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을 떠나는 사람들 - 3040 지식노동자들의 피로도시 탈출
김승완 외 지음 / 남해의봄날 / 201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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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난 서울이라는 대도시를 사랑한다.

온갖 즐길거리, 먹을거리, 온갖 물질과 문화, 사람들로 넘쳐나는 이 화려한 도시를 떠나 다른 곳에서 산다는 것은 고민조차 해보지 않았다. 그렇다고 매캐한 스모그와 사람이 어디까지 지치게 만드는 지 시험하는 듯한 트래픽 잼, 출퇴근 지옥철과 자본이 밀집된 상권의 고만고만한, 다 똑같은 가게들을 사랑한 것은 아니다.

내가 사랑한 것은 무엇이든 가능하고 언제나 활기차며 늘 새로운 것들을 맛볼 수 있는 지루할 틈이 없는 서울의 문화였다. 내게 서울은 곧 자유였다. 취향에 따른 선택을 누릴 수 있는 호사, 이런 편리하고도 다양한 도시가 세상에 또 어디 있단 말인가.

더욱이 한참 일할 나이에, 서울은 프로페셔널하고 트렌디한 모든 직종의 핫플레이스가 아니던가.

직장을 다니면서 더더욱 서울의 바깥이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었다.

내게 있어 서울을 떠나는 일이란, 고향이 있는 사람들이 하는 귀농 딱 거기까지 였다. 서울이 고향이고, 그 고향에서조차 늘 떠돌며 '노마드적' 인생을 살아가고 있다고 믿던 나와는 전혀 상관없는 이야기였다.

그러나 한편으로 끊임없이 변화하며 각양각색의 모습으로 나를 매혹시키던 서울은 그 지나친 변화의 바람으로 나를 외롭게 했다. 자주 가던 홍대 카페, 식당들은 자릿세가 올라 모두 눈깜짝할 새에 사라지고, 늘 새로운 곳을 찾아다니다가 이제는 그마저도 바뀌는 속도를 따라가지 못해 무엇이 생기고, 또 사라지는지 파악하는 것조차 포기해버렸다. 어느덧 자유와 젊음의 상징같았던, 내 청춘을 묻은 홍대는 고만고만한 프랜차이즈가 즐비한 "갈 곳 없는" 동네가 되어버렸으나, 여전히 친구들과 모일때면 홍대로 향했다. 서울의 다른 지역들도 마찬가지로 "갈 곳 없는" 동네가 되어버렸기에 다른 선택지도 없었던 것이다.

 

이 책은, 내가 서울을 '선택'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 선택을 '강요'받았다는 것을 깨닫게 했다.

 

이 책이 던지는 화두는, 하던 일 그대로, 서울을 떠나 지역에서 살 수 있을까? 이다.

9명의 용기있는 저자들은, 귀농이 아닌 (농사를 폄하하는 것이 아니다! 농사와 밭일의 어려움은 귀농준비로 주말농장을 하시는 우리 부모님만 보아도 알 수 있다.) 자신들의 직업 그대로, 지역에서 가능성을 찾고자 한다. 그들의 정착기는 단순히 지역의 삶이 공기좋고 아름다운 경관에 감탄하는 것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지역에서 살아가기 위해 어떠한 어려움을 마주해야 하며, 또 우리가 상상하지 못했던 새로운 비전과 서울과는 다른 또다른 풍요로움이 지역에 존재한다는 것을 함께 이야기한다.

 

개인적으로 이 책에 두 가지 전제를 덧붙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첫째는, 직업이든, 문화든, 편리함이든 "서울"이라는 특권의식의 이면에는 도시 격차, 즉 지역불균형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너무 뻔한 사실이지만, 그 불균형 속에 당신과, 나와, 우리가 있다.

나 또한 이 책을 읽기 전까지는, 과도한 경쟁도시 서울에서 살아가는 삶이 마치 선택권이 없어 보였다. 다음커뮤니케이션처럼, 회사가 제주로 이전하지 않는 이상이야, 개개인들이 어떻게 가능한 것인가. 특히 문화, 예술 관련 종사자는 거의 불가능하다 생각한 것이 사실이다. 그리하여 화천에서 연극하는 배요섭, 괴산에서 음악 페스티벌을 여는 사이, 순천에서 예술공간을 운영하는 이명훈 같은 저자들의 용기에 실로 박수가 절로 나왔다. 이것은 분명 용기이다. 그러나, 이러한 용기가 하나 둘 모인다면 어떨까.

