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 - 혼자도 결혼도 아닌, 조립식 가족의 탄생
김하나.황선우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19년 2월
평점 :
품절


바야흐로 2년 전, 28살의 나는 결혼 위기에 닥쳤다. 결혼 '위기'라고 표현한 이유는 온전히 사랑과 사람을 바라보고 결심한 결혼이 아니기 때문이다. 야심 차게 시작한 사회적 기업은 허우적대다 망해버렸고, 한국으로 돌아와 잠수타고 치른 임용시험엔 불합격했다. 할 줄 아는 건 없(다고 생각했)고, 아버지는 곧 퇴직이고, 소위 아홉수가 코앞이었다. 그래도 내가 제일 예쁘다는 번듯한 남자친구가 옆에 있으니 아무래도 결혼이 답인 것 같았다. 그러나 진지하게 이 사람과 오랫동안 부대끼고 싶은지, 서로의 한계를 감내할 수 있는지, 무엇보다 서로가 서로를 충분히 아끼는지에 대한 고민이 빠져 있었다. 돌이켜보면 그저 안락하게 사회 속에 편입되고 싶었다.

아무리 그렇다 해도 우리는 각자 꿈꾸는 삶이 극단적으로 달랐다. 나는 내가 꿈꾸는 생활에 남편 얼굴만 갖다 붙이고 싶었고, 그는 그가 꿈꾸는 미래에 아내 얼굴만 갖다 붙이고 싶어 했다. 한 명이 '최선의 삶'을 살기 위해선 다른 한 명이 '차선의 삶'을 택해야만 했다. 어느 누구도 자신의 최선을 단 한 발짝도 포기하지(또는 양보하지) 못했다. 우리는 여차여차한 경위로 이별에 합의했고, 현재 각자가 원하던 최선인 삶을 살고 있다.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를 읽으며 스물여덟의 내가 자주 떠올랐다. 나의 상상력은 얄팍했고, 서른을 신경 안 쓰는 척 신경 쓰고 있었으며, 특히나 우정이란 관계를 얕보고 있었다. 자취를 8년이나 했음에도 불구하고 '진정한 독립'을 위해선 결혼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결혼의 적령기는 사람마다 다르다는 것, 세상에는 다양한 삶의 형태가 존재한다는 것, '진정한 독립'의 시기란 내가 정한 때라는 것, 무엇보다 '내가 선택한 사랑'뿐만 아니라 '내가 선택한 우정' 또한 가능하다는 것을 이제야 알게 되었다.

어느덧 서른인 나는 이 책 덕분에 결혼 말고 많은 것들이 하고 싶어졌다. 나의 이익을 대변해서 일하는 여성 정치인에게 연 10만 원 후원하기(연말 정산 때 반영된다!), 7단 변속기어를 가진 티티카카 자전거 타기, 꾸준히 운동해서 체력 키우기, 바깥일로 바쁠 땐 '돈으로 해결할 수 있는 건 큰 문제가 아니다'라고 말하며 가사도우미 부르기, 격년에 한 번 1월 1일마다 수건, 칫솔, 비누, 샤워볼, 샤워커튼, 수세미, 실내화 같은 비싸지 않은 집기를 한꺼번에 싹 새것으로 바꾸기, 아는 건 많지만 잘난 척하지는 않는 성격 가지기, 친구를 집으로 초대하기, 친구들과 도움 주고받기, 친구들과 작당 도모하기, 무엇보다 '더 큰 가족' 꿈꾸기가 하고 싶어졌다.

김하나 작가는 '같이 살면 좋겠다 싶었던 이유 중에는 늘 몸을 움직이고 있는 황선우의 건강한 에너지 장 안에서 영향을 받고 싶었던 것도 있다.'라고 말하고, 황선우 작가는 '이 사람과 함께 살아도 좋겠구나, 하는 결심에는 바로 이런 넓은 울타리 안에서 좋은 영향력의 파장 안에 늘 있고 싶다는 바람도 작용했다.'라고 말한다. 내가 닮고 싶은 사람을 적극적으로 주위에 두는 생, 단지 월세를 나눠내는 정도가 아니라 같이 대출을 받아 살고 싶은 아파트를 구하는 생이란 이토록 멋지다는 걸 새삼 깨달았다. 결혼이 유일한 선택지가 아니었다.

40대의 찐한 우정을 유쾌하게 기록하는 두 작가가 고맙다. 덕분에 내가 꾸려갈 30대와 40대가, 더 정확히는 우리가 꾸려갈 우정들이 더욱 기대된다. "친구들은 사회적 정서적 안전망이다"라는 김하나 작가의 말을 당당하게 인용하며 주위의 같이 살고 싶은 모든 친구들에게 추천하고 싶은 책이다.

ps. 이 책에 나오는 '결혼 전에 물어야 할 13가지 질문' 기사를 찾았다. 누군가와 동거 전에 꼭 활용해볼 것이다.

https://www.nytimes.com/interactive/2016/05/03/universal/ko/marriage-questions-korean.html

 

 

 

 

 

 

김하나는 자신의 지향점이자 캐치볼 위클리의 정신을 이렇게 밝히고 있었다.



한 사람이 진정으로 자부심을 가져야 할 것은
집 평수나 자동차 브랜드가 아니라 자신의 친구입니다.
그 친구가 얼마나 잘 나가는지, 얼마나 힘이 있는지가 아니라
친구가 얼마나 요리를 잘하는지
누구는 또 얼마나 잘 얻어먹는지
얼마나 잠을 잘 자고 얼마나 노래를 잘하며 얼마나 약지 못했는지
우리가 얼마나 많은 술을 마셨고 얼마나 어처구니 없는 추억을 가졌는지
인생에서 진정으로 자부심을 가져야 할 것은 그런 것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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