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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성한 삶으로의 초대
김형국 지음 / 포이에마 / 201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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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풍성한 삶으로의 초대


<풍성한 삶으로의 초대>(김형국/포이에마)는 ‘만남’에 관한 이야기다. 만남 중에서도 가장 소중하고 값진 만남, 생명을 얻는 최고의 만남에 관한 이야기이다. 저자는 프롤로그에서 “이 책에서 제 인생의 수많은 만남 가운데서도 가장 중요한 만남을 이야기하려” 한다고 썼다. 이 땅에서 살아가는 동안 우리는 많은 만남들 속에 살아간다. 좋은 만남, 나쁜 만남...많은 만남과 만남 속에서 살아간다. 때로는 많은 만남 속에서 자신의 인생에 큰 영향을 미치는 좋은 만남, 잊을 수 없는 만남도 있다. 내 인생에 만남 가운데서 내 인생에 획을 긋는 좋은 만남으로 기억되는 사람들이 또한 있기 마련이다. 여기서의 만남은 예수 그리스도와의 만남에 대한 이야기이다.


우리 인생이 삶의 의미와 궁극적 진리를 찾아가는 여정이듯이 저자는 그가 만남 하나님을 소개한다. 여기에 실린 만남은 성경 66권의 핵심진리를 아주 쉽고 간결하게 알아듣기 쉽게 풀어서 쓴 내용이다. 기독교의 본질과 핵심을, 셩경 66권의 뼈대요 핵심진리를 알아듣기 쉽게 보여준다. 믿는 자라면 이 내용을 다시 읽으면서 자신의 신앙을 점검해 보고 과연 나는 그 진리 위에 살고 있는지 자신을 돌아보고 다시 복음의 핵심으로 자신을 세우고 믿지 않는 사람, 교회는 다니고 있지만 기독교진리에 대해 잘 이해하지 못하거나 모르는 이에게, 혹은 믿지 않는 자들에게 기독교가 무엇인지, 기독교의 핵심진리가 무엇인지를 알 수 있는 좋은 신앙의 길잡이가 되는 내용으로 구성되었다.


“저는 젊다고 하기에는 어린, 10대 후반에 이 만남을 갖게 되는 축복을 누렸습니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40년 가까운 세월 동안, 그 만남을 통해 만난 그분과 함께, 그분을 따라 여행을 해오고 있지요. 이 여행길에서 저는 많은 사람을 만났고, 가능하면 모든 사람이 이 만남을 갖고 자신이 그토록 찾고 싶었던 인생길을 찾아 걸어가도록 돕곤 했습니다. 그 과정 중에서 사람들이 여러 진실한 질문을 접하고, 적지 않은 경우 제 속에서 마주쳐 공명하는 물음들과 함께 고민하기도 하면서 여기까지 걸어왔습니다. 저는 이 여행길에서 때로 동반자가 되기도 하고, 때로 인도자가 되기도 했습니다. 그러면서 우리 인생에 치명적으로 중요하고 아름다운 이 만남을 돕는 이야기를 글로 풀어놓아야 한다는 빚진 마음을 늘 품고 있었습니다. 이 이야기는 많은 철학자와 신학자들이 평생 씨름할 만큼 심오하지만, 특별한 교육을 받지 않은 사람도 이해할 만큼 단순합니다. 이 심오하지만 단순한 진리를 사람들과, 그것도 사랑하는 사람들과 나누는 일은 부담스러울 수도 있지만, 더 이상 미룰 수 없다고 여겨서, 여기서 일곱 번의 이야기로 나누어 담아보려 합니다.”(프롤로그 중)


저자의 말대로 ‘많은 철학자와 신학자들이 평생 씨름할 만큼 심오하지만 단순한 복음의 진수를 일곱 번의 이야기로 나누어 소개한다.


첫 번째 이야기. ‘세 가지 문과 세 가지 장애물’에서는 인생의 의미, 하나님을 찾아 들어오는 세 가지 문과 그 장애물에 대해 썼다. 사람마다 여행의 출발점 즉 진지한 구도의 출발점이 사람마다 다른데, 태어날 때부터 기독교인인 사람들, 소위 입에 십자가를 물고 태어난 사람들이 있고, 그들은 태어날 때부터 그냥 기독교인인이 되어 문화적으로 생활의 일부로 기독교를 받아들인 사람들이다. 또 어떤 사람들은 ’어떤 생활양식을 갖고 있지도 않고 체험도 하지 않았지만, 삶의 의미가 무엇인가가? 도대체 왜 살아야 하는가?‘ 하는 질문을 하면서 하나님을 만난 사람들이다. 그런데 ’어느 문으로 들어왔든 이 세 가지 요소는 다 필요하다는 것이다.


