.510

 

유토피안 기획이 현실의 사람들을 제외해온 것처럼, 추상미술은 사물의 형상을 부정해왔다. 또한 유토피아 내러티브가 항구적인 이상사회의 묘사에 집중되어온 것처럼, 추상미술의 레토릭 또한 '예술을 위한 예술' 의 극점을 향해 정진해왔다.  ..

 

유토피아가 긍정적 힘을 발휘하는 지점은 그것이 이루어질 미래가 아니라 그것을 꿈꾸는 현재적 차원에서이며, 그 꿈이 이루어지는 것은 현실 바깥의 낯선 땅에서가 아니라 현실속에서 그 반성과 비판의 효과를 통해서다, 유토피아의 거처는, 또한 추상미술의 거처도 지금, 여기다. _ p.71

 

 

 

 

 

 

남자는 추상미술에 대해 알고 있는 것이 얼마나 얇은 것이었는지, 자신이 알고 있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은 화가와 이론가들을 추상미술과 연관시킬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 대부분 "잘 알고 있다" 고 생각한 화가들이 등장하지만 "시간" 의 흐름 속에서 다시 만나게 되리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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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아가던 종이비행기는 어디론가 사라졌다. 분명 떨어진 지점을 봐 두었다고 생각했는데 저기 풀 숲 어딘가로 숨어버린 것 같았다. 물에 젖었는지도 모른다. 바람에 날려 어디론가 날아가 버렸는지도 모른다. 그것은, 소년이 접은 것 가운데 제일 잘 날아가던 것. 여간 서운한 것이 아니었다.

 

그까짓 종이비행기 쯤이야 얼마든지 접을 수 있었다. 빳빳하고, 잘 접혀지는 종이는 집안에 꽤나 많았다. 마음만 먹으면 아무것도 적지 않은 복사지로도 빛이 나는 것 같은 종이비행기를 많이 만들 수도 있었다.

 

하지만 눈앞에 평면적으로 펼쳐지던 공간을 가로질러, 새로운 공간을 열어 젖혀 날아가던 그것을 잃고 싶진 않았다. 나무에 걸려 찢어지고, 물에 젖어도 그것을 되찾고 싶었다. 그것을 바람에 놓던 그 순간의 기분을 되살리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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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찾았다."

소년이 찾던 종이비행기는 살짝 구겨졌지만 충분히 다시 날려볼 수 있을 정도로 형태를 잘 유지하고 있었다. 떨어졌다고 생각한 지점보다 훨씬 멀리 떨어진 지점이었다. 소년의 눈에 담긴 장면은 현실이 아닌, 소년이 바라보던 공간의 환상이었는지도 모른다.

 

 

"찾았다."

남자는 그 울림의 끝자락을 음악속에서 다시 찾았다. 그 저음과 고음은 마음 어딘가에서 새겨져 있었다. 두 손을 꼭 모으며 눈물을 떨어뜨리던 그 순간의 울림을. 어릴적 종이비행기를 날리던 손끝의 느낌을. 그가 눈을 감고 만졌던 장면들은 먼 곳. 그가 두고 온 장면이었는지도 모른다.

 

 

 

소년은 살짝 구겨진 종이비행기를 손끝으로 만져 폈다. 남자는 종이비행기의 앞끝을 살짝 접어 말아 넣었다. 소년은 아까보다 조금 높은 각도와 적은 힘으로 종이비행기를 손에서 놓았다. 남자는 눈앞에 펼쳐진 공간보다 더 깊은 공간을 보며 종이비행기를 손에서 놓았다.

 

 

 

그것은 먼 곳과 가까운 곳, 그 경계지점을 흐르는 듯 펼쳐지며 공간을 가르고 있었다.

 

 

 

 




 
 
2012-01-01 23:58   댓글달기 |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2-01-03 01:5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2-01-03 10:49   URL
비밀 댓글입니다.

메리포핀스 2012-01-02 08:20   댓글달기 | URL
엇! 저요 저요, 지난주에 도서관에서 『종이접기 비행기 진화론』이라는 책 빌려왔걸랑요. 일본사람이 쓴 책인데 '와, 얘들은 참 별걸 다 책으로 내고 그런다~' 이러면서 신기해서 빌려왔걸랑요. 바람결님이랑 뭔가 통했다는 느낌? 히히히힛 좋네요.

바람결 타고 날아가는 종이비행기는 그림도 되고 음악도 되네요.^^

바람결 2012-01-03 01:54   URL

앗 메리포핀스님.

올해도 너무나 상쾌하고 유쾌한 모습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ㅋㅋ

종이접기 비행기 진화론이라.
아마도 저는, 제가 접는 종이비행기는 그 책에서는 거의 원시인 수준이겠지요? 후후.

오랜만에 등장한 이 공간에 온기를 불어 넣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메리포핀스님 사진도 그새 멋지게 바뀌었네요. 어울려요!!

oren 2012-01-02 12:19   댓글달기 | URL
바람결님의 글은 마치 아름다운 음악의 선율처럼 느껴지는군요.

소개해 주신 음반들도 사서 듣고 싶지만 '명연주 명음반'을 제대로 소화할 수 있는 설비도 없을 뿐만 아니라, 귀조차 제대로 뚫려 있지 못해서 언감생심이네요..ㅎㅎ

해마다 연말이면 '새해 계획'을 세워보는데 그 가운데 한가지가 '클래식 음악을 제대로 즐길 수 있는 환경 갖추기'랍니다. 그런데 너무 환경 탓만 할 게 아니라 우선은 좋은 음반들을 직접 구입해서 자주 들어봐야 겠다 싶은 생각도 듭니다.

새해에도 건강하신 모습으로 '글로나마' 자주 뵐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바람결 2012-01-03 02:07   URL

oren님 제가 정말 오랜만에 익숙한 공간에 발을 들인 것 같습니다.
그래도 잊지 않고 반겨주시니, 참 고마운 마음이 듭니다.

음. 저는 산지 12년째 되는 휴대용 시디플레이어와 2만 5천원짜리 스피커로. 라디오는 좀 비싸지만.. 암튼 그런 말도 안되는 장비로 음반을 듣고 있습니다. 그런 것으로 음반의 미묘함을 구별하기란 매우 어려운 일이겠지만.. 그래도 귀를 쫑끗 세우다 보면 뭔가 감이 오는 것 같기도 하더라고요.

제가 뭐라 말씀드릴 처지가 되려나 모르겠지만, 많은 시간을 라디오와 함께 보내는 것도 좋은 방법이지 않을까 싶은데요. 요즘은 1fm에서 보다 다양하게 새로 나온 음반이나 명음반을 들려주고 있어서 꽤나 괜찮은 방법이라는 생각이 들곤 합니다.

꼭 소망이 이루어지셨음 합니다. 저도 좀 귀가 많이 트였음 좋겠습니다. ^^

2012년. 자주 뵈었으면 하는 바람 저도 가져봅니다!!




oren 2012-01-04 13:36   URL
바람결님께서 쓰고 계시는 CD플레이어와 스피커 이야기를 들어보니 저도 불끈 용기가 솟는군요. 한동안은 출퇴근 시간이 길었던 관계로(일산↔강남) 홀로 차를 운전하는 동안 1FM을 열심히 들었었는데, 요즘은 출퇴근 거리가 짧아져서(일산↔여의도) 오히려 라디오를 듣는 시간이 많이 줄어들었답니다. ㅎㅎ

그리고, 강남에서는 제 방에서도 근무시간 중에 인터넷 라디오를 통해서 1FM을 많이 들었었는데(6만원짜리 스피커), 여의도에 오니 제 방에서 스피커를 통해 음악을 듣기가 조금은 쉽지 않네요.

그리고, 오늘 아침에 우연히 라디오(93.9Mhz)에서 조르주 첼리비다케의 연주를 들었는데(하이든의 놀람교향곡) 정말 '놀랍도록' 느리게 연주하더군요. 그리고 라디오에서 첼리비다케의 이야기(녹음 연주는 깡통 속에 담긴 콜라와 같다는 이야기)를 소개해 주던데 알고 보니 정말로 전설적인 지휘자의 한 사람이군요.

바람결 2012-01-04 23:07   URL

아 그러셨군요!! ^^
음악을 많이 듣고 계셨는데 제가 괜한 말씀을 전한 건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조만간, 클래식 음반 어떻게 골라야 할지... 한 번 페이퍼에 적어 보려고 하는데 혹 도움이 되실까 모르겠습니다.

워낙 방대하고, 사전 정보가 그리 많지 않고, (도서에 비해) 가격이 높은 편이라 선뜻 주머니의 돈을 꺼내기가 쉽지 않은데 그래도 일정 금액의 지출은 피할 수 없는 것 같습니다. 또 그렇게 고르고 고른 음반이 나름 애정도 생기는 것 같습니다.

첼리비다케의 연주가 나왔었나 봅니다. 실은 명연주명음반 코너에서도 좀 자주 봤음 하는데, 제가 기억하는 한 작년에는 거의 없었던 것 같습니다. 저는 올해의 재발매반을 골라야 한다면 요한나 마르치와 첼리비다케 박스반을 꼭 꼽고 싶습니다. 연주와 가격면에서 말이지요. 첼리비다케의 음반들은 테스타먼트에서 더 좋은 음질로 나와주었으면 하는 바람도 있습니다.

콜라는 혹시 카라얀에 대한 내용이었을지요? 카라얀이 베를린필을 맡게 되었을 때 그의 심정은 어떠할지. 그리고 음반에 대한 그들의 시선차이를 생각해보면서 음악을 듣는것도 꽤나 재미있습니다.


마녀고양이 2012-01-02 14:18   댓글달기 | URL
종이비행기를 날린 소년이 되고 싶은지
종이비행기 자신이 되고 싶은지, 잠시 생각해봅니다. 여하튼
훨훨 날아가고 싶은 나날들입니다.

바람결님, 매번 부탁드리는거지만 건강하세요. 네?

바람결 2012-01-03 01:59   URL

아. 마고님.

댓글을 좀 길게 남기는데 갑자기 사라져 버렸네요.
좀 늦은 밤, 댓글을 남기는데 아무래도 눈이 침침해서 저도 모르게
백스페이스를 눌렀나 봅니다.

매우 바쁘고, 정신없는 한 해가 되시겠지요? 저도 그래야 하겠지만 마고님도 몸 상하지 않게 잘 지내셨음 합니다.

함께 마음도요. 이 밤에 좀 많은 바람을 가져봅니다.


cyrus 2012-01-03 00:14   댓글달기 | URL
정말 오랜만에 바람결님의 글을 읽게 되었네요. ^^
그런데 새해 첫 날부터 읽은 글의 시의 내용이 하필 청춘이 지나간다니요 ^^;;
그래도 시, 음악 그리고 미술까지 아우르는 바람결님의 감상적인 글은
언제나 읽어도 참 좋아요.

그리고 귓병은 이제 나으셨나요? 올해에도 몸 건강하시고 좋은 일 가득하길 바랍니다. ^^

바람결 2012-01-03 01:50   URL

안녕하세요 cyrus 님!! 정말 오랜만이네요.
지금은 방학중이시겠지요?

비록 방학이지만 열심히 뭔가를 하는 모습이 눈앞에 그려집니다.
얼마간 좀 멀리 떨어져 있었는데, 가끔이라도 꼭 이곳에 들려야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2012년에도 자주 종종 찾아 뵙겠습니다 ^^

소이진 2012-01-03 00:18   댓글달기 | URL
영어는 도저히 읽을수가 없었지만 시는 정말 멋졌어요.
청춘을 노래하다니, 아직 청춘을 잘 모르지만 왠지 멋지더군요.

2012년 건강한 새해 되세요!

바람결 2012-01-03 01:48   URL

아 네!
소이진님.

처음 뵙습니다 :) 2012년 좋은 일 가득한 한 해 되셨음 합니다 !!

