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위의 딸 열린책들 세계문학 12
알렉산드르 세르게비치 푸시킨 지음, 석영중 옮김 / 열린책들 / 200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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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 장교 그리뇨프가 부임하게 될 벨로고르스끄 요새는 오렌부르끄에서 40 베르스따 거리만큼 떨어져 있다고 했다. 베르스따는 러시아에서 예전에 사용하던 거리 단위인데 요즘 단위로 따지면 40km가 약간 넘는 거리다. 청년 장교가 귀족의 삶을 버리고 일선으로 투입된 오렌부르끄는 과연 어디에 있는 곳인가 ...... 지도에서 찾아보니 현대 러시아와 카자흐스탄의 국경에 붙어있는 곳이다. 수도 모스끄바에서는 1,220km 떨어져 있는 곳이다. 새로운 장소였다. 그 동안 읽었던 러시아 고전문학은 대부분 유럽에 인접한 모스끄바, 혹은 뻬쩨르부르그를 무대로 했는데, 뿌쉬낀의 <대위의 딸>은 시선을 과감하게 동쪽으로 돌렸다. 이곳에서 청년 장교 그리뇨프는 황제를 참칭하는 반란군의 수괴 뿌가쵸프와 인연이 섞이고 사랑하는 약혼자 마샤를 만나게 되는데, 이들 곁에서 사랑, 죽음, 이별을 경험한다. 여기에는 귀족들의 연회와 정치적 암투 대신, 검푸른 초원과 황량한 요새와 민중들의 삶이 담겨 있었다. 이 지점에서 다시 시선을 다른 곳으로 돌려 보자.

한국이나 일본에서 도스토옙스끼의 명성은 참으로 높고, 톨스토이와 더불어 러시아 문학은 곧 도스토옙스끼와 같은 말이었다. 나도 그랬다. 도스토옙스끼의 <죄와 벌>과 <카라마조프의 형제>를 읽고, 톨스토이의 <안나 카레니나>, <전쟁과 평화>를 읽고 이토록 광대한 세계관, 쉼 없이 등장하는 군상들이야말로 러시아 고전문학 그 자체라고 믿었다. 그러나 러시아 민중 대부분이 진심으로 아끼고 자랑하는 알렉산드르 뿌쉬낀이야말로 이들 대문호에게 영향을 준 시발점이었다는 점엔 시큰둥했는데, 때문에 <대위의 딸>은 구입 후 오랫동안 서가 한 편에 버려져 있었다. 군더더기 없는 묘사와 압축적으로 빠르게 진행되는 서사는 이것이 근 200년 전에 쓰여진 소설이라는 점을 의심하게 했는데, 책을 읽고 나자 위대한 러시아의 대문호가 뿌쉬낀에게서 영향을 받았는지 의심하지 않게 되었다. 그건 바로 민중에 대한 시선이었다.

<대위의 딸>에서 황량한 초원 속 오렌부르끄를 무대로 뿌가쵸프의 반란이라는 역사적 사건과 여제를 중심으로 한 폐쇠적 사회 현상은 비중 있게 다뤄지지 않고 있다. 그들은 주연이 아니라 조연으로 등장하고 있고, 주인공인 청년 장교 그리뇨프는 위대한 인물도 아니며 굳은 심성을 지닌 주인공의 전형도 아니다. 그는 다양한, 얄팍한 감정 속에 몸을 내던지는 위인이며 삶을 자신의 뜻대로 주도적으로 이끌어가지도 못한다. 그는 다양한 요인에 의해 영향 받고, 우연에 의해 앞으로 나아간다. 스스로 바른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고 믿겠지만 그를 움직이는 건 그의 의지도 아니며, 그가 나아가는 길은 크게 바르지도 않았다. 그러나 이런 민중에 대한 담담한 시선, 그리고 민중들의 수 많은 우연이 결합되어 만들어내는 것이 역사라는 담담한 시선, 뿌쉬낀의 소설은 경쾌한 스피드 속에 이전과는 다른 시선이 녹아 있었다.

때문에 <대위의 딸>을 읽으며 톨스토이의 <전쟁과 평화>를 떠올린 것은 조금은 필연적이었다. 역사는 특정 위인에 의해 좌우되지 않고 수 많은 민중들이 함께 만들어 낸 동작 에너지의 합인데, 개인의 동작 에너지 역시 개인의 의지가 아니라 슬프게도 우연이 더 많이 작용한다는 것 ...... <전쟁과 평화>가 전하는 메시지는 이보다 31년 전 출간된 <대위의 딸>에 함축적으로 이미 담겨있었던 것 아닌가. 바로 여기서부터 위대한 러시아의 리얼리즘 문학이 흘러나가기 시작했다. 무언가의 시발점이 된다는 것은 이처럼 경쾌하고 함축적이며 간단한 법이었다. ▨

https://blog.naver.com/marill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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