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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아버지들 - 우리가 다시 찾아야 할 진정한 아버지다움
백승종 지음 / 사우 / 2016년 11월
평점 :
이 책을 읽기 며칠 전에 SBS 신년특집 다큐멘터리를 봤다. '아빠의 전쟁'이라는 이름이 붙은 SBS 스페셜이었다. 그 프로그램 속에 처음 등장한 아버지는 딸과 멀어진 아버지였다. 잦은 야근을 반복하며 저녁이 없는 삶을 살며 가족을 위해 열심히 일해왔지만 결과적으로 딸과의 시간은 갖지 못했다. 이로 인해 딸은 아버지에게 상처와 원망이 깊은 상태였다.
아버지는 딸과의 관계를 회복하고 싶어하지만 이미 사라져 버린 아버지의 자리를 어떻게 되찾아야 할지, 또 어떻게 딸에게 다가가야 할지 잘 모르고 있었다. 언젠가부터 아버지들은 'ATM'(현금자동입출금기)으로 전락했다.
우리 시대의 아버지들은 무한경쟁의 시대 속에서 언젠가부터 아버지의 자리를 잃어가고 있다. 저자는 그런 세태를 '아버지들의 위기'라 느낀 듯 하다.
우리 가족이 살고 있는 아파트는 견고하다. 그러나 명색이 가장인 나의 입지는 불안하다. 우리 시대의 아버지들은 나와 처지가 비슷할 것이다. 왜 이렇게 되고 말았을까? 궁금한 마음에 역사 속으로 사라진 아버지들을 떠올린다. (92쪽, 조선시대의 아버지들)
저자는 역사 속에서 아버지의 자리를 찾는다. 우리가 다시 찾아야 할 진정한 아버지다움을 말이다.
저자는 12명의 아버지들을 '조선의 아버지들' 속에서 소환한다. 당당함을 강조했던 아버지 정약용, 시대의 아버지였던 이황, 가난했지만 세상에 저항할 줄 알았던 아버지 박세당, 불법 이혼으로 명예가 땅에 떨어지지만 자신의 현실을 겸허히 받아들이고 이를 극복하려 부단히 노력한 아버지 김숙자, 자신에게 엄격하고 남에게는 너그러웠던 아버지 이익, 사화도 꺽지 못한 기개를 지녔던 아버지 유계린, 스승이자 친구 같은 아버지였던 김장생, 아내에 대한 사랑이 지극하고 자식에 대한 사랑이 남달랐던 천재 예술가 아버지 김정희, 유달리 깊고 큰 사랑을 보여준 아버지 이순신, 한없이 따뜻하고 자상했던 딸 바보 아버지 김인후, 의를 위해 죽음으로 맞선 아버지 이항복, 자신의 아들을 살해한 아버지 영조까지.
조선시대 아버지들의 면면을 통해 우리 시대의 아버지를 돌아보며 아버지의 자리란 어떠해야 하는가를 이야기하고 있는 책이다.
이황은 죽으면서까지도 자손들에게 값비싼 유밀과를 제상에 올리지 말라고 당부했다. 자식들이 궁핍한 살림에 비싼 유밀과를 제상에 올리게 되면 생활이 더욱 궁핍해질 것을 죽는 순간까지도 걱정한 것이다.
'자연의 이치는 본래 어버이가 자식을 사랑하는 것이다. 그러면 자식은 효성으로 보답하기 마련이다'(77쪽)라고 하는 내용도 인상 깊었다. 보통 효를 강조만 하지, 어버이가 자식을 사랑하는 일에 대한 보답이라고는 생각지 못하니 말이다.
심청전을 읽으며 공양미 삼백석에 딸을 팔아버린 심봉사가 참 나쁘다고 생각했었는데, 이에 대한 내용도 나왔다.
고소설 <심청전>만 해도 그렇듯, 심 봉사는 욕심을 부리다 결국 딸의 목숨을 앗아갔지만 그런 아버지의 욕심은 심판의 대상이 아니었다. 유교 사회는 오로지 자식의 행동만 감시했다. '효성을 다하는가?' 이것만 문제 삼았지, 자식에 대한 부모의 무관심과 무책임 따위는 사회적 이슈가 되지 못했다. (77쪽, 조선의 아버지들)
이 책에 등장하는 아버지들은 제 식솔들을 끔찍이도 위하고 아꼈다. 시대적 상황으로 인해 벼슬길에 나아가지 못해 곤궁한 살림살이더라도 부지런히 학문의 길을 닦았다. 배움에 힘 쓰는 것만이 언젠가 다가올 기회를 잡을 수 있고 가문도 일으킬 수 있는 일이라 여겨 곤궁한 가운데도 배우는 일을 게을리 하지 않았다. 자식들에게도 부지런히 배우고 절약할 것을 강조하기도 했다. 가장으로서의 책무도 소홀히 하지 않았다. 근검하고 절약하며 필요할 때는 직접 누에를 치고 농사를 지어 제 식솔들을 먹여 살렸다.
자식에게 진솔하게 마음을 열고 친구처럼, 때로는 스승처럼 다가갔다. 그들의 그런 삶은 그 자체로 자식들에게 삶의 모범이 되었다. 백성들도 제 자식처럼 돌보며 배움의 길을 열어주고 그들로부터 존경 받았던 조선 시대의 아버지들의 이야기가 가득 담겨 있었다. 가화만사성(家和萬事成)이라는 사자성어가 새삼 마음에 깊이 와 새겨지는 책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