꿈꾸는섬 2012-01-04 23:37   댓글달기 | URL
바람결님 새해 인사 전해주셔서 정말 행복했어요.^^
바람결님의 서재는 제게 늘 위로와 위안, 기쁨과 슬픔 모든 감정의 기복을 느끼게 해주는 공간이었답니다.
새해에는 더 많이 건강해지셔서 아프지 않으시길 바랍니다.
새해의 소원 또한 이루시길

바람결 2012-01-07 11:07   URL

네 새해 인사가 제대로 닿았다니 다행입니다 :)

요즘 꿈섬님 이런 저런 일들이 많은 것 같은데, 잘 지내셨음 하는 바람이옵니다. 작년에도 그랬고, 이전에도 그랬지만 올해도 종종 뵈면서 뭔가를 남기는 한 해가 되었음 합니다.

댓글 인사가 꽤 늦었는데요. 어느새 첫 해의 첫 휴일이 되었네요. 시간은 쏜살같이 가지만 몸과 마음 잘 챙기셔서 즐거운 시작이 되셨음 합니다 !!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blanca 2012-01-05 11:29   댓글달기 | URL
서른 넷을 청춘의 경계로 신경숙의 책에서 읽었던 기억이 납니다. 올해는 저는 확실히 더이상 젊지 않다고 난 중년으로 가고 있는 거라는 느낌이 와서 좀 다운되더라고요. 종이비행기. 저는 아직도 종이 비행기를 접지 못해요. 아이가 접어 달라고 하면 난감해요. 참, 바람결님, 글렌 굴드를 처음 듣는다면 그리고 바흐를 좋아한다면 어떤 음반을 추천해 주시겠어요? 참고로 그런 사람은 저입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바람결 2012-01-07 12:39   URL

blanca님 :) 새해 복 많이 받으시기 바랍니다.
올해는 공주님과 더 좋은 시간 많이 가지셨음 합니다.

제가 꽤나 오랜만에 여기에 나타나서 그런지 더 반갑게 느껴집니다. 저는 요새 들어서 몸이 좀 심각하게 급방전 되는 것 같아서 나이듦이 피부로 와 닿고 있습니다.

서른 넷. 그 나이를 청춘의 경계로 잡는군요. 왠지 아쉬운 마음이 듭니다. 그래도 그 나이를 먹고, 그간 나에게 일어났던 일들이 먼지처럼 쌓여 삶의 무엇인가에 영향을 줄거라고 나름의 위안을 해 보는 새해 첫 휴일입니다.

아. 글렌 굴드. 그리고 바흐를.

먼저 글렌 굴드는 소니에서 최근 나온 박스를 구입하셔서 들으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http://music.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6976839321 가격도 저렴하고 그가 남긴 골트베르크 녹음(1955)도 들어 있어 괜찮을 것 같습니다. 바흐를 좋아하신다면 현재 유통중인 헨슬러 박스나, 얼마 후에 나올 워너 바흐 박스를 구입해서 아주 천천히(?) 들어 보시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전집류나 박스는 장식물이 되어버리는 경우가 많긴 하지만 그래도 저는 꼭 한 번에 쭉 듣게 되는 경우가 있어 어느 정도는 추천하고픈 마음이 생기게 되네요.

blanca님. 2012년 좋은 일 많으셨음 합니다.
자주 들르겠습니다.

햇빛눈물 2012-01-05 15:26   댓글달기 | URL
정말 오랜만에 바람결님의 서재에 들어왔네요. 한동안 저도 너무 게으름을 부렸나 봅니다. 저는 '종이비행기'하니 마냥 어릴적 너무나 단순하게 생긴 흰 빳빳한 종이로 된 달력을 찟어 큰 종이비행기를 가지고 놀던 기억이 납니다. 친구끼리 내기도 하곤 했죠. 누구 비행기가 가장 오래 멀리 날아가나... 문득 지금의 내 삶이 그 때 접은 '종이비행기'가 아닐까 상상을 해봅니다. ㅋㅋ 저도 바람결님의 페이퍼를 보며 작년에 구입한(프레스토에서 구입했는데 배송비 빼면 국내판매가의 60% 정도에 구입한것 같습니다. 뭐 이해는 합니다만 국내 판매가격이 너무 높은 것 같아 씁쓸했죠.) 첼리비다케 에디션 브루크너 교향곡 3번을 듣고 있었습니다. ㅋㅋ 저는 재작년부터 예당을 찾으면서 음반에서는 찾을 수 없는 소리의 울림을 느낄때 너무 기분이 좋더군요. 특히, 서울시향 정명훈 지휘의 말러 교향곡 6번은 정말... 말로 형용할 수 없는 그 무언가를 느끼게 해준 공연이었습니다. 뭐 개인마다 감상평은 다르겠지만. 위 댓글을 보니 클래식 음반의 선택과 관련된 페이퍼를 작성하신다는데 정말 읽고 싶네요. 저는 저의 능력보다 좀 과하게 구입하고 음원들을 구하는 것 같아, 좀 가끔 주객이 전도된 듯한 느낌도 들때가 있죠. 하여튼, 바람결님 정말 건강하시구요. 2012년에는 하시는 모든일 다 잘되시길 기도 드겠습니다.

바람결 2012-01-07 15:43   URL
햇빛눈물님 안녕하세요.

저도 매우 오랫만에 들렸습니다. 서울시향 말러 공연 리뷰 쓰신 것도 봤는데 미처 답글을 남기지 못했네요. 내외분 같이 공연 보러 다시시는 것 같던데 한편 부럽기도 했습니다. ^^

저도 종이비행기는 어릴적 달력이나 좀 허접한 파지를 주워다가 접었던 기억이 있는데요. 중력을 이기면서 날아가는 것이 그렇게 재미있을 수가 없었습니다. 나중에 연을 날리기도 했지만 그 종이비행기의 손잡이가 전해주는 느낌은 아마 영원히 잊지는 못할 것 같습니다.

첼리비다케를 프레스토클래시컬에서 구하셨을지요? 저는 브루크너 박스 빼고는 나머지는 모두 프레스토에서 프리오더 진행할 때 (개당 26-30달러 선이었지요?) 구매했습니다. 배송기간은 10일정도로 해서 문제 없이 잘 왔더라고요. 첼리비다케 에디션은 선호 하거나 그렇지 않거나 꼭 들어봄직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리고 말씀하신 서울시향 말러 6번 공연은 저도 날, 예술의 전당에서 자리에서 감상을 했는데 합주력은 정말 좋았습니다. 안단테 악장을 들으면서 마치 손에서 놓기 직전의 그, 느낌이 들어 좋았으면서도 한편 뭔가 슬픔이 느껴졌던 것 같습니다. ㅎ 햇빛눈물님, 언젠가, 조만간 말씀 드린 그 페이퍼를 보시고 댓글 남겨주시면 동병상련(?) 스러운 기분이 들 것 같아요. 페이퍼의 내용은 아마 전부 아시는 것이겠지만요~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올해도 좋은 일 가득하셨음 좋겠습니다.
자주 뵈어요 !!

하늘바람 2012-01-09 19:23   댓글달기 | URL
바람결님 바쁘셔서 많이 힘들고 지치기도 하시지요?
그래도 님 아이디를 부르면 마치 휘파람을 부르듯 바람소리가 나는 듯해요. 여유 바람이 부는 거지요.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건강하게 힘내시고요.
우리 새해에는 좋은 일 가득 담고 살아요

바람결 2012-01-10 23:51   URL

하늘바람님 안녕하세요 :)

어쩌다, 좀 멀어진다 싶으면 이렇게 불쑥 모습을 드러내는 저입니다. ^^
작년을 돌아보면, 참 많이 공감해주시고 이 자리에 많이 들러주셨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좀 제가 발걸음이 뜸했지요?

마음으로는 늘 궁금하고, 걱정스럽고, 하시는 일 잘 되셨음 하는 바람을 간직하고 있습니다. 계속 응원하겠습니다.

올해엔 저도 저를 응원해야 하는 시기인데 좋은 일, 좋은 생각 많이 하면서 보내야겠다는 다짐을 해봅니다 !! 하늘바람님 멋진 밤~ 되셔요 !!


감은빛 2012-01-10 17:28   댓글달기 | URL
안녕하세요. 바람결님.
정말 오랫만에 들렀습니다.
잘 지내시지요?
진짜 새해(설)은 아직 안되었지만,
남들 다 하는 인사이니, 저도 일단은.......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

여전히 저는 이해하기 어려운 음악과 글이예요.
아무래도 저는 예술적 감수성이 너무 없는 게 아닌가 걱정이 됩니다.
요 위에 건강하시라는 댓글이 유난히 많네요.
어디 몸이 편찮으신가봐요.
부디 건강하시기를! 제 작은 마음도 보탭니다.

바람결 2012-01-10 23:48   URL

감은빛님. 정말 오랜만에 뵙습니다. ^^

그치요! 아직 설이 지나지 않았으니 새해가 아닌데.. 언젠가부터는 너무나 당연하게 달력에 적혀 있는 1월 1일 기준으로 뭔가를 생각하게 되네요. 이렇게 일깨워 주시니 한편 마음이 훈훈해집니다.

아마도 제가 2011년에 병원에 좀 자주 들락거려서 여기에 발걸음 해주신 분들이 그렇게 댓글로 응원겸 인사를 남겨주신 것 같습니다. 약도 참 많이 먹었고, 입원기간도 좀 길었고, 병원은 아직도 다니고 있으니 말이지요. 그리고 좀 페이퍼에 대고 엄살을 부려서 다들 좋은 의미의 댓글을 달아주신 것 같기도 합니다. 아마 2012년에는 작년보다 더 바쁘고 꽉 짜인 생활을 계속 해야 할 것 같은데, 감은빛님의 마음 잘 간직하여 힘내도록 하겠습니다.

음.. 그리고
다음엔 일기같은 끄적임말고 좀 제대로 된 뭔가를 적어 보도록 노력해야겠습니다. (아마 잘 되진 않겠지만...요^^) 감은빛님처럼 멋진 글을 쓰는 분께 이해가 어려운 글이라니.. 반성 좀 해보는 밤이어요.

남겨주신 댓글에, 훈훈한 마음과 함께 물러갑니다. 따뜻한 공기가 함께하는 밤 되시길 바라겠습니다.

2012-01-11 10:25   댓글달기 | URL
비밀 댓글입니다.
 

  

소년은 꿈을 꾸고 있었다. 전화기 너머로 들려오던 희미한 목소리가 떠올랐다. 희미한 목소리였지만 버튼을 꾹꾹 눌러 손에 닿던 느낌은 살아 있었다. 어쩌면 저 멀리 징검다리를 건너 돌아오는 길 잠시 길을 잃어 기억이 희미해진 것인지도 모른다. 잠시 머릿속이 텅 비어 있다가 다시 무엇인가로 꽉 차는 느낌이 때로는 즐겁게, 때로는 우스꽝스럽게 느껴졌다.  

그 남자는 어딘가에서 칼국수를 먹고 있었다. 테이블이 다섯 개. 전철역에서 가까이에 붙어 있던 그 식당의 메뉴는 칼국수 보통, 매운 것 두 서너가지 밖에 없었다. 그 식당은 식구들이 운영하는 곳인듯 보였다. 주방은 나이든 어머니, 주문을 받고 나르는 일은 딸이, 배달은 아들이. 그렇게 짝을 맞춰 일하는 모습이 전혀 새로울 것 없었지만 새롭게 느껴지는 일이 어딘가 이상했다.  

등받이에 몸을 기대고 음식을 기다리면서 물 두 잔을 들이켰다. 천천히. 유쾌하지만 어딘가에서 힘든 일을 하고 있을 아빠와 시장을 돌며 반찬값을 점잖게 깎을 엄마를 사이에 둔, 조그마한 소녀가 눈에 들어왔다. 일곱살이나 되었을까. 허리를 곧게 펴고, 조심스럽게 칼국수를 입게 가져가는 모습이 경건하게 느껴졌다. 소녀의 허리는 굽혀지는 법이 없었고, 반듯했다.  

