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앞에서 (반양장) - 한 사학자의 6.25 일기, 개정판
김성칠 지음, 정병준 / 창비 / 2009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6월이다. 이 달은. 울수도 웃을수도 없는 달인가.

6월이다. 일년에 365일이 있고 열두 달이 있지만 그 연속적인 시간들 가운에 6월이라는 공간은 우리와 유난히 많은 인연을 지녔는가 보다. 굳이 민족적으로 따지지 않더라도 대한민국이 선 후 6월은 유난히 크고 작은 일이 많았다. 지금으로부터 약 60년 전 피붙이들끼리 서로 죽고 죽이는 비극이 일어났었고, 또 80년대로 내려오면 6월의 피맺힌 항쟁이 있었고, 그 20년 후엔 한 쪽에선 둥근 공으로 세계의 정상에 섰지만 한 쪽 바닷가에선 같은 민족끼리 서로 총질을 한 달이었다.

 

이제 다시 6월이 왔다. 이 6월을 겨냥했는지 안했는지는 모르지만 선거를 앞두고 한바탕 북쪽에서 불어온 바람이 이 땅을 휩쓸고 갔고, 그 빈자리엔 검고도 흰 축구공이 킥오프를 기다리고 있다.

 

북으로 갈 지, 남으로 갈 지.. 나침반이 있어도 갈 곳은 모르겠구나.

 

"... 이때까지의 경향으로 보아 이북의 양심적인 분자들은 많이 대한민국을 그리워 남하하였고 이남의 이상주의자들은 인민공화국에 절대의 기대를 가지고 많이들 월북하였는데 이들이 다같이 커다란 실망을 품고 있지나 않을까 합니다. 그러나 다시 갈곳은 없고 해서, 말하자면 정신적인 진퇴유곡에 빠져 있지나 않을까요. 이들에게 무슨 길을 열어줄 방책이라도 있다면 나는 목숨을 내어놓고서라도 일해보겠습니다마는..."

 

어디서 많이 들어본 말 같지 않으신지? 이북의 사람들은 자유로운 남쪽을 그리고, 각종 부정부패에 질린 이남 사람들은 공평한 북쪽을 그린다는 말. 전후 남한 사회를 휩쓴 매카시즘의 광풍 한 가운데서 새로운 60년대를 힘차게 열어젖히며 우리 전후소설에 한 획을 그은 최인훈의 <광장>에 와서야 비로소 언급되었다는 양비론. 남한도 x같고 북한도 x같다는 이 말. 이 말은 당시엔 - 지금의 우리로서는 흔히 접할 수 없지만 - 지식인들 사이에 팽배해 있는 의식이 아니었을까 하고 오늘에서야 다시금 생각해보게 되었다. 중 3 국어교과서에도 일부가 실려 있는 역사학자 김성칠의 <역사 앞에서>를 읽으면서 말이다.

 

지은이 김성칠은 누구인가?

이 책의 지은이 김성칠은, 1913년 경북 영천 출생으로 나이 열다섯에 독서회 사건으로 일제에 구속되었는데, 담당 판사로부터 "나이 열다섯의 사상범을 만들어주는 것은 대일본 제국의 명예에 추호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무죄 방면 되었다는 일화를 남기기도 했을 정도로 어렸을 적부터 신동에 민족의식이 투철한 사람이었다.   

 

그 이후에도 민족 독립을 위해 많은 고민을 하며 절치부심하면서 우리의 역사에 대한 공부에도 힘써서, 19세 때 동아일보에서 주최한 전국 농촌구제책 현상모집에 당선하기도 했고(19살에!!!!) 경성제대에서 공부하기도 했다. 워낙 일찍이 요절했기 때문에 별로 유명한 사람이 아니었지만, 해방되자마자 경성대학(서울대학의 전신)에서 교수직을 맡았는데 그 당시 함께 교수직에 있던 사람들이 이병도, 이희승, 김상기(물론 이 사람들이 선배였지만 망년지기로 교류했다하니..) 등이었으니 이 사람의 레벨을 가히 짐작할 수 있겠다.

