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드펠 시리즈 캐드펠 시리즈 1
엘리스 피터스 지음 / 북하우스 / 2003년 2월
평점 :
절판


이 시리즈를 장미의 이름이나 브라운 신부 시리즈와 비교하는 글을 보면 당황하게 된다. 주인공이 수도사긴 한데, 분위기는 추리보다는 역사로맨스의 냄새가 짙고, 범죄의 해결보다는 죄인을 감싸고 살 길을 열어주는 데 더 마음을 쓰니까. 원점으로 돌아가서 정리해볼까.

캐드펠은 십자군에 종군해서 중동 일대를 누볐고, 십자군과 관련해서 10년 정도 선장으로 해적과 싸웠고, 노년엔 여행 중 모은 허브를 몽땅 싸들고 출가했다. 요약하자면 송장에 대해서라면 산에서 칼 맞았든 물에 빠져 죽었든 독초로 죽었든 모르는 바가 없는 경지이다. 거기다 송장을 앞에 놓고 범인을 추적할 때에 향료의 냄새, 송장에 묻은 실가닥이나 희귀한 식물에 관심을 두는 현대적인 면모까지 겸비했다. 탐정으로선 적격이다.

그런데 이력을 봐도 알 수 있듯이 캐드펠 수사는 브라운신부나 윌리엄수사와는 다르게 신학이나 철학보다는 몸으로 부딪혀 체감할 수 있는 쪽에 더 관심이 깊다. 죄인이라도 벌하기보다는 뉘우치게 해서 어딘가에서 착하게 살고 가끔 교회에 나가도록 길을 열어주는 쪽을 선호한다. 이런 점이 다른 탐정과 차별되는 그만의 매력이기도 하고 가끔은 독자를 짜증나게도 한다. 뉘우치기만 한다면 캐드펠이 감싸주지 못할 죄는 없다. 고해를 받을 수 있는 사제는 아니지만 범인이 뉘우치며 자백만 하면 죄를 씻고 살 길을 알려준다. 자신이 젊은 날 수많은 죽음을 목격하고 여행을 많이 해선지 도량이 무지 넓다.

그런데 캐드펠수사의 젊은 시절 이력 못지 않게 이런 태도를 가능하게 해주는 가장 중요한 점은 시리즈의 배경이다. 공간적 배경은 웨일즈와 잉글랜드 경계에 가까운 시루즈베리, 여기서는 다리를 건너 경계선 너머로 도망가면 아주 다른 법과 전통이 지배한다. 또 잉글랜드와는 아주 다른 웨일즈 권력자가 있어서 죄인 잡으러 쫓아들어오는 잉글랜드 관리들을 저지해준다는 게 중요하다.

그래선지 용서받고 도망가서 새 출발에 성공하는 죄인들은 대개 웨일즈 혈통이다. 잉글랜드 출신 죄인들은 밝혀져서 처벌받거나, 사정이 참작되는 경우라면 처음부터 용의선상에 오르지 않고 지나간다. 합리적 사고라는 추리소설의 대명제를 훼손하지 않으면서 캐드펠의 인간미를 발휘하려면 잉글랜드(현실)보다는 웨일즈(순수한 야만인의 땅) 의 죄인을 쓰는 것이 효과적인지도 모른다.

캐드펠 자신이 웨일즈 혈통으로서 양쪽 제도와 언어를 다 이해하지만 워낙 다채로운 인생을 보낸 탓인지 그를 특별히 웨일즈인답다고도, 잉글랜드화된 웨일즈인이라고도 할 수도 없다. 굳이 말하자면 그는 세계인이다.

시간적 배경은 아직도 중세의 영향이 짙은 1140년 언저리. 바로 왕세자가 바다에서 갑자기 사고로 죽어 후계자가 불투명해진 뒤에 왕위를 둘러싸고 사촌지간인 두 왕족, 왕의 조카 스티븐과 왕의 외동딸 모드가 영국 전체를 끝없는 전쟁터로 몰고 갔던 시대이다. 켄 폴레트의 사나운 새벽에 이 시리즈보다는 좀 폭력적이고 노골적으로 묘사된 '성당과 시장'이 새로운 사회적 중심으로 떠오르는 변화의 시대다.

바로 여기서 캐드펠처럼 견문이 넓고 나이든 사람이라면 개심한 죄인을 유능한 관리 휴 버링가에게 넘겨 죽이느니 경계선 너머로 빼돌려 세상의 재건에 한몫하게 하고픈 유혹을 받지 않을까. 실제로 여러 번 한 일이지만. 강간이나 학대같은 '비겁한' 범죄가 아니라 오래 괴로와하던 어린 양이 순간의 충동이나 유혹으로 저지른 살인같은 범죄야말로 캐드펠이 베푸는 이런 용서를 받기에 적격이다. 비꼬아 보자면 저지른 죄가 크니 오래도록 회개할 것이요, 종교는 자고로 뉘우친 죄인을 제일 선호하니까.

그래선지 캐드펠이 범인을 색출하는 시대를 앞선 수사기법은 현대수사기법에서 몇 가지 과학발전만 생략한 정도로 가깝게 느껴지지만 죄인의 심리묘사는 종교의 관점에서 보는 욕망과 갈등에 주를 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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