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겔 또는 스피노자 프리즘 총서 11
피에르 마슈레 지음, 진태원 옮김 / 이제이북스 / 2004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잘 모르는 분야의 책을 읽으려고 할 때, 그런데 주위에 그 책에 관해 물어볼 만한 사람이 없을 때, 아무래도 서평 등을 참고하게 된다. 여기에다 그 책값이 상당하고, 특히 (철학/인문학 관련) 번역서라면, 돈도 별로 없거니와 직간접적으로 오역의 폐해를 경험한 나 같은 경우 리뷰를 보지 않고서는 책 살 엄두를 아예 내지 못하는 편이다. 그러나 이는 비단 나만의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나 역시 스피노자에 대해 거의 모르지만, 나와 비슷한 고민을 하는 독자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까 해서 용기를 내 글을 쓴다.
이 책은 우리나라에 번역된 스피노자 관련 연구서 중 ‘소장’해서 두고두고 읽을 만한 몇 안 되는 책 중 하나다. 이는 우선 저자인 피에르 마슈레의 이론적 역량 때문이다. 알튀세르의 제자라는 점에서 미루어 알 수 있듯, 마슈레 역시 ‘~를 읽자’라는 노선에 아주 충실하다. 앞의 서평자도 말했듯 이는 들뢰즈나 네그리의 스피노자 연구와 비교되는 지점이다(그렇다고 해서, 특히 들뢰즈의 독해가 꼼꼼하지 않다는 뜻은 아니다. 하지만 들뢰즈는 어디까지가 스피노자의 견해고 어디까지가 자신의 견해인지를 다소 불분명하게 만드는 경향이 있다. 네그리는 더 심하고 말이다. 네그리를 읽고서 스피노자를 알았다고 하는 건 솔직히 어폐가 있다). 스피노자, 특히 ‘에티카’ 1~2부를 정밀하게 읽고자 할 때 한글로 된 문헌 중에 이 책보다 훌륭한 동반자를 찾기란 당분간 쉽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이 책이 딱딱한 ‘훈고학’은 아니다. 알다시피 알튀세리앙들의 독해 노선은 ‘징후적 독해’로서, 텍스트의 모순과 공백과 균열을 특권화하면서 텍스트가 명시적으로 말하지 않는 것을 드러낸다. 말하지 않는 무엇? 알튀세르의 표현대로 ‘이론에서의 계급투쟁’, 또는 당대의 (정치-)이데올로기들과의 대결 또는 동맹 말이다. 여기서 ‘당대’란 두 가지 의미로 이해되어야 하는데, 한편으로는 스피노자의 당대며, 다른 편으로는 마슈레의 당대다. 후자와 관련하여 내가 주로 파악한 것은 ‘이데올로기’의 문제설정과 ‘유물변증법’이라는 쟁점이다. 앞서 스피노자 연구와 관련하여 이름난 두 명의 이론가로 들뢰즈와 네그리를 든 바 있는데, 이들은(또는 국내에서 이들을 따르는 이들은) 이데올로기의 문제설정을 폐기하고 완강한 反변증법의 노선을 택한다. 이는 그들의 주장이므로 그에 대한 이견 여부와 관계없이 존중되어야 한다. 문제는 이들의 주장이 스피노자의 사고로부터 필연적으로 따라나온다는 식의 통념이 형성된다는 점, 그러면서 스피노자 사고의 많은 부분 심지어 결정적 부분이 제거된다는 점에 있다.
이 점에서 마슈레의 이 책은 우리나라에 널리 소개되지 않았던 스피노자의 다른 면목(심지어 진면목!)을 설득력있게 제시한다는 중요한 의의를 갖는다. 특히 이데올로기의 문제설정과 스피노자의 불가분성은 이 책의 전반부를 통해 거의 움직일 수 없는 사실로 입증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유물변증법의 문제는 이에 비하자면 마슈레의 해석이 좀더 많이 가미됐다고 할 수 있는데, 그가 철저히 훈련받은 징후적 독해의 노선 덕분에 마슈레는 자의성을 효과적으로 피하면서 독창성에 도달하는 듯 하다. 이는 그가 헤겔과 철저하게, 그렇지만 (예컨대 네그리처럼 외재적으로가 아니라) 내재적으로 대결한 결과로 보인다.
하지만 지금까지 소개한 것은 이 책 자체에 관한 것이지, 이 책의 ‘국역본’에 관한 것은 아니었다. 예컨대 데리다가 쓴 ‘마르크스의 유령들’이 아무리 훌륭한 의의를 갖고 있다 하더라도, 그 국역본을 추천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이 리뷰를 쓰게 된 근본적 전제는 번역자의 이론적 역량에 대한 신뢰다. 이에 대해서는 백번의 설명보다는 그가 쓴 ‘불량배들’ 서평(나 역시 이 서평 때문에 그를 알게 되었다)을 직접 보는 게 훨씬 나을 것이다. 꼼꼼한 번역은 물론이거니와, A4 30장에 달하는 역자해제 및 상세한 역주는 불어본으로 환원할 수 없는 국역본의 고유한 가치다. 더욱이 읽다가 막히는 부분이 있을 때 언제든 역자에게 이론적 도움을 청할 수 있고 이에 대해 이론적 환대를 받을 수 있다는 점은, 다른 어떤 책의 독서에서도 경험하기 힘든 매우 강력한 지적 자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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