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람스를 좋아하세요...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79
프랑수아즈 사강 지음, 김남주 옮김 / 민음사 / 200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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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결말에 대한 반응은 다양하다. 예상치 못한 반전이었다며 놀라는 독자들이 있는가하면 나처럼 충분히 예상했다는 반응도 있다. 하지만 이 책에 주어진 결말과는 달리 내가 만약 폴이었다면, 나는 오래된 연인 로제도, 젊고 열정적인 시몽도 아닌 그 누구도 선택하지 않았을 것이다. 새로운 사랑을 찾아 떠나거나 그 누구의 사랑도 아닌 지금 주어진 혼자만의 시간을 즐기거나. 하지만 그러기에 사강이 만든 폴이란 여인은 사랑에 있어서 너무나 의존적이고 맹목적이며 나약했다. ⠀⠀⠀⠀⠀⠀⠀⠀⠀⠀⠀⠀⠀⠀⠀⠀ ⠀⠀⠀⠀⠀⠀⠀⠀⠀⠀⠀⠀⠀⠀⠀⠀ ⠀⠀⠀⠀⠀⠀⠀⠀⠀⠀⠀⠀⠀
사랑한다면서 그 사랑에 책임지지 못하는 로제나 젊고 열정적인 사랑을 원하지만 현실과는 동떨어진 채 어린 감정을 추구하는 시몽이나 쉽게 흔들리고 상처받으면서도 잘못된 사랑을 끝내 놓지 못하는 폴이나. 여기 나오는 그 어떤 인물도 내게 온전한 이해를 받을 순 없지만, 이 또한 세상에 존재하는 사랑 중에 하나일 것이라 생각한다. 프랑수아즈 사강은 이런 덧없고 변하기 쉬운 사람 사이의 감정을 짧고 가볍지만 섬세하고 감각적으로 잘 표현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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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에 읽기 좋은, 가을에 맞는 소설이었다.

137p.
그녀로서는 그들의 관계를 기정 사실로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었다. 그녀는 스스로의 유보적인 태도에 신물이 났다. 다만 혼자 있을 때면 로제가 그녀 없이 살고 있다는 것이 커다란 오류처럼 여겨졌고, 그들이 어떻게 이런 지경에 이르게 되었는지 공포에 가까운 느낌으로 자문했다. ‘그들‘이나 ‘우리‘는 언제나 로제와 그녀를 가리키는 말이었고, 시몽은 ‘그‘가 아니었던가. 로제는 이런 것에 대해 아무것도 알지 못하리라. 현재의 생활에 진력이 나면 그는 그녀에게 와서 불평을 늘어놓고 그녀를 되찾으려 하리라. 그리고 아마도 성공하리라. 시몽은 치명적인 상처를 입게 될 테고, 그녀 자신은 또다시 고독 속에서 언제 올지 모르는 전화를 기다리면서 사소하지만 치명적인 상처들을 입게 되리라. 그녀는 자신의 숙명, 이 모든 것이 피하려고 해 봤자 소용없을 것 같은 그 느낌, 그녀의 삶에는 피할 수 없는 누구누가가 있고 그것이 곧 로제라는 생각에 저항했다.

148p.
"난 너무 불행했어." 그가 말했다.
"나도 그랬어." 그녀는 그렇게 말하는 자신의 목소리를 들었다. 이윽고 그녀는 그에게 살짝 몸을 기대면서 울기 시작헀다. 자신의 이 두 마디 말을 시몽이 용서해 주기를 바라면서.
로제는 그녀의 머리카락에 고개를 묻고는 그 상황에 어울리지 않는 목소리로 "자, 울지 마."라고 말했다.
"잘해 보려고 했어. 정말 잘해 보려고......" 이윽고 그녀가 미안해하는 어조로 말했다.
다음 순간 그녀는 자신이 그런 말을 해 주어야 할 사람은 로제가 아니라 시몽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녀는 갈피를 잡을 수 없었다. 방심은 금물이었다. 한 사람에게 모든 이야기를 다 할 수는 없었다. 그녀는 고개를 움직이지 않은 채 줄곧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로제는 말이 없었다.

150p.
"시몽, 시몽." 그런 다음 그녀는 이유를 알지 못한 채 이렇게 덧붙였다. "시몽, 이제 난 늙었어. 늙은 것 같아......"
하지만 시몽은 그 말을 듣지 못했다. 그는 두 눈에 눈물을 가득 담은 채 층계를 달려 내려갔다. 마치 기쁨에 뛰노는 사람처럼 달리고 있었다. 그는 스물다섯 살이었다. 그녀는 조용히 문을 닫고 거기에 몸을 기댔다.
저녁 8시, 전화벨이 울렸다. 수화기를 들기도 전에 그녀는 로제가 무슨 말을 하려는지 알 수 있었다.
"미안해. 일 때문에 저녁 식사를 해야 해. 좀 늦을 것 같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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