붉은 수확 대실 해밋 전집 1 
대실 해밋 지음, 김우열 옮김 / 황금가지 / 201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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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은 대실 해밋의 <붉은 수확>이란 작품에 관해 이야기를 좀 해 볼 생각입니다. 추리 탐정 소설의 팬이 아니라면 일단 대실 해밋이란 이름이 익숙치 않으시겠죠. 그래도 방을 잘 빌려서 대실이냐고 물으시면 곤란합니다. 그는 미국인이거든요. 게다가 19세기에 태어나 20세기에 바삐 돌아가신 관계로 지구 종말을 불과 11개월 남겨둔 우리가 그를 알기란 확실히 쉬운 일은 아닙니다. 하지만 대실 해밋이란 이름이 친숙치 않은 분이라 해도 <몰타의 매>라는 작품에 관해서는 한번쯤 들어보지 않으셨을까요? 보진 못했다 해도 들어는 봤을 법도 한데 아님 맙시다. 아무튼 이 분이 그 유명한 <몰타의 매>의 저자이신 거니까요. 쉽게 말해 영미 하드보일드 탐정 소설의 거장이라 그 말인 겁니다. 뭐, 그게 중요한 건 아닙니다만.

 

       표지 보이시지요? 개인적으로 아주 제 취향입니다. 이 블로그에 자주 오시는 분 중에 센스가 좀 대박이신 분들은 이미 눈치채셨겠지만 제가 영화 대부의 좀 광적인 매니아입니다. 여느 팬들처럼 백 번쯤 봤어, 로 끝나지 않고 대사를 줄줄 외울 정도이니 붙어 볼 만한 거죠. 오죽하면 메모란에 오디오를 편집해놓을 정도겠냐구. 그런데 제가 좋아하는 건 대부가 가진 이야기 뿐만이 아니고요, 아주 종합적인 이유 때문입니다. 그중 하나가 그 시절 그들의 복장이네요. 스트라이프 무늬 양복 혹은 셔츠, 멜빵, 산뜻한 행커칩과 중절모와 세련된 구두. 그게 아니면 <원스 업온 어 타임 인 아메리카>에 등장하는 꼬맹이들의 바지와 셔츠와 멜빵과 헌팅 캡 같은 소품들. 

       사랑한다고. 

       당연히 그 시대가 배경이 된 영화는 거의 다 좋아합니다. 개인적인 패션 취향도 그쪽에 좀 가깝고요. 그러니 일단 제가 이 작품에 흠뻑 빠져들지 않을 수 없었다는 사연을 먼저 말씀드려야 할 것 같습니다. 그 시절이 배경인 작품이니까요.

 

       하지만 그렇다고는 해도, 재미도 없는데 무조건 그 시절의 무대라고 해서 좋아라하는 십덕후는 제가 아닌 관계로 좀 더 자세한 작품 얘길 해보겠습니다. 이 작품은 마치 영화 <씬 시티>를 연상시킵니다. 씬 시티 좋아하십니까? 그럼 이 작품 마음에 드실 겁니다. 범죄 도시에서 범죄를 소탕하는 스펙타클한 추리 탐정물인 이 작품은 고전 영화에 단골로 등장하는 클래식한 자동차들의 도로 질주 신은 물론이요, 그 와중에 갈겨대는 기관총과 날아가는 중절모, 그레고릭 펙이라든가 험브리 보가트 같은 인물들의 중후한 목소리가 대사를 읊고 비비안 리 혹은 마릴린 몬로 같은 여배우가 붉은 립스틱을 짙게 바르고 유혹하는 듯한 풍경이, 아우 죽입니다. 고전미가 아주 예술이야.  

       

       앞서 말씀드렸듯 탐정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탐정 추리물이기는 합니다만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일반적인 탐정물과는 조금 다릅니다. 그러니까 뭔가 미스터리한 일을 계속 꼬아가며 꽈배기를 만들다가 막판에 이르러서야 사람들을 모아놓고 한껏 잘난 척을 한 다음 네가 범인이지? 하는 식의 지능형 말이죠. 오히려 레이먼드 챈들러의 필립 말로와 비슷한 분위기인데 굳이 표현하자면 액션 탐정이랄 수 있겠네요. 머리만 쓰는 게 아니라 몸도 마이 씁니다. 그래서 이야기가 정적이지 않고 동적이고요, 활극스러운 분위기가 잔뜩입니다. 추리 또한 막판 뒤집기 한 판 식으로 이루어지지 않고 중간 중간 해결하고 가면서 새로운 문제가 발생하는 식으로 엮여 있어서 저는 좋았습니다. 소설의 목적이 오로지 추리를 위한 것처럼 느껴지지 않아서 말이죠. 추리는 이 소설의 여러 재미 중의 하나일 뿐 그게 다가 아니지, 하는 것처럼 여러가지 요소들이 잘 버무려져 있습니다. 그래서 이야기의 전개가 아주 시원시원하게 쭉쭉 뻗어나갑니다. 다만 그러다보니 조금 산만하게 느껴질 수도 있는데 그런 부분은 또, 이 작품의 최대 강점으로 충분히 커버가 되고도 남습니다. 그게 뭐냐면 바로 유쾌함. 시원시원하면서 웃긴 장면이 많아 기분이 유쾌해진다는 게 이 작품이 가진 최대의 미덕이 아닐까 저는 생각합니다.

