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오랫만에 남의 인생 이야기에 신나게 웃고, 어부지리로 교양까지 얻었다.
처음 한 장을 넘길 때와 마지막 장을 덮을 때 까지 연신 고개를 끄덕끄덕.
작가의 생각에 공감하고, 그렇구나 이해하고, 삶의 일부인 '번역'에 대해 써 내려가는 사랑과 열정에 질투심을 느끼며 참 신나게도 읽었다. 얼마 남지 않았을 땐 일부러 천천히 읽었으니 말 다했지 뭐.ㅎ
인생은 참 잘 만들어진 드라마나 영화같다. 누구의 인생이든 말이다.
그것이 성공한 인생이든 실패한 인생이든 관계없이.
어쩜 그렇게 곳곳에 절묘한 복선을 장치하고, 사건을 만들고. 희로애락을 심어놓는가.
살아가면서 만나야 할 사람들을 시기별로 분류하여 적재적소에 데려다 놓고, 이보다 아귀가 잘 맞아떨어지는 완벽한 시나리오도 없을 것이다.
-본문 '번역의 바다에 발을 담그다' 중-
20년차 번역가의 솔직발랄한 인생담은, 내게도 드라마와 영화같이 다가왔다.
꼭 엄청난 일이 일어나고 막장까지 치닫는 인생이 드라마라고 할 수는 없지 않은가.
잔잔하게 흘러가는 듯 하면서도 가끔 솟는 물줄기에 놀라기도, 넘어지기도. 그러다 다시 언제 그랬냐는 듯 털고 일어나 다시 주어진 '삶'에 나를 맞추는 과정.
저자에게 '번역'은 이러한 과정 속에서 다시 중심을 잡을 수 있게 도와주는 힘이 되어주지 않나 싶다.
나의 일을 사랑하고 가진 열정을 쏟아낼 수 있는 일이야 말로, 하늘이 준 축복이 아닐까?
번역 일을 시작한 후 부터 지금까지의 솔직발랄 경험담을 마주하다 보면,
'아,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일에 이만큼의 열정을 쏟아 붓고 있나? 어찌 어찌하여 이 자리까지 왔지만 그 다음의 일을 계획하며 주어진 기회를 더 나은 모습으로 만져가고 있나.' 돌아보게 만든다.
또 중간 중간 개인적인 문제들로 벽을 만났을 때 비집고 일어나는 과정과 생각을 담은 페이지에서는, 같은 업에 종사하고 있지도 않고 비슷한 또래도 아닌 내게 너무 힘이 되고 공감이 가는 부분이 많아 마음의 위로를 얻었다.
사랑하는 일, 그보다 더 사랑하는 가족 '정하'와 '나무'.
복작복작 살아가는 모습을 창문으로 들여다 보고 나오는 기분. 생글생글 웃는 마음으로 마지막 장을 덮었다.
번역 메뉴얼 인 줄만 알고 책을 펴는 독자에게 발랄한 문체와 쉽게 읽히도록 술술 풀어 제낀 말투로 즐거운 마음을 안겨 줄 책.
이 쪽 분야에 문외한 이었다면, '권남희'가 누구야, 바로 검색 후 일본 문학에 눈을 뜨게 될 지도 모르는 책.
오랫만에 좋은 책, 잘 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