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걷는다 세트 - 전3권 나는 걷는다
베르나르 올리비에 지음, 고정아 옮김 / 효형출판 / 2004년 1월
평점 :
절판


다양한 동양문화와 문물에 관심을 가진 다혈질 사나이의 여행견문록이라고 생각하면 큰 오산이다.

이 책은 그냥 여행서적으로 분류할 수 없는, 철학에세이에 가깝기 때문이다. 살아 있으면서도 생의 의미와 가치를 잃은 채 텅 빈 자신의 시간표를 통째로 다시 써 내려가고 있기 때문이다. 알록달록한 상표가 큼직한 아웃도어를 세트로 걸친 채 발걸음도 힘찬 것과는 거리가 먼, 삶의 고뇌와 먼지가 묻어 있는 다소 무거우면서도 꾀죄죄한 옷차림으로 삶의 의미를 찾아 떠나는 여행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특이한 체질의 저자의 행적에 웃음이 나온다. 보통 사람들이라면 시간을 단축시킬 이동수간을 선택하느라 돈을 아끼질 않을 텐데 퇴직 이후 시안이 어디라고 실크로드를 찾아 걷는 것일까! 정말 대단한 기인이거나 도를 닦는 수도자 급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1편에서 보여준 것처럼 여가를 위해서 걷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호기심과 궁금증을 만족시키고 싶어서였다.

 

그런데 한 편 그의 순탄치 않았던 인생이 그를 생각하는 사람, 그러니까 직립보행을 하며 생각이라는 것을 하게 만드는 진정한 인간이 될 수 있게 한 자양분이 아닐까란 생각이 스쳐지나갔다. 인생이 마냥 순탄하게 자신과 주변의 풍요로움과 끈끈한 관계 속에서 지속된다는 가정하에서는 빠르게 통과하거나 지나칠 수 있는 거리를 걸어서, 그것도 예순이 넘은 노인의 걸음으로 그리 성실하게 걸을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저자가 이 책 나는 걷는다의 시리즈를 통해서 말하고자 한 것은 바로 그가 '생각하는 사람'이라는 것이라는 것을 2권에 가서야 깨달을 수 있었다.

 

그 전에는 지나는 곳곳마다 만나게 되는 인종과 문화가 다른 아시아인들의 유목생활을 비롯한 일상생활들을 보기에 바빴다. 저자의 나라에선 기계를 이용하거나 아니면 완제품을 마트에서 구입해서 식생활에 이용하면 될 것을 아직도 100여 년 전의 시간으로 거슬러 생활하고 있는 비문명국의 오지의 사람들을 통해 오히려 자신이 보지 못한 신기한 경험을 하게 된 것을 저자와 함께 나 역시 즐기고 있었던 것이다. 마치 관광을 온 것처럼 여행지만의 독특한 생활문화와 사람들의 풍습 등에 매료되어 저자가 진짜 말하고 싶은 것이 무엇일까란 질문조차 해 보지 않았던 것이다.

 

그런데 여러 고장을 방문하면서 작가의 마인드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 그의 시각은 자신을 집으로 초대한 사람들을 미개하거나 개종을 시키거나 자신이 좀 더 문명국에서 온 것을 젠체하는 것이 전혀 없는...그냥 있는 모습 그대로를 존중하며 수용하는 태도였다. 단 평화롭게 자신의 삶을 지탱하며 열심히 그 생활에 몰두하고 있는 보통의 순박한 사람들 위에 서서 강력한 통제력으로 압제하며 군림하는 질 낮은 그 곳의 정권에 대한 비판은 격렬하다 못해 투사가 된 듯한 느낌이 물씬 풍겼다. 그것이 다만 중동국가의 한 나라에 국한된 것은 아닐 것이다. 정보를 차단한 채 소수의 권력자들이 시키는대로 하게 만드는 그런 공포스럽고 야단스러운 정치수단에 대해 분노를 참지 못한 것이다. 

 

가장 이국적이며 상상을 하게 만든 것은 '사막'을 지날 때였다.

사막은 영화 속에서 간간이 보아오던 것과는 참 많이 달랐다. 그 곳에서는 어떤 안정감이나 평화로운 일상이 없이 생존을 위한 몸부림이 필수코스인 특별한 곳이었다. 옆 사람의 도움이 없이는 코로 숨을 쉬는 것조차 잠을 자는 것조차 안심할 수 없는 곳이라 읽는 동안 외로움과 고독이란 단어가 자주 떠올랐다. 저자의 인생이 바로 이렇게 고독을 알기 때문에 이런 걷기여행을 시작한 것이라는 것도 사막을 읽을 때 깨닫게 되었다. 무서운 자연환경 속에서 오히려 생각을, 그것도 전에는 한 번도 해 보지 못한 깊이 있는 사고를 하게 된다는 사실이 아이러니하게 느껴졌다. 생각하지 않고 단순하게 하루를 살고 싶어 하는 이들은 모두 이런 자신의 사막을 지나고 있는 중일 수도 있겠다란 생각이 들었다.

 

 

그러면서도 마주하게 되는 자연풍경과 사람들, 그리고 순한 눈동자를 굴리며 낯 선 이방인을 쳐다보는 동물들에 대해서는 그냥 시간여행을 하러 온 사람의 눈으로 보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들에겐 싫증나고 지겨운 일상의 노동이 이 벽안의 작가에겐 너무나 신기하고 새롭고 재미있는 체험인 것이다. 그것의 가치를 알고 사진을 찍고 글로써 기록을 해 고국에서 자신처럼 쳇바퀴 열심히 굴리며 살아가는, 이미 삶의 신선함이나 의욕을 잃은 채 시들한 삶을 살아가는 이웃들에게 이런 삶의 현장을 보여주며 세상의 다양성과 아직도 더 탐험해야 할 것들이 무궁무진 하다는 것을 알려 주었다.

 

세상에서 가장 믿고 의지하던 아내를 잃고서 장성한 아이들이 홀로서기를 하기 위해 자신의 곁을 떠나 독립을 하게 됨으로 홀로 남은 남자, 노동력을 상실한 늙은 남자에게 살아야 할 이유가 무엇일까! 그 이유를 찾기 위해 자신의 존재감을 찾기 위해 실로 대단한 결심을 한 걸음 한 걸음 성실한 발걸음으로 옮겼던 남자.이 땅에 베르나도 올리비에와 같이 하루에도 수 없이 자신이 더 살아야 하나 여기에서 끝을 맺어야 하나로 고민하며 불면의 밤을 보내는 사나이들에게 이 책 3권을 손에 잡고 읽는 동안 무엇인가를 분명히 생각하고 깨닫게 되는 기회가 될 것이 분명하다. 자신이 쓸모없게 느껴지는 모든 이들에게 이 책을 꼭 읽어보라고 권하고 싶다. 

 

게다가 걷는 일이 결코 쉽지 않은 것인데 노인의 체력으로 정말 대단히 끈질기게 그 험한, 고독한 길을 즐겁고 평안하게 걷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인생이 뜻대로 되지 않아 아예 누워버리고 싶은 이 시대의 많은 친구들에게 내가 받은 삶의 의욕과 신선함을 나눠 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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