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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불안과 함께 살아간다 - 희망과 회복력을 되찾기 위한 어느 불안증 환자의 지적 여정
스콧 스토셀 지음, 홍한별 옮김 / 반비 / 201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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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불안장애'가 대중에게 다가오고 있다.

'4대천왕’ 정형돈이 ‘불안장애’로 인해 모든 방송에서 하차를 선언했다. 이 기사를 접하자 나는 김장훈, 김구라가 겪는 것으로 알려진 ‘공황장애’가 생각났다. 둘 다 방송 활동을 하면서 가지게 된 대표적인 ‘연예인 병’이지만, 이 두 병명을 바라보는 대중의 시선은 크게 차이가 난다. 연예인과 같은 공인들만 겪을 것 같은 ‘공황장애’와는 달리 ‘불안장애’라는 것은 일상 속에서 우리 역시 다양하게 경험하고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겉으로 드러낼 수 없고, 표현하지 않은 채 곪아있던 무언가가 터져 나온 것 같은 느낌이다.

 

2. 과연 불안이란 무엇일까?

책에 의하면 공식적으로 불안(anxiety)이라는 명칭을 사용한 것은 채 100년이 되지 않는다. 영어로 된 표준 심리학·의학 교재에서 1930년대 이전에는 ‘불안’이라는 단어가 거의 쓰이지 않다가 지그문트 프로이트가 사용한 독일어 Angst가 anxiety로 번역되면서 나타나기 시작했다.

 

쇠렌 키르케고르는 ‘뚜렷하고 분명한 원인이 없는, 모호하지만 떨쳐버릴 수 없는 불편함’, 정신의학자 로버트 제이 리프턴은 ‘자아의 생명력에 위협을 느낄 때 혹은 자아 분열을 예상하여 생겨나는 불길한 느낌’이라 표현하며 정신적·철학적 문제로 바라보았다. 냉전시대 신학자 라인홀드 니부어는 ‘죄의 내적 전제조건, 유혹의 상태를 내적으로 기술한 것’과 같은 종교적 개념으로 생각했으며, 의사들은 히포크라테스와 갈레노스부터 죽 병적 불안은 분명하게 의학적인 문제라고 주장했다. 이렇듯 불안의 정의에 관해서조차 의견이 모이지 않음에도 우린 다양한 불안에 관해 이야기한다.


 

3. 불안은 어디서 오는 것일까?

<병적 불안은 히포크라테스와 아리스토텔레스, 현대 약학자들의 생각처럼 의학적 질환인가?아니면 플라톤과 스피노자, 인지행동 치료사들 생각처럼 철학적 문제인가? 프로이트와 그 추종자들이 생각하듯 어린 시절의 트라우마와 성적 억압에서 비롯된 심리적인 문제인가? 혹은 쇠렌 키르케고르와 실존주의자들의 주장처럼 정신적인 병인가? 아니면 W.H. 오든, 데이비스 리스먼, 에리히 프롬, 알베르 카뮈, 또 무수히 많은 현대 사상가들이 선언했듯 문화적인 병인 동시에 우리가 사는 시대와 사회 구조의 한 기능인 것일까?>

 

이 책이 담고 있는 내용은 위의 한 문장으로 정리할 수 있다. 불안에 관한 ‘종합백과사전’이라 볼 수 있다. 어느 한 가지 주장에 힘을 보태지 않고, 불안의 원인에 대해서 자신의 경험과 비추어 소개하고 있다. 즉, 불안은 생물학적 기능인 동시에 철학적인 기능이기도 하고, 육체와 정신, 본능과 이성, 개성과 문화 모두와 관련이 있는 것이다. 비록 시대에 따라 중점적으로 바라보는 시선이 다르긴 하지만.


 

4. ‘불안’은 현대인의 병?

사실 30년 전만 해도 불안이라는 병명은 존재하지 않았다고 한다. 1950년 이전에는 불안을 책 한권 분량으로 다룬 사람도 쇠렌 키르케고르와 지그문트 프로이트 두 사람 밖에 없었다고 한다. 하지만 1980년 불안을 치료하는 약물이 개발되어 시장에 나왔을 때야 비로소 ‘불안장애’가 미국 정신의학회의 『정신질환의 진단 및 통계편람』에 들어가게 되었다고 한다. 그 이전까지는 편람에 프로이트 식 “신경증”이라고 되어 있었다. 그러니까 불안 치료약이 발견되었기 때문에 불안이 진단 범주로 탄생했다고 할 수 있다. 즉, 치료가 진단을 앞선 것이다. 이런 단적인 예를 정신질환 통계편람 편찬위원회 소속 위원 몇몇이 식사를 하며 나눈 이야기에서 발견할 수 있다.


‘공황장애가 탄생했다. 그리고 와인이 몇 순배 더 돌았고, 테이블에 둘러앉은 정신의학자들이 공황 발작을 일으키지 않지만 항상 걱정을 놓지 않는 동료 이야기를 했다. 그 사람은 뭘로 분류해야 할까? 그 사람은 뭐랄까 범사에 불안해하거든. 아, 그러면 ’범불안장애‘라고 하는 게 어때? 그러고는 와인 한 병을 더 주문해 새로운 병의 이름을 붙인 것을 자축했다. 그 뒤로 30년 동안 전 세계 연구자들은 범불안장애에 관한 자료를 모으게 된다.’

