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멀 레볼루션
조건준 지음 / 매일노동뉴스 / 2018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정준현 (금속노조 광주자동차부품사비정규직지회 지회장)

 

어제 아침 회사에 출근하자마자 조합원 한 명한테 문자를 받았다. “지회장님 노조를 탈퇴하려고 하니 빨리 처리해 주세요”. 무슨 영문인지 몰랐다. 몇 시간 뒤에 그 조합원이 소속된 선거구 대의원한테 전화가 왔다. “같이 옆에서 일하던 조합원하고 다퉜는데 그것 때문에 욱하는 심정으로 그런 문자를 날린 것 같습니다. 설득 잘 했으니 걱정마세요.” 옆 사람하고 다툰 건 다툰 거고 그거가지고 왜 조합 탈퇴 협박하는데?

당황스럽지만 이런 일이 처음은 아니다. 노조 설립하고 3년 동안 5명 정도가 탈퇴했는데 거의 대부분이 다른 조합원들과 마찰이 생긴 후였다. 금속노조에 새로 가입한 60여 명도 관계문제를 가입 이유로 들었다. 비조합원이거나 사측 어용노조 조합원이더라도 임금이나 노동조건에서 차별을 받지는 않는다. 금속노조에 가입하면 한 달에 5만원의 조합비를 꼬박 내고, 맨날 데모하러 가자, 교육 들어와라, 행사 참여해라 귀찮게 구는데도 이 선택을 한다. 이유는 관계 문제였다. 부딪히기 싫다. 라인에서 업무 협조가 안 된다. 나만 따로 국밥이 싫다. 그래도 같이 오랜 시간 동안 회사를 다녀야 하니까.. 등등 금속노조 가입하면 관계의 변화를 기대하는 것이다.

 

한 업체의 사측 어용노조가 노조 해산 신고를 하고 위원장이었던 반장을 포함해 일 무리가 금속노조에 가입하겠다고 문을 두드렸다. 한 달이 지났지만 나는 가입서를 주지 않고 있다. 금속노조 가입서에 서명하는 게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 동안 금속노조 조합원들과 묵었던 감정을 풀고 관계를 개선하는 것이 우선이라고 이야기 했다. 그 과정이 없이 한꺼번에 들어오면 사측노조 출신들로 그룹이 생기고 기존 금속노조 조합원들과 섞이지 못할 것 같아서였다. 문제는 엉뚱한 데서 터졌다. 그 사람들보다 먼저 사측 노조를 탈퇴하고 금속노조에 가입한 사람들이 사측노조 위원장이었던 반장을 공격하고 나온 것이었다. 반장 자리를 뺐기 위한 것이었다. 힘 있는 노조 소속이란 게 이렇게도 이용될 수 있구나!! 아차 싶었다.

 

노조는 단결을 생명으로 한다. 그러나 단결은 무수히 복잡한 조합원 간의 관계들의 효과이자, 결과다. 현장에선 별의 별 문제가 다 생긴다. 그런 관계의 말썽을 일일이 정리하다 보면 대의원이고 집행간부고 모두 찐이 빠진다.

2016년 금속노조가 실시한 간부 의식 실태조사 결과 노조 간부 활동의 가장 큰 한계요인으로 전체 응답자중 가장 많은 32.1%가 동료 간부나 조합원들 간의 분열과 대립을 꼽았다. 우리 지회 간부들의 경우 조직내부 갈등 조정, 해소하는 갈등관리 능력을 지회 임원들에게 가장 중요한 능력과 태도라고 답했다.

 

노조 운영의 시작과 끝은 관계 문제다. 사실 노조뿐만 아니라 세상사가 다 그럴 테지만 말이다. 그런데 노조 활동을 하는 우리조차도 그것을 잊고 산다. 노조는 그걸 잘 가르치지 않는다. 활동도 잘 하고 능력도 좋은데 말로 까먹는 선수들이 있다. 그래서 우리는 노조 만들 때 대화법 교육도 했다. 대화법도 관계 문제다. 금속노조도 그런 교육을 많이 했으면 좋겠는데 금속노조고 민주노총이고 그런 교육을 받아 본 적 없다. 그 지점에서 노조 간부들이 제일 고통 받는데 말이다.

 

책의 저자, 조건준은 그걸 지적한 것 같다. 20년 넘게 노조 상급단체 간부로 활동하면서 들었던 집약된 고민을 관계라고 쓰고 있다.

간부들에게 그런 질문을 던진 적 있다. 조합원들이 변할 것 같냐? “절대 안 변합니다” “안 변할 것 같으면 자네는 조합활동을 왜 하나?” “......”

 

신영복 선생은 사람은 벽에 걸린 그림처럼 고정된 존재가 아니라 관계를 통해 변할 수 있는 가능성의 총체다라고 말했다. 마르크스가 인간의 사회적 본질은 사회적 관계의 종합(앙상블)”이라고 설명한 것을 신영복 선생은 그렇게 해석했다.

사회적 관계의 토대가 되는 생산관계를 바꾸는 실천을 사회혁명이라 한다면, 우리의 일상에서 맞이하는 무수한 관계를 보다 평등하고, 인간적이고, 정의롭게 만드려는 말 한 마디, 행동 하나가 저자가 이야기하려는 노멀 레볼루션이다. 노조 활동도 그렇게 하라는 노동운동 선배가 후배들에게 던지는 충언이다.

적지 않은 세월동안 저자와 책 분량 이상으로 이야기하고 술을 마셨다. 술에 취해 탁자에 엎드려 침을 흘리고 자더라도(ㅋㅋ 엊그제) 저자는 추하지 않다. “완도 촌놈의 순박함을 잃지 않았고, 세상 만사에 늘 진지하다. 그의 글은 그런 오랜 노동운동의 진솔한 분비물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