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선, 합격, 계급 - 장강명 르포
장강명 지음 / 민음사 / 201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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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강명 작가는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에 수록된 <알바생 자르기>를 읽으며 처음 알게 되었다. 소설 대부분을 서술의 주체인 중간관리자 은영의 입장에서 읽다가, 마지막 문단에 이르러서야 알바생 혜미의 입장을 되돌아보게 되는데, 그렇게 앞으로 다시 돌아가 읽어보는 <알바생 자르기>의 내용은 처음 내가 읽은 이야기와는 전혀 다르게 다가왔다. 그때의 충격은 컸다. 나도 모르는 새 자본주의 중심의 생각에 고립된 건 아닌지, 어째서 혜미의 행동이 그렇게 나쁘게만 보였던 건지, 많은 생각과 여운을 남겼다. 이번 <첫 번째 독자>에서 장강명 작가의 르포를 신청한 건 그런 이유에서였다. 이 분의 소설에서도 느낀 것이 이런데, 르포는 또 어떨까 하고.
 
책은 이미 지난 주 목요일에 다 읽었는데, 기억에 남는 문단과 생각을 정리하다보니 시간이 꽤 흘러버렸다. 이 책은 이 시대를 살아가는 현대인들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수밖에 없는 문제들이 나온다. 신춘문예나 문학공모전 외에도 삼성 입사시험, 공무원 시험 등 사회에서 지망생과 합격자로 나누는 대표적인 시험들을 다루고 있다. 나도 이런 종류의 시험을 공부할 때는 도무지 이런 것들이 세상 살아가는데 무슨 도움이 되는지, 그 회사에서 직무를 행하는데 무슨 관련이 있는지 전혀 이해할 수가 없었다. 꼬인 문제도 많았고 답이 여러 개인 것도 많았다. 출제자들조차 모를 것 같은, 답과 해설을 봐도 이해가 되지 않는 문제도 많았다. 왜 이런 것들까지 외워야 하나 싶은 건 더 많았다. 이런 식으로 자연스레 불만과 의문이 가득해지는 데도 내가 할 수 있는 건, 그저 세상이 요구하는 대로 맞추기 위해 공부하고 또 공부하고 준비하는 것뿐이었다. 많은 젊은이들이 그렇게 젊음과 시간을 이곳에 소비했다. 그렇게 체제에 순응하고 급히 원 안으로 들어가는 데 노력을 기울이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너무나 버겁고 바쁘고 힘이 든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우리가 폐해를 알고도 급히 받아들이기만 했던많은 시험들의 문제점에 대해 다루고 있다. 벌써 2018년이 반 정도 흘러간다. 그런데도 우리사회는 아직 사회적 낭비가 심한데 정작 필요한 인재는 뽑지 못하고, 사회의 창조적 역동성마저 막아버리는 고려와 조선시대의 과거제도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했다. 아는 것, 소위 지식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들은 늘어나지만, 도무지 이 지식을 어디다 써야 좋을지 모르겠다. 그저 합격하기 위해 필요한 도구로만 작용할 뿐, 합격하고 난 후엔 오히려 짐이 될 뿐이다. 그렇게 어렵게 시험에 합격을 하고 사회에서 흔히 말하는 기준에 올라서게 되면, 또 다른 한계에 직면하게 된다. 지금까지 준비해온 건 아무 소용도 없고, 또 다시 그들이 요구하는 수준에 맞추기 위해 허덕인다. 기업 입장에서도 참 난감하다. 실컷 시간을 들여 뽑아놨는데, 합격생들 중 실무에 적합한 능력을 갖춘 이가 생각보다 많지가 않다. 또 다른 재교육을 하기 위해 기업 측에서도 손해를 봐야 하고, 이제 막 합격한 사회초년생들에겐 또 다른 지옥이 펼쳐진다. 이게 과연 누구를 위한 시스템일까.
 
문단의 상황도 크게 다르진 않다. 기존에 있는 신춘문예와 문학공모전은 그 나름의 순기능도 분명 존재하긴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턱없이 부족하다. 절망은 늘어나고, 또 다른 폐해가 생길 수밖에 없다. 이를 보완하기 위해서는 이 외에도 더 다른 제도들이 생겨나 다양한 기회가 제공되어야 한다. 장강명 작가는 이 책의 199p에서 이렇게 말한다. “장편소설 공모전은 어떤 종류의 좋은 원고를 발견하는 도구로서는 분명히 뛰어나다. 그러나 공모전으로만 신인을 뽑게 될 때, 그래서 공모전이 배제의 도구가 될 때 거기에는 허점이 있다. 그런 상황이 벌어지지 않도록 다른 신인 발견 시스템이 잘 작동해야 한다. 그것이 장편소설공모전이 장점 위주로 잘 작동하게 만드는 길이기도 하다.”
 