소년의 꿈은 이미 커버린 남자와 소녀를 통해 보던 어린시절의 그. 그 경계가 닿은 지점의 순간의 찰나일지도 모른다.  

 

 

 

 

 

 

10월, 저녁 8시가 되면 어디선가 툭 떨어진 조각같은 사람들이 거리에 하나 둘씩 모습을 드러낸다. 아주 가끔씩. 그들은 연한 그림자와 함께 동행한다. 조금은 우울한 얘기를 하고, 조용히 틈을 매꾸는 단어들을 섞었다. 광화문 어느 카페에서 책을 읽던 그는 우울한 조각같은 사람들의 그림자를 열심히 밀어낸 채, 그들이 쏟아내는 틈의 단어들을 빼버린 채 책을 읽으며 노트에 뭔가를 적고 있었다. 70페이를 읽을 때마다 가끔 커피를 들이키며, 소년의 손에 아직 살아 있는 전화기 버튼의 감각을 느끼며. 

 

셰틸 비에른스타. 책 소개에 따르면 어디서 주최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젊은 피아니스트의 거장' 을 뽑는 경연대회에서 두 번이나 우승을 하고, 열여섯 살에 오슬로 필과 바르톡의 피아노 협주곡을 연주하며 데뷔했다고 한다. 그리고 후에는 재즈 피아니스트로 활동하면서 작가로서도 글을 쓴 것으로 되어 있는데 <음악 속으로>는 그가 2006년 세상에 내놓은 책이었다. 그가 클래식 음악을 많이 들으며 연주했기에 음악에 대한 얘기가 많이 나온다. 음악에 대한 배경이 있다면 조금 더 조용하며, 나긋하게, 푸르게 들릴만한 구절들이 많다.  예를 들면 다음과 같이.  

우리는 한동안 아무 말이 없었다. 아버지는 이 침묵을 견뎌내지 못하고, 어머니가 세상을 떠나기 직전에 구입했던 음반을 하나 꺼내 낡은 턴테이블에 얹었다. 놀랍게도 그 음반은 스트라빈스키의 <봄의 제전>이었다. 오늘 아침 일찍 해가 높이 솟았을 때 나는 봄이 성큼 다가온 듯한 느낌을 받았던 터였다. 왈츠의 선율처럼 거칠고 생기 가득한 햇살이었다.  

_ p. 54  

 

어머니의 갑작스러운 죽음과 드리워진 그림자속에서 듣는 <봄의 제전>이라니. "놀랍게도" 라는 단어가 등장하는 저 구절 속에서 어떤 미묘함을 느꼈다. 낡은 옷이나마 깔끔하게 차려입은, 조용하고, 차분하지만 조용한 바람에도 살랑거리는 나뭇잎같은 아이가 피아노와 대화하며 커간다. 그 소년의 주위에는 자극적이지 않은 부드러운 빵같은 이야기들이 함께 흐른다. 조금은 쌀쌀한 날씨, 그런 날씨에 외딴섬 처럼 동떨어진 잔디밭에 누워 누군가의 꿈과 같은 이야기를 듣는 듯하다.   

그는 다시 말을 이었다. "연주자라면 삶이 우리에게 줄 수 있는 것에 대해서 항상 마음을 열어 경험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루빈스타인은 한 번도 하루에 세 시간 이상 연습한 적이 없다고 하더군요. 왜냐하면 그의 주위에는 읽어야 할 책들이 있고, 알아야 할 여인들이 있었으며, 감상해야 할 그림은 물론이고 마셔야 할 포도주가 있었기 때문이라고요." 

"전 루빈스타인을 존경해요" 

마르그레테 이레네가 눈을 빛내며 말했다. 이번에도 그녀는 내게 의미심장한 눈길을 보내는 것을 잊지 않았다. 고개를 끄덕이며 레베카가 덧붙였다.  

"그의 말에 전적으로 동감해요. 아무리 우리가 피아노를 치는 사람들이라고 해도 피아노 연주를 필요 이상으로 과장되게 생각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해요. 우리 앞에 있는 또다른 기회를 잡고, 그것에 열중하면서 즐거움을 발견할 수도 있거든요." 

_ p. 270 

 

 

  

    

 

 

가난한 내가  

아름다운 나타샤를 사랑해서 

오늘밤은 푹푹 눈이 나린다 

 

나타샤를 사랑은 하고 

눈은 푹푹 날리고 

나는 혼자 쓸쓸히 앉어 소주를 마신다 

소주를 마시며 생각한다 

나타샤와 나는 

눈이 푹푹 쌓이는 밤 흰 당나귀 타고 

산골로 가자 출출이 우는 깊은 산골로 가 마가리에 살자 

 

눈은 푹푹 나리고 

나는 나타샤를 생각하고 

나타샤가 아니 올 리 없다 

언제 벌써 내 속에 고조곤히 와 이야기한다 

산골로 가는 것은 세상한테 지는 것이 아니다 

세상 같은 건 더러워 버리는 것이다 

 

눈은 푹푹 나리고  

아름다운 나타샤는 나를 사랑하고 

어데서 흰 당나귀도 오늘밤이 좋아서 응앙응앙 울을 것이다  

 


쇼팽 피아노 협주곡이 흘러 나온다. 10월의 폐를 깨끗하게 만드는 바람에 실려 음악은 또 다른 향을 가지고 돌아온다. 그는 뭔가를 읽다가, 눈을 감아보다가, 코를 킁킁거리다가, 손을 마주잡다가, 귀를 잡아 당기기도 한다. 가래가 10분에 한 번씩 섞여 나오고, 귀에서는 사각거리는 소리가 난다. 그런 정상적이지 않은 상태가 오히려 가난한 바람과, 풍요롭게 목에 흘러 넘어가는 물맛을 더 많이 느끼게 하는지도 모른다.  

강신주는 그의 책<철학적 시 읽기의 괴로움>에서 나카무라 유지로의 <공통감각문> 과 백석의 감각적 형상화를 연결시키며 이렇게 얘기한다.

이제야 감이 오시나요? 백석의 시는 '주어적 통합' 이 아니라 '술어적 통합'의 세계, 즉 생생한 감각의 세계에서 이루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말이지요. 그래서 백석의 시는 시각적일 뿐만 아니라 청각적이고, 후각적이고, 미각적이고, 촉각적일 수 있는 겁니다. 란을 그리며 처음으로 통영을 방문했떤 백석, 그리고 통영 바닷가에서 그가 느꼈던 것을 떠올려보세요. 란이 그리웠던지 백석은 항구의 한 아가씨와 사랑을 나누게 됩니다. "미역오리같이 말러서 굴껍지처럼 말없이 사랑하다 죽는다는" 아가씨와 사랑을 나누던 장면을 "소라방등이 불그레한 마당에 김 냄새 나는 비" 라는 멋진 표현으로 이야기 합니다. 아마 그녀의 몸에서 김 냄새 비슷한 향이 풍겨왔나 봅니다. 

_ p. 225 

 

가끔 음악을 들을때면 그런 꿈같은 일들이 일어나곤 한다. 비소리, 바람소리, 귤냄새, 향수냄새, 바닷가, 벌판.. 함께 살을 맞대던 밤, 눈길을 걷던 길, 우산을 받쳐 들고 걷던 빗 속. 이 책을 읽는 시간은 음악을 듣는 것처럼 익숙하거나 익숙하지 않거나 그냥 삶의 부메랑같이 다시 되돌아오게 만드는 물음표에 대한 답인 "시" 를 소개하는 책을 읽으며 마음의 무엇인가를 꺼내거나 구체화하는, 그런 시간이다.  

  

  

 

 

맹렬한 볕이 지나간 자리에 앉아, 손바닥 위에 약 몇 개를 놓아 입안으로 삼키는 것은 꽤 근사한 일이다. 훕 하는 소리와 함께 그 작고 단단한 것들을 넣고 삼키면 조리치는 느낌이 든다. 그 작고 단단한 것들이 몸 속 어딘가를 둥둥 떠다니며 흐른다고 생각하니 두메한짝을 다시 펴 보게 만든다.  

노련하게 허공을 걷는다. 손샅이 검정돌과 흰색돌의 징검다리를 걷는다. 때로는 훌쩍, 때로는 조심조심. 때로는 물결소리, 숨소리 마저 고요히 가라 않는다. 한 끝 한 끝 힘을 주어 그 돌을 뛰어 넘는다. 그렇게 물결과 시간은 흐른다. 나란히.

   

홀로 돌아오는 길, 소년은 길을 건너 올 때는 볼 수 없었던 돌 하나가 징검다리에 놓여져 있는 것을 보았다. 주위를 둘러보니 바람뿐이다. 누가 가져다 놓았을까. 꽤나 튼튼해 보였다. 조심히 발 끝으로 꾹꾹 눌러 보았다. 머뭇거리다가 폴짝 돌을 딛고 길 저편으로 사라졌다. 잠깐 뒤를 돌아 보았다. 아무것도 없다. 바람뿐. 

  

 

 

그는 희미한 빛이 비추는 도시의 아스팔트를 건너 집으로 돌아오곤 했다. 때로는 진한 어둠과 연한 바람과 함께. 발끝에 닿던 그 징검다리의 느낌과 함께. 삶의 징검다리가 되어주는 음악과 시를 읽으면 노트에 뭔가를 적어 두곤 했다. 그리고 그런 날이면 희미하게 꿈을 꾸곤 했다. 꿈속에서 그는 꾹꾹 전화기 버튼을 누르거나 국수를 먹으러 따라 나서던 시장속에서 혼자 식탁에 앉아 있거나 저 너머 마을로 앞서간 동네형과 누나들을 따라 징검다리를 건너곤 했다.

 

       

 

작곡가 A_Z까지 또는 아무거나. 그는 음반을 몇 개 꺼냈다. 내지에 따르면 알렉세이 루비모프가 세심히 고른 악기로 연주하는 슈베르트 즉흥곡. 세밀하게 펼쳐지는, 마치 그 나무가 울려 퍼지는 먼지냄새도 날 것 같은, 그러나 누구에게나 그렇게 되지는 못할 음반을 꺼냈다. 그리고 북시디 형태로 나와 톡 쏘는 듯한 느낌을 주는 데이빗진만의 브람스 교향곡집과 줄리언 브림의 소니 뮤직 재발매 박스를(10장에 4만원도 안되는 !!!!!!). 

이 음악들은 또 어떤 소리와 냄새, 감각으로 그를 데려가줄까.  

그 어느 꿈에서 그는 걷고 있을지.

 




 
 
Bflat 2011-10-16 14:20   댓글달기 | URL
철학적 시읽기의 괴로움...이란 책이 있는 지 없는 지...있는 것 같은데....
저 시 너무 아름다워요.
가난한 내가 아름다운 나타샤를 사랑해서 눈이 푹푹 나린다니!
눈이 내리기 때문에 나타샤를 사랑하는 내가 슬픈 게 아니구요.
시선의 출발이 이리도 중요하군요.^^

바람결 2011-10-16 16:09   URL
정확히 어디서 나온 얘기인지 모르겠지만 "시인들이 가장 좋아하는 시인"이 백석이라고 하는데는 이유가 있는 것 같습니다.

감각 너머 보이는 실체에 걸려 있는 미묘한 눈길이 마치 멀리서 아스라이 들려오는 어떤 소리나 향기 같기도 하고, 좀 거부할 수 없는 묘한 매력이 있는 것 같습니다. ㅎ

오늘 밤엔, 문학동네에서 나온 책을 다시 한 번 들춰봐야겠습니다. 이렇게 다시 책을 열게 만드는 것. 그리고 나의 삶과 대화를 다시 시도해 보는 것. 이런게 책 읽는 맛중의 하나가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하게 되네요.

^^ 삶이 팍팍하고, 힘들어도 이렇게 따뜻한 생의 시선을 놓치지 않는 것이 또 시인들인것 같습니다.

