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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의미의 축제
밀란 쿤데라 지음, 방미경 옮김 / 민음사 / 2014년 7월
평점 :
절판
"하찮고 의미 없다는 것은 말입니다, 존재의 본질이예요. 언제 어디에서나 우리와 함께 있어요. 심지어 아무도 그걸 보려 하지 않는 곳에도, 그러니까 공포 속에도, 참혹한 전투 속에도, 최악의 불행 속에도 말이에요. 그렇게 극적인 상황에서 그걸 인정하려면, 그리고 그걸 무의미라는 이름 그대로 부르려면 대체로 용기가 필요하죠. 하지만 단지 그것을 인정하는 것만이 문제가 아니고, 사랑해야 해요, 사랑하는 법을 배워야 해요. 여기, 이 공원에, 우리 앞에, 무의미는 절대적으로 명백하게, 절대적으로 무구하게, 절대적으로 아름답게 존재하고 있어요."(147쪽)
삶에서 맞닥뜨리는 대부분의 고통은 의미를 찾으려는 과정 혹은 의지를 발휘하려는 순간에 발생하는 것 같다. 학창시절 우리는 삶의 목표를 분명히 해야한다고 교육받았고, 자유의지는 인간이 가진 특별한 권리라고 배웠다. 그러나 우리는 의미를 찾기 위해 이 세상에 내던져진 것이 아니다. 이건 삶을 아무렇게나 살아도 된다는 말이 아니라, 무의미하다고 해서 존재의 이유가 없어지지 않는다는 말이다. 또한 우리가 자유의지를 발휘할 수 있는 것은 대부분 쓸데없는 것들에만 관련되어 있다. 성별, 시대, 나라, 부모 심지어 태어날지 말지의 중요한 결정권은 우리에게 없었다. 그러니 인간의 자유의지를 강조하면서 뭐든 할 수 있다는 식으로 몰아간다면 그건 인간을 고통스럽게 할 뿐이다.
이런 맥락에서, 쿤데라의 <무의미의 축제>는 우리가 무의미한 존재임을 적극적으로 인정해주는 소설이다. 그는 이번 소설에서 독자 스스로가 무의미한 존재임을 인정하고 무의미를 사랑할 수 있도록 돕는다. 그의 대표작,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을 생각하면서 이 작품을 읽는 독자들은 좀 실망할지도 모르겠다. 확실히 이 소설은 그의 전작들만큼 치밀하고 철저한 계산 하에 쓰였다는 느낌은 없다. 그래서 한번 잡으면 멈출 수 없었던 그의 전작만큼 재미있지는 않다. 장면들이 나열된 소설이라서 탄탄한 스토리나 긴장감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개인적으로 이 소설은 작가가 힘을 아주 빼고 썼을 거라고 짐작하는데, 그건 작가가 무의미를 이야기하고 있기 때문인 것 같기도 하다. 의도적으로 좀 더 느슨하고 여백이 많게 쓴 소설이랄까. 그래서인지 두세번 반복해서 읽을 수록 더 좋았던 소설이었다. 하나의 등장인물이 뭔가를 하는 동안 다른 인물들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를 보여주면서 나중엔 그 모든 인물들을 한데 생각해보게 하는 서술방식이나 화자의 방에 붙어있는 사진 속 어머니와 대화하는 기법도 재미가 있었다.
사과쟁이(잘못하지 않은 일에서도 늘 미안하다고 먼저 말하는 사람)에 대한 이야기나 알랭이 자신의 예술적인 재능을 무시하고 돈을 버는 일을 선택함으로써 가끔씩 자주 마실 수 있게 된 비싼 술을 여왕처럼 모셔놓는 장면 등 좋았던 장면이 많았지만 내가 특히 좋아하는 장면은 한 여자가 차에서 나오는 장면이다.
원치 않은 아이를 임신한 그녀는 차에서 나와 문을 잠그지도 않고 대충 닫고는 밖으로 나와 다리 한 가운데에서 몸을 던진다. 한참 뒤, 수영에 능숙한 탓에 죽고자 하는 의지를 거슬러 자꾸만 자동적으로 반응하는 몸이 있고 "그만하세요"라는 누군가의 외침이 들린다. 결국 그녀는 자신을 구하러 온 누군가 위에 누워 그를 살해한다. 그러나 자신의 죽음을 방해하던 남자가 없어졌는데도 그녀는 죽지 못하고 차로 돌아온다. 죽으러 갔다가 누군가를 죽이고 다시 삶을 찾아 돌아온 여자. 죽고자 하는 것도 마음대로 할 수 없는 삶에 대해 이야기하는 듯하면서도 삶을 향한 인간의 의지를 보여주는 장면 같아서 서글프고 슬펐다.
이 장면을 통해서도 알 수 있듯, 우리는 어떤 의미를 계획하며 만들어진 존재가 아니다. 최초의 인간인 아담과 하와 역시 신의 좋은 기분 때문에 만들어졌을 뿐이니까. 그러니 의미를 찾아내야 한다고 스스로를 괴롭힐 필요는 없을 것 같다. 누구도 제 의지로 이곳에 와 있지는 않다. 우리는 무의미하게 내던져진 무의미한 존재들이다. 그렇기 때문에 무의미한 모든 것들을 사랑하면서 삶을 축제처럼 살아가는 것, 그것이 의미를 찾으려는 몸부림보다 우선시되어야 하지 않을까.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