 

       말그대로 하드보일드 탐정 문학이기 때문에 이야기가 군더더기 없이 사실적인 풍광만을 깔끔하게 서술해나가는데요, 웃깁니다. 탐정 추리물을 읽으면서 이렇게 많이 웃어본 적도 없는 것 같은데요? 웃긴 게 웃길라고 해서 웃긴게 아니라 거 뭐랄까, 상황이 너무 뻔뻔해서 웃기달까? 개가 미친듯이 짖으니 그냥 발로 뻥차고 지나갔다는 식의 유머가 곳곳에 배치되어 있습니다. 그러니까 이를테면 사람이 총을 맞아 뻥뻥 쓰러지는 와중에도, 그 옆에서 태연하게 햄버거를 씹으며 이거 빵이 좀 오래 된거 아냐? 하고 말할 때 관중이 느낄 수 있는 그런 어처구니 없음에서 일어나는 코미디 같은 겁니다. 보는 사람은 엄청 웃긴데 정작 그 주인공들은 너무 태연해서 황당한 그런 류라고 할 수 있죠. 하여간 읽어보면 안다.

 

       후반부에 모 등장인물이 당구대를 들고 휘두른다는 서술이 나오는 부분이 있는데요, 저는 개인적으로 거기서도 빵 터졌습니다. 당구대가 아니라 당구 큐대를 휘둘렀던 거겠죠. 그런데 문득, 당구대를 휘두르는 장면이 연상되어 빵 터졌어요. 오역일텐데 이런 오역은 귀엽다니까요. 그건 말하자면 이 소설을 그렇게 연상해도 큰 무리가 없을 정도로 전반적인 뻔뻠함이 작품 전체에 배어있기 때문이기도 할 겁니다. 그리고 말이 나온 김에 하나 더 지적질을 하자면 캐내디언 클럽은 캐내디언 위스키의 한 브랜드입니다. 그걸 캐나다인 클럽으로 번역하는 것은 임페리얼 위스키를 황제의 위스키라고 번역하는 거나 마찬가지인거죠. 어쩐지 조지오웰의 빅브라더를 대형으로 번역했다던 일화가 떠올랐는데 여하튼 깜찍한 오역과 다소 정리되지 않은 문장들이 곳곳에 있었습니다만 전반적으로 유쾌했던 작품 분위기 때문이었는지 그게 그리 문제로 보이지는 않았습니다.

 

       끝으로 표지 디자인 굿. 개인적으로 아주 마음에 들고요, 책 값 9천원입니다. 대박. 요즘에는 상가 수첩 같은 책을 만들어 놓고도 만 몇 천원 씩 받아 잡수시는 추세인데 요렇게 깔끔한 디자인의 350쪽 가량의 문고판이 9천원인 것은 아주 인상적이지 아니 아니 아니할 수 없다. 그러니까 저는 대실 해밋에 꽂혀버린 겁니다. 그래서 전집을 달려주겠어.  



 
 
 
살인자들의 섬 밀리언셀러 클럽 3 
데니스 루헤인 지음, 김승욱 옮김 / 황금가지 / 200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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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단히 잘 쓰인 서스펜스 소설이라는 생각입니다. 구성도 좋고 내용도 좋고 무엇보다 뒷맛이 아주 좋은 작품이었습니다. 책을 내려놓은 다음 밀려드는 어떤 연민 혹은 애잔함 같은 기분이 묘한 페이소스에 빠져들게 하더군요. 서스펜스 소설에서는 좀처럼 맛보기 어려운 뒷맛인지라 책을 읽고 나서도 계속 뒤적이며 군데군데를 다시 펴 읽어보고 뭐 그랬습니다. 그럼에도 별 다섯을 쿨하게 날리지 못한 이유는 중간중간 다소 늘어지는 부분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스토리가 쭉쭉 뻗어나가는 편은 아닌 쪽이고요, 여기저기 약간 정체된 듯한 느낌이 드는 것이 사실입니다. 또 앞뒤를 뒤적이며 아주 정독을 하지 않으면 다소 헷갈리 수 있는, 조금은 복잡한 구성이 약간의 문제가 될 수도 있을 것 같긴 합니다. 하나의 이야기 진행과 과거의 회상이 번갈아 가며 서술되는데 단지 그것 뿐이라면 덜 혼돈스러울수 있겠지만 후반부에서 기다리는 엄청난 반전 하나 때문에 이전까지 읽어온 대부분의 페이지를 다시 뒤적이게 되는 과정을 저는 한 번 거쳤어야 했거든요. 아, 물론 그런데 그런 점은 한편으로 서스펜스물로써 상당한 장점이 될 수도 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어쩌면 헷갈려하면서 생각을 정리하려고 더 오랜 시간 책을 붙들고 있으면서 점점 더 작품의 매력 속으로 빠져드는 것일 수도 있겠네요. 이처럼 어떤 작품들은 읽을 때의 재미도 꽤 괜찮지만 읽고 나서 밀려드는 후푹풍이 더 훌륭한 경우도 종종 있는 것 같습니다.