햇빛눈물 2011-10-16 19:16   댓글달기 | URL
처음 듣는 곡이지만 비에른스타의 곡과 페이퍼의 글이 묘하게 어울리네요...갑자기 제 정신도 좀 '묘'해지는 느낌입니다. 저도 예전에 강신주씨의 <철학적 시읽기의 즐거움>이란 책을 재미있게 읽은 기억이 납니다. 특히, 황지우 시인과 최영미 시인의 시를 따로 읽은 기억이 나네요. 제가 최영미 시인의 <서른, 잔치는 끝났다>를 읽고 좀 나이있으신 분이 다가오더니 놀라워하더군요.(느낌이 "넌 나이도 젊은 놈이 이런 시를 읽냐?"하는 듯)

지금 읽고 있는 책에서 이런 말이 나오더군요, "백석은 우리시의 지리학에서 분단 이후 사라진 북방이라는 지리적 공간의 회복과 재발견이라는 점에서 보물과 같은 존재"라고. 그의 시를 읽어보면 그의 고향에 대한 그리움이 듬뿍 묻어나는 향토성, 토속음식, 방언들이 나오는데 그런 그의 시적 특징이 그의 시가 사랑 받는 이유가 아닐까합니다. 좋은 밤되세요!!

ps : 진먼의 시디 너머로 샤이의 신보 DVD가 보이네요. 저도 모 사이트에서 할인행사를 해서 며칠전에 질렀는데. 기대되는 물건입니다.

바람결 2011-10-16 19:57   URL

넵. 햇빛눈물님 오랜만입니다.

저는 그런 얘기를 곁들여 주시니, 마침 옆에 <정본 백석 시집> 을 두고 있어서 해설 부분을 다시 펼쳐보았습니다. 소월과 비교한 내용이 있어 나름 흥미롭게 다가옵니다.

철학적 시 읽기의 즐거움..은 언제 대학 도서관에서 봤는데 그때는 별 감흥이 없다가 이 책을 읽고서 아,, 그 책도 읽었구나 했습니다. 시를 더 가깝게, 또는 더 자세히 읽을 수 있다는 점이 이런 책을 읽게 하는 까닭 가운데 하나이지 싶네요.

가장 최근에 나온 DVD 또는 블루레이 가운데 가장 관심을 많이 받고 있는 것이 샤이의 말러와 게르기에프의 차이콥스키가 아닐까 싶습니다. 요즘 블루레이가 음악을 듣는 새로운 재미를 주네요. 화질도 좋고 말이죠~ ㅎ

음.. 그나저나 조만간 가신다는 말러 공연 후기 기대하고 있겠습니다. 내일이면 또 학생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셔야 할텐데, 부디 즐거운 일상 되셨음 합니다 ^^

달사르 2011-10-16 22:46   댓글달기 | URL
꿈길을 따라걸은 기분입니다. 엊그제 걸었던 징검다리 사이로 흐르던 물소리와 바람 냄새도 따라오는 듯하구요. 몽롱한 음악에 취해 한없이 아득해지는 이 느낌, 좋네요.

저는 허수경이 백석을 좋아한다는 글을 읽고, 따라 읽어보았더랬어요. 근데 그만큼 느낌이 아직 오질 않아서 안타까워하고 있답니다. 그 느낌이 언젠가는 올텐데..하면서 기다리고 있어요. 헤.

바람결 2011-10-17 21:51   URL

달사르님 안녕하세요.
오셔서 남기는, 첫 댓글이네요 : ) 저는 이미 첫발자국을 찍었죠~ ㅎ

'처음' 가끔은 시소가 내려앉듯 아득히 멀어지는 기분이지만 그래도 기분좋은 단어임은 확실한 것 같습니다. 서재는 누군가의 방에 처음 발을 들여놓고, 다시 처음 누군가에게 방을 소개해주는 느낌. 밝은 노랑 이전의 파랑이 존재하는 시간.

저 음악은 ECM 레이블에서 나온 음반으로 다시 들어보고 싶어집니다. 왠지 다른 음반에서 느낄 수 있는, 마그리트의 그림이 가져다주는 그런 느낌도 함께 들 것 같아서 말이지요. 산책길을 다녀오다가, 너무 명확하게 바뀌는 명암에 잠깐 정신이 아찔하다가, 두 겹을 흐르는 바람에 기억을 잃다가 돌아오는 길. 그 길에 책의 구절과 시와 음악을 좀 다시 떠올려 보았습니다.

허수경시인이 백석을 좋아하는군요. 언어로 뭔가를 빚어내는 사람들이 백석을 참 좋아하나 봅니다. 생각의 끝에 눈에 보여 손으로 만질 수 있고, 입에도 넣을 수 있는 열매를 맺는 모습이 좋아 보이는 것은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꿈꾸는섬 2011-10-17 10:27   댓글달기 | URL
바람결님, 오랜만이에요.^^
전 감기 몸살중이에요.ㅜㅜ
바람결님 글 읽으며 마음이 훈훈해지네요.
10월도 어느새 중반을 넘어섰어요. 요 며칠 바람이 차가워요. 감기 조심하세요.

바람결 2011-10-17 21:37   URL

아!! 꿈섬님 감기 걸리셨군요!!!
어제 보니, 뭔가 좋지 않은 일도 있으신 것 같은데.. 이런!

어제 잠시 산책길을 다녀오면서 날이 깨끗해지긴 했는데 때 이르게 명암이 너무 커서 놀랐습니다. 동네길은 너무 어둡고, 거리는 너무 밝고. 두 겹으로 불어오는 바람에 아.. 10월도 벌써 중반을 넘기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말씀처럼 바람이 많이 차갑습니다. 저도 감기 조심해야겠습니다. 꿈섬님 얼른 나아지셔서 맛있는 음식 담긴 사진 보여주세요!! ^^

하늘바람 2011-10-17 10:54   댓글달기 | URL
정말 꿈같은 글이네요
그러게요 이제 막 10월이 시작되었다고 생각했는데 ~
날씨가 참 춥습니다
따스한 난로가 있는 그런 카페에서 커피한잔 마시고 싶어지는
그런데 요즘 그런데 있나 몰라요

바람결 2011-10-17 21:34   URL
하늘바람님 ^^

팔팔 끓인 주전자물에 블랙으로 커피 마시고 싶어지네요. 방금 약을 먹었는데 괜찮으려나. 아님 오늘은 일찍 자리에 눕고 싶은데 잠이 오지 않으려나.. 좀 걱정이 되기도 합니다.

날이 꽤 추워졌는데 꿈섬님처럼 감기에 걸리신 건 아닌지 좀 걱정스럽습니다. 오늘 낮기온이 10도가 채 되지 않는 것 같던데, 실제로 나무들은 무심하게 나뭇잎을 떨어 내고 있더라고요.

지금도 아마 소리없이 나뭇잎은 내년을 기약하며 어디론가 흐르고 있을 것 같습니다. 나뭇잎들이 커피색으로 변하면 컵에 담은 커피는 더 진해지겠죠? 그때가 되면 또 추억과 함께 커피 한 잔 하게 될 것 같습니다. 진하게 한 잔 말이죠 ^^

blanca 2011-10-17 11:23   댓글달기 | URL
아,,왠지 애잔한 페이퍼네요. 백석의 저 시 참 좋죠! 마지막의 음반에 눈이 확 뜨이네요. 클래식 채널만으로는 왠지 아쉬울 때 들으면 딱 좋을 것 같아요. 좋은 시, 음반 소개 고마워요. 오늘 하늘에는 구름 한 점이 없네요....근데 전 겨울이 무서워요.

바람결 2011-10-17 21:53   URL
뭔가를 여기에 남기면서 짧게 걷는 걸음이 지나면, 곧 눈이 올 지도 모르겠다.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다시 듣고 있는 음악도 왠지 하얗게 세상을 차분히 덮는 그 느낌과 닮았다 싶기도 했고요.

뭔가를 나열해 서로 꿰어 맞추는 것이 참 어렵고 어설프게 보이지만 또 그렇게 꿰어 맞추다보면 또 다른 생각들이 나오게 되는 것 같습니다. 소설을 읽고, 작가가 만든 음악을 듣고, 음악을 들으면서 어린 마음같은 시를 읽고, 어딘가에 낙서를 하고.


blanca님. 이미 손에서 떠나버린 종이비행기같은 시월입니다. 또 그렇게 흰 종이로 접은 종이비행기는 어디론가 흐려지고 흩어지려나요.

hnine 2011-10-18 08:11   댓글달기 | URL
'거칠고 생기있다'는 말이 전혀 이해 안되는 바는 아니어요. 봄이라는 계절이 사실 얼마나 거칠고 무지막지한 시기인가에 대해서도요.
아래 인용해주신 270쪽 글도 좋아요. 그런데 어느 정도 경지에 오른 사람이 할 수 있는 말이고 그 이전에는 한 곳에 집중적으로 매진해야 하는 시기가 우선 있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도 드는데, 아마 제가 그러지 못했기 때문에 드는 생각인지도 모르겠어요.

바람결 2011-10-17 22:28   URL
hnine님 ^^ 가끔 이렇게 불쑥 나타나는 저이지만, 어김없이 발자국을 해주셨네요. 이렇게 생각할거리를 또 남겨주셔서 저는 이 밤에, 오늘 일찍 먼저 떨어져버려 갈색을 머금은 나뭇잎같은 커피를 한 잔 마셔야겠습니다.

언젠가 뛰어난 연주자들을 많이 길러낸 교수의 기사를 본 적이 있습니다. 24시간 거의 그 악기만 생각하라는 요지였었죠. 그런가하면 발터 기제킹의 일화를 읽은 기억도 나네요. 저는 그 둘의 일화를 떠올리면서 이 책의 저자가 저 얘기를 끌어들인 것은 이 책의 줄거리를 떠올려보면 누구의 강압에 의해서, 누구의 대리욕구를 위해서 음악을 하지는 말아야겠다 하는 의도로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한편 자신이 진정 원하는 무언가에 매진하면서도 재능이 더해지지 못해도, 시야를 넓히면서 고민하다보면 새로운 자신만의 무엇인가를 찾게 될 것이라는 생각을 그가 만들어낸 음악을 들으면서 해 보았는데요. 저 부분만 떼어 놓고 보니, 약간 거부반응이 올 수도 있겠다.. 하는 생각이 듭니다.

ㅎㅎ 그런데 저야말로, 학창시절에 한 곳에 집중적으로 매진을 못해서 매번 명절때마다 한 소리씩 듣는데 hnine님은 저처럼 그러진 않으셨을 것 같은데요 ㅋ 단정하게 열심히 눈을 반짝이며 수업시간을 보내는 여학생이셨을 것 같고, 왠지 학생회장도 하셨을 것 같은 느낌입니다 ~

아 그러고 보니, 사진이 바뀌었네요. 찬바람에 감기 조심하셨음 합니다. 잠시 커피 마시면서 hnine님 서재 다녀와야겠습니다. 제가 남긴 댓글에 어떤 얘기를 담아주셨나.. 궁금하기도 하고요 !! ㅎ



yamoo 2011-10-22 21:17   댓글달기 | URL
저 철학적 시읽기의 괴로움이라는 책...좀 눈에 밟히는 책인데, 여기서 페이퍼로 다시 만나는 군요~

바람결님의 정성스럽게 쓴 글과 올려주신 음악...정말 좋습니다. 추천을 한 번만 할 수 있는 게 참으로 아쉽네요!

바람결 2011-10-22 23:41   URL
^^, 네 yamoo 님. 오랜만에 뵙는 것 같습니다.
<요즘 시를 다양하게 읽어보자 > 하는 글이 많은 것 같습니다. 지금 제 옆에 놓아둔 책 두 권도 그러한 책인데, 걸어가면서 생각하면서 뭔가 결정하면서 읽는 시집을 더 "다양" 하고 "생기" 있게 만드는 글이지 않을까 하고 읽고 있습니다.

