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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틀 브라더
코리 닥터로우 지음, 최세진 옮김 / 아작 / 2015년 10월
평점 :
안녕. 마커스.
트루디 두야. 그 스피드호어스의 두는 아냐. 그녀의 한국에 있는 친구랄까. 내 이름은 엑스넷 아이디 같은 거라고 생각해. 그녀와 나는 비슷한 점이 많거든.
난 몇 년 전에 이미 25살이 지나버렸어. 누가 이런 짓을 한 건지 시간에도 몸이 있다면 한 대 후려갈겨줬을 거야. 어쩌다보니 나도 고리타분한 어른이 되었어. 난 망했어. 그리고 너의 이야기를 읽고 매우 쪽팔리는 중이야. 나이가 든 게 쪽팔리는 게 아니라, 한국에 있는 딱 너 또래의 10대 녀석들한테 이 따위 관음증적 정부를 나 살기 바쁘다고 물려주도록 내버려둔 게 심히 쪽팔리기 그지없어. 너도 한국의 상황이야 구글 검색 몇 번이면 찾아서 알 수 있겠지.
집회와 최루액, 경찰의 폭력 이런 것들은 한국에선 그리 특별한 일이 아냐. 너의 이야기에선 베이교 테러 사건 이후에 국토안보부가 대테러 대응 조직으로 너희 동네에 상주하면서 집회에서 경찰차가 둘러싼다든가, 최루액을 살포한다든가, 집회에 나와 있던 무고한 사람들을 구속한다든가 하는 일들이 발생했지. 여기에선 성수대교나 마포대교에 대한 테러 없이도 그런 경찰 측의 진압이 가능해. 웃기지?

이 사진을 볼래? npr.org에 실린 2015년 4월 18일 기사야(출처: http://goo.gl/xxoRJM). 꽤 잘 나온 사진이지? 저게 최루액이야. 경찰들이 저렇게 차로 둘러싸서 사람들의 흐름을 막고 저 액을 뿌리지. 저게 심각한 테러를 기획하는 사람들의 모임이 아닌 건 너도 알거야. 저 사진 속 광경은 세월호 참사 1주기 추모 집회였어(물론 저 집회 말고도 최루액은 종종 살포돼). 세월호 참사는 2014년 4월 16일 세월호라는 배가, 한국의 진도라는 지역 부근의 해상에서 전 국민이 중계를 보고 있는 속에서 침몰한 사태야. 침몰 과정은 실시간 중계되었는데 정부도, 해상 경찰도, 그것을 보는 사람들도 아무 것도 하질 못했어. 나중에 밝혀졌지만, 그 배와 관련된 부실함과 행정적인 잘못들이 있다고 하더군. 심지어 아직 미심쩍은 부분들도 있지. 25살 이상의 어른들이 거기 타고 있던 고등학생들과 사람들 295명을 죽인 거나 다름없었어. 그 사고 이후 차려진 전국의 임시 분향소에서 서로 잘 알지도 못하는 사람들이 나와서 얼마나 분노하고 또 눈물을 흘렸는지 몰라. 그 배에 탔던 9명은 아직 죽었는지 살았는지도 모르는 실종 중이야. 아마 대릴의 아버지처럼 부모들의 삶은 엄청나게 망가졌겠지.
1주기 집회 때 나도 저 날 행렬 어딘가에 있었는데 나는 운 좋게 최루액을 피했어. 내 친구는 눈에 맞아서 며칠을 힘들어했지. 우리는 구속당하지 않으려고 뛰어다니며 구호를 외치는 데에 힘썼어. 그래봐야 ‘잊지 말자’ ‘(세월호 참사에 밝혀지지 않은 부분들을) 진상규명하라’는 것이었는데, 뭐가 그렇게 반국가적인 것이었는지 경찰들이 쫙 깔리고 길길이 날뛰더라고. 나는 지금 대학원생이고 같이 간 친구들도 대학원생이 많았는데, 나중에 뉴스에는 반국가단체, 공산주의 사상을 외치는 이적단체들이라고 나오더라. 황당했지 나도. 네가 알자지라와 같은 취급을 당했을 때의 딱 그 느낌이랄까.
