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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오르는 아시아에서 더럽게 부자 되는 법
모신 하미드 지음, 안종설 옮김 / 문학수첩 / 201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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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계발서로 포장된 소설을 읽으면서 무엇을 바랐는가. 제목에서 블랙 코미디를 예상했는데 그런 분위기가 아니었다. 독자가 이입하기 좋은 당신, 2인칭으로 등장하는 주인공이 ‘경제적으로 도약하려는 아시아 어느 나라의 가난한 시골 집안에서 태어나, 도시로 가서 교육을 받고, 부자가 되고, 일생의 사랑을 얻는’ 이야기다. “2015년 가장 좋은 소설”이라... 그런 찬사는 과분하다. 소설이 택한 형식 때문에 큰 기대는 하지 않았지만, 작가의 두 번째 소설 『주저하는 근본주의자』가 들은 호평을 알고 있기에 조금 실망했다.


신흥 국가에서 ‘더럽게 성공하는 법’은 다소 식상할지 모른다. 경제발전 정도에 따라, 우리의 과거이자 누군가의 현재라 할 수 있는 이 주제는 현실과 가상 매체에서 되풀이되기 때문이다. 차이점은 사실을 과장하거나 축소하는 정도에 있다. 그런 점에서 보면 이 책은 누군가의 인생을 담담하게 서술하는 전기라 할 수 있다. 이른바 개천용이 되기 위한 조건들을 거쳐 ‘당신’이 얼마나 치열하게 살아왔는지 말이다. 주인공이 ‘당신’으로 지칭되기에 독자와 작가는 주인공에 쉽게 이입하게 된다. 특이점이라 할 수 있다.


모신 하미드는 이 책을 영어로 썼고, 영어권 독자들이 대체로 ‘아시아’ 사정을 잘 알지 못한다 생각했을 때 얻을 수 있는 효과는 꽤 드라마틱했을 것이다. 한국 소설에서 2인칭, 혹은 3인칭으로 글을 썼을 때의 효과와는 조금 다를 것이란 생각이 든다. 번역의 문제는 아닌데, 개인적으론 그다지 이입할 수 없었다. 성별이나 세대 차이가 아니라 이런 인물이 등장하는 매체에 익숙해서라고 해두자. 가까운 역사, 비슷한 문화 등으로 묶일 수 없는, 셰익스피어의 언어를 쓰는 그이들이 ‘당신’에 이입했을 때 효과로 인해 호평이었으리라 짐작한다. 


그 이유는 아시아인이 등장하는 영화나 드라마를 볼 때, 그 상황을 이해할 수는 있어도 완전히 ‘공감’하기는 어려울 것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공감이란 완전히 그 사람의 처지가 되는 것, 그 사람의 껍데기를 입은 채 느끼고 생각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초경을 시작한 누나가 열 살 많은 아버지의 팔촌과 결혼하는 것- 그의 아내가 출산 중 사망한지 얼마 되지도 않았으며 이러한 결합이 이상하지 않다는 것 말이다. 여기에 공감할 순 없지만, 내 세대에도 여전히 맏딸의 희생이 당연시 되고 있으니 익숙하다곤 할 수 있지 않은가.


‘자기계발’이라는 표현에서 ‘자기’는 모호한 개념이라는 것에서 출발하게 된, 그리고 이제껏 나온 책들은 모두 ‘자기계발서’에 포함된다고 주장하는 이 소설의 궁극적인 주제는 무엇일까. 우리는 일생동안 자기를 계발하지만, 그 목적을 달성할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어느 쪽이 되었든 마지막 순간에 함께 할 사람을 떠올려보고, ‘당신’이 유의미한 삶을 살았노라 할 수 있다면 꽤 괜찮지 않은가. 신흥 아시아에서 부자가 되는 법을 착실히 밟은 ‘당신’이라는 주인공에, 작가의 의도대로 독자가 이입함으로써 ‘창조’해낸 인생 말이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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