두 번째 이야기, ‘무신론과 유신론, 소통하시는 하나님’에서는 ‘하나님이 인간과 먼저 소통하셨다’고 말한다. 이 소통이 있었기에 인간이 하나님에게 반응할 수 있다는 거다. 이것이 기독교 핵심 진리요, 다른 종교와는 크게 다른 부분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성경은 불교나 세상의 다른 종교들처럼 구도과정으로는 인간이 하나님이나 진리에 다다를 수 없다‘는 것을 아시기에 하나님이 인간을 먼저 찾아오셔서 소통하셨다는 것. 이 소통이 있었기에 인간이 하나님에게 반응할 수 있었다는 말이다. 소통하는 하나님은 당시의 이스라엘, 세상에서 가장 형편없는 민족이었던 이집트 내의 소수민족이었던 소수민족 이스라엘에 찾아오셨다. 그들은 자기민족만을 위한 하나님으로 사유화했고 하나님의 뜻을 오해했다. 결국, 하나님은 직접 인간의 몸을 입고 세상에 오셨다고 말한다.  ’몸으로 보여주신 놀라운 소통‘이다.


세 번째 이야기, ‘진정한 행복의 두 가지 조건’에서는 “사람에게는 사랑이 무엇보다도 중요하지만, 사랑만으로는 행복해지지 않습니다. 행복의 또 다른 축은 삶의 의미와 목적입니다.”라고 말한다. 세상적 기준으로 보는 행복의 조건은 쾌락, 명예, 권력, 재산이다. 그러나 진정한 행복의 조건은 ‘무조건적인 사랑’과 삶의 의미, 삶의 목적‘이다. 인간을 만드신 하나님이, 인간에게 정말 필요한 것이 바로 이 두 가지이고, 이것을 제대로 가줄 때 나머지 쾌락, 명예, 권력, 재산이 자기 자리를 찾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64쪽)


네 번째 이야기, ‘하나님이 만드신 세상과 오늘날 우리의 세상’에서는 ‘하나님의 원래 계획과는 달리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은 하나님과의 관계, 자신과의 관계, 이웃과의 관계, 세상과의 관계가 완전히 깨져 있음을 여실히 보여’준다. 하나님은 원래 하나님과 우리가 인격적 관계를 맺을 수 있는 존재로 만드셨다. 인간을 먼저 사랑하신 하나님은 성경 곳곳에 기록되어 있다.(스바냐3:17) 또한 인간은 자기 자신을 사랑할 수 있는 존재로 이웃을 자신을 사랑하듯 사랑할 수 있는 존재로 만드셨다. 또한 세상은 사랑하며 경영하는 일을 하도록 만드셨다. 그런데 하나님과의 관계가 깨어졌고 깨어진 세상에서 모든 관계가 깨어졌다.


다섯 번째 이야기, ‘세상이 깨진 이유와 죄의 본질’에서는 깨어진 세상, 그 이유와 죄의 본질에 대해 설명한다. 우리는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하나님을 하나님의 자리에서 몰아내고 자신이 그 중심에 서 있는 것을 성경은 죄라고 한다. 저자의 설명에 의하면 ’이 죄를 매우 상징적으로 설명해 줄 수 있는 것이 ‘죄를 뜻하는 영어 단어 ’SIN'이다. I-Centeredess' '내가 모든 것의 중심인 것, 이것이 죄의 본질‘이라는 것이다. 왜 이것이 죄인가. ’하나님은 인생뿐 아니라 우주 만물을 그분이 중심이 되어 움직이도록 창조하셨기 때문이다.


여섯 번째 이야기, ‘하나님의 해결책과 나의 응답’에서는 우리 문제인 ‘죄’를 통해 깨어진 하나님과의 관계의 해결책으로 예수님을 보내셨다. ‘하나님은 자신이 우리를 위해 위대한 사랑을 하셨지만 무조건 따라오라 하시지 않고 이 위대한 사랑이야기를 들려주시고 우리의 인격적인 반응을 기다리신다는 것. 예수님은 세상에 오셔서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 보여주시고 인간을 대신해 죽으셨다. 예수님은 이 땅에 오신 이유는 우리를 위해 죽기 위해 오셨다. 우리에게 참된 생명, 참 행복을 가져다주시기 위해서. 인격적으로 하나님께 반응할 때 이 복음의 소식은 내게 유효하게 된다.