 

       일단 설정 자체가 아주 흥미로워요. 알카트래즈처럼 죄수들이 모인 섬이 있는데 거기가 셔터 아일랜드입니다. 그런데 이 섬의 교도소는 일반 교도소와는 달리 정신 병동이지요. 살인이나 폭행, 기타 잔인한 범죄를 저질렀으나 정신 상태가 약간 메롱인 죄수들을 모아 가둬 둔 곳이거든요. 바로 이곳에서 죄수 한 명이 실종되어 대륙의 보안관이 급파된다는 설정인데요, 거기서부터가 이제 미스터리의 시작입니다. 미스리가 아니라서 어찌나 다행인지. 밀실 서스펜스라는 말이 있다면 딱 그건데 뭔가 안개에 휩싸인 고성에서의 고딕적인 분위기가 물씬 풍기면서 사부작사부작 이야기가 전개되는데, 이 섬에 뭔가 비밀이 있다, 뭐 그런 겁니다.

 

       데니스 루헤인의 소설은 사실 <어둠이여, 내 손을 잡아라>를 통해서 처음 접했었습니다. 그런데 그 소설은 번역자의 천박한 욕설로 온통 도배가 되어있었고 문학적인 맛이 탁월한 스릴러 작가라는 소개가 무색하게 싸구려 문장이 넘쳤났던 관계로, 이것 또한 작가에 대한 과대 광고였구나라는 첫인상만을 남긴 채 별 하나도 아까워 반개를 날리고 루헤인의 소설을 아주 접게 만들었었지요. 내가 앞으로 데니스 페이스트리 안 먹는다, 그랬었거든요. 그러다가 우연히 이 책을 손에 넣게 되었는데 다른 역자에 의해 쓰인 이 작품을 읽어보니 작가에 관한 호평이 과장만은 아닌 듯 싶습니다. 

 

       이 작품은 시작부터의 묘사가 아주 괜찮았습니다. 개인적으로 탁월한 묘사를 좋아하는 취향이라서 그럴 수도 있겠지만 초반 묘사가 저의 흥미를 사로잡았던 것만큼은 확실하고요,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려는 걸까, 하는 호기심을 불러 일으키는 이야기의 전개도 탁월한 편이었습니다. 다만 앞서 말씀드렸듯 그것이 쭉쭉 앞으로 뻗어나가며 절정으로 치닫는 구조가 아닌 것이 저로서는 조금 아쉬웠지만, 조금 느린 전개를 좋아하는 독자 분들에게는 그리 큰 흠이 되지 않을 수도 있을 것 같네요. 또 설혹 정체 구간에서의 스트레스가 조금 과중하게 쌓인다고 해도 후반부에 펼쳐지는 놀라운 반전이 그 모든 체증을 씻은 듯이 사라지게 만들어 주신답니다. 개인적으로는 전혀 예상치 못한 반전이었던지라 반전이 일어난 이후에도 그것이 반전인지 아니면 또 다시 뒤집힐 무엇이 있는 것인지가 궁금해서 후반부의 긴장감은 거의 최상급이었어요. 영미 소설들은 종종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는 경우가 있기 때문에 아마도 그래서 반전이 일어나고서도 그 사실이 잘 믿기지가 않았던, 혹은 이렇게 해놓고 또 뭔가 다른 게 뒤집힐 거야, 하는 어떤 긴장감이 끊임없이 이어졌는데 그쯤에서 뭐랄까, 참 잘 쓰인 작품이라는 인상을 받게 된 것 같습니다. 게다가 결말 자체가 오픈되어 있어서 더 많은 생각을 하게 해주는 작품이었고요, 바로 그때문에 영화까지 볼 생각은 없었던 저로서는 영화를 보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콜드 문 링컨 라임 시리즈 7 
제프리 디버 지음, 유소영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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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디버 선생의 메인 케릭터 링컨 라임 시리즈 일곱 번째 작품입니다. 신간은 아니고요, 나온 지는 꽤 됐는데 제가 이제 읽었을 따름입니다. 그러나 링컨 시리즈로는 현재 맨 마지막으로 나온 작품이 맞고요. 나머지는 아직 번역되지 않은 상황인 것 같습니다. 곧 나오겠지요. 그간 디버 선생께서 스텐드 얼론을 집필하시거나 혹은 따블오 세븐 제임스 본드 시리즈를 이언 플레밍으로부터 물려 받으시느라 링컨 라임을 좀 등한시 하셨을 수도 있는데 어쨌든 엄청 왕성한 필력을 자랑하시는 변호사 출신의 작가 선생인 것만은 확실합니다.

