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만스러운 탐정들 1
로베르토 볼라뇨 지음, 우석균 옮김 / 열린책들 / 201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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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명작가의 <천년의 금서>를 읽으면서 한의 역사를 찾아서 떠나게 되는 그 이야기의 첫 부분이 떠오르게 하는 책이다. 그런데 정작 한의 뿌리를 찾아서 드넓은 중국대륙을 종횡무진하게 움직이는 주인공은 역사와는 거리가 아주 먼, 전혀 상관없는 물리학자였는데 그런 그가 무모하리만한 중국탐험을 떠나게 되는 이유가 바로  중국에서 한국사 연구를 하다가 갑자기 죽음을 당하게 된 친구의 살해범을 잡기 위해서였다. 그런 구성이 이 책의 야만스러운 탐정들과 참 많이 닮아 있는데 좀 더 다른 점이라면 스케일이 어마어마하다는 점이다.멕시코시티에서 시작해 파리, 이스라엘, 니카라과, 바르셀로나, 아프리카 등 국경과 대륙을 넘나들며 제시되는 것이 무척 화려하고 역동적으로 느껴졌다.

 

정말 부러운 것은 <레프트 비하인드시리즈>에서 처럼 소설의 배경이 미국과 프랑스, 이스라엘과 중동국가들을 넘나들며 나오는 것이 마치 서울, 전주, 대전,제주을 이동하며 쓰는 것처럼 아주 자연스럽고 쉽다는 것인데 이 야만스런 탐정들은 한국인으로서는 미지의 나라에 가까운 라틴아메리카에서 시작해서 아프리카대륙까지 나오니 작가가 경험한 다양한 문화권에 대한 자산이 부럽고 또 부러울 따름이다.  

 

문학을 기반으로 펼쳐지는 한 여성문인의 행방을 좇아 펼쳐지는 스토리이지만 그 안에서 만나게 되는 사람들과의 에피소드가 너무나 아기자기하며 생동감과 현장감을 느낄 정도로 맛깔스럽다. 단순히 정해진 루트를 따라 공식에 나올법한 그런 인물들이 나오는 것이 아니라 전혀 뜻밖의 인물들, 그 문화권에서 과연 만날 수 있을까 싶을만한 캐리터들이 나오니 그들을 만나는 재미에 푹 빠져 실제 주된 문인의 행방을 찾는 것은 잠시 미뤄두고 여행을 즐기게 되는 맛이 있다. 힘들이지 않고서 이야기를 털뭉치에서 실을 풀어내듯 그렇게 자연스럽고 편안하게 풀어내는 작가의 상상력도 뛰어나지만 어떻게 그런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특별한 에피소드들을 수도 없이 만들어 낼 수 있을까에 더더욱 놀라게 되었다. 짧고도 분명한 대사, 인물들 간의 긴장되지만 그러나 그 안에 기조를 이루는 사람에 대한 호기심과 인간 본성에 대한 기대감 등이 무척 인간미 있는 인물들을 만나게 했다.

 

작가가 문을 열어주는 곳으로 손을 잡고 이동할 때마다 새로운 사건들과 사람들, 그리고 실마리가 될 수 있을 법한 단서들을 한 조각씩 모을 수 있었다. 소설을 이렇게도 짜임새 있고 다양한 색감을 섞어 전혀 새로운 작품으로 만들어 낼 수 있다는 점에 솔직히 겁이 날 정도였다. 이게 정말 소설이 맞나 싶어서이다. 영화를 보는 것 같았다. 한 권을 읽고 있는 느낌이 수시로 여러 나라를 들락거리며 옷차림과 언어, 풍습이 이질적인 수 많은 사람들을 만나면서 몇 페이지 전까지만 해도 내가 누굴 만났었지? 하며 정신을 차릴 수가 없을 정도였기 때문이다. 대단히 빠르고 번쩍이며 집중하지 않으면 금세 다른 장소로 이동해 버리는 통에 한 눈을 팔 수가 없게 만드는 이야기였다. 그리고 또 한 가지, 국내에서는 만나기 어려운(?) 성을 파는 여성들에 대한 이야기가 많은 부분을 차지했는데 그 점이 예사롭지 않았다. 밑바닥 여성들의 삶을 어떻게 그리도 자세히 구체적이며 현실성 있게 알고 있는 것인지가 궁금했다. 그 부류의 여성들과 작가와의 관계는 무엇일까도 궁금해졌다. 그러면서 그 부류의 여성들에 대한 이해, 어떤 면에서는 삶의 치열함을 견디며 살아가는 모습을 처음 접하게 된 것도 사실이다. 그 전에는 그냥 생각이 없거나 쉽게 돈을 벌기 위한 여성들이라고 가볍게 보고 지나쳤는데 그들 역시 한 여성으로서 자신 몫의 인생에 대해 버거운 책임을 감당하며 살아가는 진짜 인간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 안에서 사랑과 꿈과 눈물, 인생을 보았다.    

 

책이 공교롭게도 1권과 2권에 연결되어 끝나기 때문에 2권까지 읽는 것은 기본이다. 결코 만만치 않은 양이지만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스피드하고 재미가 있어서 읽는데 어려움이 없었다. 단지 눈으로 따라가며 작가가 열어주는 문으로 들어가던 모습에서 점점 그 안에서 만나게 되는 인물들에 대해 분석하고 연구하게 되는 비판적인 모습이 생겨나는 것을 보며 웃음이 나왔다. 정말 못된 습관이 아닐 수 없기 때문이다. 소설이 단순히 고만고만한 장소를 이동하며 비슷비슷한 연관된 사람들끼리만 왔다가 갔다가 했다면 얼마나 스토리를 꿰어 주변 친구들에게 입담을 과시할 수 있었겠냐만 이 소설은 차원이 다르다! 절대 스토리를 잘 기억했다가 옆 사람들에게 주절주절 읊어댈 수 있기에는 실로 방대한 스토리가 들어 있고 나오는 캐릭터가 삼국지나 수호지에 버금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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