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객 15 - 돼지고기 열전
허영만 지음 / 김영사 / 200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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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장동 시장에 가 본 기억이 있는데 어려서인지 어머니의 손을 잡고 가서인지 식객에 나온 것처럼 그렇게 ‘살벌한’ 느낌은 남아있지 않았다. 그런데 페이지를 넘길수록 절대 사진을 찍을 수 없고 조선시대의 백정의 후예란 피해의식이 알게 모르게 저변에 깔려 있는 음산한 느낌에 돼지역시 소만큼이나 다루기 힘든 소재란 것을 실감할 수 있었다.


가장 놀란 점은 소를 잡을 때와 돼지를 잡을 때의 차이였다. 소는 도살장에 데려가면 처음에는 죽지 않으려 반항을 하다가 곧 그 순응하며 죽을 줄 알면서도 도살장 안으로 순순히 걸어 들어가는 반면 돼지는 죽는 순간까지‘발악’을 하며 꽥꽥 울어댄다는 것이다. 끝까지 죽음을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런 돼지가 전기충격에 의해 실신을 하게 되면 돼지의 멱을 따서 피를 쏟아낸다는 사실은 놀라움을 지나쳐 이제 제대로 살벌함을 실감하게 되었다.


그 래서 매일 죽음을 대하는 그 도축업자들은 표정도 손가락 마디로 모두 험하게 되어 버릴 수밖에 없는 것 같다. 허영만작가는 자신의 직업을 세상에 드러내길 꺼려하는 그들에 대해 고마움을 갖고 글을 쓴 것 같다. 그 고충을 직접 보며 다소 느꼈기 때문이겠는데 나 역시 삼겹살집에서 1인분에 몇 천 원씩 받는 고깃값에만 관심을 가졌지 돼지의 생목숨을 끊어서 가공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은 까맣게 모르고 지내다가 15권을 보면서 처음으로 그 삶의 애환을 느낄 수 있었다.


73- 순대일기는 가벼우면서도 우리나라의 순대족보를 다 훑은 것 마냥 신이 났다. 어린시절, 어머니가 순대장사를 하는 친구를 기억한다. 그 친구는 늘 말이 없고 자신의 집에도 놀러오지 못하게 할 뿐만 아니라 우리집에 놀라오라는 것도 늘 거절하기 일쑤였다. 참 사교성이 없는 녀석이라 생각해도 하굣길엔 이런저런 얘기를 하며 같이 가던 친구였다. 그런데 그 이유를 나중에서야 알게 되었다. 자신의 몸에서,집안 곳곳에 배여있는 순대냄새를 친구들에게 창피했던 것이었다. 집에서 순대를 직접 만들어 나가 장사를 하던 얼굴도 모르는 그 친구의 어머니와 늘 내성적이었던 그 친구가 오늘 새삼 떠오른다. 

 

 

순대의 역사부터 함경도 아바이순대, 그리고 무엇보다 가끔씩 먹어왔던 ‘당면순대’ 만드는 과정이 어찌나 그림에 피가 튀는지 사실은 보기가 힘들 정도로 리얼했다. 그것도 외국인 노동자의 손으로 만들어지는 공장을 보니 그렇게 뜨끈뜨끈하게 먹음직스럽게 나오는 순대가 모두 이런 공통적인 과정을 거쳐 나온다고 생각하니 좀처럼 입맛이 살아나지 않았다. 모르는 것이 약이라고 가감 없이 실제의 모습을 들여다보니 어째 중국집 주방을 본 것처럼 식욕이 없어져버렸다.


오 래 전부터 먹어 온 음식에 대해 더 특별한 것만 찾고 새로운 퓨전음식을 찾는 것을 아무렇지도 않게 했는데 이제는 점점 우리 고유의 음식이 귀해지고 사라지기 일보직전에 있다는 위기감을 느낄 수 있었다. 시간을 내어 요리를 배우고 싶은 이유가 처음에는 단순히 나중에 사람들이 편안하고 즐겁게 찾는 음식점을 내고 싶은 생각에서였지만 시간이 갈수록 우리 음식은 곧 우리 생명 자체인 것 같다. 사라지기 전에 그 맥을 이어갈 수 있는 방법을 찾아봐야 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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