콜리마 이야기 을유세계문학전집 76
바를람 샬라모프 지음, 이종진 옮김 / 을유문화사 / 201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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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를 쓰면서 별점을 매길 때 마다 후하게 주지 말자, 별 다섯은 없는 셈 치자 다짐하나 쉽지 않다. 더군다나 이런 책을 읽을 땐, 첫 장을 넘기면서 한 방 먹은 기분을 느낄 땐 더욱 그렇다. 『콜리마 이야기』의 첫 번째 단편인 「설원을 걸으며」는 아주 오랜만에, ‘압도당하는’ 체험을 선사했다. 단 두 페이지, 24줄의 위력이었다.

 

수용소 문학이라 하면 떠오를 작품이 많겠지만, 내게는 도서관 한 켠에서 만난 임레 케르테스의 「운명 3부작」이 처음이었고 이후로도 계속 관심을 둔 편이었다. 다양한 증언과 고발을 통해 알려진 대표적인 강제 노동 수용소(절멸 수용소)는 아우슈비츠이다. 그 곳에 가스실이 있었음은 모두가 알지만, 프리모 레비의 말처럼 ‘목격자’들은 그 곳에서 사라졌기에, 우리는 수용소에서 일어난 가장 비극적인 일들을 짐작만 할 뿐이다. 따라서 ‘살아남은 이’들은 그 곳에서 어떤 일이 있었는지 알려야 한다. 인간이 상상할 수 없는, 이성적 한계를 넘어서는 그 상황을 전해야 한다. (영화는 오히려 생각을 제한한다. 『쇼아』가 그 긴 러닝타임을 오로지 ‘증언’으로만 채웠음을 상기해보자...) 그리고 아우슈비츠, 독일이 운영한 강제 수용소와 비교했을 때 소련의 굴라그(강제 노동 수용소)의 비극은 주목도가 덜하다.

 

굴라그를 증언한 작품 가운데 가장 유명한 것은 노벨문학상 수상자, 알렉산드르 솔제니친이 쓴, 『수용소 군도』 와 『이반 데니소비치, 수용소의 하루』이다. 김학수 교수님이 번역한 『수용소 군도』의 경우, 범우사에서 열린책들로 판권이 넘어갔지만 전집은 절판이며 오로지 1권만 구입이 가능하다. 예전에 문의한 바로는 재출간 계획이 없다고 해 안타까울 뿐이다. 그의 작품도 위대한 힘을 지니고 있지만, 솔제니친과도 교류했던 작가, 바를람 샬라모프의 작품을 읽고는 말 그대로 ‘충격’을 받았기 때문에... 정말 좋다. 생전 두 작가는 서로 교류한 바 있다. 솔제니친의 작품이 사미즈다트(지하출판)으로, 그리고 프랑스에서 출간되어 그 비극을 알릴 수 있었다면 샬라모프의 작품은 자국에서조차 오랜 시간 출간되지 못했다. 『콜리마 이야기』는 작가가 사망한지 6년이 지나서야 비로소 출간되기 시작했으며, 우리나라에는 을유문화사에서 처음으로 소개되었다.

 

이 작품은 유기적인 짧은 단편들로 구성되어 있으며, 샬라모프 전집 7권 중 1권이다. 작품들의 분량만큼 내용이 간결하며 명확하게 서술되는데, 러시아 문학을 읽을 때 까다로울 수 있는 이름들도 전혀, 독서에 방해되지 않았다. 전통적으로 이 곳의 반역, 반체제 인물들은 시베리아에서 유형 생활을 했다. 콜리마는 극동이자 극북에 위치한, 스탈린 체제 하에서 가장 악명 높은 강제 노동 수용소이다. 수인들은 광산에서 노동한다. 아무리 건강한 인물이라 할지라도 이 곳에서 수개월이면 도호댜가(기진맥진하여 죽어 가는 사람)가 된다. '부실한 옷과 빈약한 배급 식량, 동상' 거기에 '엄청난 정신적 압박이나 절망'이 가세하면 인간은 더 이상 인간일 수 없는 것이다...

 

작품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다양하며, 그들의 일상생활은 굉장히 상세하게 그려진다. 담담한 필치로 있는 그대로 묘사되기 때문에 콜리마의 삶(그것을 삶이라 할 수 있다면-시인 네크라소프 인용)은 더욱 잔인하게 느껴진다. 수용소 생활은 폭력에 취약하다. 권력은 깡패들이 쥐고 있으며, 지도부와 의사도 자유롭지 않다. 카드놀이에 걸 물건을 뺏기 위해 일어나는 살인, 도둑질은 일상으로 보인다. 무덤을 파 고인의 옷을 벗겨 속옷을 취하는 모습, 극도의 굶주림에 인육을 먹거나 얼어붙은 돼지를 훔쳐 그대로 입에 우겨넣는 모습, 광산으로 돌아가지 않기 위해 꾀병을 부리는 환자와 그를 적발하려는 의사(심지어 수인 출신)의 잔인성... 살아남기 위한 거짓말과 도둑질은 북극의 미덕이라 칭할 정도이다.