 

       이번 작품에 관한 소문은 예전부터 익히 들어왔던 터라 기대가 사실 좀 컸습니다. 라임 시리즈의 특징은 항상 대결구도이므로 이번엔 또 누구냐, 뭐 그런건데 이번엔 시게공이다, 라고 하는 이 시게공이 역대 대결 구도의 상대자 중에서 가장 강력하다는 얘길 들었었거든요. 그런데 읽어보니 과연, 가장 강력하네요. 시계공이라는 별명에서도 느낄 수 있듯 치밀하기가 호떡집 흑설탕 가루 사이만큼이나 촘촘합니다. 다만 그럼에도 작품에 흔쾌히 별 다섯을 줄 수 없었던 것은 뭔가 해소감이 덜했달까 마무리가 깔끔하지 않은 느낌 때문에 그랬습니다. 재미있긴 헸지만 아쉬웠던 구석이 확실히 있었던 거죠.

 

       디버 선생이 애정하는 소설 트릭 기법은 시선 돌리기 인데요, 독자의 시선을 엉뚱한데로 돌려놓은 상태에서 반전을 일구어내는 것으로써 그건 작품 속에서도 자주 언급됩니다. 링컨 라임이 상대하는 연쇄 살인범이 주로 쓰는 수법이 그거거든요. <사라진 마술사> 편에서는 그 기술을 마술 용어에 맞춰 미스디랙션이라 칭했고 이 작품에서는 시계공에 맞춰 컴플리케이션이란 개념을 사용합니다. 여하튼 그 내용은 모두, 시선을 분산시켜 다른 곳으로 돌리게 한 후 목적한 바를 이룬다는 공통점을 지니고 있는데요, 실제 디버 선생이 작품에 사용하는 트릭 기법도 똑같습니다. 그러니까 읽는 독자들 또한 어디서부터 어디까지가 진실에 관련된 서술이고 어디서부터 어디까지가 시선을 분산시키기 위한 눈속임인지를 생각하며 읽어야 하는 매력을 지닌 것이지요. 저로 말하자면 그게 귀찮아 그냥 줄줄 아무 생각없이 읽어나가는 편인데요, 그래도 반전에선 오오, 뭐 그런 생각을 곧잘 합니다. 디버의 작품에선 그게 그거 였어? 혹은 갸가 갸가? 뭐 그런 상황이 자주 벌어지거든요,

 

       이번 작품은 여느 작품보다 그런 시선 분산의 범위가 좀 넓습니다. 흡사 본 궤도에서 좀 벗어나버린 것은 아닐까 생각될만큼 그 낙폭이 큰 편이었고 바로 그 때문에 뭔가 좀 깔끔하지 않은 느낌이 남았던 것입니다. 그런 반면 역대 시리얼 킬러중에서는 가장 매력적인 사이코패스이기도 합니다. 엘리트 냄새가 물씬 풍기거든요. 그리고 강하고요. 강하고 지적인 인물은, 그게 악역이든 좋은 역이든 확실히 매력이 있는 것 같습니다. 여하튼 반번에 반전을 거듭하는 범죄 서스펜스물이다보니 내용을 소개할 건 많지 않고요, 링컨 라임 시리즈의 공통점인 매력 하나 정도만을 소개하고 끝내겠습니다.

 

       작품의 등장 인물들에 관한 매력이에요. 전신불구 장애인인 천재 법과학자 링컨 라임의 무뚝뚝한 성격이야 그렇다치더라도 그를 사랑하는 경찰 아멜리아 색스, 신참 경관 풀라스키, 뭔가 듬직한 느낌의 셀리토, 성실하고 꾸준한 분석가 쿠퍼 그리고 무뚝뚝한 라임을 손바닥 위에 놓고 다루듯 자연스러운 톰에 이르기까지 그들의 따뜻한 가족적인 분위기가 살벌한 연쇄 살인마를 잡는 와중에서도 뭔가 든든한 느낌을 갖게 해주는 원인이 되거든요. 그러니까 뭐랄까 힘을 합쳐 같이 잡아보자 으쌰, 뭐 그런 짝짝짝짝짝 대한민국 분위기가 좀 있거든요. 그러니까 여느 범죄 스릴러물처럼 그저 서늘하기만 한 것은 아니라는 얘기입니다. 사실 그러니까 링컨 라임과 범인의 단독 대결 구도라고 보기는 조금 어려운 것이지요. 이쪽은 항상 팀이니까요. 물론 링컨이 모든 것을 진두지휘하긴 하지만 그래도 우린 패밀리가 좋은 거니까요. 독고다인 외로워. 그래서 아마 이 팀들의 따뜻한 분위기가 좀 더 쉽게 독자의 마음을 사로잡는 게 아닐까, 하고 저는 생각합니다. 