“하나님 없이 사는 삶에서 하나님을 중심으로 하는 삶으로 바꾸는 일은 분명 혁명적인 결정입니다. 용기가 필요한 일임에 틀림이 없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결단을 유지하는 일은 우리 자신의 의지력보다는 하나님의 신실하신 사랑 때문에 가능합니다. 우리를 위해 죽기까지 하신 분이 우리에게서 눈을 떼지 않으시고 우리를 성숙시키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분을 알아가고 의지해서 살아가는 새로운 삶은 이제부터 흥미진진하게 배워나갈 부분입니다.”(144쪽)


여기까지(1-6가지)가 ‘성경의 방대한 내용을 축약한 것이라면, 일곱 번째 이야기, ’계속되는 우리의 여행‘에서는 우리가 여행을 떠날 때 꼭 필요한 것들이 있듯이, 영적 여행에도 지도인 ’성경, 인도자인 ‘성령님’ 그리고 인도자에 대한 신뢰라고 할 수 있는 ‘믿음’, 마지막으로 동반자라고 할 수 있는 ‘공동체’가 꼭 필요‘하다는 것을 말한다.


이 책을 읽으면서 다시 한 번 내 인생에 찾아오신 예수님, 그분으로 인해 내 삶이 행복을 넘어 의미심장하고 가치 있는 삶이 되었으며 값진 삶을 살게 하신 하나님의 은혜를 다시금 재확인하고 생각하는 시간이었다. 영적 순례길을 함께 걷는 이들과 또한 이제 막 영적 순례에 들어선 이들, 아직 복음을 모르는 이들에게도...이 놀라운 기쁜 소식, 복음을 받아들이고 멋진 삶의 여행이 될 수 있기를.


이 책을 통해 바른 신앙관과 세계관을 가지고 살고 있는지 자신을 살펴보고 또한 아직 복음의 진수를 모르는 이들에게 어떻게 진지하게 소개 해 줄 수 있을지 고민하는 이들에게 좋은 지침서가 되었다. 얇지만 심오하고도 단순한 진리의 핵심을 담고 있어 가볍게 읽을 수 없었다. 복음의 핵심을, 성경 66권의 핵심 내용을 집약해 놓은 이 책을 통해 아직 방황하는 이들에게, 또한 막연하게 신을 찾고 생각하고 있는 구도자들에게 또한 믿긴 하지만 복음의 핵심진리를 잘 이해하지 못하는 이들에게...이 작은 책이 좋은 길잡이가 되어 주리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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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회자의 소명 유진 피터슨의 목회 멘토링 1
유진 피터슨 지음, 양혜원 옮김 / 포이에마 / 201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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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관 서가를 돌다가 눈이 마주친 책. 샛노란 색의 책표지라 눈에 띄었다. 우연히 발견한 책을 망설이지 않고 책들 사이에서 빼냈다. 한동안 신앙도서에서 좀 멀리 떨어져있었다는 자각과 반성과 함께. ‘한 걸음씩 부르심을 따라가는 거룩한 여정’이라는 부제가 붙은 유진 피터슨의 <목회자의 소명>(유진 피터슨/양혜원 옮김/포이에마)은 목회자의 소명과 목회자의 정체성이란 과연 무엇인지 성경 ‘요나서’에서 그 해답을 찾아간다. 저자의 깊은 영성과 통찰력을 만나볼 수 있다.

 

유진 피터슨은 목사라는 ‘직업’과 ‘소명’은 별개라고 전제한다. 오늘날 목회현장에서 ‘소명’은 직무를 잘 수행하기 위한 기술로 대체되었다고, 성공주의, 소비주의에 물든 목회현장에서 진리보다 종교소비자들의 입맛에 맞는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고 말한다. 목양의 자리가 기업경영처럼 되어가고 프로그램 관리 등에 더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빼앗기고 소진하고 화석화되어가는 현대의 목회 현장에서 목회자들이 어떻게 하면 ‘영성의 자리’, 곧 기도의 자리, 말씀의 자리, 그리고 영적 지도의 자리에 설 것인지 길을 찾아 모색한다. 그 역시 같은 고민으로 방황했던 적이 있었고 그 갈등을 해소하였었기에 같은 고민으로 힘겨워하는 동역자들에게 소명을 찾아가는 길을 그의 깊은 영적 통찰력으로 요나의 모습을 통해 제시한다. 책에서 그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요약하자면 이렇다.

