닥터 글라스 아티초크 픽션 1
얄마르 쇠데르베리 지음, 공진호 옮김 / 아티초크 / 2016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상하게도 동트기 직전에는 언제나 공기에 떨림이 있다. _30쪽


무더운 여름, 글라스는 스톡홀름 시내를 산책하다 그레고리우스 목사가 걸어오는 것을 본다. 목사의 외모에 혐오감을 느끼고 있었지만, 자신의 환자이기에 인사를 건넬 수밖에. 그는 마음에 들지 않는 외모를 한 사람의 머리를 지팡이로 때렸다는 쇼펜하우어의 일화를 떠올린다. 그레고리우스가 어찌나 싫었던지 글라스는 의지의 힘으로 그를 죽일 수 있다면 그렇게 하리란 생각을 한다.


며칠 후 목사의 젊고 아름다운 아내 헬가가 찾아와 남편이 혐오스럽다고 고백한다. ‘남편의 권리이자 자신의 의무’인 부부관계가 너무도 끔찍하다고 말이다. 그들이 어떻게 결혼하게 되었는지도 그리고 지금은 다른 이를 마음에 두고 있다는 사실도 솔직하게 털어놓는다. 그리고 글라스를 존경하는 계기가 된 일화도, 이는 의사를 움직여 목사에게 금욕을 권고하게 한다. 서른셋의 남자는 사랑에 빠진 여자의 기쁨에 마음을 쓰게 된다.


글라스는 욕망을 자제하는 타입이다. 어려서부터 포부가 대단했으며, 스물셋에 의학 학위를 따자 열의를 잃어버린다. 또래보다 일렀던 사회적 성취는 감정적인 면에서는 미숙했다. 다른 성인남성들이 욕망을 토로할 때, 막연한 꿈과 욕망이 있었을 뿐이다. 천성적인 낭만주의자라 할 수 있는 그는, ‘사랑의 꿈’을 믿었고 박제돼버린 스물셋의 첫 키스를 오랫동안 간직한다. 사랑에 빠진 여자의 아름다움을 알기에, 가질 수 없는 여인에게만 끌린다.


그래서 그는 성공한 남성의 돈과 명성보다는, 사랑을 쉽게 얻는 남성에게 질투한다. 헬가의 남자인 클라스 레케를 보면서 말이다. 글라스가 느끼는 청춘에의 결핍- 자신이 정상에서 벗어난 느낌을 떠올리게 하는 레케의 이상적인 외모와 ‘잠이 들었던’ 헬가를 깨운 그의 순수한 매력… 그러나 이 감정은 그리 날카롭지 않다. 도리어 자신의 권고를 무시하고 아내에게 의무를 이행할 것을 강제한 목사에 대한 혐오, 이를 끝낼 어떤 행위를 꿈꾸게 된다.


글라스는 사실 단호하고 차가운 인물이다. 임신과 출산이 초래할 고통과 불안을 알면서도, 의사의 ‘의무’를 내세워 환자들을 돌려보낸다. 자신을 사모하는 메르텐스 양에게는 매력을 느끼지 못해 별다른 반응조차 보여주지 않는다. 마르켈과 비르크와 대화는 나누지만 마음을 털어놓지는 않는다. 그래서 한여름 밤의 일기가 중요하다. 행복과 구원을 상징하는 ‘등불’을 외치며 깨어난 그 밤, 내면의 목소리들이 벌이는 수많은 대화들. 아주 일품이다.


무의식, 꿈은 강처럼 흘러갔지만 글라스는 그 꿈자락을 기억하고 있었고 외면하지 않았다. 시곗바늘이 없는 아름다운 회중시계 안에 이 모든 일을 끝낼 무언가를 넣었다는 사실은, 글라스의 사랑과 인생- 존재 그 자체를 의미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아름다움, 명예와 지위- 두려움조차 불사할 수 있는 강렬한 빛. 아니, 희미한 가짜일까? 어떤 거름망도 없이, 그의 기록은 내면에서 나타났다 사그라들고 발전되는 이야기들을 솔직하게 담고 있다.


생명과 죽음에 대한 권리(낙태, 안락사)와 도덕과 살인에 관한 이슈들은 지금도 불같은 논의를 일으킬 것이다. 1905년에 이런 글을 쓰다니 놀랍기 그지없다. 이 작품의 진가는 여름에서 가을, 겨울로 향하는 시간의 흐름에 따라 발전하는 글라스의 내면 묘사에 있다. 기존의 도덕 체계를 혐오하며 홀로 살아가는 이 남성은 어쩌면, 1905년 그 당시보다도 현대에 더 어울릴 법한 인물이다. 소설의 마무리까지… “내일 쓰인 소설”이라는 윌리엄 샌섬의 표현이 어울린다.


꿈과 현실이 하나가 되는 순간- 우리는 기쁨을 느낄 것인가, 두려움을 느낄 것인가? (별점 4.5/5.0)


 


-책을 펼치면 마주하는 이미지들에서 제발츠의 『아우스터리츠』와 브르통의 『나자』를 떠올렸다. 「번역노트」를 보니 이 작가들에 대한 오마주인 동시에 독자들의 이해를 돕기 위함이라 한다. 스톡홀름의 이미지들을 위해…

-「번역노트」에 대한 중역에 대한 이야기도 읽어볼 만 하다.

-라벨의 피아노 독주곡과 함께 읽었다. 아마도 글라스 내면의 ‘흐름’이 라벨의 흐르는 음표들을 떠올리게 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추천은 스웨덴 국민 밴드 Kent의 노래로… 소설의 마지막 장면과도 잘 어울린다.


기본적인 생존의 차원을 넘어선 정신문명은 사랑을 갈구하는 마음에서 흘러나온다. 아름다운 것을 좋아하는 마음도 마찬가지다. 예술과 문학, 음악도 모두 그곳에서 흘러나온다. (...) 효과적이든 아니든 장식용으로 또는 즐거움을 위해 제작된 모든 것들이 직접적으로는 아니더라도 모두 같은 근원에서 흘러나온다. (...) 그 근원의 이름은 사랑이 아니라 사랑을 향한 꿈이다. _27,29쪽




댓글(4) 먼댓글(0) 좋아요(1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심심토끼 2016-01-26 19: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친구 되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에이바님 좋은 밤 되세요

에이바 2016-01-26 21:07   좋아요 1 | URL
감사합니다. 심심토끼님도 따뜻한 밤 되세요.^^

2016-01-27 10:2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01-28 09:30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