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태도시 아바나의 탄생 농부가 세상을 바꾼다 귀농총서 13
요시다 타로 지음, 안철환 옮김 / 들녘 / 200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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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쿠바의 유기농업 기술이 흥미로운 것은 바이오 농약과 미생물 비료 등 최첨단 바이오 기술과 지렁이 퇴비나 윤작과 같은 전통 농법을 연계시켜 자재가 부족한 상황에도 당장 실천 가능한 적정기술을 개발했다는 점에 있는데, 그것이 가능했던 것은 지역마다 토착 재배기술을 훌륭히 개발함으로써 농가의 전통적인 지혜를 재발견하는 데 힘썼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식충개미를 이용한 단순한 방제 방법인 아리모도키조우 벌레를 이용한 방제법을 살펴보

자. 먼저 바나나의 줄기를 잘라 사탕과 벌꿀을 발라서 개미집이 있는 곳에 두면 개미가 단맛 대문에 줄기에 모여들게 되는데, 이번엔 이것을 고구마 밭에 가지고 가 햇빛이 쏘이도록 놔둔다. 그러면 개미가 따가운 햇빛을 피하기 위해 땅 속으로 굴을 파고 들어가서는 아리모도키조우의 유충을 먹어버린다. ( p. 103)

 

  쿠바는 분명히 1990년대 중반부터 식량위기에서 벗어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유기농산물이 국민 전체를 위한 것이지 비싼 고급품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 p. 19)

 

  시장원리와 경쟁원리를 도입하지 않으면 생산 의욕은 높아질 수 없고, 그렇다고 시장원리에만 맡겨두면 노인과 결손가정 등 사회적 약자가 타격을 입게 된다. 이런 모순은 쿠바만이 아니라 어느 나라에서든 마찬가지다. (중략) 농산물을 통째로 판매하면 큰 이익을 얻게 됨에도 불구하고 아바나의 도시농장과 시민농장 중 80퍼센트는 생산물의 일정 비율을 지역의 초등학교와 탁아소, 양로원 등에 무상으로 기부하며, 원예동호회도 생산량의 약 10퍼센트를 인근 학교, 노인동호회, 산부인과에 기부한다.  (중략).. "무상으로 토지를 빌리기 때문에 생산물의 일부를 커뮤니티에 환원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라고 말한다. (p. 132~133)

 

  우리들은 님 나무를 밭의 북동쪽에 심었습니다. 바람을 이용하기 위해서였지요. 수분 발산 과정에서 님은 천연의 농약성분을 방출하는데, 바람이 불면 그 성분이 밭으로 퍼져갑니다. 생태적인 해충 방제의 한 방법이지요. (p. 181)

 

  지금까지 에너지는 힘 있는 자와 부자에게는 이익을 남겨주고, 가난한 자는 더 가난하게 만들고 부채를 떠맡겨 더욱 예속시키는 강력한 무기였습니다.

재생 가능한 대안 에너지, 그것이 태양열인데 태양열은 자본주의와 제국주의에 대한 무기일 수 있습니다. 햇빛은 누구에게나 다 공평하게 내리쬐어줍니다. 중국인, 흑인, 인디언, 백인, 노약자, 가난한 사람 그리고 돈을 가진 사람에게도 빛을 쬐어줄 만큼 그 마음 씀씀이가 넉넉하지요. 태양에 대해서는 봉쇄

도, 지배도, 파괴도 불가능합니다. 태양에너지는 인민을 위한 무기이며, 인간이 필요로 하는 참된 경제발전을 이루어낼 수 있는 유일한 길입니다.(p. 205)

  

  하향식 해결법이나 시장에 의한 해결법은 개인을 배제한 채 문제를 해결하려 한다는 점에서 다를 게 없다. 이에 반해 '커뮤니티 해결법'은 개인과 적극적으로 관계를 맺음으로써 문제를 해결하려 한다.  세계화라는것에는 기회가 많아진다는 측면도 있지만 위험성이 커지는 측면도 있다. 지금까지는 정부와 대기업이 신용을 제공하고 있었지만 그것도 불신이 아주 커지면 한계가 뚜렷해진다. 인간적인 관계를 중시하는 커뮤니티에 신용의 '근거'를 두는 것이 오히려 더 낫다. 그래야 개인과 사회의 문제를 해결할 길이 열릴 것이다. (p. 240)

  

  종전의 중앙집권적인 '복지국가'의 체제를 개조하여 의사와 환자와의 동반자 관계에 의해 개인의 자연 치유력과 커뮤니티의 힘을 이끌어내는 '자급적인 의료'로 전환을 꾀한 것이다.   (p. 247)

