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펭귄브라더스 1
시이나 아유미 지음 / 대원씨아이(만화) / 2001년 7월
평점 :
품절
처음에는 제목이 너무 유치한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다. 모 잡지의 스폐셜 코믹스로 출간된 만화인데, 그 잡지가 나의 매니악한 친구들 사이에선 한 때 유치함의 대명사로 악명을 떨쳤기 때문이다. 한 때 소문을 뿌렸던 잡지의 스폐셜 코믹스. 게다가 의미 불명의 유치한 제목. 처음에는 죽어도 안 볼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사람 일이라는 것이 그렇게 쉬운 것이 아니었다. 하루에 열시간씩 몇날 며칠을 책방에 앉아 일을 하다 보면, 자연히 섭렵되어지는 책이 늘어나는 것이고, 이미 왠만한 다수의 만화책을 섭렵한 나였기에 결국엔 차례 차레 꽂혀진 순서대로 정복하게 되고 말았던 것이다. 다섯권 완결의 가뿐함을 위로삼으로 다 읽은 지금, 때로는 제목이 모든걸 다 말해주는게 아니라는 것이다.
의미불명의 제목인 '펭귄 브라더스'. 하지만 1권의 첫장을 넘기면서 나는 그 의미를 이해할 수 있었다. 새이지만 날지 못하는 펭귄. 세명의 남자 주인공은 스스로를 펭귄이라 했다. 그리고, 여자주인공에게 '너를 만나서 우리는 날 수 있었다'고 했다. 이 정도라면, 이 말 자체가 만화의 전체적인 복선에 해당한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어느정도 만화를 접해본 사람이라면 이 복선 만으로 전체 이야기를 짜맞출 수 있을 것이다.
세명의 남자가 한 명의 여자를 좋아해서 이렇게 저렇게 얽히고 설키는 것이 나니냐 하는 것이다. 나도 처음에는 그럴 거라고 생각했다. 결국은 혈기 왕성한 어린 것들의 사라놀음이겠거니 했는데, 내가 생각한 것 보다는 훨씬 괜찮은 스토리로 풀려나가고 있었다.
당찬 여주인공 히나. 전학을 온 학교는 두 패로 갈라져 있었고, 그 두패 중 어느 한곳에도 끼지 않은 소수의 아이들이 존재했다. 두 패의 우두머리 잇시키와 니시자키. 그리고 소수의 사람에 속하며 히나의 조력자가 되는 테츠타. 한 명의 여자와 세명의 남자가 이미 다 출연한 것이다. 뭐든지 숨기고 함정을 만들고, 게다가 결정적인 순간의 피바다를 좋아하는 나에게 있어서는 너무 빠른 등장이다 싶지만, 뭐 이것도 나름대로 귀엽게 봐주기로 했다.
탐미주의자인 나는, 귀여운 캐릭터에게는 모든 것을 용서하기 때문이다. 세 녀석이 튀어나왔지만, 모두다 히나에게 사랑을 품는 것은 아니다. 잇시키와 니시자키는 앙숙으로 보이지만 그 안에는 좀 더 세세한 사정들이 숨어있고, 잇시키가 히나에게 느끼는 감정은 사춘기 소년의 풋풋한 사랑과는 조금 다른 더 깊고 복잡한 그런 것이다. 영원한 단짝인 테츠타와 히나이지만, 테츠타에게 있어 히나는 언젠가는 쌍방향 통행이 되었으면 하고 바라는 대상이기도 하다.
물론! 니시자키와 히나는 유쾌한 관계일 뿐이다. 나름대로 이 점이 마음에 든달까? 주인공을 죄다 엮으려 하지 않았다는 것이 좋았다. 순정 만화는, 특히나 일본의 순정만화 중 상당수의 것들이 '연애 지상주의'를 펼치기 때문에, 가끔은 그렇지 않은 것이 더 새롭고 즐겁기 때문이다. 개혁을 필요로 하는 고등학교를 배경으로, 귀엽고 활기찬, 그러나 각각의 문제를 끌어안고 있는 캐릭터들이 등장하여 이야기를 이끌어 나간다.
발랄하고 아기자기한 기분. 스토리를 단조롭게 만들지 않기 위해 작가 나름대로 반전을 준비하는 등 공을 들인 흔적을 찾아 볼 수 있는 것도 기분 좋았다. 상쾌한 여운을 남겨주는 엔딩도 그정도면 고득점 감이었다. 유치하면서도 제법 괜찮았던, 그런 만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