 

“기본적으로 내가 하려는 일은 목사가 된다는 것의 의미를 바로 잡고, 그 일에 적합한 영성을 계발하는 것이다. 교회의 임무를 내게 맡긴 사람들이라며 내게 전해준 것은 적절하지가 않다. 제도 안에서 경력이나 쌓아가려는 쭈그러들고 진이 다 빠진 영성도 적절하지 않다. 겉치장에 불과한 카리스마 영성도 적절하지 않다. 나는 성경적으로 영적인 것이 필요하다. 창조와 언약에 뿌리를 두고 잘 계발된 영성, 그리스도 안에서 여유롭고 성령 안에 푹 잠긴 영성이 필요하다.”(p18~19)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요나는 니느웨로 가지 않고 더 좋아 보이고 편해 보이고 자기를 드러내기에 그럴 듯 해 보이는 곳인 다시스를 가다가 풍랑을 만난다. 자기 때문에 일어난 풍랑이란 것을 알게 된 그는 ‘나를 바다에 던지라’하고, 고래 뱃속에서 3일간 아스케시스를 경험한다. 그리고 순종의 자리 니느웨로 간다.

 

유진 피터슨은 목회자는 다시스가 아니라 니느웨의 길이라 말한다. 다시스는 곧 ‘하나님을 파는 장사꾼’의 길이다. 니느웨는 ‘소명의 거룩한 길’이다. 다시스 종교를 거부하고 복음소명을 회복하고 니느웨로 가란다. 그는 또한 목회자가 빠질 수 있는 영적 교만과 위험성을 조심하라고 한다. 그것은 목회자 자신이 속기 쉽고 남을 속이기 더 쉬운 영혼의 범죄라는 것이다.

 

다시스와 니느웨. 오늘날의 목회자들은 이 둘 사이에서 갈등하는 자들이 되었다. 순전한 복음, 순전한 그리스도인, 순전한 소명과 사역자로 나아가리라 생각하고 말하면서도 편리를 따라 이익을 따라 움직이며 다시스와 니느웨, 직업과 소명 사이에서 저울질을 해왔고 지금도 그러고 있는지 이것이 오늘날의 현실이다. 유진 피터슨 역시 심각하게 이 두 사이에서 고민하며 관통해 왔기에 더욱 설득력 있게 와 닿는다.

 

유진 피터슨의 표현을 빌자면 다시스는 우선 니느웨보다 훨씬 재미있다. 니느웨는 과거의 불행한 역사가 겹겹이 쌓인 지역이며, 니느웨로 설교하러 가는 것은 이력이 좋은 히브리 선지자가 탐낼 만한 임무가 아니다. 그러나 다시스는 달랐다. 다시스는 이국적이고 모험이다. 다시스에는 환상 속의 온갖 장식들로 꾸며진 미지의 세계가 주는 매력이 있다. 문헌에 따르면 다시스는 “멀리 떨어져 있고 때로는 이상화된 항구”였다. (열왕기상12:22)에 보면 솔로몬의 다시스 선단이 금, 음, 상아, 원숭이, 공작을 실어왔다고 한다. 셈족의 언어와 문화 등을 연구하는 학자 고든(C.H.Gordon)에 의하면 다시스는 대중이 상상하는 “머나먼 낙원”이었다.

 

멋진 다시스로 가던 길에 폭풍을 만난 요나. 멋진 종교 경력을 쌓으려 하던 그는 폭풍 한가운데서 자기 때문에 일어난 폭풍임을 알고 바다에 던지라고 한다. 3일 동안 고래 뱃속에 있게 된 요나. 다시스 여행은 망쳤지만, 그의 소명은 구원 받았다. 물고기 뱃속에서 사흘 동안 보내면서 그의 소명은 구원았다. 사흘간의 기도...그것은 ‘아스케시스’의 시간이었다. 요나의 ‘아스케시스’는 물고기 뱃속에서 이루어진다. 아스케시스는 갇힌 장소, 피할 수 없는 극심한 한계점, 한계의 장소이다. 강제된 것이었지만 이러한 아스케시스의 시간은 우리 각자의 인생에서 필요로 한다. 유진 피터슨은 이렇게 말한다.