어쨌든, 여기도 거기 못지않게 심각한 상황이야. 너는 용감하게도 너의 경험을 언론에 알렸고 주 경찰과 법원의 도움도 받았지. 정말 용기 있는 일이었다고 생각해. 나는 너처럼 머리도 좋지 않고, 내가 바쁘다고 가끔 관심도 꺼버리고 그래. 사이버 감시나, 이런 건 부끄럽게도 한국 정부가 세계에서 거의 제일가는 수준이거든. 너는 그런 것들을 이리저리 피해가며 자유롭게 사람들이 자신의 의견을 개진할 수 있는 네트워크를 만들어냈지만, 나는 다른 사람들과 공동 작업하거나 아르바이트 같은 일에 필요하다는 이유로 정부 감청에 굴복하는 메신저를 그대로 지우지 못한 채 쓰곤 해. 그러면서 ‘이게 무슨 대수겠어?’하고 생각했지. 그런데 이렇게 하나 둘 씩 내어줄수록, 내 사생활과 자유로운 영역을 조금씩 파고들 게 내버려 두면서, 그것이 마치 플라스틱 수갑에 익숙해지는 상황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드는 거야. 처음 파고들 땐 아프지만, 점점 익숙해지면서 내 손가락이 마비되어도 모르는 상황. 우리는 그 메신저에서 자연스럽게 낄낄거리다가도 장난으로 ‘이거 정부에 걸리면 완전 끝이다 ㅋㅋ’하면서 살짝 소름끼쳐하거든. 그런데 그 검열은 진짜 우리에겐 현실이기도 해. 지금 처넣어지지 않았을 뿐이지, 언제 수 틀리면 우리도 ‘적’이 되겠지. 그런데 지금은 좀 괜찮아 보이니까 그냥 이 묶인 상황을 애써 안 보려고 노력하고 있는 것 같아. 이 수갑은 이제 익숙해지면 잘 보이지도 않겠지. 그게 무서운 건데.
너의 이야기는 덕분에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해줬어. 음, 몰래카메라를 찾는 간단한 발명품 얘기도 정말 흥미로웠고 말이야. 나도 다 쓴 휴지심과 LED 전구를 이용해서 간단하게 하나 만들어볼까 해. 요즘 여자들 몸을 노리는 몰카가 엄청 많거든. 어휴, 친구들한테 하나씩 다 나눠주기라도 할까봐. 여러모로 네 지식의 덕을 많이 보게 되네.
마커스, 너도 무서웠지만 할 수 있는 일들을 최대한, 열심히 한 거 정말 존경해. 나도 이 자리에서 뭔가 해야지. 25살 넘은 꼰대라고 나중에 부끄럽지 않게 말이야. 앞으로, 언제나, 네가 어떤 집회에서 만났을 때 ‘인사하고 싶은’ 누나가 되도록 노력할게. 네가 네 애인 앤지 앞에서 인사하고 싶던 스피드호어스의 트루디 두처럼 말이야. 오늘부터 나도 나의 갑옷을 정비해야 할 때야. 안녕! 무사하다면, 또 만나자. 만나게 될 거야.
(사진의 저작권은 Jung Yeon-Je/AFP/Getty Images에 있습니다. 출처: http://goo.gl/xxoRJM)
PS. 이 글은 책의 주인공인 마커스에게 쓰는 가상의 편지 형식으로 쓰여졌습니다. '트루디 두'는 책 속 등장인물인 32살짜리 페미니스트이자 가수 활동가, 사업가예요.비중은 별로 없었지만 가장 마음에 들었던 캐릭터입니다. 꼭 읽어보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