언젠가 이 자리에서 마지막 마침표를 찍게 될 때 자주 들러주시는 분들을 떠올리게 될 것 같네요. 그 마침표는 더 일찍 찾아올지도 모르겠습니다. yamoo님께서 흔적을 남겨주신 글을 보니, 그때까지 정겨운 분들은 자주 찾아뵙고 해야겠다는 생각을 해 보는 밤입니다. 적당적당히 넘긴 글. 이렇게 와주셔서 읽어주시니 감사한 마음이 듭니다 : D

즐거운 토요일 밤 되셨음 해요 ^^

마녀고양이 2011-10-22 23:05   댓글달기 | URL
오늘 공원에서 하늘을 올려다 보았습니다.
선선한 바람입니다. 그리고 흔들리는 나무 이파리 실루엣.
저는 하늘을 살짝 가리는 이미지를 보기 좋아합니다.
사물을 사물로서 보지 않고 전체 이미지의 하나로서 액자처럼 보면
하루 종일도 있을 수 있답니다........... 그게 제겐 꿈처럼 느껴지네요.

음, 많이 먹고 들어왔는데도 또다시 칼국수가 땡깁니다. ^^

바람결 2011-10-22 23:54   URL
마고님. 뭔가 매진하셨을 듯한 시간은 잘 보내셨는지 모르겠습니다.
왠지 잘 마무리하셨을..듯 해요 ^^

오늘 밖에 잠깐 나갔다 왔는데 날이 꽤 푹(어른들 표현대로..) 하더라고요. 그런데 갔다 오는 길 열쇠를 떨어뜨리고, 가기 전에 계란을 깨뜨렸습니다.

뭔가 한뼘 멀리 떨어진 밤인데요. 오늘 신선한 바람과 맑은 하늘빛을 구경하셨다니 저도 그 떨어뜨리고 깨뜨린 그것과는 결별하고, 보다 선명한 무엇을 생각하고픕니다. 칼국수 얘길 하시니, 그 양갈래로 머리를 땋은, 칼국수를 다 먹고 계산하는 어머니 옆에 꼭 붙어서까지 단정했던 그 어린아이를 다시 떠올리게 되네요. 작고 단단해보이는, 분홍색 운동화를 꼭 모으고 먹던 모습도요.어쩌면 전, 시월의 바람이 불던, 뭔가를 그 바람에 맡기던 제 모습을 그 장면에 투영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


아 방금 마고님 해주신 얘길 봤는데요. 제가 가장 좋아하는 달 맞습니다. 기억해주셔서 감사합니다. 10월말 11월 초를 제가 가장 좋아해요 ^^ 더 정확히 얘길하자면 11월 초의 그 맑은, 쨍하는 공기가 풍기는 그 시간을 일년중에서 가장 좋아합니다. ㅎ


2011-11-10 10:10   댓글달기 |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2-01-01 23:2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2-01-01 09:42   댓글달기 |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2-01-01 23:35   URL
비밀 댓글입니다.
 



아직 바람빛 냄새가 적당히 부풀어 과일 익는 냄새를 기분좋게 풍기는 오후였다. 그는 브루노 발터의 모차르트 음반을 듣고 있었다. 모차르트. 그는 모차르트가 남긴 음악을 좋아하면서도 그렇게 다가서려 하지 않았다. 모차르트의 실내악을 좋아하면서도, 그렇게 아찔한 프레이징과 간결하면서도 강렬한 에너지를 주는 음표들에 경탄해하면서도, 모차르트를 떠올리면 뭔가 물과 기름처럼 겉도는 느낌이었다. 그는 모차르트의 음악은 반짝거리며, 풍요롭고, 늘 즐거움이 가득찬. 외딴섬같이 그늘진 느낌이 들지 않아서..라고 생각하곤 했다. 
  






 



1,2,3번 음반에 실려 있는 컬럼비아 심포니 오케스트라와 브루노 발터가 함께한 1960년대 초 모차르트의 후기 교향곡들을 들으며 조용히 방안을 서성거리며, 가을 바람빛이 주는 풍성함에 조금은 취한 것 같았다. 온화한 성품이었다던 브루노 발터. 서성거리다가 의자에 앉아 마치 하나의 꼭지점을 향해 모여드는 빛처럼 들려오는 음악에 가끔 손을 모으곤 했다.  





 

 





잠시 눈을 감고 생각에 잠겼던 그는 발터가 들려주는 모차르트의 음악을 세상을 고요히 내려 놓는 새벽별 같다고 생각했다. 음악을 들으며 종이를 한 장 꺼내 모차르트의 석고상을 그리다 말고 해가 조용히 뒷걸음질을 치려 하는 찰나 연필을 놓고 길을 나섰다. 밖에서 들려오는 바람소리는 작아져 있었다. 수줍게 귀밑머리를 간지럽히는 느낌. 작았지만 넉넉함이 느껴지는 바람이었다. 향수냄새도 아닌, 조미료 냄새도 아닌, 어디서인지 모를 기분좋은 냄새는 쓸쓸해진 뱃속을 채우기에 충분했다. 그런 바람냄새를 느끼고 맡으며 걸었다. 

 



 

  

 

그는 누워 하늘을 보았다. 어느새 해가 저만치 물러가고 하늘은 그가 어릴적 그렇게 좋아하던 갈치 비늘빛으로 물들어 있었다. 아주 잠깐 동안 허락하는 그 하늘빛을 보니 하이얀 접시에 가지런히, 고요히 누워있던 갈치. 끝부분의 가시를 쫘악 벌려 발라내고 나서 입으로 가져가 오물거리는 그 어릴적의 장면이 생생히 되살아 나는 것 같았다.

"그렇게 헤집지 말고, 젓가락으로 이렇게 해봐"

어른, 형제들이 하는 말을 듣고 코흘리개 아이는 자기 맘대로 움직이지 않아 급기야 양손으로 젓가락을 쥐고, 집중해서 가시를 살살 벗기곤 했다. 그 순간만큼은 모든 것이 정지한 듯했고, 그렇게 뚝뚝 떨어지는 고깃살이 그렇게 신기할 수 없었다. 구월의 밤이 되기 전 잠깐 모습을 드러내는 그 하늘빛은 어른이 되어, 회사 근처 식당에서 먹는 두툼한 것이 아닌, 약간은 앙상하면서도 더 고소했던 어릴적의 그 갈치를 떠올리게 했다.  

 

시간의 . 어린 시절 기억의 문을 살짝 열어주고 있는 하늘빛을 바라보며 문태준의 시 하나를 떠올렸다. 익숙하지만, 익숙하다 여기는 한 점 바람같은 날들. 그 날들에서 뭔가 옆을 비켜서 있는 듯한 자신의 모습을 떠올리면서.  


 







어느 날 내가 이곳에서 가을강처럼

내 몸을 지나가는 빛들을 받아서 혹은 지나간 빛들을 받아서

가을강처럼 슬프게 내가 이곳에서 서 있게 될 줄이야

격렬함도 없이 그냥 서늘하기만 해서 자꾸 마음이 결리는 그런 가을강처럼

저물게 저물게 이곳에 허물어지는 빛으로 서 있게 될 줄이야

주름이 도닥도닥 맻힌 듯 졸망스러운 낯빛으로 어정거리게 될 줄이야



어느 날 내가 이곳에서 가을강처럼 _ p.106








자꾸 눈이 감겼다.

아릿한 바람에 스르륵하는 나뭇잎소리가 들렸다.

저 멀리서 연한 먹빛 구름이 보였다.

연한 흙먼지길 그 옆으로 난 조그만 개울가

조금 열린 문틈으로 뭔가를 보듯 그는 어디론가 빠지고 있었다.

한참이나 물오른 푸른빛을 털어내려 하는 풀이 등에 닿는 느낌이 아늑했다.

어디선가 아이들 목소리가 조금씩 들리기 시작했다.



"야 저 너머 산에 올라가보자. 내가 저기 산새 둥지를 아는데 거기가면 알도 가져올 수 있어"

목소리는 섞여 있었다. 목소리는 을 이루고 있었다. 조금 큰 아이, 작은 아이, 여자 아이, 남자 아이. 한데 묶여 소리가 이리저리 흐르다가, 잠시 정적이 흐르다가 다시 울렸다. 그는 이것이 꿈에서 들리는 것인지 아닌지 짐작하기 어려웠다. 저 멀리 아스라이 들리던 목소리를 따라가다 어느새 그는 그 목소리들이 흐르는 장면에 시선이 멈추었다.

냇가. 여닐곱쯤 되었을까. 짝을 이루는 아이들은 조그만 냇가를 건너고 있었다. 시냇물이 가로지르는 저 위, 이편에서 저편으로 넘어가는 길에는 징검다리가 놓여 있었는데 가운데에는 돌이 하나 빠져 있었다. 제법 몸동작이 빠른 아이들부터 그 길을 하나씩 건넜고 그들은 재빨리 둑 위로 올라갔다.

또래보다 작은 아이였다. 아마 저 너머 신이 나서 어디론가 향하는 아이의 동생인지도 모르겠다. 그 아이가 넘기엔 빈 공간이 커보였다. 그 아이는 벌써 사라지려는 아이들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어쩔줄 몰라하고 있었다. 다리를 쭉 뻗어보기도 하고, 구부려 손을 휘저어보기도 하고, 뒤로 돌아갈까.. 아주 짧은 시간이었지만 빠르게 멀어져 가는 목소리 속에서 그 아이가 주저하는 모습을 바라보는 시간은 꽤 길게 느껴졌다. 























누가

내 머리에 찍어 놓고 갔을까?

검은 새 발자국

내가 왜 여기 또 죽어 있을까?

흰 쌀밥 위에 흰 새 발자국

내가 다시 태어났을까? 나만 모르게



<시트콤 > P.102 


  

 


그는 아이의 애처로운 동작을 보다가 잠시 눈을 감았다. 늘. 다시 읽으면 부메랑같은 시와 음악을 머리속에서 떠올렸다. 잠깐의 시간이 흘러 주변은 조용해졌다. 똑딱 똑딱 .. 심장이 그렇게 울렸다. 다시 눈을 떠보니 그 아이는 사라지고 없었다. 그 조그만 아이는 과연 저 너머 새둥지로 쫒아 갔을까? 아니면 울면서 뒤돌아 집으로 갔을까? 피식 웃음이 나면서도 어딘지 모를 애처로움이 함께 했다. 그는 천천히 몸을 일으켜 그 냇가에 커다란 돌을 하나 놓았다. 그 아이가 다시 되돌아 그 돌을 밟을 수 있을까.

어느새 그가 좋아하는, 가을빛 어둠이 조용히 내렸다. 소리 없이 세상을 덮는 겨울의 눈 만큼이나 그가 좋아하는 어둠이었다. 고요히 세상의 색을 거두어, 평온하게 이불을 만드는 가을의 어둠. 몸 속으로 그 어둠이 스며들 때 파스칼 키냐르가 한 얘기를 떠올렸다. 그리고 브람스의 음악을.


 

 


 












 


페이르 니콜은 말했다. 과거는 일시 지나가는 것들이 엉겨 있는 허방, 바닥없는 심연이다. 미래는 우리가 스며들 수 없는 또 다른 심연이다. 하나가 계속해서 다른 하나로 흘러들어간다. 미래는 현재를 통해 과거로 흘러든다. 우리는 이 두 심연 사이에 놓여 있고, 우리는 그것을 느낀다. 왜냐하면 우리는 과거로 흘러드는 미래의 유입을 느끼기 때문이다. 이 느낌 때문에 현재가 심연 바로 위에 있는 것 같은 것이다.  



심연은 그리스어로 '바닥없음' 이라는 뜻으로, 아오리스트가 뜻하는 무한과 같다.  



시의 무한.  



더 구체적으로는 대양의 가장 깊은 곳, 태양 빛이 더 이상 닿지 않는 곳부터를 심연이라 부른다. 

 

<12장 > p.52-53

  

 

 

 

 

..




"저. 더 드릴까요?"

부드러우면서도 약간 높은 톤의 여자목소리가 들려왔다. 눈을 떠보니 광화문의 어느 조용한 카페였다. 그 이외에는 손님이 없었다. 진짜 한 잔을 더 주고 싶다는 것인지, 아니면 이제 그만 나가달라는 얘기인지 분간이 어려웠다.