 

       아님 말고.  

       아 참 그리구 극 중에 아멜리아가 풀라스키에게 차를 좋아하느냐고 묻는 장면이 나오는데요, 그때 풀라스키가 자전거를 좋아한다고 대답합니다. 그런데 문백상 그건 자전거가 아니고 오토바이입니다. 바이크 아니면 오토바이. 혼다라는 브랜드는 모른다쳐도 엔진 이야기가 반복되는데 계속 자전거라고 번역해 놓은 건 단순 실수라고 보긴 어렵네요.  


 



 
 
 
다크니스 모어 댄 나잇 형사 해리 보슈 시리즈 7 
마이클 코넬리 지음, 김승욱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1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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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좀 멋진 제목에 언뜻 무서운 표지 디자인을 가진 해리 보슈 시리즈 일곱 번째 작품이고요 역시 재미있습니다. 어지간하면 실망시키지 않는 코넬리의 필력인지라  확실히 베스트셀러 작가는 아무나 하는 게 아니라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무엇보다 놀라운 건 고른 작품 수준이에요.

       해리 보슈 시리즈는 주인공이 형사인지라 일반적인 패턴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편입니다. 살인 사건이 일어나고 그 사건을 보슈가 맡게되면서 범인을 추적해나가는 과정이지요. 여기서 동종업계 최강 라이벌 제프리 디버와의 가장 큰 차이점이라면 상황을 굳이 대결 구도로 끌고 가지는 않는다는 것입니다. 디버는 강력한 범인과 더 강력한 법과학자의 한 판 대결이 플롯의 골자라고 한다면 코넬리는 그보다  약간 정적인, 보슈 위주로 사건의 실마리를 차근차근 풀어내는 과정에서 빚어지는 인간적인 페이소스와 생각지 못했던 여러 가지 상황들을 매끄럽게 연결시킴으로서 연출하는 재미가 쏠쏠하지요. 

       이야기가 기계적으로 잘 설계되어 엎지락뒷치락하면서의 재미를 준다기보다는 차분하게, 그러나 뭔가 점점 더 수렁으로 빠지는 기분으로 독자를 흡인하는데요, 이런 묘한 매력은 아마도 해리 보슈라는 캐릭터로부터 비롯되는 장점인 것 같습니다. 보슈에겐 그런 묘한 매력이 있다. 독자 입장에서 잘 만들어진 이야기를 일반적으로 구경하게 하는 게 아니라 뭔가 같이 고민해줘야 할 것만 같은 깊은 우수를 지닌 캐릭터라 그렇습니다. 그게 바로 해리 보슈 시리즈의 최대 장점이라고 나는 생각해.

       그런데 이번 작품에서는 그런 특유의 분위기에 살짝 변화가 생겼습니다. 보슈만의 맛은 그대로이지만 이야기의 주체가 살짝 달라졌어요. 놀라운 친구가 등장하지요.

 

       코넬리의 팬 입장이라면 올스타전이라 할 수 있는 이 작품엔 테리 매캐일럽과 잭 매커보이가 등장합니다. 시리즈 물로 성공한 작가들은 대개 고유의 주인공 외에도 다른 작품 시리즈 혹은 스탠드 얼론을 통해 또 다른 주인공들을 선보이기도 하는데요, 매케일럽과 매커보이가 그렇습니다. 전직 에프비아이 프로파일러였던 매캐일럽은 <블러드 워크>라는 작품을 통해 자신의 존재를 알렸고 언론사 기자인 잭 매커보이는 말이 필요없는 명작 <시인>의 주인공이었지요. 개인적으로 매커보이가 등장하는 작품이 재미 면에서는 제일 괜찮은 것 같습니다. 그가 등장하는 작품은 조금 더 강한 역동성과 스피드를 지니고 있거든요. <허수아비>라는 작품도 그랬으니까요.

       여하튼 이 작품에선 매캐일럽이 거의 주인공급으로, 매커보이가 까메오급으로 등장해요. 음...어떤 면에선 브루스 윌리스와 아놀드 아저씨와 스탤론 형님이 한 앵글에 잡혔을 때를 보는 것 같은 기분이었달까요? 괜찮은 올스타전이었습니다.

 

       이 작품은 두 줄기의 이야기가 흘러가다 마무리에서 한 줄기로 합쳐지는 구조입니다. 이야기의 하나는 매캐일럽이 끌고 가고 다른 쪽은 보슈가 끌고가지만 주축은 매커보이 쪽이에요. 그러니까 보슈의 집에 와서 매커보이가 안방 마님 노릇을 하고 있는 셈인데 그게 그럴만한 이유가 있습니다. 예상치 못한 상황인지라 여기서 말씀드릴 순 없지만 읽어보면 이해가 갈 거다.