이들 저자들은 우리가 "불가능"하다고 생각한 것들을 이미 "가능"으로 만들었다. 여기에는 분명 대단한 "어려움"이 벽처럼 존재하지만, 그렇다고 "불가능"한 것도 아니며, 오히려 우리가 상상하지 못했던 새로운 가능성과 비전을 발견할 수 있다. 더욱이 여유롭고 아름다운 자연, 깨끗한 공기와 서울과는 색다른 매력의 지역사회의 풍요로움까지 주어진다. 지역사회에서 넘어야 할 산이 없다고 말할 수 없다. 그러나 더는 발 디딜 틈도 없어보이는 경쟁도시 서울에서 "살아남는" 것과 비교할 때 무엇이 더 어렵다, 쉽다 이야기 할 수 있을까?

적어도 이들 저자들은, 서울을 벗어나 그 과도한 경쟁도시의 "선택없음"을 거부하고, 자신들의 "선택"을 만들어냈다. 이 용기들이 뻗어나가 새로운 바람을 일으키고, 문화를 형성하기를 고대하는 것은 나뿐만이 아닐 것이다.

 

두 번째는 "삶의 방식"을 "선택"하는 일. 좀 더 자세하게는, "바쁜 서울에서의 일상"이 개개인에게 작용하는 방식이다.

이 책은, 그 '바쁜' 서울의 이면에 대해서 다시 돌이켜 보게 만든다.

우리 모두는 공기 좋고 아름다운 지역에서 갖는 여유로움을 부러워하며, 여행 갈 때마다 입버릇처럼 "이런 데서 살고 싶다" "이런 곳에서라면 일할 맛 나겠다" 하지 않던가.

처음, 다음커뮤니케이션이 제주도로 내려갈 때 저 똑같은 말을 내뱉으며 직장인들 사이에서 얼마나 큰 화제가 되었던가. (내심, 서울 바깥에서 일이 잘되겠어? 하는 의구심을 품으면서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무의식적으로 "여유"보다는 "바쁨"을 추구하며 살고 있다.

바쁘지 않으면 안되는 것처럼, 일정이 없이 한가한 사람으로 비춰질까 내심초사하며,

실제로 정말 '바빠 미치겠'는 순간을 끔찍해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그 '바쁨'에 우리는 무의식적으로 '우월감'을 부여한다. 바빠야만 이 사회에서 필요한 존재인 것처럼, 그래야 이 빠른 도시의 스피드에 뒤처지지 않는 것처럼. 때론 누가 더 바쁜지, 누구의 일이 더 힘든지, 직장 동료와, 친구들과 경쟁하듯 이야기한 적이 누구나 한번쯤 있지 않은가?

그리고는 도대체 그 시간에 그런 화제로 그런 소모적인 대화를 했는지 돌이켜 볼 겨를도 없이. 또 그렇게 그렇게 "떠밀려" 가는 일상.

첫 번째 전제와 연결되는 이야기지만, 무의식적으로 습관이 되어 몸에 배어버린 이러한 '포즈'에서 개개인의 내면에 자리하고 있는 '불안'을 엿볼 수 있다. 그 바쁘고 빠른 도시 안에서, 우리 모두가 자신도 모르게 그 스피드에 맞춰나가기 위해, 도태되지 않으려 안간힘을 쓰는 것이다.

한 걸음만 떨어져서 바라보면, 너무 허무하지 않은가.

 

이 책은 가장 훌륭한 점은 서울을 떠나 시작된 지역에서의 삶이 유토피아라고 말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우리 모두는 마치 떠나면 여유롭고 행복한, 경쟁없는 삶이 펼쳐질 것이라고 착각하지만 사실은 전혀 다르다. 저자들은 오히려 서울을 떠나 "선택한" 지역에서의 삶에서 우리가 알아야 할 것들, 적응해야 할 것들, 넘어서야 할 것들을 이야기한다. 이들이 "선택"한 "삶의 방식"을 보다 의미있는  것으로 이끌기 위하여.

 

무엇을 두려워하는가.

지역에서도 삶은 계속된다. 오히려 더 풍요롭고, 아름답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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