"아. 아닙니다"

잠시 꿈결을 헤맸던 그는 가죽 노트와 읽다 만 책 한 권을 챙겨 나왔다. 일주일이 끝나는 밤. 징검다리같은 시간과 공간을 헤치면서.

일요일 일곱시. 삶의 빠진 부분에 놓아 두는 징검다리같은 시간과 공간에서 찰칵.


 

 

 







 
 
Bflat 2011-09-25 21:11   댓글달기 | URL
쓸쓸한 뱃속을 채우는 향기가 지대루네요!
사실 오늘 제 뱃속과 가슴속, 속이란 속은 어디 하나 공허하지 않은 데가 없어요.
위로 받고 갑니다, 바람결님^^

바람결 2011-09-26 20:43   URL

에구구.

하루하루가 공허한데, 그래도 이렇게 와서 또 흰 공간에 댓글 남겨주신 거, 답글 남기다 보면 또 뭔가가 채워지는 것 같고 그렇습니다.

좀 있으면 더 추워질 것 같은데요. 바닥이 더 떨어지지 않았으면 합니다. 비플랫님. 비플랫은 반음 내려서 왠지 조금 온도가 낮게 느껴집니다 ㅎ

메리포핀스 2011-09-26 10:03   댓글달기 | URL
ㅎㅎ 저는 지금도 생선 가시 바를 땐 젓가락 놓고 양 손 써요. 아, 노릇 노릇 자글 자글 두툼한 갈치구이 발라 먹고 싶네요.

바람결 2011-09-26 20:13   URL

그렇게 베어먹던 갈치는 그 어린 나이에, 시골에 살던 제가 먹어봤으리 만무하지만 샌드위치보다 맛있다 라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아 :) 양손. 왠지 메리포핀스님의 손과 입모양이 생각나서 또 웃습니다. 히히
제가 상상하건데, 메리포핀스님은 만일 뵌다면 제가 만나본 사람중에 제일 흥미로운 분이 아닐까 싶어집니다.

후후 가을엔 어떤 저녁반찬을 또 해 드실까나..

cyrus 2011-09-26 12:44   댓글달기 | URL
드뷔시라고 하면 저는 먼저 '목신의 오후에의 전주곡'이랑 '달빛' 이 먼저 떠오른답니다.
워낙에 유명한 곡인데다가 제가 제일 좋아하는 드뷔시의 곡이기도 하거든요.
바람결님이 들려주시는 미뉴엣도 멜로디가 좋아요. ^^

바람결 2011-09-26 20:11   URL

ㅎ 넵
cyrus님. 컴으로 들으시려나, 스맛폰으로 들으시려나. 궁금한데요. 전 이곡을 며칠전에 실제 연주로 들었답니다. 매번 피아노 반주에 첼로로만 듣다가, 두 대의 피아노로 연주하는 곡을 들으니 또 새롭고 새로운 느낌이 들더라고요.

하늘이 참 좋은데, 좀 있으면 중간고사 기간이겠죠? 전 제대하고 나서 시간이 참 빠르게 지나간다는 생각이 들었었는데, 어느새 졸업시즌이 다가와서 가을을 심하게 탄 기억이 납니다. 졸업생들한테 퍼진 무기력증까지 더해져서 잔디밭에서 맥주캔을 따던 장면이 떠오르네요. ㅎ

중간고사 준비 잘 하시고, 대구엔 미녀가 많다는데 .. 얼릉 cyrus 님의 데이트 장면이 담긴 페이퍼가 보고 싶습니다. 킄

하늘바람 2011-09-26 12:57   댓글달기 | URL
언제나 음악과 그림이 있는 님의 서재
덕분에 음악 들으며 커피 마셔요
감사합니다
어느 날 내가 이곳에서 가을강처럼 _ p.106
이 시가 참 좋네요

바람결 2011-09-26 20:06   URL

언제나 음악이 있는 세상. KBS 1fm ..
남기신 글을 읽다 보니, 라디오에서 흘러 나오는 어느 아나운서의 목소리 같습니다.

한달에 한 번 흔적 남길까 말까 한 서재에 이렇게 온기를 불어 주시니 제가 감사할 따름이지요 ㅎㅎ

하늘바람님 오늘 하루는 잘 보내셨을지. 궁금한데요. 밝고 건강한 날이 되었으면 합니다!! 그나저나 전 어제 커피를 진하게 두 잔 마셨더니, 오늘은 그냥 건너뛰고 싶어지네요 ㅎ

oren 2011-09-27 11:33   댓글달기 | URL
파스칼 키냐르의 책 속 글들이 자꾸만 궁금해 지네요. 저도 최근에 고대 로마의 철학자가 쓴 책을 읽다가 '심연'이라는 단어 앞에서 잠시 멈춰서 생각에 잠긴 적이 있는데, 바람결님께서 인용해 주신 대목을 읽어보니 뭔가 '징검다리' 같은 게 조금은 느껴지는 것 같아서 참 좋습니다. 그러고 보니 바람결님의 글 자체가 왠지 키냐르를 무척이나 닮았다는 생각도 듭니다.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 * *

심연

현재 있는 것도 새로 생기는 것도, 모두가 얼마나 빨리 없어지는가를 거듭 상기하라. 실체는 끊임없이 흘러가는 강물 같고, 사물의 활동은 끊임없이 변화하고 있으며, 여러 가지 원인은 끝없이 작용한다. 세상에는 멈추는 것이 없다. 그리고 그대에게 가까이 있는 것을, 만물이 그 속에 소실되는 과거와 미래의 이 끝없는 심연을 생각할 일이다.

바람결 2011-09-27 21:23   URL

Oren님 안녕하세요.
하루하루가 돌림노래같이 흘러가는것만 같고, 자꾸만 뭔가가 몸에서 빠져나가는 것 같고 그렇더라고요. 나이가 들어갈수록 자꾸 주저하게 되고,,

징검다리같은 책과 음악이 있어서 다행입니다.

등을 두드려주고, 머리를 쓰다듬어 주는.

그리고 남겨주신 *** 아래 부분은 어느 책의 한 구절이겠지요. 좀 소리내어서 다시 읽어보는데요. 어느 로마 개선장군의 귓가에, 누군가 계속 속삭이는 구절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앞으로 나아가라 하는 것 같기도 하고, 뒤로 물러서라 하는 합니다.

그나저나 종종 남기시는 oren님의 사진은 참 감탄스럽습니다 :)

2011-09-29 00:09   댓글달기 |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10-02 17:03   URL
비밀 댓글입니다.
 





 



그는 외딴섬 같았다. 넓은 건물 내부에서 모여 있는 사람들 사이로 떨어져 있었다. 마치 일부러 저 멀리 떨어뜨려 놓은 돌처럼, 조용히. 조금 어색한 모습을 하며 어딘가를 보는 중이었다. 그가 무엇을 보는지는 알아차리기 힘들었는데, 초점 없는 눈빛 때문이었다. 그런 눈빛으로 주위를 두리번거리기도 하고, 높은 천장을 한동안 바라보기도 했다. 그는 약간 비현실적인 사람으로 보였다.

"여기 종이에 밑줄로 표시한 부분 채워서 18일에 오시면 됩니다. 슬리퍼, 비누, 치약과 칫솔 등을 챙겨 2시에서 4시에 오시면 안내해 드릴 거고요."

아직은 더운 날씨였다. 어둡지도 밝지도 않은, 채도가 낮은 옷을 입은 그는 조금씩 증발해가는 사람처럼 보였다. 마치 그 공간에서 곧바로 사라지기라도 할 것처럼 몸을 움직였다. 20cm 앞의 남자에게 설명을 듣고 있는 동안 아주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기만 했다. 어쩌면 그는 몇달 전에 같은 내용을 들었을 터라 건성으로 듣고 있는지도.

"네"

그는 짧게 대답을 마치고, 잠깐 어딘가에 전화를 걸어 무어라 얘길 하더니 건물 밖 햇빛 속으로 사라졌다. 잡았다가 물에 바로 놓아준 물고기처럼.





  

 

지난 봄, 며칠 동안 어딘가에서 일주일을 보낸 기억을 떠올려 보았다. 머리가 아프고, 속은 부대끼고, 눈이 꽤나 침침한 상태에서 신경을 많이 써야 하는 책을 읽느라 힘들어지면 미셀 푸코가 예를 든 그 구조를 생각하며 배회하곤 했다. 오전 7시에 일어나 밥과 약을 먹고, 괜찮은지 아닌지 나로서는 파악하기 힘든 상태를 누군가에게 얘기하고.. 지하에서 지상까지 엘리베이터를 타고 많은 사람들을 구경하고, 일기를 쓰고 잠이 들었다. 모 두다 똑같은 옷에, 비슷하게 맞춰 일어나는 일들, 약간은 비현실적으로 느껴지는 창 너머의 공간 속에 있다보면 마치 내 몸이 점점 얇아지는 것 같았다. 또는 조금씩 녹아, 흘러 내리는 것 같기도 했다.

나의 인적사항이며, 보호자 동의사항을 적어오라는 종이와 함께 빈 종이 하나를 펼졌다. 가져갈 것들의 목록을 적었다. 물건들을 적어 두고 하나씩 뺐다. 후보에 오른 책들, 노트북, DVD, 스케치북, 일기장을 바닥에 늘어놓고 최종 후보를 정하고 캐리어와 가방에 넣었다.  

  

 

 

 

* * *   

 

그는 블랙과 화이트, 그 경계가 뚜렸한 사람이었다. 어떤 것을 결정할 때 시간과 노력을 들여 결정했고, 일단 결정하면 그 이후엔 더 이상의 고민을 하지 않았다. 명도 단계의 0과 10처럼, 손바닥 뒤집듯이 어떤 선택을 하는 경우도 많았다.

"고객님, ***입니다. 어제 접수해주신 내용 확인해서 전화드렸습니다. 오늘 휴대폰 발송해 드릴거고요, 12일에 잠깐 통화가 되지 않게 될 수 있으니 이점 확인 부탁 드립니다."

회사 동료들과 함께 하는 점심시간에 다들 손에 휴대폰을 들고 무엇인가를 하는 통에 멀뚱히 어딘가를 쳐다 보고 있어도, 전철에 가득 찬 사람들이 무엇에 골몰히 빠져 있는 모습에도 무신경이었던 그는 결정을 내렸다. 며칠 동안 인터넷 검색을 통해 좋은 조건과 편리한 방법을 찾아냈고, 결국 스마트폰으로 교체를 하게 되었다. 그는 가끔 바닷가 조개 무더기에서 가끔 유별나게 알아 볼 수 있는, 이상한 물체같은 사람이었다.

"거기서 좀 심심할 것 같아서요."

왜 바꾸었냐는 주위 사람들의 물음에 그는 짧게 답할 뿐이었다.
  
 

분명 책과 음악만으로는 채울 수 없는 부분이 있었다. 나름 고민해서 책을 선별해 놓고, 트윈픽스 DVD, 음반 몇 장을 골라 놓았지만 어딘가 허전했다. 세상 돌아가는 얘기, 사는 얘기, 책 얘기.. 이미 이야기와 화자에 중독되어 치유할 수 없는 상태였다. 그 조각이 없는 지난 봄의 시간이 떠올랐다. 만가지의 표정이 담긴 소식들을 접할 수 없는 그 공간은 어딘지 외딴섬 같았다. 무언가 짝이 맞지 않는 것 같았다. 로비에 있는 동전을 넣고 하는 컴퓨터는 틈이 있는 것처럼 내용이 쏙쏙 들어오지 않았다.

이런 까닭으로, 2년이 지난 휴대폰을 뒷면에 사과가 그려진 스마트폰으로 바꾸게 되었다.

