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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의 현관
요코야마 히데오 지음, 최고은 옮김 / 검은숲 / 2020년 10월
평점 :
“새어 들어오는 것도, 쏟아져 들어오는 것도 아닌, 왠지 조심스레 실내를 감싸 안는 부드러운 북쪽의 빛, 동쪽 빛의 총명함이나 남쪽 빛의 발랄함과는 또 다른, 깨달음을 얻은 듯 고요한 노스라이트(north light)”(33)
“알았던 거야. 타우트는,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걸. 형태를 가진 것이든, 관념적인 것이든, 절대적인 아름다움이라 불러야 할 것이 어디에 깃드는지 알고 있었고, 그래서 자신도 아름다운 것을 창조하려고 했지. 그건 자신의 마음을 채우는 작업이야. 채워도 채워도 여전히 부족한 것을 하염없이 채워나가는 끝없는 작업.”(357)
● 일본이라는 나라는 개인적인 이성이나 감정으로는 쉽게 긍정하고 옹호하기 힘든 점이 많긴 하지만 또 그만큼의 매력이 있는, 적어도 내게는 매우 복잡한 대상이다. 19년 7월부터 시작된 무역 분쟁 그리고 일본제품 불매운동. 이 파도를 피해간 Made in Japan은 찾아보기 힘들었다. 여행도 물건도... 하지만 아무것도 넘을 수 없을 듯 한 NO JAPAN이라는 큰 파도에 영향 받지 않고 있는, 내가 알고 있는 단 하나의 예외는 일본소설이 아닐까 싶다.
● 하루키는 일본에서보다 한국에서 더 인기가 많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니까 차치하고 우리나라에서는 그다지 인기가 있다고 할 수 없는 추리소설 분야에서 조차 일본소설이 출판시장을 장악하고 있는 느낌이다. 히가시노 게이고의 거의 모든 소설들이 번역되어 출간되고 있고, 일본에서 조금이라도 반응이 있으면 우리나라에서는 실시간이라 해도 될 만큼 빠른 시간 안에 책이 나온다. 일본어 번역에 능숙한 사람이 많고 지리적 그리고 정서적으로 공유하는 접점이 있어 쉽게 다가설 수 있다는 등의 여러 가지 복합적인 요인이 작용한 결과일 것이다. 나 역시 일본소설의 다양성과 풍부함 그리고 우리나라 소설과 다른 새로움에 매료된 한명의 독자임을 부정할 수 없다.
● 요코야마 히데오는 <64>를 통해 처음 알게 된 작가이다. “소설을 쓸 때, 보편성을 중시하고 일본인의 정신을 토대로 하고 있다”는 작가의 말처럼 작가는 조직과 사회 속에서의 개인에 대하여 그리고 그 주변(가족)과의 감정(사랑)을 얘기하고자 노력한다. MSG가 하나도 들어가 있지 않은 듯 한 약간은 심심한 맛, 그래서 독자들의 서평에는 ‘너무 지겨워서 힘들게 읽었다’는 악평도 심심치 않게 보인다.
하지만 나는 히데오의 작품을 좋아한다. 뭔가를 분명하게 말하지 않아 좋다. 아! 누군가 내게 말했다. “안개 같다”라고, 그 안개 같은 느낌이 너무 좋다. 힘들게 이야기를 이끌어내지만 이렇다고 이야기 하지도 않는다. 500쪽 가깝게 이야기를 풀어놓고도 무엇이 부족한 것인지 마지막에 커다란 바위덩어리 같은 질문을 은근슬쩍 남겨놓는다. 그 질문에 답을 말하라 하지도 않지만, 생각한들 정답이 있는 질문도 아니지만 그 질문을 그리고 정답이 없는 답을 생각하게 한다. 지금 이 책을 읽은 당신은 어떠한지, 소설의 주인공과 처지가 다른지, 비슷하다면 당신은 어떤 선택을 할 것인지 등등
● 이 책의 원제는 ‘ノースライト’에 대해 작가는 ‘의식 아래의 행복’을 암시하는 은유라고 한다. 남과 비교하거나 사회의 시선에 좋고 나쁨이 좌우되는 그런 상대적인 행복이 아닌 어떻게 발견해야 하는지조차 가늠할 수 없게 되는 소박한 감정이라고 말한다. 그래서 작가는 작품에서 화려했던 거품경제시대가 종말을 고한 후 삶에 찌들어 고통 받는 개인을 이야기 한다. 거품이 빠지자 구성원간의 신뢰와 사랑을 바탕으로 유지되어 오지 않고 거품으로 대변되는 물질에 의해 안전하다고 포장되어 왔던 가족이 어떻게 한 순간에 파멸에 이르게 되는 지를 말하고 있고 그리고 그 해법이 무엇일지에 대하여 우리에게 묻고 있다.
● 작가의 전작과 마찬가지로 <빛의 현관>은 검은 숲에서 출간되었다. 전작인 <64>가 판형이 커 다소 투박한데다 표지의 느낌도 어두웠는데, 이번에 출간된 <빛의 현관>은 결말을 암시하는 듯한(물론 끝까지 읽지 않고서는 절대 짐작할 수 없지만) 표지에 판형도 손에 들기 쉬운 적당한 크기로 읽기가 참 편하다. 또 <64>와 마찬가지로 번역서를 읽고 있다는 생각을 전혀 하지 못할 정도로 깔끔한 최고은님의 번역은 이번 작품에서도 전혀 흐트러짐이 없다.
* 93쪽 각주에 있는 쇼와에 대한 설명 “1926년 12월 25일부터 1987년 1월 7일까지의 일본의 연호” 중 1987년은 1989년의 오기인 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