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에게 말걸기
대니얼 고틀립 지음, 노지양 옮김 / 문학동네 / 2009년 6월
평점 :
절판


심리학자로 중독증세 분야에서 능력을 인정받고, 사랑하는 아내와 두딸이 있었던 대니얼 고틀립. 그 당시의 그는 참으로 행복하고 미래에 대한 꿈도, 하고자 하는 일도 많았을 것이다. 하지만 서른세살에 닥친 교통사고는 그를 평생 휠체어에 앉게 만들었고, 사람들의 도움이 절실한 사람으로 바꿔버렸다.  한창 때 나이에 닥친 불의의 사고는 그의 삶을 송두리째 앗아갔다. 아내와 이혼하고 두 딸에게 아버지로서 해줘야 할 일들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  

하지만 그는 이제 더이상 불행해하지 않는다. 사고는 육체적인 불편을 줬지만 정신적인 깨달음을 주었고,이제는 많은 사람들에게 용기를 주는 글과 상담을 해주니 말이다. 자신의 삶에서 불행만 보지 않고, 더 나은 삶을 위해 자신의 마음을 들여다 본 대니얼. 그가 해주는 충고,조언 이기에 더 가슴에 와닿는다.

사고를 당하기 전, 대니얼은 몸이 아픈 아내를 돌봤다고 한다. 그 과정이 힘들기도 하고 일방적인 희생과 강요받는 느낌이 들어 억울함도 생겼단다. 하지만 아픈 사람을 앞에 두고 이런 생각이 드는 자신이 싫었다. 몸이 아픈 사람에게 "당신을 돌보느라 힘들고 지쳐"라고 말할수 있는 사람은 없기 때문이다. 그저 힘든 내색 하지 않고 묵묵히 해내야만 한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자신은 돌보고 있는 사람보다 중요하지 않은 존재라고 이따금 생각했다.

하지만 이제는 대니얼이 보살핌을 받는 입장에 처했다. 돌보는 사람도 힘들지만 보살핌을 받는 사람도 화나고 힘든건 마찬가지이다.  나를 보살피는 사람의 삶에서 중요한 무언가를 희생하고 있다는걸 잘 알기 때문에 상처가 됐고 죄책감도 생겼다. 또 사람들이 날 조금 더 챙겨주기 바라면서도, 보살핌을 거부하기 싶은 이중적인 마음이 든다. 누군가 내 몸을 닦아주고 음식을 챙겨주고 오줌주머니를 비워주는 일 등에서 자립심과 자존감을 뺏긴것도 같다.

대니얼이 지금에와서 후회하는건 사고를 당한 직후 아내와의 관계를 제대로 풀어가지 못했다는 것이다. 서로를 조심스럽게 대하고 지나치게 배려했기 때문이다. "그때 서로를 꼭 안아주거나 원망하거나 울었다면 어땠을까."라고 저자는 뒤늦게 후회한다. 서로의 감정을 솔직하게 터 놓고 힘들면 힘들다고, 지치면 지친다고 말하는게 진정한 배려라는 생각이 든다. 때로는 눈물을 펑펑 흘리고 소리를 지르는게 마음의 위안을 주기도 한다. 상대방이 상처 받을까봐 아무 내색을 하지 않는게 오히려 독이 된다.

이처럼  사고는 대니얼에게 인간다움이란 무언지, 사람으로 산다는것이 어떤 의미인지를 고심하게 해주었다. 그리고 살아남는 방법을 알려주었다. 최악의 상황을 맞았지만 그래도 살아지더라는 것이다. 처음엔 왜 자신에게 이런 일이 벌어졌는지에 대한 원망, 분노가 생겼다. 다니엘은 자신을 이렇게 만든 가해자에게 저주를 퍼붓고 용서하기가 힘들었다. 처음엔 '화'가 자신을 살아남게 하고 상처를 보호해주는 역할을 했다. 하지만 화와 분노때문에 정작 피해를 보는건 자기 자신이었다. 소중한 삶을 느끼고 즐길 시간을 화 내느라 소비하는 꼴이 됐으니까. 대니얼은 용서란 다른 사람을 향한 분노와 화를 완전히 버리는 과정이라고 말한다. 쉽진 않겠지만 말이다.