 

  효율성을 높여야 한다는 이유만으로 인간의 기본적인 필요를 보장해주는 것에서 사회주의가 물러서야 한다고는 생각지 않습니다. 우리가 유지하고 싶어하는 사회주의의 본질은 무엇일까요?  (중략) 우리는 물질 분배에 대해서는 수요와 공급의 법칙을 무조건 신뢰하지 않아 시장의 힘이 여러 가지 일을 결정할 것이라고는 생각지 않았습니다. 의료, 주택, 교육 등 기본적인 인간의 필요에 대한 권리를 보호하려고 했을 때 시장의 힘으로는 지배되지 않는 것이 있다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인간이 존엄하다는 진리는 시장보다 위에 있고 생존권은 자유시장보다 중요한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다른 분야에서는 유연하게 대응한다 해도 부의 분배에 있어서 만큼은 사회주의의 원리에 따른 엄격함을 유지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p. 289)

 

 

  사회주의는 자원의 공평한 분배 이상의 것이어야 합니다. 체 게바라는 다만 물자의 재분배가 아니라 사람들을 소외의식으로부터 어떻게 해방시킬 것인가를 늘 고민했습니다. 기술관료technocrat와 관료bureaucrat기구가 공정하게 분배한다 해도 인간소외는 해방할 수 없습니다. 이는 체와 피델이 그려왔던 사회주의가 아닌 것입니다. 체가 추구한 것은 공업화의 진보로 사람들이 많은 소비품을 갖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윤리와 가치관에 근거한 문화를 창조하는 것이었습니다. 착취와 인종차별, 욕망에 근거한 자본주의와는 다른 가치관을 말이죠. 우리는 이 세계에 없는 종류의 사회주의를 추구하는 것입니다.  (p. 2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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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분이 가시고 난 후 인구에 회자되던 책들 중에 유독 이 책이 눈에 들어왔다.  지구 반대편, 정치적 이념마저도 다른 사회주의 국가의 수도에서 벌어지는 푸른 혁명은 그가 꿈꾸던 세상과 얼마만큼 닮아 있었을까, 내가 잠시 맛보았던 아바나의 유기농업은 어떤 큰 그림을, 그리고 어떤 세세한 무늬를 가진 것이었을까를 생각하며 책을 주문했었다. 쿠바에 가기 전에 이 책을 읽었더라면 더 많은 것이 보였을 텐데 하는 아쉬움을 갖는다.

 쿠바는 1959년 체 게바라와 피델 카스트로의 혁명 이후 이상적인 사회주의 국가를 건설하기 위해 노력해왔다. 하지만 그것은 설탕과 커피를 국제 시가보다 월등히 높은 가격에 공산권에 수출하고 역으로 석유나 식료품, 화학 비료 같은 일상용품을 소련으로부터 헐값에 수입하는, 전적으로 소련
에 의지한 불안정한 유토피아였다. 결국 그들은 소련 및 공산권의 붕괴와 61년부터 시작되어 92년의 '쿠바 민주화법', 96년의 '헬무드 버튼 법'으로 심화되는 미국의 무자비한 대 쿠바 경제봉쇄로 인해 끔찍한 위기를 맞게 된다. 
 

  이 책은 일상생활에 필요한 기본적인 것들, 심지어 생존에 필수인 의약품조차 공급받지 못하는 최악의 상황에서 그들이 사회적 약자를 최대한 보호하며 어떻게 살아남았는가, 를 보여주는 보고서이다. 또한 어떻게 살아남는가와 같은 1차원적인 목표를 넘어서서,  생태보전과 생산성 향상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유기농업이란 틀 안에서 어떻게 동시에 달성하며 (p. 7),  교통혁명과 대체 에너지 개발을 통해 어떻게 생태도시로서의 지속가능한 발전을 이룩해 나갈 것인가에 대한 범세계적인 하나의 가능성을 보여주는 책이라 할 수 있다. 

  물론 현실에서 부딪힌 쿠바의 모든 것이 내게 그러했듯, 이 책에 일관되는 저자의 시각에 대해, 그들에 대한 '지나친 이상화'는 아닐까와 그동안의 미국 편향적인 정보 접촉의 폐해로 인한 근거없는 의심이 아닐까 하는 양가감정이 교차하여 혼란스러워지는 고약한 면이 없지 않아 있다. 그걸 감안한다 하더라도 그들이 생존해온 이력, 그들이 추구하는 이상은 우리의 현실과 비교해봤을 때 감동과 진지한 생각거리를 주기에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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