       매커보이가 끌고가는 살인 사건 이야기의 냄새는 약간 다빈치코드 비스무레한 분위기가 있었습니다. 주인공 보슈가 보슈라는 이름을 갖게 된 이유이기도 한 화가 히에로니무스 보슈의 여러가지 종교적인 그림을 통해 사건을 추적하는 과정에서 그런 느낌을 풍겼지요. 뭔가 악을 징벌하는 것이 정당하다는 상징성을 지닌 흔적들을 통해서 말이죠. 여기서는 <세속적인 기쁨의 정원>이라고 번역했던데 포털 사이트에는 <세속적인 쾌락의 동산>이라 나오니 어느 쪽이든 궁금하신 분은 한 번 찾아보세요. 언젠가 한 번은 본 그림입니다. 그리고 작품이 설명하는 부분을 같이 해독하면서 따라가보면 재미가 두 배일지는 나도 안해봐서 모른다.

       다른 줄기인 보슈가 끌고가는 이야기는 오히려 <링컨 차를 타는 변호사>에서 보여주었던 법정 스토리입니다. 미국 전역을 떠들썩하게 만든 영화제작자의 연쇄 살인 행각에 보슈가 증인으로 나서면서 링컨 차에서 미키 할러가 보여주었던 법정 공방이 주요 내용으로 펼쳐져요. 이렇게 두 가지 다른 타입의 이야기가 다른 방향으로 요모조모 흘러가다가 결국에는 어떤 계기로 합져지게 되면서 이야기의 몰입도가 정점으로 치닫는 구조인데 아주 재미지다구요. 경찰도 출동하고 쇠고랑도 차니깐 살인 사건 해결하는 거 하나도 어렵지 않아요. 그냥 숨만 쉬면서 책만 읽으면 돼요.

 

       그런데 코넬리의 팬이라면 이 작품에서 뭔가 어떤 전환의 시초 같은 것을 발견하실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영화 <분닥세인트>처럼 악을 응징하는 것에 관해 어떤 회의를 보슈가 갖기 시작하거든요. 여기 작품 중에 그것을 알리는 아주 중요한 대사가 하나 있어 느닷없이 안하던 발췌를 잠시 숨만 쉬면서 해보면 이렇습니다.

       "선택의 여지가 있을 때도 있고 없을 때도 있지. 잘못된 일들이 벌어지는 걸 뻔히 알고 있는데도, 왠지 그것들이 옳은 일이라는 생각이 들 때가 있어."  

       이 말은 보슈가 남긴 말인데,

       분닥세인트에서처럼 권력이나 경제력이 있는 범죄자들은 아무리 잡아 넣어도 곧 풀려나고 풀려나고 하니 하느님의 이름으로 직접 징벌하리라 나선 살인 행위가 살인이 아닌 것은 아니지만 어쩐지 그들을 응원하고 싶다, 하는 심정 정도일텐데 이러한 보슈의 의미 심장한 멘트가 후속 시리즈의 향방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는 것은 사실이므로 뭐랄까, 이번 작품에서부터 서서히 변화의 바람은 불고 있었다 라고 봐야겠네요. 



 
 
 
심플 플랜 모중석 스릴러 클럽 19 
스콧 스미스 지음, 조동섭 옮김 / 비채 / 200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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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는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을 천재라고 생각합니다. 그것은 그가 위대해서가 아니라, -물론 그를 위대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그가 가진 연출력이란 게 노력해서 얻을 수 있는 부분이 아니라는 점에서 그렇게 생각합니다. 물론 그가 노력하지 않는다는 얘기는 아닙니다. 보통 사람은 노력해도 이룰 수 없는 공력을 그는 애초부터 타고났다는 얘기인 것이지요. 그게 아니면, 남들은 죽도록 해야 간신히 이룰 수 있는 지점에 그는 시작부터 서 있었다고나 할까요? 가령, 초딩 김연아가 다른 초딩은 한 달을 해도 성공하지 못하는 트리플 악셀을 단 삼 일만에 해냈다, 하는 것처럼 말이죠. 남들은 그게 어렵다고 하던데 저는 그렇지 않아서 좀 이상했어요, 하고 아무것도 모르는 꼬마 김연아가 인터뷰하는 모습을 본 적이 있는데 그런 걸 두고 재능이라고 하는 걸 겁니다. 본래 문화 예술 스포츠 방면은 어쨌거나 그렇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그 어떤 노력보다 중요한 건 일단 타고난 재능인 거죠. 토끼는 낮잠을 자야 거북이가 이기는데 잠을 안 자는 토끼를 거북이가 이길 수는 없는 거니까요. 