 

   

스마트폰에 음반을 리핑해 넣었다. 하나 둘씩 서둘러 켜지는 건물의 불빛을 보며 음악을 들었다. 목소리를 들었다. 구름이 살짝 끼어 있는 하늘에 곳에 따라 비, 깜깜해질 무렵 노을엔 속아도 꿈결, 화장기 없는 어느 여인의 투명한 웃음소리가 조용히 들릴땐 취미는 사랑, 스마트폰으로 메일을 보며 앞으로 회사로 돌아가 해야 할일을 생각할 땐 가을방학을.  

 

 





가을은 정리함.

펼쳐두었던 책, 크게 틀어 두었던 음악, 널어두었던 생각들, 부풀어 올랐던 마음을

가지런히 담아 차곡차곡 정리해두는 계절, 투명히 빛나는 넉넉한 정리함 속에 펼쳐지는.



가을은 부채꼴.

사물의 외형이, 사람들의 웃음소리가, 투명하지만 뚜렷한 경계속에서

넓고 연하게 펼쳐지는 계절. 나의 또렷한 중심점을 거쳐 아래로 비스듬히 내려가는.



가을은 내리막.

지나가던 빛이, 방안에 켜지는 불빛이, 아주 느린 속도로 서둘러 자리하고

사람들 걸음이 점점 낮아지는 계절, 천천히 낮아져 사라지는 내리막.




  

 

  

 

  




가을방학의 음반 다음으로는 하이페리언에서 주로 녹음을 남기고 있는 첼리스트 알반 게르하르트의 신보. Casals Encores 라는 제목으로 컴필레이션 음반이다. 내지를 읽어보면 그는 위대한 첼리스트, 파블로 카잘스의 음반에서 소품을 골라 녹음을 한 것으로 보인다. 스무곡을 담고 있는데 알찬 구성에 녹음도 좋다. 다비드 포퍼(David Popper), 에드워드 멕도웰(Edward Macdowell)과 같이 흔히 듣기 어려운 작곡가들의 곡들과 쇼팽 녹턴(Op.9 no.2), 엘가 사랑의 인사, 포레 꿈꾼 후에 등의 유명 소품들이 섞여 있다. 낭만주의 작곡가들의 작품이 대부분이며, 듣기에 편안하다. 찬바람 불기 시작하는 밤에 듣거나, 저 멀리 조금 쓸쓸하게 불이 켜지는 건물의 모습을 보며 듣기에 좋은 음악들.

가을엔 이 수줍은 브람스가 그토록 조심스럽게 쓴 작품을 듣지 않을 수 없다. 아직 따가움이 살아 있는 낮의 햇볕을 맞을 때는 1번(4악장)을, 아주 조금씩 옐로우 섞인 색으로 변해가는 듯한 나뭇잎을 볼 때는 2번(1악장)을, 하나 둘씩 두툼한 옷을 꺼내 입게 만드는 이른 아침의 공기를 생각할 때는 3번을(3악장), 재를 남기고 어딘지 모를 비장함마저 느끼게 하며 사라지는 것 같은 11월의 하늘이 떠오를 때는 4번(1,4악장)을 찾게 된다. 이 고집센 양반이 들려주는 브람스는 우회도로 따위는 생각하지도 않는다. 단단함이 마치 주먹을 꼭 쥐게 하는 것 같아 흐트러진 마음이 한 점으로 모이는 것 같다. 
 

 




  



그리고 여름 내내 듣지 않고 기다렸던 음악을 한 곡 들어야 한다. 기분 좋은 발걸음으로 걷는 내리막길, 가을이 되며는.  신체의 어느 부분이 짝을 이루기 전에 들었던 마지막 실제 연주.  









* * *





 





마치 여행지에 온 사람 같았다. 캐리어와 양쪽으로 매는 가방에서 물건들을 꺼냈다. 조금 빠른 속도로 책을 열 권쯤 책상 옆에 쌓아 두고, 스케치북과 펜을 꺼내 옆에 두었다. 두꺼운 책과 얇은 책이 섞여 있었고, 그가 하나 둘씩 모아 두었던 펜을 모은 함도 있었다. 그는 꼭 어디에서 피난을 온 것처럼 그렇게 자리에 앉아 자기가 가져온 것들을 천천히 둘러보기 시작했다.

"한번 해 보셔서 잘 아시네요" 

유난히 얼굴이 희고, 단아한 느낌을 주는 목소리를 지닌 여자였다.종이에 뭔가를 받아 적고 있는 그에게 물었다. 긴 생머리를 질끈 묶었음에도 타고난 미인형의 얼굴은 숨겨지지 않았다. 오히려 더 밝게 빛나 마지막 손질을 기다리는 보석같았다. 열심히 삶을 살아가는 얼굴에서 볼 수 있는 얼굴. 그러나 저 바닥까지 떨어지는 어둠을 느끼지 않고 살아왔다는 밝은 모습이, 그의 모습과는 대조적으로 보였다.

"네. 이 부분은 칸이 작아 적기가 힘이 드네요"

그녀는 살짝 웃었다. 그가 일주일동안 그녀에게 전한 말은 이 짦은 문장 뿐이었다.











손가는 대로 책을 펼쳤다.

파스칼 키냐르. 그의 얘기는 늘 현실 저편으로 나를 데려간다. 잊혀진 세계, 잃어버린 말, 잊혀진 생각들. 그가 풀어 놓는 글은 운율이 담겨있다. 파스칼 키냐르가 어릴적 여러 악기를 배운 배경 탓일까, 시가 가진 운율과는 다른 음의 높낮이와 빠르기, 쉼표가 있다. 끊임없이 등장하는 사람들, 얘기들, 의미들은 그의 손 끝에서 생겨나는 모래구덩이속으로 나를 밀어 넣는다.

책의 뒷 부분에 나오는 아래 부분은 아예 1장에 나와도 좋을 것 같았다.


   
  제89장

열아홉 살 때부터, 내가 쓴 첫번째 책이자 모리스 세브에 관한 책 이후로, 줄곧 내가 원하는 바는 무시당한, 난해한, 매혹적인, 까다로운, 고집 센, 훌륭한 인물들을 유령의 세계에서 귀환시키는 일이었다. 세브, 리코프론, 알부키우스, 라비에누스 다마스키오스, 기 르페브르, 니콜, 라캉, 엘로, 라이시오스, 동 데샹, 아버지 세네카, 하데비치. 이들에게 바치는 책을 한 권 쓸 때마다, 나는 역사의 파렴치함을 조금이나마 지우고, 오류를 바로잡고, 방향을 멈추게 하고, 역사의 운명인 중상모략과 내숭 떨기, 평온, 가시 돋친 콧노래, 두려움에 소리죽여 내는 떨리는 탄식으로부터 언어를 끌어낸다는 확신이 들었다.
시간의 한복판에서 솟구치는 불가사의한 원천은 끓어오르는 과거에 끊임없이 새로운 얼굴을 부여한다.
 
   




















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대조

물론 사물을 강조하는 최고의 방법은 대조이다. 노동을 한 후에야 진정한 휴식을 즐길 수 있다. 침묵을 뚫고 나온 소리만이 분명히 들리고, 어둠에서 빛이, 빛에서 어둠이 또렷이 부각될 수 있다. 모든 색상에는 보색이 있다. 보색끼리 나란히 두면 다른 색을 옆에 둘 때보다 각각의 색상이 훨씬 부각된다. 형태와 선에서도 마찬가지다. 반대되는 형태나 선이 공존할 경우 서로 돋보이게 된다. 곡선은 직선에 의해, 복잡한 형태는 단순한 형태로 부각될 수밖에 없다. 이 작업이 제대로만 이뤄진다면 색과 형태의 조화에서 서로 어울리지 않는 것들이 대조를 이루면서 가치가 더해질 수 있다.

p.280

 
   

존 러스킨은 말한다. 끈질기게 탐구하고 관찰하라. 어리석은 것을 모방하지 마라. 쓸데 없는 기교를 부리지 마라. 만일 소묘를 배우는 중, 고등학생. 또는 그것을 가르쳐야 하는 교사가 이 책으로 "기교"상으로 뭔가 도움을 얻기는 어려울 것 같다. 인터넷에 떠도는 멋진 소묘나 수채화를 생각하며 이 책을 선택한다면 스테이크를 주문했는데 야채샐러드나 나오는 것처럼 당혹스러울 것이다. 그런 것이라면 미술학원에 가서 그냥 말없이 두 세 시간 그림을 그리다 오는 편이 시간을 절약하는 길일 것이다. (옮긴이도 책의 마지막에 밝힌 것처럼) "산업혁명과 빅토리아리즘의 절정기에 완성된 <존 러스킨의 드로잉>은 우리가 흔히 접하는 예쁘고 보기 좋은 그림을 위한 테크닉북이 아니다."

수채화, 유화, 소묘를 능숙히 그려내는 어느 화가. 어딘가에서 그림에 미쳐 식음을 전폐하고 있을 미술대생. 국내에서는 더 이상 답을 구할길 없어 외국길을 떠나는 유학생. 존 러스킨의 그림철학에 대해 논문을 준비하고 있는 대학원생. 예상컨데 이런 사람들이라면 읽으면서 꽤 즐거움을 얻게 될 것 같다.

내가 보기에 그 유명한 존 러스킨의 책은, 요약하자면 관찰에 관한 것이다. 끈질기에 탐구하고, 보고, 재현하고, 비교하고, 다시 수정하고. 누구나 초고화질의 사진을 찍을 수 있는 이 시대에 잠시 눈을 떠 자연을 보고, 거기서 무언가를 찾는 기쁨을 아는 사람이라면 조용히 음미하며 읽을만하지 않을까.



  

 



요즘에는 미국 아마존의 수많은 그림을 담은 책들을 국내에서도 그리 어렵지 않게 구할 수 있다. 다른 분야에서도 그렇겠지만 음악이나 미술분야의 책들이 국내에 나오는 속도나 다양성은 정말 아쉽다. 외서들을 접하다 보면 정말 다양하고, 다채로운 표현들을 만나게 된다. 다양한 재료의 탐구, 자기만의 스타일이 묻어나오는 그림들, 사물을 표현하는 새로운 방식들.

보고 있다 보면 머리속이 시원해지는 느낌이다. 투시가 좀 맞지 않으면 어떤가. 선이 좀 틀리면 어떤가. 가끔 글쎄 이건.. 하는 경우도 있지만 중요한 건 사물을 보고, 생각하고, 표현해보는 것 아니겠는가. 

 





노트북에 트윈픽스를 담았다. 새와 기계가 돌아가는 모습, 그리고 잊혀지지 않는 음악이 흐르는 오프닝. 다시 보다 보면 데이빗 린치가 때로 포커스로 잡는 사물들이 보이기도 하고, 그가 보여주는 방식에 대해 다른 생각을 하기도 한다.


   
  "잠깐, 벽은 빨갛지만 딱딱해선 안 돼."

그러고서 좀 더 생각한다.

"커튼도 있어야겠지. 커튼은 불투명하면 안 되고 반투명인 게 좋겠어."

그래서 커튼을 설치한다.

"그러면 바닥에도 뭔가 필요할 것 같은데."

p.97 <빨간방>
 
   


트윈픽스에 나오는 빨간방. 린치는 마치 원래 그 자리에 의도했다는 듯이 빨간방의 아이디어를 넣었고, 작품의 진행이나 기묘한 느낌에 매우 효과적인 인상을 주었다는 생각이다. 이 드라마를 다시 보면서 이 책이 더 많은 도움이 되지 못했다는 느낌에 아쉽기도 하지만 데이빗 린치가 가지고 있는 생각들의 배경을 좀 더 안다는 면에서는 나름 성과가 있었다. 좀 작은 판형에 저렴한 가격으로 내어도 좋을만한 책. 
 

 

 

 

 

 

 * * *  

 

그는 그림자속에 사는 사람 같았다. 주위가 조용해지면 어디론가 사라졌다. 작은 가죽 표지를 한 노트와 물 한병, 펜 하나를 지니고 무신경한듯 초첨없는 눈으로. 일부러 손이 닿지 않는 외딴섬처럼 육지로부터 멀어지려는 느낌이 들었다. 그는 줄이 그어진 일기장을 좋아했다. 그러면서도 그어진 줄과는 무관하게 대충 아무렇게나 자기도 못 알아볼만한 글로 뭔가를 적어 넣곤 했다. 휘갈기고 있다는 표현이 더 정확할지도 모르겠다.

