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4년 열린책들 세계문학 17
조지 오웰 지음, 박경서 옮김 / 열린책들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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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서운 나날이다. 출근 전 확인했던 뉴스에서는 오늘 서울 아침 기온이 -6도라고 했지만 체감 온도는 그것보다 더 추웠던 2월 어느 날 아침. 광화문 역에서 내려 회사까지 걸어가는 5분 남짓 시간 동안 따뜻한 커피 한 잔을 사지 않고서는 견딜 수 없을 것 같아 근처 커피숍으로 들어갔단다. 커피를 주문하고 흐뭇한 마음으로 자리에 앉아 기다리고 있는데, 벽에 걸린 커다란 그림 하나가 내 눈을 사로잡는구나. 언뜻 봐도 가로 세로 각 5~6미터가 넘어 보이는 대형 그림이었는데 머리카락부터 눈썹, 얼굴 색, 입술, 손가락까지 모든 것이 파란색으로 채색된 여자의 초상화였어. 그림 속 여자는 고개를 비스듬히 돌린 채 시선을 정면으로 던지고 있었는데, 모든 것이 파란 가운데 눈동자만큼은 하얗게 빛나고 있어서 그 시선으로부터 얼굴을 돌릴 수가 없었단다. 생각해 보렴. 내 눈 한 가득 보이는 파란색의 얼굴, 그리고 나를 주시하며 내려다 보고 있는 커다란 눈동자. 나는 같이 앉아있던 아내에게 이건 꼭 <1984년> 소설에 나오는 빅브라더(Big Brother) 같은데, 라며 함께 웃고 말았어. 그리고는 이내 섬뜩해졌지. 커피숍을 떠날 때까지 내게 달라 붙었던 시선의 섬뜩함 ......

문학이라는 것이 세대를 건너 독자들에게 기억될 수 있는 인물을 단 한 명이라도 남길 수 있다면, 조금은 성공한 셈 아닐까. 이런 인물의 존재감이란 너무나 선명해서 단지 작품 속에만 등장하는 것이 아니라 현실 세계 어딘가에 실제 살아 숨쉬는 것 아닐까 착각을 하게 하지. <죄와 벌>의 라스꼴리니꼬프, <허삼관 매혈기>의 허삼관, <롤리타>의 롤리타, <면도날>의 래리 ...... <1984년>의 빅브라더도 분명 그 중 한 명이었던 것 같아. 텔레스크린을 통해 우리들의 모든 순간이 시각적으로, 청각적으로 수집되어 빅브라더에게 향하고 있다는 설정은 섬뜩하기도 했지만 동시에 너무나 매력적인 세계관이었어. 이 세상 어디에도 감시로부터 자유로운 곳이 없어 모두는 늘 자기 검열을 하느라 바쁘지. 이 매력적인 섬뜩함은 <1984년> 발표 이후 많은 매체를 통해 현실 세계에 빗대어 늘 환기되고 재생산되었던 것 같아. 확실히 빅브라더는 <1984년>에게 아주 독특한 정체성을 부여했어. 빅브라더, 사람의 움직임을 쫓아 눈이 함께 움직이는 그의 커다란 포스터, 소리와 행동을 자발적으로 검열해야 했던 시민들의 모습은 <1984년>를 관통하는 첫 번째 메타포, <감시>를 상징하고 있어. <감시>라는 단어로, 이 책은 문을 열었단다.