 

      스필버그 감독의 그런 타고난 재능은 그의 데뷔작인 듀얼(duel)을 보시면 간단하게 알 수가 있습니다. 그걸 보면 그 후에 만들어진 수많은 흥행대작들은 오히려 당연한 결과처럼 느껴지거든요. 그 영화, 대형 트럭 한 대와 승용차 한 대밖에 등장하지 않습니다. 아주 심플해요. 내용도 그렇습니다. 도로를 달리는 승용차가 무슨 일에선지 문득, 자신의 뒤에 선 대형 트럭이 자신을 살해하기 위해 추격한다고 믿기 시작한 겁니다. 그리고는 혼자 극도의 공포에 빠져들게 되지요. 영화는 내내 도로를 달리는 두 차에 대한 것 밖에 없었다고 저는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트럭 운전수의 카우보이 부츠.

      기실 이런 정도를 기억하고 있는 것만해도 이 영화가 그만큼 대단했었다는 방증입니다. 왜냐하면 제가 이 영화를 본 지가 30년이 넘었거든요. 집에서 주는 모이나 얌전하게 받아먹고 자라던, 그야말로 털도 안 말랐을 때 본 영화니까요. 티비에서 하는 걸 -그땐 스필버그가 누구인지 당연히 알 리도 없었고- 우연히 지나가듯 보다가 결국, 끝까지 보게 되고 만 경우였습니다. 이 영화의 놀라운 점이 바로 거기 있어요. 무슨 내용인지도 이해할 수 없는 어린 꼬마가 본능적으로 무언가에 휩쓸리듯 화면 속으로 빨려들어간 것입니다. 영화는 오로지 인간의 내면 심리만을 표현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요, 그 긴박감에 도무지 눈을 뗄 수가 없었던 거예요. 

      그러니까 스필버그 감독은 방년 25세에 이미 무엇이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지를 잘 알고 있었던 것이지요. 그런 통찰력만해도 타고났다고 할 수 있는 것인데 그보다 더 큰 재능은 자신이 아는 그것을 표현해낼 수 있다는 점입니다. 두 가지가 합쳐지니까 놀라운 재능이 된 것이고 그것이 피나는 노력과 경험으로 일군 실력이 아니라는 점에서 천재가 되는 것입니다. 말씀드렸다시피 듀얼은 스필버그 감독의 데뷔작이니까요.

 

      소설 리뷰에 뭔 스필버그 감독의 영화 얘기만 늘어놓나 싶으시겠지만 이 소설이 앞서 말씀 드린 내용과 같아요. 스필버그의 데뷔 영화는 대형 트럭이고 스콧 스미스의 데뷔 소설은 거액의 공돈이지만, 그 차이점을 제외하면 나머지는 모두 같습니다. 

      제 생각엔 스콧 스미스도 타고난 사람입니다.   

      타고난 이야기꾼들의 특징은 어떤 톤으로 어느 부분에 힘을 주어 어떻게 말을 해야하는지를 아는 사람들입니다. 어떤 이야기를 하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들려주어야 하는지를 아는 사람들이죠. 그러므로 이들에겐 이야기의 내용이 중요하지 않습니다. 어떤 평범한 얘기로도 극도의 긴장감을 뽑아낼 수 있는 능력자들이니까요. 스필버그 감독은 두 대의 차량과 음악만으로 그것을 만들어냅니다. 스콧 스미스는 우연히 발견한 거액의 돈다발만으로 그것을 만들어냅니다. 둘의 공통점은 압도적인 내면 묘사로 강력하게 이야기를 통제하면서 끌고 나간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아는 사람 중에도 이런 방식의, 남들은 10분이면 끝날 단순한 소재를 100일 동안도 얘기할 수 있는 거장이 있죠. 떠오르셨습니까? 그렇습니다.

      스티븐 킹 선생입니다.

      이들의 특징 중에 가장 두드러지는 능력은 일단 탁월한 묘사력이라는 게 있습니다. 학창 시절을 돌이켜 보면 기억나시겠지만 어느 학교에나 그런 아이들이 한 명씩은 있었잖아요? 1시간 짜리 드라마를 3시간 동안 얘기할 수 있는 능력자들 말입니다. 그들의 공통점 역시 리얼하고 디테일한 묘사력이지요. 하여간 타고난 이야기꾼들의 특징입니다. 그건. 그러니 스콧 스미스 역시 예외가 아니지요. 아주 탁월합니다. 거의 모든 장면이 눈 앞에 펼쳐질 정도니까요. 게다가 때론 공감각과 촉각까지 느껴질 정도로 감각적입니다. 문장으로 촉각이 느껴질 정도의 리얼한 묘사는 코맥 매카시옹 이후로 정말 오랜만인 것 같아요. 그런데 참으로 묘한 것은 평범하고 담담하게 그려내는데도요, 이상하게 손에 잡힐 듯이 뚜렷하게 느껴진다는 겁니다. 확실히 노력으로 이루어낼 수 있는 경지는 아닌 듯 싶네요.

      다만, 매카시옹이나 킹 선생은 표면적인 행동 묘사나 풍경 묘사만으로 사람의 내면을 표현해낸다는 점에서 조금 레벨이 다르기는 하시지만 어쨌거나 이들은 짬밥이라는 게 있으시니까요.

