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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서 살 것인가 - 우리가 살고 싶은 곳의 기준을 바꾸다
유현준 지음 / 을유문화사 / 2018년 5월
평점 :
'건축에서 우리가 사용하는 것은 무기질 재료 부분이 아닌, 그 부분을 제외한 빈 공간이다.'
유현준 교수의 전작 <도시는 무엇으로 사는가>라는 책에도 이와 비슷한 맥락의 문장이 나온다. 우리는 흔히들 건축물을 이약기 할 때 마감재의 성능이나 외관의 화려함, 탑재된 기능들만을 논한다. 정작 사용하는 건 비싼 마감재도, 화려한 외관도 그렇다고 눈이 휘둥그레지는 기능들도 아닌 비어있는 보이드(공간) 뿐인데 말이다.
너무도 당연한 사실이기에 저절로 '그래서?' 라는 말이 나올 수 도 있다. 그런데 다시 한 번 생각해 보면, 우리는 너무나도 당연한 이 사실을 직접 문장으로 마주하기 전까지는 인식하지 못하고 있지 않았던가? 너무나도 당연하지만 인식하기 힘든 것, 저자는 건축물을, 도시를 통해 이 사실들을 전한다.
전작 <도시는 무엇으로 사는가> 라는 책을 빼고 본 책에 대해서 설명하는 건 어려운 일이다. 전작이 '도시'라는 너무나도 방대한 인간 삶의 단위를 살아 움직이는 유기체라는 관점으로 기술했다면 <어디서 살 것인가> 는 도시를 이루는 건축물들에 대해 기술했기 때문이다. 도시라는 생물체의 겉을 구석구석 관찰한게 전작 <도시는 무엇으로 사는가?> 였다면 <어디서 살 것인가는> 그 생물체의 부위부위를 잘 분리해서 현미경으로 세밀하게 본 해부도감 같은 느낌이다.
이 책이 단순히 해부도감에서 그쳤다면 책에 대해 이야기할 거리가 별로 없었을지도 모른다. 의견은 들어가지 않고 그저 사실만을 기술한 도감에는 의견을 나눌 건덕지가 없으니 말이다. 그러나 이 책은 도감이 아니다. 어디까지 개개인의 의견이 듬뿍 들어간 책이다. 그렇기에 타인이 느끼기에는 아쉬운 부분도 분명 존재한다.
우선적으로 너무나도 이상적인 주장을 펼친다는 점. 1장에서 저자는 학교 건축물의 한계를 지적하고 개선된 학교 건축물에 대해 설명한 뒤 이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현실에 굉장히 안타까워하는 모습을 보인다. 그리고는 교육의 발전을 위해서는 학교의 건축형태부터 바꿔야 한다는 의견을 내세운다. 우선순위가 잘못되어도 한참이나 잘못 된 의견이다.
학교 건축물이 바뀌지 않는 이유가 무엇일까? 왜 대다수의 사람들은 저자의 의견을 지지하지 않는 것일까? 사람들의 의식 자체가 따라가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각형의 폐쇄적인 학교는 분명 학생들의 삶에 도움이 돼지 않는 건물일테다. 그러나 지금도 학교는 사각형으로 지어지고 있다. 그 이유는 단 하나, 공부가 되기 때문이다. 기존의 학교들을 사람들이 지지하는 이유는 성적향상이라는 단 하나 뿐이다. 그러니 저자의 의견이 받아들여지려면 성적지상주의인 사람들의 의식부터 바꾸어야 하지 않을까?
책 곳곳에는 이런 식으로 '와, 이런게 만들어졌으면 좋겠다...' 같은 건축물들에 대한 저자의 깊은 고찰이 담긴 결과물들이 자리한다. 그러나 동시에 너무나도 이상적이기만 한게 아닐까 라는 느낌을 지우기 힘든것도 사실이다. 저자가 조금만 더 한국이라는 특수한 현실에 맞는 케이스에 맞게 생각해 주었으면 어땠을까 라는 아쉬움이 남는다.
저자는 책을 통해 사람들이 건축물 자체에 초점을 맞추기보단 건축물들이, 그리고 그 공간들이 이루어 낼 삶의 모습에 초점을 맞추고자 이 책을 썼다 말한다.
저자의 의도처럼 이 책은 건축물에 대한 책이라기보단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라는 의문을 건축물이란 소재를 통해 털어놓은 인문학 책이라 칭하는게 좋을 듯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