 

5. 약의 개발과 함께하는 정신약리학

‘약물의 발견은 정신병과 인간 본성에 관한 생각에 충격적인 영향을 미쳤다. 우리의 성격, 지성, 문화 자체를 한 자루의 효소로 축소할 수 있게 된 것이다.’ - 에드워드 쇼터, 『프로작 이전』(2009) 

 

개인적으로 가장 흥미로웠던 분야는 「3부. 약물」챕터였다. 이 장에서는 어떻게 약이 새로운 병을 만들어내게 되었는지 그 역사를 살펴볼 수 있게 된다. 1920년대 이전에는 우울증 진단을 받은 사람이 단 한명도 없었다. 1950년대 이전에는 콕 집어 불안증이라는 진단을 받은 사람이 없었다. 이것이 1950년대 이전에는 오늘날 우리가 생각하는 개념으로 ‘불안’하거나 ‘우울’한 사람이 없었다는 뜻은 아니다. 그렇지만 지난 세기 중반에 이런 정서적 상태를 완화하기 위한 새로운 약물이 조제되었을 때에서야 그런 상태가 오늘날 우리가 생각하는 것과 같은 ‘병’으로 규정된 것이다. 정신과 약물 등장을 “인류 역사에서 원자폭탄 개발보다도 더 중요한 사건”이라 표현하기도 한다.

 

하지만 결과적으론 우울증을 낫게 해준다는 최첨단 약이 어느 때보다 많은 이 시대에, 우울증 발병률이 1000배로 폭증했다. 제약회사가 존재하는 이상 우리는 다양한 병으로부터 벗어날 수 없는 삶을 살 게 된 것이다.

 

6. 불안의 시대

이 시대를 한마디로 정의하자면 <불안의 시대>라 할 수도 있겠다. 세계적으로는 IS에 의한 테러의 위험이, 국가적으로는 유일한 분단국가로서 전쟁의 위험이, 개인적으로는 지속적으로 이어지고 있는 경제불황 속에서 직장과 직업에 대한 불안함 등 다양한 불안요소로부터 우린 자유롭지 못 하다. 해가 지고나면 달이 뜰 것이며, 달이 지고나면 또 다시 해가 뜰 것이라는 하루의 반복은 인류가 처음으로 적응한 불안일지도 모른다. 반복된다는 것은 예측할 수 있다는 것이며, 예측할 수 있다는 것은 우리를 한 가지 불안으로부터 벗어나게 도와준다.

 


세상이 바뀌지 않으리라는 생각은 기운 빠지게 하기도 하지만 한편으로 편안함을 주기도 한다. 이런 생각과 판단의 극단에서 우리는 나치의 등장과 그들에게 자발적으로 복종한 독일 노동자들을 바라볼 수도 있다. 틸리히는 1930년대 독일 정세를 이렇게 묘사했다. “경제적·정치적 안정뿐 아니라 문화적·종교적 토대로 사라진 듯했다. 기반으로 삼을 만한 것이 없었다. 언제라도 파국적 붕괴가 일어날 듯했다. 결과적으로 모든 사람들이 안정을 갈구하게 되었다. 두려움과 불안을 가져오는 자유는 매력을 잃었다. 두려움을 수반하는 자유보다는 안정을 주는 권위가 낫게 여겨졌다.” 우린 이 발언을 통해서 복지가 더욱 필요한 저소득층에서 보수세력에 대한 지지율이 더욱 높게 나타나는 역설적인 심리를 이해할 수 있게 된다. 불안으로부터 벗어나고자 하는 절박함이 사람들을 정치적 권위주의에 매달리게 만드는 것이다.

 

 

 

 

 

 


7. 아쉬운 마무리


이 책을 쓴 저자 ‘스콧 스토셀’은 워싱턴에서 거주하며 잡지를 만드는 사람이다. 그는 평생동안 불안증세에 시달리고 있으며, 다양한 치료법을 동원해서 불안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한 노력을 해왔다. 책 속에서 만날 수 있는 ‘적당히 불안해하는 법을 배우는 것. 나도 노력하는 중이다. 이 책은 그 노력의 일부다.’라는 말처럼, 그는 불안에 머물기보다는 끊임없는 노력을 해왔고, 지금도 하고 있는 상황이다. 그 결과로 어마어마한 양의 불안과 심리에 관한 책, 논문, 역사적 사건들을 뒤적일 수 있었고, 이렇게 두꺼운 한 권의 책으로 완성하게 되었다.

 


아쉽지만 이 책을 통해서 우리가 얻을 수 있는 것은 ‘내가 느끼고 있는 불안증세가 나에게만 있는 것이 아니구나.’와 같은 류의 작은 위로이다. 불안이 당최 어디서 오는 것이며, 어떻게 해결할 수 있는지와 같은 명제도 얻을 수 없다. 이유도 알 수 없으며, 해결책도 찾을 수 없는 그런 책을 우린 왜 읽어야 하는지 굳이 묻는다면, 제목에서 답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한다.

 

 


‘나는 불안과 함께 살아간다.’ 해결할 수 없다면, 그것과 함께 살아가는 방법이라도 찾아야 한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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