 

수인들은 생존을 갈망한다. 절망 속에서도 단 몇 시간의 노동하지 않을 자유, 잠깐 동안 몸을 녹일 수 있는 난로 앞에서의 특권, 빵을 하나 더 얻는 것과 같은 일을... 사랑과 우정, 연민으로 울어본 적은 있어도 배고파 울지는 않았다는... 아, 어떻게 이 책에 대한 감상을 쓸 수 있을까. 내 한계를 넘어서는 일이다. 수용소가 인간성을 파괴시키는, 언어를 넘어서는 그 비참함은 오로지 수인생활을 했고, 그를 증언하기 위해 살아남은 작가의 글로만 전달할 수 있을 것이다. 반드시, 꼭 읽어보시길 바란다. 샬라모프의 다른 작품들도 이어 출간될 수 있기를 소망한다.

 

 

  도스토옙스키는 『죽음의 집의 기록』에서 큰 아이처럼 행동하고 연극에 열중하는, 화내지 않고 어린애처럼 서로 말다툼하는 불행한 사람들의 행동을 눈치채고 감동한다. 도스토옙스키는 진짜 깡패 세계의 인간을 만나 보지 못했고 알지 못했다. 그런 세계에 대해선 그 자신이 어떤 동정의 말도 못하게 했을 것이다.

  수용소 내에서 강도들이 저지르는 만행은 수없이 많다. 불행한 사람은 강도에게 마지막 넝마를 빼앗기고 마지막 돈을 빼앗기는 노동자들이다. 그들은 고발을 두려워한다. 강도가 수용소 당국보다 막강하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강도는 노동자를 구타하고 노동을 강제한다. 수만 명이 강도에게 맞아 죽었다. 수용소에 수감된 수십만 명이 강도의 이데올로기에 정신적으로 타락하여 인간이기를 포기했다. 깡패의 무엇이 수인의 영혼 속에 영원히 자리를 잡았고, 강도와 강도의 모럴은 모든 사람의 영혼에 지울 수 없는 흔적을 영원히 남겼다.

  수용소 관리는 난폭하고 잔인하며, 교육 담당자는 거짓말쟁이이고, 의사는 양심이 없다. 그러나 사람의 정신을 타락시키는 깡패 세계의 폭력에 비하면 이런 일은 아무것도 아니다. 수용소 당국은 그래도 인간이다. 그렇다, 그렇다, 게다가 그들에게는 인간적인 면이 보인다. 그러나 깡패는 인간이 아니다.

  깡패의 도덕이 수용소 생활에 미치는 영향은 무한하고 전면적이다. 수용소는 완전히 나쁜 인생 학교이다. 유익하고 필요한 것은 누구나 아무것도 거기서 얻지 못한다. 수인 자신도, 그 관리도, 경비도, 우연한 목격자도, 이를테면 기사, 지질학자, 의사도, 수용소의 상관도, 그 부하도.

  수용소 생활의 1분 1초가 독이 되지 않는 시간이 없다.

  거기엔 인간이 알아서는 안 보아서는 안 될 일이 너무 많다. 만약 보았다면 죽는 편이 낫다.

  수인은 거기서 노동에 대한 혐오를 배운다. 다른 것은 아무것도 채울 수 없다.

  수인은 거기서 아첨과 거짓말, 크고 작은 비열한 행위를 배우면서 이기주의자가 된다.

  자유의 몸으로 돌아갈 때 수인은 수용소 시절 동안 자신이 성숙하지 못했을 뿐 아니라, 자기의 관심이 편협하고 부족하고 난폭해진 것을 안다.

  도덕의 벽이 어디론가 옆으로 밀려났다.

  비열한 짓을 하고도 살 수 있다는 것을 안다.

  거짓말하고도 살 수 있다.

  약속은 할 수 있지만 약속을 지키지 않고도 살 수 있다.

  친구의 돈을 술값으로 써 버릴 수 있다.

  구걸하며 살 수 있다! 걸식하며 살 수 있다!

  사람은 비열한 짓을 하고도 죽지 않는다는 것을 안다.

  수인은 태만, 거짓, 모든 사람과 모든 것을 증오하는 데 익숙해진다. 자기 운명을 슬퍼하며 온 세상을 비난한다.

  사람에게 저마다의 슬픔이 있다는 것을 망각하고 자신의 고통을 과대평가한다. 타인의 슬픔에 대한 동정을 잊어버린다. 그냥 타인의 슬픔을 이해하지 못하고 이해하려고도 하지 않는다.

  회의. 그것은 아직 괜찮다. 그것은 수용소의 유산 중 아직 나은 편에 속한다.

  사람을 미워하는 것을 배운다.

  그는 두려워한다. 겁쟁이가 된다. 자신의 운명이 반복되는 것을 두려워한다. 밀고를 두려워하고, 인간이 두려워하지 않아도 될 모든 것을 두려워한다.

  그는 도덕적으로 분쇄되었다. 도덕관이 변했는데, 그 자신은 그걸 눈치채지 못한다.

 

『콜리마 이야기』, 「적십자」, 252-25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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