대니얼이 만난 사람중에도 불의의 사고를 당한 사람들이 많았다. 그 중 한사람은 재활훈련을 열심히 하면 언젠가는 나아지리라는 희망을 품었었다. 하지만 기대했던 만큼의 성과가 없자 곧바로 절망에 빠졌다. 그래서 희망을 놓았더니 현실을 냉정하게 대면할수 있었고, 운명과 싸우지 않기로 결심하니 마음의 평안을 얻을수 있었단다. 사람들은 '희망'을 품는걸 좋다고 생각하지만, 이처럼 때로는 '희망놓음'이 더 큰 약이 될수가 있다.  

정체성도 마찬가지이다. 나 자신을 제대로 알고, 내가 원하는 나를 만들기 위해 사람들은 끊임없이 노력한다. 하지만 정체성 찾기란 환상을 쫒는거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물론 정체성은 찾아야 한다. 그러나 저자는 "지혜로움이란 우리에게 정체성이 없어도 살아갈수 있음을 아는것. 때로는 대명사 '나'를 보이지 않는 잉크로 써야 한다는것을 받아들이는 것."이라고 말한다.

또 사람들의 자신만의 이론을 만들어놓고 그것이 제대로 작동이 안되면 불안해한다. 낡은 이론을 바꿀 생각은 하지 않고, 더 열심히 하면 이론대로 일이 풀릴 거라는 환상을 갖고 있다. 이렇게 이론은 우리를 옭아매고 상황은 더 나빠진다. 이렇게 생긴 불안은 우리를 더 힘들게 하는데, 이를 억지로 해소하려고 하지 말고 그냥 내버려 두란다. 그 과정에서 불안은 더이상 내 삶을 장악할수 없게 된다는게 대니얼의 조언이다. 완전히 떨쳐버릴순 없지만 불안에 휘둘리진 않는 현명한 길 같다. 

대니얼은 자신의 문제 외에도 부모와 자식간의 문제에도 많은 지면을 할애했다. 그와 부모님의 관계와 에피소드, 자신에게 상담을 해온 이들이 겪은 부모와의 문제등을 소개하며 조언을 해준다. 특히 그는 오랜세월동안 어머니와의 사이가 좋지 않았다고 한다. 서로를 이해하지 못했는데 그 이유는 서로를 자신에게 필요한 사람으로 만들기 위해서 였단다. 상대방을 바꾸려 했지만 그건 쉬운일이 아니다.  

부모는 아이가 자신처럼 살지 말고 안정적인 삶을 살기 원하지만, 정작 아이는 부모를 보면서 역할모델을 삼는다. 아이에게 바른길로 인도하려고 하지만, 아이들이 마음 가는곳을 발견해서 행복을 찾도록 도와줘야만 한다. 그 과정에서 아이들이 다치고 상처받지만 결국은 치유되기 때문에 아이를 믿어야 한다. 부모와 아이가 서로의 눈치를 보며 위해주면 결국 자신의 인생을 희생하는 셈이다. 부모가 자신의 인생부터 돌보는게 아이들을 사랑하는 가장 좋은 방법임을 알아야 한다.  

"내게 심리치료란 사람들이 자신안의 인간다움을 이해하고 그와 더불어 편안해지는 것."이라고 말하는 대니얼 고틀립. 그가 전해준 이야기와 메시지를 통해 조금은 살아가는 방법을 알게됐다. 완벽한 사람은 없듯이, 완벽하게 자신을 알고 다른 이들과의 관계를 좋게 하는 사람도 없다. 하지만 깨지고 아프고 상처입어도 조금씩 노력하고 이해한다면 더 나은 오늘,내일이 될수 있지 않을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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