 

      그래서 그보다는 한 단계 아래로 직접적인 내면 묘사가 있을 터인데 이 작품의 백미가 바로 그것입니다. 아주 탁월하거든요.  

      일단 기본적으로 독자든 관객이든 그들이 지루하지 않게 이야기를 들려줄 수 있다는 것은, 인간을 이해하고 있다는 이야기인데요, 그렇기 때문에 밀고 당기기가 가능한 거거든요. 그러니까 사람의 심리를 잘 이해해야 재미있는 작품을 만들 수 있다는 얘기가 되는 것이지요. 

      그런데 그런 이해에서 더 깊이 들어가는 내면 묘사의 영역에서 인간을 잘 이해하고 있으면, 단지 그것만으로도 강력한 공감을 이끌어내게 됩니다. 당연히 더 깊이 몰입하게 하지요. 이 작품의 백미가 바로 그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저는 이 소설이 장르쪽보다는 순문학 쪽에 더 가깝다고, 읽는 동안에도 그렇게 느꼈습니다. 사건이나 무대 장치가 화려한 작품이 아니거든요. 서스펜스라는 요소가 분명히 존재함에도 속도로 승부하지 않습니다. 단지 살인이라는 소재가 다루어졌기 때문에 장르로 구분되었을 뿐, 작품을 지배하는 90% 이상의 힘은 내면 묘사에 있습니다. 마치 이언 매큐언의 <이런 사랑>처럼 말이죠. 굉장한 긴박감을 주지만 그것을 사건의 흐름으로 조정하는 게 아니라 사건에 관련된 사람들의 내면 묘사로 조정합니다. 마를렌 하루스호퍼의 <벽>이라는 작품도 떠올랐고, 슈테판 츠바이크의 <연민>도 떠올랐고, 그리스토프 하인의 <나폴레옹 놀이>도 떠올랐어요.

      그러니까 이 작품은 오히려 장르보다는 그런 순문학 작품군에 더 가깝습니다. 제 생각엔 그래요. 사건이란 그저, 어떤 터닝 포인트로만 작용하는 하나의 장치에 불과할 뿐, 작품 전체를 지배하는 것은 인간의 내면 묘사니까요. 그러므로 쫓고 쫓긴다거나, 사건 위주의 스피디한 장르적인 성격이 강한 작품을 선호하는 독자들에겐 이 작품이 그리 흥미롭지 않을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관점의 차이니까요.

      어쨌거나 제 취향에서 보자면 이 작품은 최고 등급 레벨이었어요. 그러니 그쯤되면 사실 장르니 순문학이니 하는 구별은 별 의미가 없습니다. 단지 작품이 어떤 분위기라는 걸 알려드리기 위해서 그리 설명을 하긴 했지만 별로 의미는 없어요. 본래 어떤 분야라도 최고로 분류되는 집단은 어떤 한 경계에 딱 속해 있지 않잖아요? 이 작품도 그런 정도의 수준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그게 중요한 거죠. 그러니 이 작품이 데뷔작인 작가를 두고 제가 천재라고 생각하는 것도 무리가 아니지요. 

      한마디로 명품 소설입니다.  

   

      책을 읽다가 중간에 번개를 맞은 듯 같은 작가의 다른 책을 황급히 주문하는 경우가 그리 흔한 일은 아닙니다. 이 작품을 읽다가 그랬습니다. 그런데 스콧 선생은 불행히도 이제까지 딱 두 작품 밖에 쓰질 않았더군요. 냉큼 장바구니에 집어넣긴 했는데 살짝 불안한 마음이 없진 않습니다. 저는 종종 아주 마음에 드는 작가를 만나면, 어쩌면 당연하게도 번역자를 굉장히 유심히 보거든요. 번역자 잘못 만나면 그걸로 그 작품 하나를 날려버리는 거나 다름 없으므로 불안하지 않을 도리가 없죠.

      이 작품의 문장은 대단히 좋았습니다. 작품이 이야기로 승부를 하는 부류가 아니고 묘사로 승부를 하는 쪽이기 때문에 번역자의 문장이 대단히 중요한 소설이었는데 이처럼 만족스럽다는 얘기는 기실 번역자의 공이 절반 이상이라고 봐야겠죠. 그리고 이 작가의 타입을 보니 이야기보다는 묘사에 치중하는 경향이던데 장바구니에 넣은 작품의 번역자가 다른 겁니다. 그런데 그 번역자가 아직 제가 신뢰하는 군에 들어있는 분이 아니신지라 과연 이 작품만큼 잘 해냈는지 내심 불안한 면이 없질 않아요. 그나마 하나 남은 작품이라 더 그런 생각이 드는 건데, 뭐, 읽어보면 답이 나오겠죠. 젭라 번역 문장 때문에 뚜껑 날아가는 일이 없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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