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500만 원 반지하 전셋집에서 4년 반 동안 살면서 나름 절약했더니 제법 돈이 모였다. 돈이 배가 되니 선택지가 네 배 정도 넓어지는 것 같았다. 이 맛에 사람들이 돈벌이에 열중하나 보다.

 

주거에 있어 빛은 돈이다. 빛이 잘 드는 고층 아파트 전세, 매매 가격이 저층보다 비싸다. 빛의 많고 적음에 따라 가치가 달라진다.

    

 

빛은 태양에서 출발해 광활하게 뻗어 ‘아낌없이 주는’ 속성을 지녔는데, 이를 대하는 인간의 마음은 이기적이다. 빛을 좀 더 받고자 조망권을 침해하면서까지 경쟁적으로 건물을 올리고, 일조권을 놓고 여기저기서 분쟁이 일어난다.

    

 

한참 인터넷 발품을 팔아 몇몇 후보지를 선정했고, 부동산을 통해 후보지 중 몇 군데를 방문해 직접 눈으로 확인한 뒤 우리 기준, 즉 환경과 돈에 맞는 최적의 빌라 한 곳을 찾아냈다.

 

산 주변이라 해도 산으로의 접근성이 떨어지거나 차가 많이 다니는 도로가 주변에 있으면 배제했다. 산이 가까워도 해가 잘 들지 않는 빌라 저층이나 주택도 탈락이었다.

 

우리가 찾아낸 빌라는 뒤쪽으로 곧바로 산 진입로가 이어졌고, 앞쪽 창으로는 신림동 풍경이 시원하게 눈에 들어왔다. 여기까지만 보면 상당히 고가 전세라 생각할지 모른다. 하지만 싼 데에는 다 그만한 이유가 있는 법.

    

 

산과 가까이 있다는 것은 다른 말로 하면 높은 곳에 위치한다는 의미다. 높다는 말은 집까지 올라가는 경사가 범상치 않다는 것을 뜻한다. 경사로를 오르내리는 것에 대한 망설임이 있었지만, 과감히 선택했다. 우리 부부가 정한 ‘공기 좋고 볕 잘 드는 곳’이라는 기준에 확실히 부합하는 집이었기 때문이다.

    

 

교통이 불편한 것은 내가 출퇴근에 좀 더 고생하면 될 일이다.

 

 

장마철에 곰팡이 스미는 눅눅한 곳에서 살다가, 이사한 곳은 아이들에게 넉넉한 빛과 맑은 공기, 집 주변에서 즐길 수 있는 흙 놀이를 맘껏 선물할 수 있는 집이었다. 창밖으로 콘크리트 바닥이 아닌 풀과 꽃을 보며 계절의 변화를 느낄 수 있는 그런 집이었다. ‘또로로로로로로’ 하는 딱따구리 소리를 들을 수 있는 주거 공간이 서울에 과연 몇 군데나 될까.

 

    

  

 

4화에서 계속됩니다.

 

* 위 내용은 <나의 주거 투쟁>에서 발췌한 글입니다.

 

 

<나의 주거 투쟁>

김동하 지음 / 궁리 펴냄 / 2018년 6월 18일 출간 예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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