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심히 최선을 다해 노련하지 않겠습니다"라는 선언이야말로 적극적 부정의 한 예이다. 사랑과 정의를 부정하겠다는 선언은 노련미에서 나오지 않는다. 그것은 오르막길에서 휠체어를 1.8초에 한 번씩 밀기 위해 0.4초를 버티지 않는, 이를테면 손을 놔버리는 행위다. 열심히 최선을 다해 요새 안에 들어앉아 있는 나의 자아를 배신하는 실천이다. 능청스럽고, 유머러스하고, 지적이고, 신체적 결함을 보완하는 정신적 매력으로 가득 차 있어야 한다는 압박. 사무실의 생수통을 갈지 못하는 대신 인사성 바르고 동료들의 생일이라도 잘 챙겨주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심적 부담감. 이 모든 것을 놓아버리는 일이다.
-알라딘 eBook <실격당한 자들을 위한 변론> (김원영 지음) 중에서
질병과 장애에는 각각의 역사가 있고, 그 역사는 질병과 장애를 안은 채 지금 이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 속에서 다시 해석되고 기록된다. 며칠 아팠다가 낫는 감기나 한 달 정도 입원했다 치료를 받고 끝나는 일시적인 질병은 우리가 잠시 휴식을 취하는 계기가 되고, 몸에 대해 한번쯤 생각해보는 기회가 될 뿐이다. 하지만 만성적인 질병, 늘 약을 먹어야 하고, 할 수 있는 일이 제한되고, 때로는 빨리 죽음에 이를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속에서 살아야 하는 질병이나 우발적인 사고로 갖게 된 ‘장애’라는 몸 상태는 한 사람에게 고유한 이야기narrative가 된다. 내 몸이 가진 이 속성, 흔적, 경험으로 우리는 어떤 이야기를 쓸 수 있을까?
-알라딘 eBook <실격당한 자들을 위한 변론> (김원영 지음) 중에서
장애인이 자신의 이동할 권리를 발명하고, 이를 법제도에 진입시키기 위해서는 우선 스스로 이동해서 거리로 나와야 했던 것이다. 이는 권리가 법제도 안에서 국가권력의 힘을 통해 인정되어야만 실질적 의미를 갖는 것은 아님을 보여준다. 권리를 만들어가는 과정 자체, 자신의 신체나 정신 혹은 처한 사회적 상황의 문제를 권리의 언어로 표현하고 집단적으로 공유하고 법제도 안으로 진입시켜 실질적인 힘을 갖도록 정치적, 도덕적, 헌법적 의미를 부여하는 활동 자체가 ‘잘못된 삶’들의 존엄성이 사회적으로 승인되는 과정이다.
-알라딘 eBook <실격당한 자들을 위한 변론> (김원영 지음)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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