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죄와 망언 사이에서
카또오 노리히로 / 창비 / 1998년 10월
평점 :
품절


 

이 책의 제목은 ‘사죄와 망언 사이에서’ 이다. 제목을 보고 한국 사람이 한국의 입장에서, 2차 대전 이후 끊임없이 반복되는 일본의 사죄와 망언에 대해 비판한 책일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런데 저자는 ‘카또오 노리히로’ 일본 사람이었다. 과연 ‘카또오 노리히로‘ 라는 일본 사람이 어떤 시각으로 일본의 사죄와 망언을 바라봤을지 궁금해졌다. 아마도 저자가 일본인이므로 어쩌면 한국에 대한 일본의 사죄와 망언을 옹호하며 억지 논리가 난무하는 책일 지도 모른다는 생각으로 책을 읽기 시작했다.


하지만 내가 생각했던 것과는 달리 저자인 ‘카또오 노리히로’ 는 서문에서부터 ‘자기 비평’ 이라는 단어를 여러 번 언급했다. 그렇다. 이 책은 일본인인 저자가 사죄와 망언이 끊임없이 반복되는 전후 일본의 태도에 대해 그 원인을 심층 분석하고, 이를 비평한 ‘자기 비평서’ 이다.


이 책의 내용은 크게 ‘패전후론’, ‘전후후론’, ‘말투의 문제’ 로 나누어져 있다.


패전후론에서는 전쟁 희생자에 대한 추모라는 큰 주제를 가지고 우선 전후에 대해서 정의하고 있다. 저자는 전후란 모든 것이 뒤죽박죽된 ‘거꾸로 된 세상’ 인데, 그것이 어느 누구의 눈에도 ‘거꾸로’ 라고 보이지 않게 되었을 무렵부터 그것을 ‘전후’라고 부른다고 설명한다. 그리고 ‘지킬 박사와 하이드 씨’ 라는 비유를 통해 전후 일본 내의 분열 양상을 설명한다. 일본이 사죄와 애도의 대상으로 2천만 아시아인을 우선시 하고 있지만, 그와 동시에 자국의 3백만 사망자 역시 추모와 애도의 대상으로 삼고 있는 것에 대한 관계가 어떤 관계인지 명시하지 않아왔다는 것이다.


전후후론에서는 전후 일본의 문학과 예술에 대한 서술과 진정한 사죄의 가능성과 그것을 이룰 수 있는 방법에 대한 고찰이 이루어진다.


말투의 문제에서는 패전후론에서 언급한 인격분열의 극복에 대해서 공동적인 것으로서 존재하는 죽은 자들과의 관계를 공공적인 것으로 변화시키는 것이 인격분열의 극복을 의미한다고 설명한다. 또 세계 전쟁 이후 패전의 의미는 변하여 제 2차 세계대전에서의 패전은 거꾸로 죽은 자와 공동적이고자 하면 국민의 분열시키게 되는 계기가 된다고 말한다.


책의 내용이 어려워 이해하고 정리하는기에 매우 어려운 점이 많았다. 하지만 내가 이 책을 통해 알고자 하였던 것은 어느 정도 이해가 된 듯하다. 그것을 정리하자면 다음과 같다.

2차 세계 대전이 끝나고, 한국에 대한 일본의 태도는 사죄와 그에 이어지는 망언의 연속이었다. 전쟁 중 식민지 지배로 끼친 피해에 대해 일왕이나 수상이 우리 국민과 정부를 향해 사죄를 하지만, 곧이어 각료들과 중진 정치인들의 망언이 이어져왔다. 그로 인해 우리는 일본의 사죄보다는 그에 뒤이어 나오는 망언을 주목하게 되고, 그에 분노했다. 그렇다면 어째서 이런 일이 계속해서 반복되는 것일까?


저자는 그 원인을 크게 두 가지로 분석하고 있다.


첫째로, 전후 일본에 피침략국인들의 규탄을 받아들일 주체가 없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일본은 전쟁 중 일본의 식민지 지배로 피해를 끼친 것을 있는 그대로 인정을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사죄를 하기 위해서는 우선 전제가 되어야하는 것이 자신들이 잘못을 인정하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일본의 사죄에는 ‘인정’ 이 빠져있다는 것이다.

 

둘째로, 일본 내 혁신파와 보수파가 ‘지킬 박사와 하이드 씨’처럼 공존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하였다. 저자는 일본의 계속되는 혁신파의 사죄와 보수파의 망언의 관계를 설명할 때,  혁신파의 사죄 발언에도 불구하고 보수파의 망언이 나온 것이 아니라, 혁신파의 사죄 발언 때문에 보수파의 망언이 나온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책을 통해 지금껏 일본에서의 사죄와 망언이 그토록 끊임없이 반복될 수 있던 배경을 이제야 알게 되었고, 그에 대한 일본인이 고찰한 해결방법에 대해서 알게 되어 새롭고 뜻 깊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뜻 깊었던 것은 이 책을 읽으면서도 온전히 내용을 이해할 수 없음을 느끼며 나의 무지를 다시 한 번 깨닫게 된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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