그러나 미셸 푸코의 책 <감시와 처벌>을 떠올린다면, <1984년>은 <감시>로 시작해서 조금씩 <감시> 이후의 <처벌>로 무게중심을 옮겨가는 구조를 갖고 있었어. 작품 전체를 관통해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구절은 이것이었단다. “구전제주의자들의 명령은 <너희들은 이렇게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었고, 전체주의자들의 명령은 <너희들은 이렇게 해야 한다>는 것이었지만, 우리의 명령은 <너희들은 이렇게 되어 있다>는 것이지. (p297) The command of the old despotisms was “Thou shalt not”. The command of the totalitarians was “Thou shalt”. Our command is “THOU ART” 주인공 윈스턴은 빅브라더의 눈을 이리저리 피해 세계의 틈을 넓혀 나가다가 끝내 감시망에 걸려 처벌을 받게 되지. 그때 당을 대변하는 오브라이언이 원하는 건 윈스턴이 겉으로 굴복하고 당의 방침을 인정하는 것에 그치지 않았어. 당의 말은 언제나 옳은 것이며, 이들이 진심으로 빅브라더를 사랑하도록 그들의 마음은 뿌리부터 전면적으로 개조되어야 했어. 어떤 것을 해야 하거나 또는 어떤 것을 하지 않아야 하는 것이 아니라, 하거나 하지 않아야 할 것 자체가 태생적으로 존재하지 않도록 그들의 몸과 정신은 빅 브라더를 향해 완전히 예속되어야 하는 것 ...... 그러니까 빅브라더의 <처벌>이란 이 세상에 더 이상 감시할 사람이 남아있지 않도록, 모든 이들을 <생각하지 않는 사람>으로 만드는 것이 목표 아니었을까. 감시하여 처벌하는 것이 아니라, 감시할 것이 없도록 처벌하는 것 말이야.

 

 

그렇다면 <1984>에서 말하는 건 빅브라더와 같은 전체주의적 국가, 전체주의적 존재에 대한 것만은 아닐 거라는 생각이 들었어. 끊임없이 텔레스크린을 통해 이루어지는 감시와, 창문 하나 없는 101호에서 은밀하게 이루어지는 처벌. 이 두 가지가 의미하는 건 <자유의 종말>, 그것도 신체와 정신 모든 측면에서 자유를 제거하는 것을 의미했어. 이 작품이 반(反)유토피아, 혹은 디스토피아를 대표하는 문학 작품이라는 걸 떠올려 보자. 자유가 완전하게 종말을 맞이한 지점이 반(反)유토피아라면, 유토피아란 우리의 자유를 통제하는 조건 – 끊임없는 감시, 생각하지 않는 존재로의 강제화 – 이 더 이상 유효하지 않은 지점을 의미하겠지. 여기서 두 가지 재미있는 생각이 하나 들었어. 우선 유토피아(Utopia)란 말의 어원을 보면 그리스어 topos(장소)와 ou(부정)가 조합된 단어로 '어디에도 없는 곳'이란 뜻이라고 하지. 어디에도 없는 곳 ...... 자유의 끝이 유토피아라면, 정말 그렇다면 우리가 신체와 정신 모든 측면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곳은 어디에도 없는 곳일까, 조지 오웰은 그런 지점엔 끝내 도달할 수 없을 거라고 예견했던 것인지도 몰라.

더 흥미로웠던 건 우리를 자유롭지 못하게 만드는 Condition에 대한 거였어. 독재, 국정농단, 감찰, 사법농단, 블랙리스트, 억압, 방송출연금지 이런 단어들이 최근 몇 년 간 거리를 배회하며 <1984년>이 현실로 도래한 것 아니냐는 목소리가 커져갔던 것을 기억한단다. 그때 우리들 마음 속에 떠오른 것은 우리가 스스로 자유롭게 생각하는 것을 훼방 놓는 세력에 대한 것이었지. 나를 구속하는 너희들. 그러니까 우리의 자유를 예속하는 것은 외부에 있는 타자였어. 이 말은 분명 맞아. 그러나 이것만으로는 어딘가 충분하지 않을 수도 있겠다 싶어. 신체와 정신적으로 자유롭기 위해서는 외부의 타자도 그리고 내부의 자아도 모두 자유로움을 진실되게 추구할 수 있어야 하겠지. 즉, 나는 예속 없이 자유롭게 사고하고 행동하고 싶다는 희망의 무게만큼이나, 동시에 나는 자유롭게 생각하고 행동할 의지가 있는지 ...... 어떤 질문의 끝은 나 자신을 가리켜야 한다고 생각했어. 그런걸 생각하면 아침에 보았던, 커피숍의 커다란 눈동자의 눈빛을 조금은 다르게 받아들여도 괜찮지 않을까 싶었어. 그 여자의 섬뜩한 눈빛은 당신을 감시하고 통제하겠다는 눈빛이 아니라, 당신은 누군가에게 기대지 않고 스스로의 의지로 자유롭게 생각하고 행동하는 삶을 쫓고 있는지를 묻고 있는 눈빛이라고.

당신은 타자(他者)의 여집합에서 자유를 수집하려 했던 것인지를 묻고 있는 눈빛이라고, 말이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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