이 책은 대부분 해당분야에 근무하는 사람들에게 장강명 작가가 직접 질문을 던지고 그들이 답하는 인터뷰형식으로 전개된다. 현업 종사자가 직접 그 문제에 대한 답을 하다보니, 신용이 갈 수밖에 없다. 그 중에는 새로 알게 된 흥미로운 내용도 많았는데, 고인이 되신 민음사 박맹호 회장님의 단행본 출판 개척에 관한 부분이라던가, 문학동네 강태형 대표의 출판사를 시작한 이유와 공모전에 관한 생각이 그랬다. 강태형 대표는 문학동네 출판사를 처음 만들 때, ‘신인 작가 발굴을 위해 출판사를 시작하기로 마음먹었다고 한다. 기존에 있던 창비, 문학과지성사, 민음사 같은 잘나가는 출판사들이 그때까지만 해도 신인 작가 발굴에 활발하지 않았다고. 그때는 신춘문예 당선이나 현대문학 추천 등 어딘가에서 등단한 신인작가가 작품 활동을 하는 걸 보고 잘한다 싶으면 청탁을 해서 책을 내는 방식이 대부분이었다고 한다.
 
저는 출판사는 작가가 창작 활동만으로 먹고살 수 있게 해야 한다는 책임감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그때 창비나 문지는, 제 식으로 표현하자면, ‘선비 출판을 했어요. 좋은 책 잘 만들어서 내면 독자들이 알아볼 거다, 굳이 광고까지 해 가며 책 팔 생각 없다. 그런 선비 정신이 있었죠. 그런데 아무리 잘 쓰고 열심히 쓰는 작가라도 1년에 책을 한 권밖에 못 써요. 그렇게 1년에 한 권 나오는 책은 출판사가 책임져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그 책을 알리려고 열심히 노력해야 한다고. 문학을 하는 사람은 그런 걸 신경쓰지 않아야 할지 모르지만, 문학출판을 하는 사람은 신경 써야 한다고. 그게 내가 문학출판사를 하는 이유다, 나는 그렇게 하겠다, 그렇게 생각했죠.” (79~80p.)
 
우리나라의 신춘문예나 기존 등단 제도에는 문제가 있다고 그때도 생각했고, 지금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등단을 했다는데 책이 없는 경우가 많아요. 단편 한두 편 발표하고 등단했다고 하는 게, 전 세계에 없는 특이한 제도죠. 시인이라면 그럴 수도 있겠지만, 자기 책이 없는데 소설가라는 칭호를 받는다는 건 좀 말이 안된다고 생각해요. (작가 발굴을) 당장 출간할 수 있는 장편소설 공모인 문학동네소설상으로 시작한 것도 그런 이유였어요.” (81p.)
 
그동안 독자의 입장에서 책만 읽어왔었는데, 이번 책을 통해 출판사의 입장에서 생각할 수 있는 계기가 주어진 것 같다. 그중엔 평소에 궁금했던 내용도 있었고, 어렴풋이 알고 있다고 생각한 부분도 있었고, 아예 몰랐던 부분도 있었다. 그래서 공모전 심사과정에 관한 부분은 특히 더 재밌게 읽혔던 것 같다.
 
이 책의 또 다른 묘미는 진지한 설명과 인터뷰 사이에서 갑자기 웃게 만드는 장강명 작가 특유의 농담이다. 시종일관 다루고 있는 주제는 무거운데, 책이 생각보다 어렵거나 지루하지가 않다. 인터뷰형식과 장강명작가가 풀어내는 현실상황, 그리고 그의 생각으로 이루어진 이 책은 진지하게 읽다가도 정말 생각지도 못한 부분에서 ’, ‘푸하하웃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이 외에도 장강명 작가가 이런저런 이유로 언급한 작품들이 몇 있는데, 그 작품들은 자연스레 나의 읽고 싶은 책 목록에 추가되었다. 덕분에 한동안 읽을 책들이 많을 듯하다.
 
지금 이 글을 읽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면, 한번쯤 이 책을 꼭 읽어보길 바란다. 어떤 생각을 하든 그 생각보다 얻는 게 많은 책이다. (소설공모전을 준비하는 분들을 위한 부록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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