 

“인생을 깊어지게 하고 현실을 깨닫게 해주는 또 한 가지 비자발적 아스케시스는 투옥이다. 신약 성경의 최고 본문들이 감옥에 갇힌 바울과 밧모 섬에 갇힌 요한에 의해 기록되었다. 톨레토 감옥에 갇혔던 십자가의 요한, 버밍햄 감옥에 갇혔던 마틴 루터 킹, 그리고 강제 노동수용소에 갇혔던 알렉산드르 솔제니친 등은 감옥에 갇혔을 때 나오는 영적이고 창조적인 에너지를 대면한다. 목사들이 일하면서 마주치는 다른 비자발적 아스케시스에는 실업, 이혼, 사별, 그리고 유배 가듯 새로운 곳으로 가는 이사 등이 있다.”(p139~)

 

요나는 종교경력(다시스)을 버리고 진정한 목사가 되기로 결심. ‘아스케시스’를 받아들이고 또한 기도의 삶으로 니느웨로 간다. 그가 니느웨로 간 것은 기꺼운 마음이 아닌 그저 순종하는 마음이다. 니느웨는 화려하지도 않고 별로 기대할 것도 없는 곳이다. 그러나 열심히 일해야 하는 곳이다.

 

유진 피터슨은 목사 안수를 받고 4년 후에 목회의 위기를 만났다고 고백한다. 모든 것은 순조로웠으나 그는 심각한 영적 위기에 처해 있었다. 그래서 요나처럼 다시스로 가는 배 밑창에 누워 있었다. 그는 그 당시를 미국 종교의 배에 자신이 승선해 있었고 프로그램을 따라 가고 있다는 것을 자각하고 갈등 중에 있었다. ‘나를 바다에 던지시오’ 그는 그 바다 폭풍 한 가운데서 자신의 소명을 새롭게 정의했다. “나는 사람들을 그냥 살리기만 하는 데에는 관심이 없었다.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보여주고 싶었다. 그리고 나는 하나님과 열정이 그 방법이라고 생각했다.”(p78)

 

유진 피터슨은 언제나 있어왔던 그리고 지금도 계속되고 있는 목회자들의 위기를 그 역시 경험했기에 목회자로서 어떻게 살 것인지, 위기와 시험, 문제를 넘어서는 방법을 성경 요나서와 함께 풀었다. 다시스로 갈 것인가, 니느웨로 갈 것인가. 다시스의 삶을 계속 그대로 갈 것인가. 나를 바다에 던지시오 결단하고 아스케시스를 지나 니느웨로, 소명의 자리로 갈 것인가, 결단할 것을 요구한다.

 

옥스퍼드대학의 현대사가 허버트 버터필드는 ‘그리스도인이 기도하는 것이 역사에 영향을 미치는 중요한 요소’라고 했다. 목회의 삶은 기도의 삶이다. “영적 지도는 하나님께 집중하고, 하나님께 집중하도록 주의를 환기시키고, 사람이든 상황이든 환경이든 그 안에 계신 하나님께 주의를 기울이는 행위이다.”(p265) "지도는 길을 제시하는 책임을 맡았다는 함의가 분명한 단어이다. 그러나 영적 지도는 그러기보다는 조용하고 부드러우며 단정적이지 않고 말이 없다. 영적 지도의 특징 중 하나는 ‘길을 비켜주는 것’, 상대에게 중요하지 않고 영향을 미치지 않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여기에 역설이 있다. 목표는 자신의 존재를 강요하지 않으면서 정말로 거기에 있어주는 것이다.“ “진정한 영적지도는 예배 행위로부터 흘러나온다. 우리가 상관해야 하는 대상은 언제나 하나님이다.”(p282) 라는 저자의 말이 깊이 와 닿는다.

 

그리스도의 주되심에 굴복하지 않으면서도 종교적인 생활을 사는, 금송아지를 섬기는 그야말로 다시스의 목회와 다시스의 성도들이 있는 자리, 그 현실의 삶 속에서 깨어서 목사가 된다는 것의 의미를 바로잡고 영성을 계발하라는 유진 피터슨의 요청. 니느웨의 소명을 어떻게 오롯이 감당하며 살 것인지 고민하게 한다. ‘직업’과 ‘소명’사이에서 갈등하며 고민하는 당신에게 일독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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