 

한 역사학자의 작은 일기장이 의미있는 이유

그 중에서도 가장 주목할 만한 것은, 전국이 좌익 아니면 우익으로 갈라져 이전투구를 벌이고 있을 때도, 이 사람은 학자적 풍모를 견지하면서 중도를 꿋꿋이 지켜갔다는 사실. 흔히 우리는 '민족주의'에 대해서도, '좌익'에 대해서도 선입견을 지니고 있다. 전자는 좋은 것, 후자는 나쁜 것이라고 말이다. 하지만, 그 당시의 실상은 직접 그 시대를 살아온 분들에게 듣거나, 아니면 그 당시를 기록한 수많은 기록물들을 통해서만 짐작할 수 있을 뿐이지 지금의 권위를 빌어 과거를 거꾸로 만들어가는 자들의 말을 통해서 볼 것은 아니다. 지금의 그 양반들이건, 과거에 이름난 어떤 양반들이건 간에 시국과 사회를 바라봄에 있어서 왼쪽, 아니면 오른쪽으로 편향된 시선을 통해서 보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 혼란한 시대 속에서 과감히 중도를 취한 한 양심적인 역사학자의 일기를 통해서 보는 이 일기집이 그 당시를 객관적으로 볼 수 있는 가치있는 사료가 되어줄 것이라는 것이다.

 

실제로 이 책을 읽다 보면 우리가 지금까지 오도된 채로 가져왔던 선입관들을 몇 가지 깨트릴 수 있다. 많은 영화나 매체, 심지어는 문학적인 글들까지도 가지고 있던 이분법적인 시각을 상당부분 벗어버릴 수 있는 것이다. 끝까지 남아 서울을 사수하리라던 정부에 속아 그대로 남아있었다가 총든 인민군들을 도왔다가 서울이 수복한 이후 도망갔던 자들에게 오히려 핍박받는 힘없는 민중들의 솔직한 시선은 오히려 새롭지 않지만, 이성을 상실한 살인마같이만 비춰졌던 인민군들이 대부분은 굉장히 훈련이 잘되고 젠틀한 사람들로 느껴지는 경우가 많았으며 실제로 가정집에서 빌려간 조그만 톱 하나까지 쓰고나서 굳이 찾아와 돌려주었다는 작가의 이야기를 통해 과연 우리가 생각했던 것이 과연 진실이었는가 하는 고민을 하게 한다.

 

이 양반이 추구하던 세상은..

서로를 죽고 죽이던 남한과 북한. 그리고 이 책의 지은이 김성칠. 아이러니하게도 이들이 추구하던 것은 적어도 표면적으로는 모두 같다. "민족의 자존과 해방과 평화와 번영...." 하지만 그 행동방식은 모두 달랐다. 사용하는 수단이 달랐던 것이다. 양국 정부는 폭력으로 일관했지만 한 역사학자는 지금 당장이 아닌 후대를 바라보며 학문의 연구를 수단으로 삼았을 뿐이다. 그 선택의 옳고 그름은 수십년이 지난 지금 너무도 분명하게 드러나지 않았는가.

 

폭력을 선택했던 자들은 이제 신뢰라는 말은 부끄러워서 입에 담지도 못할 정도로 위신이 추락해버렸지만, 평화적으로 좀 더 먼 곳을 바라보았던 한 역사학자의 양심과 삶의 태도는 반세기가 더 지난 지금도 후학들의 칭송과 우러름을 받고 있으니 말이다. 이 책은 '한 사학자의 6. 25 일기'라는 부제처럼 당시의 사회상과 시대상을 사실적으로 엿볼 수 있는 사료적인 가치도 지니고 있지만, 그것보다도 이 책이 더 가치있게 다가오는 이유는 바로 역사의 격랑기에 배운 자들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한 종류의 전범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