" ***님 *층으로 지금 오시기 바랍니다 " 

며칠 동안구석구석, 어둠과 외딴섬이 자리한 곳으로 자주 사라지다 보니 전화기 너머로 이런 말을 자주 들었다.  

" 이제 다 되었나요?"

 

  

 







 

 

태내적 귀  

 

귀를 비운다 

그가 너의 아이였을 때 선인장 같은 아이였을 때 

너의 흐린 머리카락을 듣고 

몸 안의 사막을 듣고 

너를 듣는다는 걸 잊은 듯이 

귀에 남는 음을 느리게 느리게 


귀에 두고 온 음들 

그가 너의 아이였을 때 선인장 같은 아이였을 때 

양초가 들리니 양초를 켠다 

화분이 들리니 물을 준다 

식물이 흐를 수 있는 저음으로 

가지 끝에서 떨리는 음들 


내일로부터 모레로부터 오지 못한 

그것이 내일이 되고 모레가 되고 

들리지 않는 꿈처럼 

귀 안으로 사막을 옮기는 


무음의 그림자 


귀를 비우면 네가 들릴까 

들어 본 적 없는 태내에서 귀를 자르는 

내일의  

신생의  

레퀴엠 


진공의 비처럼  

흐르지 못하는 귀를 돌고 있는 

그가 너의 아이였을 때 선인장 같은 아이였을 때 


자신의 레퀴엠을 듣는 

그의 시간이 너에게 울려 ...... 있어  






 

자작나무가 심어져 있는 길을 걷곤 했다. 

지워져버린 다섯 시간의 기억을 떠올리곤 했다.  

틈이 벌어져 생겨 짝이 되어버린 어떤 것에 대해 생각하곤 했다.  

외딴섬에서 시를 읽으며 찰칵하는 순간을 어딘가에 적곤 했다.



 






 
 
2011-08-26 21:08   댓글달기 |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8-26 22:58   URL
비밀 댓글입니다.

꿈꾸는섬 2011-08-26 21:41   댓글달기 | URL
바람결님 글을 읽다가 병원에 입원해서 수술을 받으신건가 하는 생각을 했어요. 어디 아프신거에요? 그림도 자세히 보니 병원의 풍경이네요. 알라딘에 돌아오셨으니 괜찮아지신거라고 생각해도 되는거죠?

바람결 2011-08-26 22:55   URL

꿈섬님. 덕분에 잘 다녀왔습니다.

이제야 틈을 메우고 짝을 맞추게 되었네요~ 그리 기분 좋은 일은 아니지만 암튼 걱정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나저나 폰으로 페이퍼 좀 챙겨 봤는데 꿈섬님도 이래저래 고민이 많으실텐데 좀 괜찮으신지..

꿈섬님은 마음이, 저는 몸이 좀 얼른 나아졌음 합니다. 마침 기분 좋은 가을 바람도 부는데, 그렇게 홧팅을 외쳐볼께요 ㅎ

blanca 2011-08-26 21:57   댓글달기 | URL
이제 퇴원하신 건가요? 알라딘에 돌아오신 것을 보니 안심이 되네요. 파스칼 키냐르! 우아, 신기해요. 제가 어제 장바구니에 넣었다 뺀 책인데요^^ 다음을 기약하면서요. 드디어 사과폰 유저가 되신 건가요. 요새는 마주보고 얘기하는 대신 만나서 또 각자 스마트폰을 만지작거리며 자신의 세계에 빠져드는 걸 쉽게 용인받는 분위기로 가는 것 같아요. 바람결님 정도면 클래식 음악 관련 어플을 하나 만드실 수도 있을 것 같아요.

바람결 2011-08-26 23:05   URL
많이 걱정해주신 blanca님 덕분에 무사 귀환했습니다. 눈 뜨고 나서는 아이폰 만지작거리고, 책 들춰보고, 낙서 몇 장 하다보니 시간 금방 가더라고요 ㅎ
사과폰 손에 들고 틈나는 대로 서재글도 좀 보고, 담아간 어플 이것 저것 해보고 하니 예상보다 덜 심심했습니다.

파스칼 키냐르의 책은 음.. 세번째인가 네번째로 만나는데 <섹스와 공포> 이후로 꽤나 오랜만에 손에 들었습니다. 실은 이 책이 나온지도 몰랐는데 왠지 그 백색공간에서 읽기에는 키냐르의 책이 좋겠다 싶어 검색을 하게 되었습니다. 번역하신 분 좀 애먹지 않았을까 싶더라고요. ㅎ 이 책이랑 프레이저의 황금가지도 챙겨갔는데 둘이 짝을 이루는 것이, 근사한 다큐를 보는 것 같아서 좋았습니다. 황금가지에서는 장면이 키냐르의 책에서는 나레이션이..ㅎ

스맛폰 사면 오락만 할 줄 알았는데 예상을 조금 빗겨나 또 나름의 그 세계에서는 화면 보고 할일이 생기는 것 같았습니다. 심심할 틈이 없다는 건 좋은건지 아닌지 아직은 좀 의문스럽지만요.

이제 여름이 문지방에서 아쉽게 뒤를 돌아보고 있는데요. 여름에 힘들어하시는 blanca님은 얼른 여름을 떠나 보내고 싶어하시겠지요? ㅎ 나날이 예뻐져갈 분홍공주님과 아침 저녁으로 솔솔 부는 가을바람을 맞으며 즐거운 시간 보내셨음 합니다 :D

인디언소년과나비 2011-08-26 22:06   댓글달기 | URL
저는 지금 아이패드로 댓글달아요~다른 사람 페이퍼라면 그냥 읽고 나갔을텐데 바람결님 페이퍼라 이렇게 수고를자청해서 이 짓입니다~ㅋ 제 애정이 느껴 지시나요?사실 목이 갑자기 아파서 누워있어요. 누워 있으려니 노트북은 그렇지만 아이패드는 좋네오~ㅎㅎㅎ
이제는 집에 오신거야요? 돌아오시자마자 키냐르의 책을언급하시다니,,,제 마음이 다 몰캉몰캉 해지많아요~ 글고 알반 게르하르트의 앨범은 들어보고 싶어요.>.<
암튼 무지 웰컴이고,,,,음 좋아요~:D

바람결 2011-08-26 23:06   URL
흿 나빗님 ㅎ

그럼 이 댓글도 아이패드로 확인하시려나요~ 그냥 나가시지 않고 수고를 거쳐 댓글을 달아주시다니.. 흙.. 눈물이^^

이런 목이 아프시다니 좀 걱정입니다. 심하게 안좋으신 걸까요? 너무 무리해서 뭔가를 하셔서 그런 것일지도 모르니 선선한 바람도 부는데 푹 쉬셨음 합니다. 음. 이제 집에 돌아와 음악 듣고, 어딘가에 적어 두었던 낙서를 컴퓨터에 옮겨 놓고 있습니다. 아직 덜 소화한 책 빼고, 좀 소화한 것 같은 책들. 무료한 시간이 빨리 흐르게 도와준 음반들 좀 정리하게 되었습니다. 쿳

참참!! 저기 그림들 잘 뚫어져라 보시면 NABEE 라는 글자가 보이실 거여요. 제가 즐찾해둔 몇몇 서재인님들의 닉네임을 그림속에 숨겨 두었습니다. 스맛폰으로 서재글 보면서 나중에 댓글 달아야지.. 하고 생각하던 분들이욥. ㅎ

오늘도 약 먹고 좀 집중이 안되어서 이것 저것 좀 정신은 없는데 이렇게 반겨주시니 저도 좋습니다 ~:D 아 그러고보니 나비님, (사진이) 나비님이 되셨네요 +_+

hnine 2011-08-26 23:07   댓글달기 | URL
에구, 어서 와요. 병원 생활 하느라 수고 많았어요 (토닥토닥). 집에서 편하게 음악도 듣고 책도 읽고 그러세요. 나 오늘 저 음악 들으면서 뭔가 쓰고 읽고 하려고 해요 ^^ 더 길게 뭐라고 주절주절 쓰려고 했는데, 찬찬히 다 읽고 나니 그저 토닥토닥 해주고 싶은 마음 뿐이네요 ^^

바람결 2011-08-26 23:39   URL
hnine님 많은 말 안하셔도 왠지 알 것 같습니다.

어쩌면 제가 넘겨 짚고 있는 것일지도 모르겠지만요.. 맨 처음으로 제 서재에 댓글을 달아주셨으니, 가장 오랫동안 같이 뭔가를 얘기한 분이 되실텐데 짧은 얘기속에도 많은 내용들이 보이는 듯 싶습니다.

지금은 한달에 한 번, 짧게 들려 뭔가 얘기하고, 즐찾해 둔 분들 들려 안부 전하고.. 그러고 있지만 언제나 이렇게 힘이 되는 얘기, 글 남겨주셔서 감사합니다.

서울시향과 어느 외국인 지휘자의 연주로 이 곡을 입원하기 전 마지막으로 들었습니다. 어떤 의미에서 마지막이다 라고 생각하면서 들었더니 조금 더 울적하기도 하고 그랬던 기억이 납니다. hnine님께는 조금 더 밝고 청량한 느낌으로 다가갔으면 하는 바람이 있습니다 ^^

cyrus 2011-08-27 00:04   댓글달기 | URL
글 읽다가 중간에 미셸 푸코가 나와서 급반가운 느낌이 들었어요.
요즘 읽고 있는게 푸코거든요. ^^

이번에 나온 러스킨의 책은 어떤가요? 제목만 보면 드로잉 교재로
오해할 수 있을법한데..^^;; 어떤 내용인지 궁금하네요.

요즘 날씨가 참으로 이상해요. 작년 이맘때 같았으면 대구는 더웠거든요.
요 며철동안은 가을 날씨마냥 선선하네요. 게다가 내일은 또 비가 온다네요.
여름이 너무 일찍 지나가는거 같아서 아쉽게 느껴집니다.


바람결 2011-08-27 13:07   URL
넵 cyrus님.

안그래도 어제 제도 좀 반가워서 미셀 푸코에 관해 적어 놓으신 페이퍼에 댓글을 남겼었죠. ㅎ 자꾸 병원, 학교에 가면 미셀 푸코가 생각나는 걸 보면 어릴적에 그가 남긴 인상이 꽤 컸던 것 같습니다. 읽은 책은 <광기의 역사> 뿐이지만요.

그리고 러스킨의 드로잉.. 제목과 표지만 보면 러스킨의 드로잉이 잔뜩 있을(아마 저만 그렇게 생각했을 수 있습니다만..)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긴 하는데 그림은 거의 없다고 보시는 편이 나을 것 같아요. 화가가 화가에게 하는 조언, 또는 미술대학의 수업같은 느낌이어요. 저로서는 위 페이퍼에 적어 놓은 얘기 이외에는 더 할말이 없을 것 같은데, 소묘, 유화, 수채화등의 회화에 대한 학문적인 내용으로 다가오는 책입니다. 덧하자면 소묘에 대한 일반적인 접근은 최근 나온 책 가운데 <지금 시작하는 드로잉>이 괜찮다는 생각입니다.

흠. 비가 너무 많이 오셨던 여름이라 바로 찾아온 가을.. 이건 보너스 탄 기분 같기도 하고 그렇습니다. 어느새 여름이 훌쩍 지나가 버렸네요. 이미 하셨을지도 모르겠지만 개강하고 또 바쁘시겠죠? 2학기 멋진 성적표를 기대하고 있겠습니다. ^^

2011-08-27 01:10   댓글달기 |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8-27 12:5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8-27 02:20   댓글달기 |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8-27 11:4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8-27 06:19   댓글달기 |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8-27 11:3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8-27 09: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