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객 5 - 술의 나라
허영만 지음 / 김영사 / 200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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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덕분에 은근히 알딸딸한 기분으로 읽어도 될 만큼 마음까지 풀어져서 기대가 컸는데 첫 번에 나오는 21- 반딧불이를 보고서 망신스럽게도 눈물이 나서 곤혹스러웠다. 만화를 보다가 너무 웃어서 눈물이 난 적은 몇 번 있었어도 진짜 감동을 받아서 목구멍이 따끔따끔해지면서 눈물이 난 것은 머리털 난 후 처음 경험해 보았다. 정말 잘 그렸다! 허영만작가의 그림을 인정하지만 이 정도일 줄은 생각 못했었는데 어떻게 인간의 가장 연약한 몸과 그 몸에 깃든 진하고 큰 사랑을 이토록 애절한 어머니의 눈빛에 담아 표현했을까! 많이 놀랐고 또 당황스러웠다. 이야기가 아닌, 그림을 보고서 더 많이 감동을 받은 것 같다. 저 손짓과 표정, 아들에게 더 가까이 다가가려고 불편한 몸을 이끌고 나오는 어머니의 간절하다 못해 마지막 희망이 담긴 그 눈빛에 내 마음이 움직였다. 그리고 그 시 한 편은 전혀 예상치 못했는데 부모와 자식의 관계를 다시 한 번 생각해 보게 되었다. 나도 그랬었나? 부모님께 먼저 다가갈 때는 꼭 내 필요를 채워달라는 현실적인 이유 때문이었나? 그냥 보고 싶어서 안부가 궁금해서 먼저 연락한 적은 없었나를 따져보았다. 참 부족하고 못난 자식을 그 품에 품어주시고 길러주신 우리 부모님이 보고 싶다.




22- 매생이의 계절은 워낙 tv를 통해서도 잘 알려진 매생이국을 소재로 한 것이라 큰 기대는 안 했는데 성찬과 봉주의 매생이대결의 결말이 압권이었다. 전혀 예상치 못한 것이라 반전의 묘미를 한껏 느낄 수 있었다. 또, 매생이 삽화가 어찌나 사진같이 정밀하던지 그 그림에 자꾸만 눈이 갔다. 어떻게 하면 이런 그림을 그릴 수 있을까? 맛보다도 그 향긋하며 정돈된 여자의 머리처럼 보이는 매생이가 눈에 어른거린다. 




25-청주의 마을에 나오는 두 형제, 김일목과 김이목은 그 생김새부터가 너무나 웃음이 나올 정도로 기가 막힌 캐릭터들이었다. 모여라 꿈동산에서나 보았을 법한 대두(大頭)와 메기의 입술 같은 두꺼운 입을 가진, 점 하나 빼면 똑 같이 생긴 두 형제가 상봉하는 장면은 꽁트 중의 꽁트였다.




그리고 또 하나의 재미는 무척이나 그리고 너무나 생생하고 자세한 청주만들기 과정이었다. 어느새 한 번 마셔본 기억도 나지 않는 우리술 청주를 떡밥을 만들어 내 손으로 직접 빚을 수도 있을 것 같은 착각에 빠졌다. 술을 빚는다는 그 표현도 멋스럽고  술에 미친다는 것도, 그 지루하리만큼 기다리고 애 간장을 녹이며 술이 다 익을 때까지 마음을 정화시키며 기다리는 그 모습도 도를 닦는 도인이 된 것처럼 신선했다. 헌데 술은 취하기 위해, 기분을 내기 위해, 혹은 우울한 사람에게 기운을 북돋아 주기 위해 마시는 게 기본인데 어찌 만드는 과정은 도 닦는 수준일까 모르겠다. 24-탁주에서도 그렇고 술의 나라에 그려진 술은 모두 우리 전통주이고 쌀을 기본으로 한 다는 점에서도 친구들과 마셔 본 평범한 알코올과는 좀 다른 것 같다. 손으로 직접 백세를 하는 과정을 보면서 저렇게 힘들게 만드는 술이니 조금씩 아껴 마셔야하기 않을까라는 생각도 들었다.




성찬이 술까지 잘 만든다는 것은 좀 과한 설정 같다고 느꼈지만 탁주를 통해서 갈라진 마을사람의 마음을 하나로 만든다는 이야기엔 충분히 공감이 갔고 제발 그렇게라도 서로 풀고 화해하는 세상이 되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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