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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목가 1 (무선)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117
필립 로스 지음, 정영목 옮김 / 문학동네 / 201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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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다는 것은 사람들을 오해하는 것이고, 오해하고 오해하고 또 오해하다가, 신중하게 다시 생각해본 뒤에 또 오해하는 것이다. 그렇게 하면서 우리는 우리가 살아 있다는 것을 안다. 우리가 틀렸다는 것을 알면서. (62쪽)

 

  아주 오랜만에, 새벽을 관통하면서 책을 읽었다. 자세를 요리조리 바꿔가면서, 점점 무거워지는 눈에게 '조금만 더' 버텨달라고 부탁하면서 결말까지 쉬지 못하고 읽었다. 필립 로스는 워낙 유명한 작가였지만, 나는 <미국의 목가>를 통해 그의 명성을 실제로 접했다.

  이 작품의 주인공은 스위드이다. 그는 유명한 운동선수였고 아쉬울 것이 없는 남자였다. 그의 아버지와 할아버지는 모두 유대인으로, 미국에서 장갑사업을 하면서 정착했다. 스위드 역시 운동을 그만두고 아버지의 바람대로 가죽을 무두질하고 장갑을 만드는 법을 배우며 훌륭한 사업가로 성장한다. 그의 아버지가 그랬던 것처럼 아버지의 권위와 지침을 받아들이고, 아버지가 사랑한 것들을 사랑하면서 비슷한 생각을 갖고 같은 말을 쓰면서 완벽하게 아버지를 복제해낸다. 그의 아버지가 그랬던 것처럼.

 그러나 그는 딱 한번 아버지의 뜻에 반하게 되는데, 미스 뉴저지 출신의 카톨릭교를 믿는 돈 드와이어와 결혼을 하게 된 것이 그것이다. 스위드와 돈 사이에서 태어난 딸 메리, 이 아이 때문에 사건은 아주 재미있게 전개된다. 지금껏 아버지의 가치와 신념을 전적으로 흡수해온 자녀들의 모습과 달리, 메리라는 아이는 아버지의 완벽하게 다듬어진 형상이길 거부한다. 그의 아버지가 노동자를 착취하는 더러운 자본가라고 비난하고, 전쟁에 반대하면서 '미국'이라는 나라를 부정한다. 그럼에도 스위드는 부드러운 집요함으로 아이를 이해하려고 시도하지만 메리는 우체국을 폭파하고 전쟁에 찬성하는 사람을 죽이는 폭파범이 된다.

 지금껏 '사는 게 왜 요 모양 요 꼴?'이라는 질문과 단 한번도 마주하지 않았던 한 남자의 일생이 뒤틀리기 시작하면서 이야기는 탄력을 받는다. 이해할 수 없는 일이 벌어지자 그는 끝없이 자기검열을 하거나 자신의 품위를 지키기 위해 모든 수치를 떠안으면서 일상적인 생활을 유지한다. <위대한 게츠비>의 게츠비처럼, 스위드는 자신이 생각하는 자신의 모습에 취해서 메리를 이해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그는 결코 '이해'라는 단어의 가장자리에도 닿지 못한다. 사실 이 소설 속에서 타인을 '이해'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스위드가 자신의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를 책으로 쓰고 싶다고 연락한 고교 후배인 스킵도 그가 말하려는 것이 무엇인지 몰랐고, 스위드의 동생 제리는 메리를 '좆같은 아이'라고 부르며 데려와서 가두거나 괴물이라고 생각해버리고 신경을 꺼야 한다고 말한다. 스위드의 부인인 돈은 다른 남자와 불륜을 저지르고, 메리의 심리치료사였던 실라 역시 메리를 이해한 것 같지 않다.

 심지어 그들 모두는 타인의 속도 모르고 자신도 잘 몰랐다. "이게 나요! 이게 나요!"라고 외치고 있지만 "이건 내가 아니오!"라고 말하는 것이 더 어울릴 만한 모습으로 살고 있다. 이 소설은 여러 방향으로 읽힐 수 있겠지만(미국에 정착한 유대인에 대한 이야기이거나 전쟁과 미국에 반대하는 내용의 이야기) 나는 스위드의 감정과 행동에 집중해서 이야기를 읽어나갔다. 그 결과, 나는 필립 로스가 한 인간이 다른 인간을 '이해'한다는 것이 얼마나 불가능하고 슬픈 일인지를 그려내려 했다고 짐작했다.

 일찍이 시작된 메리와의 사소한 의견대립에서 스위드가 얼마나 큰 인내심을 가지고 그녀와 대화를 하는지, 폭파 이후 실종된 메리를 찾기 위해 얼마나 애를 쓰는지, 마침내 만나게 된 딸에게 진실을 듣고 싶어서, 그녀를 이해해주고 싶어서 얼마나 애를 쓰는지를 읽다보면 그의 노력이 너무 처절해서 슬퍼진다. 그리고 결국에는 '이해'보다는 '오해'가 오히려 자연스러울 수 있음을 받아들이게 된다.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도 알기 힘든 인간이 타인의 마음을 읽고 그를 '이해'할 수 있다는 막연한 믿음 자체가 얼마나 위험한지 보여주는 소설 같다. 비록 그것이 내가 낳은 자식이라고 해도, 나를 낳아준 부모라고 해도 우리는 결코 '이해'에 닿을 수 없다고 비웃듯이 말하고 있는 필립 로스. 그의 냉소적이고 정확한 시각, 그리고 섬세한 묘사(장갑을 만들기 위해 가죽을 무두질하고 바느질하는 장면을 묘사한 부분은 정말 압권이다) 는 이 작가를 최고의 작가로 꼽는데 주저할 수 없게 한다. 전혀 목가적이지 않은 내용과 결말로 치닫는 소설의 마지막장을 덮으면서 비로소 이 반의적인 제목도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또한 표지사진도 참 센스 있다고 느꼈다. (미국의 한 대가족사진 같은데 윗부분이 불에 타고 있는 사진이다) 아주 오랜만에, 즐거운 독서경험이었다. 인간을 '이해'할 수 없다는 내용은 참 서글프지만. 그래도 이 서글픈 사실이 우리의 삶을 증명한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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