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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무관심을 증오한다 - 그람시 산문선
안토니오 그람시 지음, 김종법 옮김 / 바다출판사 / 201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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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슬라보예 지젝의 새로운 계급투쟁과 안토니오 그람시의 나는 무관심을 증오한다를 같은 시기에 읽게 되었다. 새로운 계급투쟁은 글이 가진 논리 자체의 힘 보다는 슬라보예 지젝이라는 이름이 갖고 있는 힘에 상대적으로 매력을 많이 느꼈다. 상대적으로 나는 무관심을 증오한다는 저자에 대한 사전 정보가 전혀 없기도 했지만 글이 가진 매력에 흠뻑 젖을 수 있었다.

 

왜 그랬을까 생각을 해보니 전자는 세계적인 문제지만 나 자신의 문제라고는 인식하기 어려운 난민문제와 테러의 위험성에 대한 이야기를 다루고 있지만, 후자는 파시즘 정권 하에서 극심한 이데올로기적 대립을 겪고 있는 제1차 세계대전을 통과하는 이탈리아의 이야기를 다루는데 이런 시대적 배경이 상대적으로 공감을 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21세기에 제1차 세계대전의 시대적 배경이 공감 된다는 것이 어불성설처럼 느껴질 수 있겠지만, 현재 대한민국의 국가분위기를 생각해본다면 고개를 끄덕이는 이들이 많을 것이라 생각된다.

 

아마 책 속에서 소개한 철학자 크로체의 말처럼 역사가 갖고 있는 동시대성을 마주했기 때문일 것이다. 과거의 이야기 속에서 마주하게 되는 현실성은 우리의 삶에 다양한 가르침을 준다. 따라서 역사는 숙고의 대상이 되어야 한다. 현대 대한민국은 북한의 핵무장으로 전쟁에 대한 위험성은 더욱 높아지고 있으며, 유신정권 시대를 떠올리게 하는 박근혜 정부의 행동들은 국민들을 극심한 좌우대립으로 몰아가고 있으며, 세계적 추세의 경제위기는 많은 이들을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 속으로 빠트리고 있다. 100년 전 세계대전 속 이탈리아와 크게 다르지 않은 모습을 우리는 발견할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안토니오 그람시가 서술해놓은 에세이들은 다시 한 번 재조명을 해 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언제나 사회에 공포를 조성하는 자들이 있으며, 자신들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이끌어나가는 세력들이 존재해왔다. 어쩌면 이런 이들에게 맞서기 위해서 역사는 끊임없이 쓰여 왔으며, 지금도 쓰여지고 있다. 지젝은 다양한 문제가 곧 나 자신의 문제임을 깨달으라는 이타를 넘어선 곳에 존재하는 이기심의 문제인식을 요구합니다. 그람시는 세이렌의 소리를 듣고도 바닷속으로 가라앉지도 않고 노래를 들으면서도 유유히 통과할 수 있는, 스스로를 견고하게 방어하고자 하는 율리시스가 되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두 석학의 이야기에서 공통적으로 발견할 수 있는 것은 조직적 움직임 이전에 개인의 각성을 중요하게 바라봅니다. 혈기왕성하던 20대 시절 이런 결론을 마주하면 너 자신이 네가 세상에서 보기 원했던 변화가 되어라는 간디의 좌우명처럼 그렇게 되길 꿈꿨습니다. 그러다 가정을 꾸리고 자식을 키우면서 사회구성원의 일원으로 살아가고 있는 30대가 되자, 삶의 현실이라는 무게를 버티고 이겨내기조차 버거운 이들에게 너무 가혹한 의지를 요구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비애를 느끼게 됩니다. 사람은 자신이 감당할 수 없는 현실 앞에서는 좌절해버리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책을 꾸준히 읽는 이유는 몰라서 겪게 될 억울함이 더욱 견디기 힘들기 때문이며, 아직은 너 자신이 네가 세상에서 보기 원했던 변화가 되어라는 행동을 미약하지만 이어나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포기하지 않는 개인의 힘을 믿고싶은 이라면 그람시의 글을 일독하시길 권유합니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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