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객 1 - 맛의 시작
허영만 지음 / 김영사 / 200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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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하필 음식일까?    

 

 

어릴 때부터 시작된 만화사랑이 어른이 되어서도 쭈욱 이어질 수 있었던 것은 아마도 허영만작가의 공이 큰 것 같다. '부자사전'이나 '꼴' 처럼 주제가 실생활에 밀접한 현실성을 갖고 있으면서 재미있고 즐겁게 배울 수 있는 만화에 '타짜'처럼 특이한 인물과 환경을 소재로 한 시리즈물을 많이 내어 마니아가 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음식을 주제로 현재 까지 스무 권이 넘는 연재만화를 낸 다는 것은 그 시도부터가 대하소설을 쓰는 것처럼 언제 끝날지 알 수 없는 막대한 시간과 노력이 필요한 일이란 생각이 들어 독자로서 괜스레 걱정이 되었다. 또, 전문 요리사도 아닌 허영만작가가 과연 얼마나 독특하고 새로운 이야기들을 알려줄 지도 기대 반 걱정 반 이었다.   

  

 

그런데 이 대장정의 1권 시작을 다름 아닌 '어머니의 쌀‘로 여는 것을 보며 재미로 읽는 만화 속에 숨어있는 작가의 열심, 우리 것의 가치를 후대에게 제대로 보여주려는 의도를 눈치 채게 되었다. 맛 기행 같은 흥미위주의 가벼운 이야기를 지양하고 우리의 문화와 역사, 그리고 우리의 산물들의 아름다움과 고유성을 보여주려는 깊은 뜻이 담겨 있음을 말이다.


나의 증조부께서는 일제 말기에 대단히 큰 농지를 소유하고 계셨다. 40년 대 일제의 대동아전쟁이 막바지에 이르렀을 때 일제의 지독한 수탈정책의 일환인 공출을 더 내라는 명령을 따르지 않았다 해서 죽을 만큼 끔찍한 태형을 당하셨고 그들의 본보기로 증조부께서는 갓 마흔을 넘긴 나이에 돌아가셨다. 당시 인근의 소작농들의 생활이 말이 아니었다고 했다. 어린 아기들부터 굶어 죽어나가는 비참한 형편이었다고 했다. 비록 목숨을 잃었지만 같은 민족의 것을 더 뜯어내어 이민족  일제의 군량미로 보내라는 명령에 맞설 수 있었던 증조부의 ‘대쪽같은 정신’은 지금 내게도 흐르고 있어서 개인적인 이득을 얻기 위해 남을 속이는 것은 물론이고 권력을 쥔 자들이 강요하는 불의한 일에도 고개를 숙이지 않는다.  


 2003년 가을에 나온 이 ‘맛의 대결’은 쌀농사를 짓는 농민들의 우리 쌀에 대한 진한 애증의 감정을 잘 그렸다. 죽겠다고 쌀농사 지어 놓으면 외국에서 대량 수입된 쌀들에 밀려 제 값을 못 받으니 정말 죽을 맛이지만 20여 년이 지나서도 자신의 친부모를 찾아 한국에 찾아 온 입양아가 어머니가 헤어질 때 주머니에 넣어 주었던 그 쌀(올게미쌀)  맛을 찾아 묻고 또 묻고 해서 고향과 부모를 만나는 바로 근본이기에 결코 그 눈물로 씨를 뿌리는 농지를 벗어나지 못하는 농민의 마음을 매우 잘 나타내었기 때문이다.     

또, 작가 자신이 서울생활 38년이 넘었으면서도 고향의 맛을 그리워하며 즐기는 것을 잘 나타낸 ‘고추장굴비’ 편을 보면서 대갓집에서나 저장음식으로 놓고 먹는다던 그 고급음식을 작가는 아무렇지도 않게 평범한 시골음식으로 향수를 덧 입혀 그렸구나 라는 것을 생각하면 어릴 적 잘 살았다는 그가 무척 부러웠다. 굴비구이는 자주 먹어보았지만 고추장굴비는 아직......

마지막 편인 밥상의 주인에서는 일본 미식가들이 모인 자리에서 한 상 그득하게 나온 한정식에 대해 ‘가짓수만 맞추었지 음식에 개성이 없다’는 바로 그 대사는 평소 내가 가슴 속으로 울분을 토하며 느끼는 불만 그 자체이었다. 그런데 무엇이 잘못 되었나 역추적해가는 과정에서 역시 근본이 잘못 되었음을 깨달았는데 바로, 밥이었다.  



같은 쌀로 해도 얼마나 불리고 물을 붓고 뜸을 들이느냐에 따라 천차만별의 밥맛이 난다는 그 대목에서 크게 고개가 끄덕여졌기 때문이다.

쌀로 시작해서 밥으로 맺는 이 맛의 대결을 읽으면서 왜 그렇게 농민들이 ‘쌀! 쌀! 쌀!’ 하는 지 조금은 그 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증조부께서 유난히 쌀을 아끼셔서 그런지 나는 밥이 참 좋다! 고급 한정식집에 갈 기회가 생기면 항상 돌솥밥을 주문한다. 막 지어 온 그 한 그릇 안에 은행과 밤, 수삼, 대추 등이 들어 맛이 훌륭하지만 그 밥맛에 따라 그 집 음식의 맛을 대충은 짐작을 할 수 있기 때문에 역시 허영만은 음식의 기본을 제대로 아는, 고수 중의 고수인 듯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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