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은 과연 성군인가 이영훈 교수의 환상의 나라 1
이영훈 지음 / 백년동안 / 201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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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주한책서평단 오디오클립 로사입니다.>

 

'세종대왕'이라면 대한민국의 위인으로 가장 먼저 떠오르는 성군이다.
각종 드라마와 소설을 통해서도 '세종대왕'은 업적을 떠나 백성을 사랑하는 어진 모습의 완벽한 인간형으로 표현되어 왔다. 나 역시 그런 시각에 이견이 전혀 없었고, 의구심은 커녕 별다른 생각을 해 본 적이 없는 것 같다.  

이 책은 '세종대왕'에 대한 책이라기보다는 '노비와 기생의 역사'라고 보아도 무방할 것 같다. 제목을 보고는 위인전처럼 세종대왕의 일대기를 다루는 와중에 다만 공보다는 과실에 더 비중을 두는 책일 것이라 짐작했는데, 막상 책을 펴보니 시작부터 '노비제'에 대한 내용을 본격적으로 다룬다. 짧은 1장에서 겨우 몇 페이지를 할애해 세종대왕이 우리 국민에게 어떤 의미이고 위치인지를 살짝 언급할 뿐, 이후 본격적인 내용은 모두 세계사 속 조선의 '노예 제도'로 흐르고 있다.

읽다보면 놀라게 된다. 내가 알던 세종의 이미지와는 상반되는 정책과 당시 상황에 갖고 있던 고정관념이 산산조각나는 기분이 든다. 또한 세종과 별개로 우리 역사 속 노비들의 삶을 설명한 부분은 정말로 기가막히다. 영조가 노비의 인권을 개선하기 전까지 노비들은 양반이 마음대로 죽여도 별반 죄라고 보지 않을 정도의 위치였다고 한다. "우리 집에 온지 4년이나 되고 또 원래 죽을 죄도 아니었는데 의외로 죽고 말아 마음이 매우 편치 않음이 마치 똥을 사민 것 같아 밤새도록 잠을 못 이루었다."는 서울 양반 오희문의 일기. 발바닥 70대를 치는 벌에 부리던 노가 죽자, 살인과 다름없는 일을 저지른 그는 고작 마음이 편치않은 정도의 가책을 느낀다.

고려 노비의 처지는 그리 열악하지 않았으며 신분 세습의 굴레에도 불구하고 쉽게 해방될 수 있는 존재였다고 한다. 조선에 들어와 고려의 전통을 계승하려는 움직임이 있었으나 태종과 세종을 거치며 노비의 권리는 박탈당한다. 저자는 세종이 일반 백성의 권리를 민주적으로 신장했다는 통설적 이해는 크게 잘못된 것이라 말한다. 1422년의 세종이 만든 노비고소금지법으로 조선의 노예들은 '사회적 죽음'에 이르게 되는데, 이 법이 제정된 이후 노비 살해는 빈번해졌고 세종 자신도 한탄할 정도였다고 한다. 노비를 함부로 죽이는 일을 금하는 법을 제정하려고 하였으나 당대의 명신들이 정치에는 명분보다 중요한 것은 없다는 이유를 들어 반대하였고 세종은 이를 받아들였다고 한다. 2장에서 자세하게 다뤄지는 세종과 노비제는 충격적인 내용들로 가득한데, 3장의 세종과 기생제, 4장의 세종과 사대주의 역시 다르지 않다.   

솔직히 말하자면, 이 책을 제목만 보고 읽었다. - 지은이나 출판사를 전혀 고려하지 않고 읽기 시작했다는 이야기이다. 그런데 읽다보니 좀 이상해서 지은이를 한번 보게 되었다. 이영훈. 저자 약력을 읽어보니 식민사관으로 유명한 서울대 이영훈 교수가 맞다. (내 기억이 맞다면, 이 분이 아마도 백분토론에서 위안부 공창론을 주장란 인물일거다.)
이 책을 읽다보면 내용이나 저자의 사관과 무관하게 역사를 전공한 사람이 쓴 책과는 차원이 다르게 빈틈이 많아서 묘하게 설득력이 없다는 느낌이 든다. 역사 전공자가 아닌 저자가 자기 입맛에 맞게 자료를 추려서 쓴 개인적인 글 정도로 보면 될 것이다. 정치적인 이유나 사관은 제쳐두고 글 자체가... 아무런 배경지식 없이 읽다가도 '조선은 쓰레기다!'를 설득하려고 안간힘을 쓰는 저자에 대해 한번쯤 찾아보지 않을 수 없게 만든다. 

자유주의를 강조하면서 동시에 역사교과서 국정화의 선봉에 서는 모순을 가진 저자가 쓴 글이기에, 소재에 흥미를 갖고 이 책을 읽는 독자들도 읽다보면 묘하게 이상하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다. 편견과 고정관념 없이 책을 읽던 나도 글의 교묘한 뉘앙스에 여러 번 숨을 고르고 책을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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