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객 9 - 홍어를 찾아서
허영만 지음 / 김영사 / 200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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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식객을 읽으면 마음이 너그러워지는 것 같다. 만화라서 시간 때우는 정도, 기분 전환하는 정도가 아니라 이상스럽게도 비판과 정죄로 날카롭게 내가 속해있는 사회와 국가를 보던 눈이 옛 생각과 사람들과의 추억에 젖어 촉촉하게 빛이 나는 것 같다.



9권은 특히 재미있는 내용이 많아서 기억에 오래도록 남는데 41-갓김치와 42-홍어를 찾아서, 43-한과 편이 연속으로 상념에 젖어 내 눈을 쉬지 못하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갓김치는 허영만작가의 고향의 대표음식이라 무엇보다도 관심과 신뢰가 갔던 것은 사실이다. 서울태생이라 늘 배추김치 밖에 모르던 내가 지방에 내려가 사는 동안 라면을 먹을 때 옆방에 살던 후배가 여수 어머니가 부쳐 준 갓김치라며 자랑스럽게 김치를 펼쳐 놓고 먹으라고 권했다. 집 음식이 그립던 나는 후배를 믿고 이상한 풀잎처럼 생긴 그 김치를 먹었는데…….맛이 예상과 전혀 달랐다. 우리집에서 늘 먹어왔던 배추김치보다 훨씬 짜고 젓갈냄새가 상당히 났다. 무엇보다도 매운 맛이 강해 단 맛을 좋아하는 내 입맛엔 김치 없이 라면만 먹는 것이 훨씬 편했다.

 

그런데 서울에 돌아와서는 이상하게도 그 갓김치가 먹고 싶어졌다. 항암효과가 있다는 것뿐만이 아니라 가끔 갓의 맵고 쌉싸름한 맛과 향이 정이 많던 후배의 얼굴과 함께 그리웠던 것 같다. 여수 돌산갓은 매우 귀한 것이라 들었는데 9권에서 보면서 제대로 된 돌산갓김치를 꼭 한 번 먹고 싶어졌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아직 한 번도 여수를 가 본 경험이 없는데 취재일기를 보며 ‘여수’의 바닷바람과 짭짜름한 냄새도 직접 맡으면서 갓김치를 먹고 싶어졌다.




식객은 맛을 찾아 자꾸 돌아다닌다. 나처럼 한 곳에 머물러 있는 것을 죽기보다 싫어하는 사람에겐 딱 좋은 삶인데 그런 면에서 허영만작가가 정말 부럽기 그지없다. 게다가 2년 전부터 꼭 가보고 싶은 국내여행지 1위에 올려놓고 있는 흑산도에 갔다는 것을 42- 홍어를 찾아서를 통해 눈으로 보면서는 부러움이 지나쳐 질투가 날 지경이었다. 그 높은 마을에서 바다를 내려다보는 그림을 한 참을 멍하니 보고 또 보았다. 마음속으로 흑산도의 풍경을 상상해 보았다. 오밀조밀하게 들어선 집들과 전봇대, 그리고 자유롭게 싸다니는 동네 강아지들까지 도시와 달리 숨통이 확 트일 것만 같았다. 홍어와 가오리의 구분법은 참으로 유용했다. 명절 때마다 할아버지께 바칠(?) 홍어를 사느라 아버지와 수산시장을 돌아다녀보면 내 눈에 그게 다 그냥 회색빛 가오리처럼 보였고 그 비싼 홍어를 집에 사 들고 와서 말리는 동안 실로 엄청 대단한 냄새가 나서 상한 홍어를 사 왔다며 어머니께서 무척 구박을 받았기 때문이다.




그림을 여러 번 비교해서 보면서 제대로 배워서 내년 설에는 상인들에게 속지 않고 좋은 홍어를 골라서 할아버지께 드려야지 하는 마음이 들었다. 홍어 중에서도 흑산도홍어를 최고로 친 다는 것은 익히 들은 바지만 그 값이 엄청나게 비싸서 아직 한 번도 흑산도홍어는 본 기억조차 없다. 그런데 그 맛이 다른 홍어가 따라갈 수가 없을 정도로 찰지고 뛰어나다니 흑산도에 가면 기필코 주머니를 털어서라도 부모님께 흑산도홍어의 진수를 보여드리고 싶다. 내가 홍어잡이 배가 7척이나 있다는 흑산도에 가고 싶어하는 것은 단지 홍어 때문만은 아니다. 섬이라서 발전이 덜 된 면도 있지만 바로 그 점 때문이다. 우리나라의 70년대의 모습이 아직도 고스란히 남아 있어서 제주도처럼 인공적인 관광지의 분위기가 아니라 소박하면서 정갈한 마을과 사람들, 맑고 푸른 하늘을 보며 마음까지 정화된다는 그 흑산도에서 참 인간으로서 자연을 만나고 싶어서이다. 물론, 맛집이 많다는 것도 가고 싶게 만드는 이유 중 하나인 것은 분명하다.




43-한과는 마지막 그림을 보며 홍어도 안 먹었는데 코끝이 찡해져버렸다. 노숙인 생활을 하는 실직 가장이 명절에 자신의 아이들과 처 앞에 몰래 정성껏 잣으로 편지를 쓴 한과바구니를 놓고 사라지는 그 모습에서 지금의 경제위기의 한파 속에 갈 곳을 잃은 가장들을 본 것 같아 더 현실 같았다. 2005년 설 무렵에는 그래도 이 보단 나았었는데 지금은 더 추운 것 같다. 설이면 늘 맛있는 한과를 종류별로 조금씩 사 주시던 어머니가 생각이 난다. 우리 음식은 혼자서 우아하게 별미를 즐기는 것이 아니라 가족이 다 함께 모여 먹기에, 그리고 자식의 입에 더 넣어주려 먹고 싶은 것도 참는 어머니가 계시기에 우리 음식엔 항상 가족과 눈물, 사랑이 배여 있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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